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 연인들을 위한 날인데 난 남자가 없다
* * *
마족들의 신.
통칭 마신 임마노엘.
2000년 전,
정숙한 처녀인 검은성모 마리에게서 태어났다 알려져 있는 그는 각종 기적으로 인해서 고통 받던 마족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 항쟁 함으로서 마족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그러나,
노예나 다름 없는 존재들이었던 마족들의 귄익을 주장하던 그의 행동은 인간들에게 위험이 되었고, 결국 인간들은 더러운 함정을 이용해서 임마노엘을 죽음으로 몰아넣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죽임을 당했음에도 임마노엘은 3일만에 무덤에서 일어나 자신을 따르던 마족들을 이끌고 바다를 건넜고, 이 땅에 정착해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그렇게, 괴로움에 신음하던 마족들을 구원하고 끝내 마왕국의 시조가 되었다 알려져 있는 전설적인 인물 임마노엘.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임마노엘의 피가 흐르고 있다 알려져 있는 존재인 마왕은.
눈 앞에서 한참 임마노엘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인 임마노엘 마스가 준비되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진한 설렘의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중이었다.
‘앞으로 이틀 인가… 그때가 되면 용사와…’
줄곧 기대하고 있던 용사와의 시간.
이미 충분히 가까워져 있다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마왕은 슬슬 이 다음에 있다는 무언가를 원하고 있는 중이었다.
‘듣자 하니 남녀간의 정분이 깊어지면 그 다음에는 아이를 만드는 것이라 들었다. 확실히… 지금이라면 짐은 용사와 아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쌍의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나누고 잉태하여 자식을 갖는 것.
그것은 모든 종족을 불문하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며, 이제 마왕은 그것을 바라고 있는 중이었다.
‘용사와 나의 아기… 라. 분명 강하겠지. 그리고… 아주 귀여울 것이다. 짐은 그렇게 귀엽지 않지만 용사는 충분히 귀여우니…’
지금도 그녀가 머리를 어루만질 때면 마지 작은 강아지와 같이 초롱초롱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내곤 하는 용사의 모습.
그런 용사를 닮은 아기라면 분명 매우 사랑스러울 것이라고 마왕은 확신하고 있는 중이었다.
‘듣자 하니 아기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지만… 뭐, 상관은 없겠지. 그냥 남자와 단둘이 있을 때 요청을 하면 남자가 알아서 다 해줄 것이라고 벨제뷰티가 말했으니까.’
*
“하아…”
창 밖에서 반짝이고 있는 화려한 거리의 모습.
마신 임마노엘을 상징하는 검은 별이 달려 있는 거대한 트리를 중심으로 한 형형 색색의 장식품들을 보면서,
엘리사의 입에선 그대로 진한 한숨이 흘러 나왔다.
“무슨 일이세요 주인님?”
평소와는 달리 한껏 분위기가 다운되어 있는 주인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묻는 다크엘프 아멜다.
그녀의 물음에, 엘리사는 슬쩍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뒤 입가에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응?... 아니… 그냥 좀. 오늘이 임마노엘 마스라는 건 너도 알고 있지?”
“네, 지난 며칠간 그것 때문에 주인님을 도와드렸으니까 말이지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마신님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한 성스러운 날 아닌가요? 엘프들 사이에 있는 축신 일하고 비슷한 종교적 행사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만.”
“하아…”
확실히 이런 쪽에 한해선 상당히 보수적인 엘프 태생인 만큼 상당히 순진한 반응을 보이는 아멜다.
이에 대해서, 엘리사는 짙은 한숨을 내쉰 뒤, 그대로 눈 앞에 있는 이 순진한 부하 1호를 보며 말했다.
“그래… 원래는 그랬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400년전의 이야기 일 뿐이야. 종족 전쟁을 경험하면서 마족들 사이에서 신에 대한 부분이 많이 약화되었다는 건 알고 있지? 그 과정에서 이 임마노엘 마스도 여러모로 큰 변화가 생겼어.”
“변화… 라니요?”
“단순히 신의 탄신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연인들 사이에 꽁냥거리는 날로 바뀌었다 이거지.”
“아….”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함과 동시에 한 순간 멍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아멜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엘리사는 입가에 쓴웃음을 담은 채 말을 이어 나갔다.
“이제 무슨 뜻인지 알겠지? 바꿔 말하면 이날은 연인 따위는 전혀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겐 안 그래도 쓸쓸한 상황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지는 날이라고. 거기다 하필이면 이런 날에 비번이기 까지 하니 여러모로 불행이 겹쳤다고 할 수 있겠지.”
그렇게 부하 겸 노예에게 진한 아쉬움의 감정을 토로하는 엘리사.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녀는 단순이 이런 이유 때문에 기분이 더럽다 할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수백 년을 살아오면서 무수히 많은 임마노엘 마스를 솔로로 보내왔던 그녀였지만,
그렇다 해서 딱히 외롭거나 한 기분을 느끼지는 않았다.
