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때와 장소를 가리라고...
* * *
따스하게 느껴지는 그 남자의 손길.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어루만진 뒤, 그대로 목덜미를 가볍게 쓸어 올리는 담각.
이에 대해서 그녀는…
마왕은.
오직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약간의 긴장감을 담아 말했다.
“아…안 된다… 지금 여기선… 흐읏!...”
다음 순간, 마왕의 소심한 제지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그녀의 목덜미에 느껴지는 뜨거운 감각.
그녀의 민감한 장소 중 하나인 그곳에 입을 맞추는 그 자의 행동에.
용사의 행동에.
마왕은 자신도 모르게 작은 신음 소리를 흘렸다.
이어서 그대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천천히 흐름에 따라 손을 벋기 시작하는 마왕.
그녀의 손길은 그대로 자신의 바로 옆에 까지 온 용사의 머리로 향하였고, 그녀는 마치 고양이를 쓰다듬듯, 부드러운 손길로 용사의 머리칼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런 행동에,
그대로 천천히 위쪽으로 올라오기 시작한 용사의 입술.
이어서 그것은 그대로,
잔잔한 기대 속에서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그녀의 입술이 있는 곳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나로 포개지기 시작한 용사와 마왕의 입술.
그때…
“엘프 교국 측에서 예산안을 보냈습니다만.”
‘앗!’
‘으…으음.’
다음 순간, 그들의 귓가에 또렷하게 들려오는 벨제뷰티의 목소리.
이 순간 그들의 앞에 선 채, 여전히 서류에서 시선을 때지 않고 있는 그녀의 말에.
두 사람은 다급함을 느끼며, 일단 키스 직전까지 갔던 입술을 때어낸 뒤 본래 대로 복구 할 수밖에 없었다.
“아..그… 그래. 예산안… 말인가?”
“네, 전후 피해 복구와 관련해서 추가적으로 지원을 해주겠다고 합니다. 뭐 이 또한 협상안 안에 있었던 내용인 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말이지요.”
차분하게 그지 없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벨제뷰티.
“그….렇구나.”
이에 대해서, 마왕은 가능한 빨리 흥분되었던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하며.
그대로 서류를 받았다.
그때…
“… 어디 불편하신 것 있으십니까?”
“응? 아… 아니. 그… 그런 건 전혀 없다.”
“얼굴이 많이 붉으십니다만. 불을 너무 뜨겁게 한 것일까요?”
“괜찮다. 신경 쓰지 마라. 어서 일이나 마저 끝내자꾸나.”
“….네, 알겠습니다 마왕폐하.”
그렇게 마왕의 명령에 따라 다시금 자리로 복구한 뒤 서류일에 전념하기 시작하는 벨제뷰티.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마왕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 흥분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쓰며 그대로 입가에 묘한 흥분이 담긴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이런 것도… 제법 흥분 되는 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은근 슬쩍 한쪽 손을 뻗어 용사에게 가져가는 마왕.
이에 용사는 그대로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포갠 뒤 이를 꼭 붙잡았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너무나도 달콤하기 그지 없는 온기를 느끼면서.
동시에,
문제의 그날이 오면.
이 다음 단계로 확실하게 나아가고 말겠다는 생각을 지닌 채.
*
“그건 그렇고, 어쩐지 요즘은 일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군요.”
“뭐… 뭐 그렇지… 아무래도 해야 할 일들이 워낙 많아졌다 보니 어쩔 수는 것 같구나.”
눈 앞에서 서류더미에 파묻혀 일에 몰두하고 있는 마왕.
그런 그녀의 곁에서 함께 업무를 보좌하면서 벨제뷰티는 슬쩍 마왕과 더불어 그녀의 곁에 호위로서 서 있는 용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그림만 보면 그들의 이런 모습은 딱히 이상할 것이 없는 장면이라고 할 수는 있었다.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 주군과, 호위로서 그 곁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용사의 모습.
그러나,
이 순간 벨제뷰티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작업이 진행되는 내내, 두 사람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이다.
‘설마 저 둘… 지금까지 자기들이 하고 있던 일이 들키지 않았다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5번.
오늘 하루 쭉 이어진 격무 시간 동안 저 두 사람이 벨제뷰티 앞에서 은밀하게 스킨십을 행한 횟수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벨제뷰티가 명확하게 감지를 한 횟수가 그 정도 이고.
그녀도 모르게 진행된 것들까지 합하면 대체 그 횟수가 얼마나 될지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작게는 용사가 슬쩍 일을 하고 있는 마왕의 손을 붙잡거나. 어깨를 부드럽게 주물러 준 것부터 시작해서.
마왕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살짝 고개를 숙인 용사의 뺨을 어루만지거나,
혹은 조심스럽게 용사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거나.
