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임마노엘 마스에 한 레스토랑에서...
* * *
진한 긴장 속에서 난 다시 한번 의복을 확인했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단정하면서도 흠잡을 곳이 없다는 느낌을 주는 의상.
그렇게 거울 앞에서 옷 상태를 확인 한 뒤, 난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은 채 그대로 방을 나섰다.
그리고 그 직후, 내 눈에 보이는 그 사람의 모습..
오늘은 옅은 보라빛 머리에, 밝은 피부색을 지니고 있는 외모를 지니고 있는.
언제나와 같이 여러모로 다른 느낌으로 바꿨으나, 여전히 아름답다는 생각 만은 변함이 없게 해주는 그녀를 보면서, 난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그럼 가시지요 마왕폐하.”
“알았다.”
그 말과 함께 우리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시내로 나왔다.
그 직후 보이는 것은 시내 중심에 위치한 거대한 트리.
검은 별이 가장 위에서 반짝이고 있으며 근사한 장식이 달려 있는 그것은,
흔히 서양 영화에서 나오는 광장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떠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근사하구나. 지금까지 멀리서 보았던 것과는 또 다른 것 같구나.”
“동감입니다. 솔직히 이렇게 큰 트리를 실제로 보는 것은 저도 처음입니다.”
이전 삶에서도 영화에서나 봤던 물건을 직접 보고 있는…
그것도 사랑하고 있는 여인과 함께 손을 잡은 채 보고 있는 이 상황은 여러모로 신선한 느낌을 안겨주고 있었다.
‘역시 애인이랑 함께 있어서 그런 걸까? 현실에서 저걸 봤더라도 그냥 예쁜 장식 정도였겠지만 이렇게 보니 또 느낌이 전혀 다른걸.’
이런 표현을 쓰면 조금 부끄럽지만, 마치 이 거대한 트리가 우리 사이를 축복해 주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
그러한 기분을 느끼면서 우리 두 사람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은 채 트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어느 정도 충분하다 느껴질 정도의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마왕은 나를 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슬슬 가자꾸나 용사여. 아무리 그래도 늦어선 곤란할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에스더.”
마왕의 말에 동의하면서 우리 두 사람은 다시금 시내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자기야 우리 이거로 할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오늘은 자기를 위해서 준비된 날이니까.”
“아잉… 자기도 참..”
“꽃사세요 꽃! 이 좋은 날에 어울리는 검은 장미가 왔습니다!”
“식당 자리 비었습니다! 예약 못 찾으신 분들도 환영입니다!”
사방에는 우리와 비슷한 커플들의 모습이 자주 보이고 있었으며, 동시에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 또한 잔뜩 있었다.
말 그대로 현실 세계의 크리스마스를 조금 그림만 바꿔서 옮겨놓은 듯한 느낌.
당시에는 이런 것들을 보면서 괜히 심통이 들곤 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나 또한 그 당사자들 중 한 명이 된 입장에서 난 왜 굳이 이날 이렇게 연인들이 함께 거리로 나오는지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실제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마치 세상이 전부 우리한테 맞춰주고 있는 듯한 기분이야.’
그렇게. 한껏 분위기에 고조되어 더욱 진한 기쁨을 느끼게 만드는 상황.
이에 몸을 맡긴 채, 난 단순히 손을 잡고 걷는 것 만으로도 진한 행복이 느껴지고 있는 이 상황을 만끽하며,
그대로 미리 예약해 두었던 레스토랑으로 향하였다.
이곳 제루살램 내에서 가장 비싸고 유명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이곳.
임마노엘 마스에 이곳을 예약하기 위해서 용사의 압도적인 신체능력까지 이용하는 등 정말로 고생을 하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어렵사리 예약에 성공한 만큼.
이 순간 난 진한 성취감과 함께 그대로 표를 보여 주었다.
“네, 두분 입장하시겠습니다.”
그렇게 확인이 끝난 직후 그대로 안으로 들어간 나와 마왕.
호화로운 장식과 감미로운 음악.
그리고 코끝에서 느껴지는 음식들의 달콤함을 만끽하며.
우리 두 사람은 그대로 레스토랑 안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럼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뭐든 말씀해 주십시오 오늘은 제가 사도록 하겠습니다.”
“후훗, 고맙구나 용사여.”
상대가 이 나라의 절대군주인 마왕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농담이 될 수밖에 없는 나의 말.
이에 마왕은 가볍게 웃음을 지어 보인 뒤 그대로 그녀가 원하는 요리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쨍그랑!
“응?”
“…”
다음 순간, 우리들의 귓가에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
유리잔이 깨져나가는 소리에 나와 마왕은 그대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직후, 우리들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 장면.
그것은…
“요…용…사?”
“엘리…사?”
*
조금이라도 분위기를 바꿔 보고자 냐단과 함께 레스토랑에 온 엘리사.
그 직후, 그녀는 이곳에 어디인지 인지하면서 진심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우연히 티켓이 생겼다는 장소가 여기야? 여기 티켓이 어떻게 우연히 생길 수가 있어? 여긴 골고다잖아! 제루살렘 에서 가장 잘나가는 레스토랑인데 어떻게…”
말 그대로 돈 주고도 구하기 힘들다는…
특히 이런 임마노엘 마스 같은 날에는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들어오기 힘들다 알려져 있는 장소.
그런 옷의 티켓을 우연히 구했다는 냐단의 말은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후후. 이 세상에는 몰라도 되는 일도 있는 법이야 엘리사. 자자 어서 들어가자.”
“으음…”
그렇게, 아무리 생각해도 무언가 속은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일단 냐단과 함께 안으로 들어간 엘리사.
