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 너의 그 소망을 내가 들어주겠다
* * *
눈 앞에 있는 거대한 붉은 용.
그 동안 여러 면에서 유명해진 존재인 아문을 보면서, 카산드라는 묵직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한눈에 봐도 적으로 돌렸다간 정말 답이 없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를 지니고 있는 존재.
방금 전까지만 해도 순식간에 황도 백성들의 4할을 날려버리고 온 괴물을 눈 앞에 둔 이 상황에 대해선 아무리 용맹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카산드라라 해도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렇게 빳빳하게 구겨진 표정으로나마 이곳에 서있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지도자로서 책임감 뿐만이 아닌,
이 순간 이 괴물과의 1:1 면담의 중재자로서 마왕이 자리를 함께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그러니까… 이분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육욕적으로 문란한 짓을… 불륜을 저지르거나 바람을 피운 자들을 멸절하러 온 것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 그런 뜻입니까?”
“그렇다. 그 증거로 황도에서 죽임을 당한 자들 또한 그런 식으로 죄를 저지른 자들뿐이라 허더군. 그 점에 대해선 바로 확인을 해보면 될 것이라고 본다.”
“으음…”
아문신이 이 세상에 강림한 이유와 그의 목적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을 해준 마왕.
그렇게 생각했던 것 보다 심히 건전한(?) 이유로 학살을 자행한 아문의 행보에 대해서, 카산드라는 섬찟한 기분과 함께 짙은 안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다… 그래도 나나 헬레네는 그런 쪽하고는 아직 완전히 무관해서.’
비록 제국 3기사로서 아주 높은 자리에 올라 있다 할 수 있는 그녀들이었지만 정작 두 사람은 모두 불륜은커녕 아직 한 번도 남자를 안아본 적이 없는 처녀였다.
이런 저런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지금까지 딱히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아문이 이야기한 부분에 대해선 끼어들 여지조차 없는 두 사람.
그런 점에서 일단 카산드라는 과거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정조를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심을 하며, 이 순간 자신들이 눈 앞에 있는 ‘신’에게 일단 머리를 조아리며 예를 표하였다.
“위대하신 존재를 뵙겠습니다 아문님, 제 이름은 카산드라 잉클리먼트. 이 무리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 입니다.”
“그대의 활약은 줄곧 지켜 보고 있었다. 카산드라라는 이름을 지닌 인간. 그리고 동시에 난 과거부터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한 아주 잘 알고 있지.”
“!...”
아문의 말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는 카산드라.
그러나, 이내 그녀는 눈앞에 있는 존재가 신이라면 그 정도를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면서.
아문 신은 묵직한 위엄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의 그 소망을 내가 들어주겠다. 네가 원하는 그것을… 이 나라의 황제 자리는 주겠노라.”
“꿀꺽… 화… 황제를… 말입니까?”
줄곧 마음 속에 품어오고 있었으며, 이번 일의 궁극적인 목표로서 그녀가 바래왔던 것.
이를 이루어 주겠다는 아문의 말에,
카산드라는 일 순간 묵직한 욕망의 감정이 그녀의 마음 속에서 피어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직후,
그녀는 잠시 욕망에 눈이 멀어 잊을 뻔 하였던 한가지 사실을 기억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런 식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대가라는 것이 따른다는 중대한 사실이었다.
“그… 그럼 그 대가로 저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소위 악마에게 수명이나 영혼을 판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떠오르게 만드는 상황.
이에 대해서 카산드라는 아무리 욕망이 앞서더라도 이 때문에 어리석은 선택을 해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지금의 이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기 시작했다.
‘한 순간의 영광 때문에 영원히 고통 받을 수는 없어. 황제 자리가 탐이 나긴 하지만 여기선 냉정을 유지해야…’
그렇게 나름대로 냉정함을 유지한 채 아문에게 질문을 하는 카산드라.
그런 그녀를 보면서 아문은 차분한 목소리로 계약을…
그녀가 치러야 할 대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앞서 이야기 했던 더럽고 문란한 행위들을 이 땅에서 근절 시키는 것이다. 네년이 황제로 군림해 이끌어 나갈 나라에서 그런 행위를 정식으로 금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맹세한다면. 네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노라.”
신의 위엄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아문.
이에 대해서 카산드라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으며…
그것으로 끝이 난 아문의 말에 그대로 멍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하였다.
“….네? 그것뿐 입니까?”
“그것뿐이다.”
“저…저기 혹 제 영혼을 내놓아라 라던가 수명을 내놓아라 그런 것은…”
“인간의 영혼이나 수명 따위를 내가 어디에 쓴단 말이냐.”
“하… 하지만 옛 문헌이나 서적에 보면 신이나 악마와 계약을 할 때는 그런 것을 거는데 보통이라고…”
“이 세계의 신들이 만들어낸 악습일 뿐이다. 보아하니 대대손손 신들에게 사기를 당해왔나 보군.”
