〈 142화 〉 쉬운 일은 없다
* * *
“으음…”
팔콘제국에서의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은 마왕.
이 순간, 그녀는 생각했던 것과는 여러모로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상당히 복잡하기 그지 없는 기분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뭐라고 할까… 갑자기 스케일이 너무 커지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구나…’
본래라면 카산드라를 도와 반란을 성공시키고, 이를 통해 제국의 약화를 불러 오기로 되어 있던 그들의 계획.
그러나, 이는 갑작스럽게 말 그대로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는 신.
아문에 의해서 전반적인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본래 엘프 교국의 일과 관련해서 마왕 역시 악신으로 판단하고 있던 존재.
그러나, 용사의 말에 따르면 이 아문이라는 자는 마족들에게 적대할 의사가 전혀 없으며,
오히려 그들의 잠재적인 적이라 할 수 있는 대륙의 국가들.
팔콘 제국과 마도국, 그리고 엘프 교국과 수인국을 한바탕 뒤집어 주려는 계획을 지니고 있다 하였다.
실제로, 이 세계에 강림하자마자 마왕국의 철천지 원수였던 팔콘 제국의 황제 크레토스 3세를 끔살한 것이 그 예.
그런 점에서, 마왕은 일단 이자와 손을 잡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그 이상으로 지금의 상황에 대해 부담을 안 가질 수 없는 입장이었다.
“벨제뷰티, 어쩌면 좋겠는가? 확실히 우리들 입장에선 구미가 담기는 일이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구나.”
“저 역시 그리 생각합니다. 당장 용사의 말대로 이 일을 진행하려면 일전에 저희들이 파괴를 막았던 세계수부터 시작해서 저들의 국보라 할 수 있는 것들을 처리해야 하니까 말이지요.”
이 일은 물론 아문이라는 신을 앞세워서 진행하는 것이라 하지만, 자칫 대륙 곳곳에 너무 광범위하게 도발을 하는 짓이 될 수도 있다.
그나마 팔콘 제국 쪽은 걱정이 없겠지만, 이 상황에서 기타 3국이 이쪽으로 화살을 돌리는 것도 제법 곤란한 일.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 마왕 나자렛에게.
벨제뷰티는 잠시 고민 끝에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일단은… 이 일 자체에 대해선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용사도 이야기 했듯이 이는 말 그대로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 어차피 언젠가 적이 될 녀석들이라면 찬스가 왔을 때 확실하게 뿌리를 뽑는 게 정답이겠지요. 단.”
“단?”
“이것 하나는 분명히 하셔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일이 외부로 새어나가선… 이 일의 배후에 저희들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으음… 하지만 그거야말로 정말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비록 지금까지 비슷한 일을 진행한 적이 몇 번은 있지만 이번 일은 무려 저들의 국보를 노리는 것이다. 가령엘프 교국의 세계수 유피테르. 그것을 파괴한 자가 누구인지 감추는 게 가능 하겠는가?”
“가능 하게… 만들어 봐야겠지요. 오히려 엘프 교국은 반쯤 저희들의 속국이니 비교적 쉽게 처리할 수 있다 하더라도. 마도국이나 수인국… 특히 마도국의 경우는 정말 어려울 것입니다.”
“하긴… 그 마도왕은 절대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까.”
과거 딱 한 번 우연히 마주한 적이 있었던 존재인 마도왕. 오버시어 아즈타스.
비록 그녀가 직접적으로 전투에 나선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 작은 소녀의 외형을 지니고 있는 존재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괴물인지에 대해서 마왕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상대의 힘은 아마도 나와 동급… 물론 실제로 전장에 나선 것을 본 적이 없으니 확신은 금물이겠지만 분명 평범한 녀석은 아니야.’
당장 그 거대한 팔콘 제국의 바로 옆에 붙어 있음에도 흡수당하지 않고 굳건히 나라를 유지해온 것 만으로도 그녀와 마도국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는 상황.
그렇게, 앞으로의 일이 정말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이라는 절대적인 힘을 지닌 존재가 돌아다니고 있는 이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서.
마왕은 끝내 용사가 올린 제안을 수락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그만한 힘을 지닌 신에게 밉보였다간 오히려 더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결국 피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이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뿐이겠지…’
*
“나 원 참… 대체 무슨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 건데…”
“그러게나 말이야. 간만에 눈치 안보고 신나게 폭발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이 이상하게 꼬여버렸어.”
그 동안 조금 평온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간만에 피 튀기는 전투를 기대했던 두 사람.
그러나, 지금의 이 상황은 그들의 예상과는 여러모로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중이었다.
갑작스럽게 강림한 신과,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극적인 상황의 반전.