심지어 방금 전처럼 자신이 바로 앞에 있는 상황에서 키스 직전까지 가거나!
아무래도 자기들 딴에는 이런 식으로 스릴에 찬 연애를 즐긴다 할 수 있겠지만.
정작 옆에서 이를 본의 아니게 훔쳐보는…
아니, 강제 직관을 하게 된 벨제뷰티의 입장에선 자동적으로 달달하다 못해 입안에 쓴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미치겠네… 그렇다고 여기서 대놓고 뭐라 그럴 수도 없고. 이거 둘이 사이가 좋아져도 너무 좋아진 거 아니야?’
당장 마왕국의 미래를 위해서 처음에 용사를 꼬시라고 주장을 한 것은 벨제뷰티인 만큼, 그녀의 입장에서 이 상황은 정치적으로 봤을 때 모든 것이 계획대로 잘 흘러가고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들의 사이가 그녀가 생각했던 것 보다 좋아도 너무 좋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
물론 저만한 강자들이 사이가 나빠서 쓸데 없이 으르렁거리는 것 보다야 백배 천배 나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두 사람의 낯뜨거운 애정 공세를 이런 식으로 매번.
용사가 호위로서 들어올 때마다 직관해야 하는 벨제뷰티의 입장에선 자동적으로 두 사람의 실시간 염장 질에 속이 뒤집히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뭐… 이렇게 되면 둘이 정말로 혼인을 한다 해도 금슬 부분에 있어선 걱정이 없을 것 같네. 어찌 되었던 둘이 아이를 많이 낳으면 낳을수록 우리 마왕국 입장에선 이들이니까…’
사실상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 중 전투력 1,2위라 할 수 있는 두 사람.
그런 그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면, 그 자식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괴물일지 벨제뷰티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물론 주군의 자식들을 단순히 병기 취급하는 것은 조금 그렇지만.
단순한 계산을 만으로도 마왕급의… 아니 혹은 그보다 더 강한 이들이 10명 정도만 된다면 이 대륙에서 마왕국에 감히 대적할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일이 그렇게 잘 풀린다면 좋기야 하겠….는데 아 또 저러고 있네. 이번에는 이번에는 대놓고 뺨에 키스냐. 미안하지만 그거 자국 다 남거든? 용사 얼굴에 남아 있는 빨간 흔적! 아니 마왕폐하는 지;진짜로 저게 안 보이는 거냐고요!’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많았지만 이를 최대한 힘겹게 억누르면서,
벨제뷰티는 다시금 난 아무것도 못봤어요 하는 가면을 억지로 착용하기 시작했다.
‘하… 씨발…. 이렇게 된 거 나도 애인이나 한 명 만들까? 그러고 보니 그 녀석도 제법 괜찮은 편이긴 한데 말이지… 조금 싸이코이긴 해도.’
문득 이런 상황에서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
이와 관련해서, 벨제뷰티는 마침 곧 있으면 임마노엘 마스가 다가오는 만큼 한번쯤 권유를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 날은 연인들의 날이 되었으니까 말이지… 하하 나 참.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어쩌다 이게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
병사들의 훈련이 끝나고 퇴근길에 오른 일라이어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삼손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묘한 긴장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 이봐.”
“…또 무슨 일이지? 혹 아직도 모의 훈련 결과에 불만이 남아 있는 건가? 미안하지만 제 아무리 패배의 아픔이 가혹하다 해도 받아들일 건 받아 들여야 한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음…음…”
차가움이 느껴지는 일라이어스의 말에 살짝 헛기침을 하는 삼손.
이어서 그는 속으로 작게 쉼 호흡을 한 뒤, 그대로 그녀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 이건?”
“오… 오다가 주은 표이다. 아무래도 음악회 같은데. 기왕이면 혼자 가는 것 보다 둘이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말이다.”
“…흐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걸 떨어뜨린 사람은 참으로 불쌍한걸? 하필이면 날짜까지 딱 임마누엘마스에 맞춰 있다니 말이야.”
“그… 그러게나 말이다.”
일라이어스의 말에 살짝 시선을 돌이며 최대한 태연함을 가장한 채 이야기를 하려 힘쓰는 삼손.
그런 그를 보면서 일라이어스는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
“딱히 할 일도 없으니… 그럼 그때 보도록 하지.”
그 말과 함께 삼손의 손에 들려 있던 표 한 장을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복도를 따라 사라지는 일라이어스.
그녀의 이런 뒷모습을 보면서, 삼손는 한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그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삼손에게서 등을 돌린 채 앞으로 나아가면서.
그녀는…
일라이어스는 뺨을 붉게 물들인 채 입가에 진한 미소를 담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식의 데이트는… 정말 오랜만인 걸.’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