“…”
어떤 면에서 보면 참으로 일관적이면서도, 여러모로 기존의 신이라는 놈들에 대한 악감정이 무럭무럭 피어나도록 만드는 아문의 말.
이에 카산드라는 이제서야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 같은 찝찝함을 맛보면서, 그대로 단호하게 무릎을 꿇었다.
“위대하신 신 아문님이시여, 당신을 섬기겠나이다. 오직 당신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참된 유일 신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나이다.”
그렇게 아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선언한 카산드라.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아문의 입가에는 그대로 미소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
카산드라가 아문과 손을 잡기로 결정한 뒤, 일처리를 위해 밖으로 나간 직후.
난 동맹으로서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럼… 아문님이 생각하시는 그 기준에 하렘이나 백합 같은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그렇다. 딱히 그런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내가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혐오감을 느끼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랑을 기만하고 배신한 행위에 한해서 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태초부터 내려온 이 세상의 룰과 같은 것, 그것을 추악한 욕망에 휩쓸려 깨뜨린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군요…”
즉, 개인의 취향은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연인이나 결혼과 같이 그것이 하나의 형태를 이룬 상황에서 이를 일방적으로 깨뜨리고 상처를 주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아문이 내리는 ‘심판’의 기준이라는 뜻.
말 그대로 순수하게 NTR에 한해서만 분노를 느끼는 것이 그의 취향이라는 것을 난 인지하게 되었으며 이는 나 또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비록 종족도 위치도 다르지만 서로간에 취향이 정말 잘 맞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난 눈 앞에 있는 이 신을 향해 조심스럽게 질문을 하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일단 아문님의 뜻에 따라 손을 잡긴 했습니다만, 아문님께 저희들이라는 존재가 굳이 필요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당장 방금 전에도 아문님의 권능에 의해 그 넓은 황도에 존재하는 NTR충…. 그러니까 음탕한 자들이 순식간에 척살되지 않았습니까?”
솔직히 그만한 힘을 지니고 있는 절대자라면,
굳이 우리와 같은 미물 수준의 존재들에게 손을 내밀 필요 없이 자신이 일방적으로 일을 처리하면 되지 않느냐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
아문은 잔잔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유감이지만 그렇게 할 경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용사여, 외람된 이야기 이지만 이 세계에서 나의 위치는 어디까지나 이방의 신. 천계에 한해선 상관이 없었지만, 현세에 사용할 수 있는 권능에는 한계가 있다, 같은 수준의 능력을 다시 사용하려면 이틀 정도의 대기 시간이 필요하겠지.”
“아…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습니다.”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차원의 문을 넘어올 경우 힘의 제약이 생긴다는 것은 여러모로 흔한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 하나를 반쯤 날려버린 아문의 힘은 어마어마하기 그지 없었지만. 그 한계 또한 존재하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이곳 인간 제국은 수호석이 파괴되면서 내가 강림할 수 있었지만 다른 세 지역의 경우는 아직도 그곳을 지키고 있는 신들의 징표들이 남아 있다. 아무리 나라 해도 그것들이 남아 있는 한 그 나라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신들의 징표라면… 혹 엘프 교국의 세계수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다, 과거 나의 충실한 종인 아킬레스를 통해 파괴하려 했지만 너희들에 의해서 제지 되고 말았던 물건이지.”
“으음… 어쩐지 죄송합니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아문의 강림을 방해한 꼴이 되고 말았던 나와 마족들의 행보.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아문은 생각보다 가벼운 어조로 대꾸를 하였다.
“상관 없다. 어차피 세계수를 부수는 것은 어디까지나 플랜 A였을 뿐. 그 외에도 방법은 많이 있었고 실제로 이렇게 성공을 했다.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나의 신도들은 마음이 아프지만… 문제는 바로 지금부터라 할 수 있겠지.”
“!... 그 말씀은…”
황금빛 눈동자를 번뜩이며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는 아문.
이어서 그는, 나를 향해 한층 진지함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 용사, 지금부터 네가 해주었으면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이 대륙에 남겨져 있는 저 신들의 자취를 모조리 지워 버리도록 하라. 우리들이 보다 확실하게 저 음탕한 녀석들을 쓸어버릴 수 있도록 말이다.”
자신의 활동 변경을 넓힐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아문의 말.
이에 대해서, 난 입가에 진심어린 미소를 지으며 내 앞에 있는 동류의 존재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 뜻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아문님.”
“아 그리고 한가지. 이것은 내가 용사 너에게 개인적으로 제의하고 싶은 것이다만…”
“네?”
다음 순간, 갑작스럽게 살짝 분위기를 바꾸어 나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아문.
이에 대해서, 난 그 동안 마왕과의 행복한 시간 덕분에 잠시 잊고 있었던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다시금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리 해주신다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아문님.”
“알았다. 허면 너에게도 기회를 주마. 그날의 모욕과 분노를 되갚을 수 있는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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