그 결과,
그들은 당초 계획이었던 카산드라의 병사들과 함께 황도를 공격하는 것이 아닌, 이미 접수가 끝났다 할 수 있는 황도로 병사들을 이끌고 입성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물론 피를 흘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했다는 점은 좋게 볼 수 있겠지만 전투를 바라며 이곳에 왔던 그들 입장에선 밥도 안 먹고 배가 부르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여러모로 불완전 연소라는 느낌이 드는 이 상황에 약간의 불만을 품으며 일단은 황성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는 엘리사 일행.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런 두 사람의 곁에는 시중을 들고 있는 다크엘프 아멜다 이외에 또 한 사람이 포함되어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일단 잘되지 않았나요? 다른 분도 아닌 아문님께서 저희들을 보호하고 계십니다. 이보다 더한 광명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 그러고 보니 너 원래 아문의 신도였었지?”
두 눈을 반짝이면서 감동에 겨운 목소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인물.
클레오파트라.
본래 엘프 교국에서 활동하던 아문의 신도였던 그녀는, 비록 엘리사에 의해 암컷으로 타락해 버리고 말았지만 여전히 마음 한곳에 아문에 대한 신앙을 지니고는 있었다.
다만 그 신앙의 힘이 엘리사에 대한 복종심에 짓눌려 있을 뿐.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비록 그녀는 실패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지상에 강림한 아문을 직접 보는 것은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가 마왕의 서신을 가져오는 일이 자청해서 나선 이유 또한 직접 아문을 대면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건 그렇고… 저 아문이라는 신도 참 자비롭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설마 너 정도로 대형사고를 친 배신자를 용서해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아문님은 관대하신 분이시니까요. 임무의 실패는 질책하셨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한 만큼 이 이상의 죄를 묻지 않겠다 하셨답니다.”
임무를 실패하고 이로 인해 많은 동지들을 죽게 만들어 버린 안토니우스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던 엘프 클레오파르타.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아문은 자신의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를 청한 그녀에게 별다른 처벌을 묻지 않았다.
그 일은 그녀가 무능해서 그랬다기 보단 억수로 재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으며,
아울러 이미 여자가 되어버리면서 지위와 권력, 거기다 어떻게 보면 그 이상으로 소중한 것을 잃어 버리고만 것으로 충분히 형벌이 되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에게 이만한 자비를 베풀어준 아문에 대한 신앙심이 더욱 커진 상황이었다.
“어떠신가요 주인님과 냐단님 께서도 이 기회에 아문님의 신도가 되어 보시는 것은…”
“사양할게, 비록 지금 당장은 우리편을 들고 있지만 언제 어떤 식으로 통수를 칠지도 모르는 녀석에게 고개를 숙이고 싶은 생각은 없어.”
“나 역시 엘리사하고 마찬가지. 애초에 우리 마족들에게 딱히 신이니 뭐니 하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런가요… 아쉽군요. 하지만 기회가 생긴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아문님께선 대죄로 지정하신 타인의 사랑을 빼앗는 추잡한 짓만 하지 않는다면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받아들이시는 분이시니까요.”
“흐응… 그건 제법 마음에 드는데.”
“…하아… 참고할게.”
그렇게 이 와중에 은근히 몸을 기대며 스킨쉽을 진행하는 냐단과. 여기에 대해서 살짝 한숨을 내쉰 뒤 그대로 자신의 ‘여자친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엘리사.
그렇게 가벼운 노가리를 까면서 이동 준비를 끝낸 직후.
그들은 기다리고 있던 다른 이들과 함께 황도로 출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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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의 높은 곳에서 홀로 선 채, 조용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아문과 카산드라 일행을 바라보는 아킬레스.
지난 수년간 그가 준비해왔던 계획은, 저들이 도착하면서 마침내 그 마침표를 찍게 될 것이었다.
그의 사랑하는 아내를 가로채간 황제는 죽었고,
그를 배신한 아내 또한 그의 손으로 처치했다.
그리고, 이제 저기서 오고 있는 카산드라가 도착하게 되면 이곳 황실은 완벽하게 그들의 손에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면서도 지금의 아킬레스의 마음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아킬레스에게 있어서 권력은 오직 수단에 불과했다.
목적을 이룬 지금 굳이 필요는 없었으며 그런 점에서 이미 그는 자신이 지닌 권력을 카산드라에게 넘겨줄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가 이를 통해 황제가 되든 아니면 황실의 누군가를 꼭두각시로 세우든, 아킬레스는 더 이상 관심도 흥미도 없었다.
‘…그렇다 하지만… 허망하구나. 원하던 복수를 마침내 이루었는데… 결국 나에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으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일단 아킬레스는 천천히 첨탑에서 내려와 그대로 아래로 향하였다.
어찌 되었든, 지금 중요한 것은 일단 이곳으로 오게 되어 있는 손님들을 맞이하는 것.
개인적인 고민은 그 뒤로 미루자고 그는 판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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