애초에 남자 따위는 필요 없다. 같은 주의를 유지하고 있었던 만큼. 연인을 보면서 그 정도로 심한 질투를 느끼거나 할 이유는 없었으며,
그냥 그런가 보다 정도로만 여긴 채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었다.
그러나, 이번 임마노엘 마스는 지금까지의 그런 평범한 하루하루와는 달리 여러모로 엘리사에게 커다란 내상으로 다가오고 있는 중이었다.
‘용사는… 지금쯤 그 여자하고 마음껏 꽁냥 거리고 있겠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 X과 사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용사 엘런.
지금까지 대체 그자가 누구인지 엘리사는 최선을 다해 정보를 수집해보기 위해 노력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는 못하였다.
다만 들려온 정보에 따르면 확실히 용사가 어떤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과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이 종종 포착되고 있다는 것.
하지만 문제의 그 X의 정체에 대해선 여전히 오리무중 이었으며, 이에 엘리사는 그저 속이 바짝바짝 타는 기분을 맛보며 손가락만 빠는 것 이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제길… 대체 어디에 사는 누구길래 이렇게 정체를 잘 숨기는 것이지? 어째서인지 사람들 마다 증언도 조금씩 다른 것 같고…’
해석하기에 따라선 용사가 엄청난 바람둥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상황이긴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그다지 사교적인 느낌이 아닌 용사가 매번 여자가 바뀌는 것은 조금 무리수였다.
이와 관련해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그 여자가 의도적으로 외모를 바꾸고 있다는 것.
가발을 착용하거나 화장을 다르게 하는 식으로 정체를 숨기며 용사를 만나고 있다 보는 것이 타당한 해석이었다.
‘저쪽도 나름대로 정체를 숨기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뜻인데… 아무튼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의 추적은 힘들지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대로 용사가 속수 무책으로 그 정체 불명의 여인에게 완전히 넘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엘리사.
그때…
그런 그녀를 보면서 아멜다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저, 하지만 엘리사님. 그렇다 치면 엘리사님도 이미 훌륭한 연인이 있지 않나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한 순간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아멜다.
이에 엘리사의 얼굴에는 그대로 의문의 감정이 깃들었으며, 그런 그녀를 보면서 아멜다는 그대로 그녀의 옆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 이렇게, 비록 조금 변질 되긴 했지만 이렇게 엘리사님만을 바라보는 ‘남자였던 것’도 있지 않습니까.”
그 말과 함께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줄을 가볍게 끌어 당기는 아멜다.
이에 그녀의 옆에선, 검은 제복 차림을 한 채 몰 죽이 묶여 있는 상태로 바닥을 기어오고 있는 한 여성 엘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헥…헥… 그.. 그렇 습니다 주인님… 그렇게 쓸쓸해 하실 필요 없습니다. 외로우시다면 언제든지 말씀 해 주세요. 주인님께는 이 충실한 암캐인 클레오파트라가 있지 않습니까? 저의 XX는 언제나 주인님이 것, 주인님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충실한 XX홀인 만큼 마음껏 사용해 주세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채 무언가를 간절히 갈구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엘프.
클레오파트라.
비록 그녀의 피부는 여전히 다크엘프가 아닌 엘프 특유의 새하얀 빛을 지니고 있었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엘리사와 아멜다는 어떤 의미에선 이 녀석이야말로 정말 확실하게 타락해버린 존재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심 내가 만들긴 했지만 이건 좀 심하네, 이러니까 내가 이 짓을 하기 싫었던 거라고.’
정보를 끄집어내기 위해 만들어낸 성욕에 미친 짐승 한마리.
솔직히 생각 같아선 당장이라도 처분해 버리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엘리사는 일단 이년은 한 동안 자신의 부하 2호 겸 가축으로서 기르기로 결정했다.
비록 하는 짓은 저 모양 저 꼴이지만. 순수한 전투력만 따지만 녀석은 엘리사를 능가하는 강자인 만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아무튼…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집안에만 있는 것도 우중충 하단 말이지, 당장 마마도 누군가 하고 데이트하러 나가서 올 손님도 없는데. 이 녀석들 데리고 밖이라도 나가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슬쩍 외출할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엘리사.
그때…
똑똑
“응?”
다음 순간,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문 두드리는 소리.
이에 엘리사는 오늘 올 사람이 없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그대로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아…안녕 엘리사.”
“응? 냐단? 네가 오늘 여긴 어쩐 일이야?”
생각지도 못한 친구의 방문.
이에 엘리사의 얼굴에는 반가움과 더불어 의문의 감정이 피어났고,
그런 엘리사를 보면서 냐단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니… 그냥. 우연히 레스토랑 티켓이 생겨서 어차피 딱히 같이 갈 사람도 없고 해서 말이야. 혹 괜찮으면… 나랑 지금 나갈…래?”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냐단.
이에 대해서, 엘리사는 가벼운 의문이 들긴 했지만, 그런 것과 상관 없이 마침 그냥 무작정 외출을 하려 했던 만큼 딱히 그녀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뭐 좋아, 나야 고맙지.”
“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