그 직후, 그녀는 눈 앞에 보이기 시작한 호화찬란하기 그지 없는 상황에 잠시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비록 왕성에서 일해왔던 그녀였지만, 솔직히 마왕국의 왕성은 사치스럽기보단 웅장 하면서도 약간 검소함에 관점을 두고 있는 만큼 이런 식의 반짝임 하고는 거리가 있었다.
그나마 연회장 쪽이 조금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분위기 면에선 이쪽이 오히려 한 수 위라 느껴지는 상황.
이에 엘리사는 약간의 부담을 느끼면서 일단 냐단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자 뭐 먹을래? 너 해산물 좋아하니까 그걸로 시킬까?”
“으음… 뭐 좋아. 그럼 그걸로…”
솔직히 친구랑 가볍게 한끼 먹으러 나온 상황이 심각하게 묵직해져 버린 듯 한 느낌이 없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일단 엘리사는 이 상황을 상황대로 즐기기로 결정한 채 우선은 식사에 전념하기로 하였다.
‘뭐… 여러모로 찝찝하긴 하지만 기왕 온 거 충분히 즐기지 않으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예상보다 훨씬 빨리 그녀의 앞에 차려진 식사들을 바라보는 엘리사.
그곳에는 그녀가 좋아 하는 바닷가재를 메인으로 한 음식이 차려져 있었으며, 이에 엘리사는 미묘한 허기를 느끼며 이를 입 안에 넣기 시작했다.
이어서 그녀의 입안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한 풍미.
지금까지 먹어본 바닷가재 요리 중 단연 손가락 안에 드는 그 맛을 만끽하면서,
엘리사는 지니고 있단 당혹감과 마음의 불편함이 한결 가라앉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어때 입에 맞아?”
“응… 맛있네.”
“후훗 다행이다.”
그렇게 엘리사를 보며 순수하게 기쁨을 표하는 냐단의 모습.
이에 그녀는 다시 한번 자신이 정말로 좋은 친구를 두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대로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고마워, 나 때문에 굳이 이런 자리까지 마련해 주고…”
“안 그래도 요즘 엘리사가 좀 우울해 보였으니까 말이지. 아무리 임마노엘 마스라고는 하지만 남녀들만 즐기라는 법은 없잖아?”
“하긴… 그것도 그렇네.”
냐단의 말에 동의 하면서 슬쩍 잔을 들이키는 엘리사.
달콤하면서도 부드럽게 넘어가는 흑 와인의 향미를 느끼며, 마음의 짐이 조금 풀어지는 기분에 사로잡히는 엘리사.
그때,
그런 그녀를 보면서 냐단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 엘리사. 사실은 말이지. 나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응? 뭔데?”
그녀를 바라보면서 한결 진지함이 담긴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냐단.
이에 엘리사는 가벼운 의문을 느끼며 친우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그런 그녀를 향해 냐단은 한껏 붉어진 표정을 지은 채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런 말 하면 조금 그렇지만… 그래서 넌 결국 어떻게 할 거야? 용사… 하고의 관계 말이야.”
“….으음…”
그 말에 조금 나아졌던 기분이 다시금 살짝 고도가 낮아지는 것을 느끼는 엘리사.
그런 그녀를 보면서 냐단은 약간 다급함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니, 혹시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좋아. 난 그냥… 친구로서 걱정이 되어서…”
“…그렇네, 확실히 요즘 내 꼴을 보면 걱정이 안 될 수도 없긴 하지…”
그 말과 함께 진한 자조가 담긴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엘리사.
이어서 그녀는 자신의 손에서 천천히 와인 잔을 돌리며 씁쓸함이 담긴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쩌고 하지만, 정작 고백은 시도도 못해보고 있고, 반면 그 남자는 내가 모르는 누군가랑 어딘가에서 사랑을 키우고 있고… 솔직히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땐 약탈도 생각해 보았지만 결국 약탈 시도는커녕 대상이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한 상황…”
“으음…”
“참 한심하지? 친위대니 뭐니 하는 사람이 이런 것조차 똑바로 못하고… 어쩌면 나 같은 여자는 역시 연인 같은 건 어울리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어. 요즘은 차라리 그냥 다 포기해 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들고 있으니까…”
“그… 그렇지 않아!”
엘리사의 자조가 섞인 말에 단호하게 이야기를 하는 냐단.
생각보다 무언가 큰 반응에, 엘리사는 잠시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냐… 냐단?”
“그렇지 않아… 엘리사는…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멋진 여자야. 처음 봤을 때부터 한 눈에 반해버렸을 정도로… 의욕 없던 나의 삶에 처음으로 목표라는 걸 안겨 주었을 정도로. 반드시… 반드시 저 사람의 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로.”
“어….어?”
붉게 달아오른 표정을 지은 채 무언가 생각보다 엄청난 이야기를 꺼내는 냐단.
이에 엘리사는 한 순간 멍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런 엘리사의 손을 잡으며 냐단은 기세를 몰아 말했다.
“줄곧 좋아해 왔어. 난… 엘리사 너를…”
“냐…. 냐단? 저…저기… 그 말은 설마…”
“…사랑해 엘리사… 부디… 내 마음을 받아 줘.”
약간의 횡설수설이 담겨 있었으나 그럼에도 자기 의사를 똑바로 표현한 냐단.
이에 대해서, 엘리사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 상황에 진한 당혹감을 느끼며 그대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서로간의 대화에 열중하는 통에 이쪽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는 듯 하였지만,
그와 별개로 엘리사는 자신이 여기에 대해서 뭘 어떻게 반응해 줘야 할지 혼란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런데…
“…어?”
그 순간, 그제서야 그녀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한 장면.
그것이 무엇인지 인지한 그 순간.
엘리사는 자신도 모르게 잔을 쥐고 있던 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쨍그랑!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