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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R용사는 마왕에게 무릎을 꿇었다-105화 (105/150)

〈 105화 〉 의외로 좋은 사람인 것 같아?

* * *

자신의 앞에서 계약서를 들고 사라진 엘리사.

그녀의 뒷모습을 보는 옥타비아의 눈에는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단순히 눈물뿐만이 아니라…

이 순간 그녀의 마음 속에는 방금 전의 분노와 원통함 이라는 감정조차도 크게 희석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절망에 빠져 있던 그녀를 보면서, 아름답기 그지 없는 얼굴에 티 없이 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던 엘리사.

그녀의 이런 모습은, 자신에게 절망적인 선택을 하도록 만든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옥타비아로 하여금 가슴이 두근거리는 기분이 들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서.

엘리사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넌 수백만에 달하는 엘프 들의 목숨을 구원한 거잖아… 스스로 아주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은 일을 했다고.”

천사의 미소를 담아, 그녀에게 상냥하기 그지 없는 위로의 말을 건네는 엘리사.

비록 어떻게 들으면 이는 단순히 비꼼과 조소의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지만, 이미 바닥을 칠 정도로 절망과 혼란에 빠져 있던 옥타바아에게 있어서 이 말은 너무나도 큰 위로의 말로 해석되고 받아들여 졌다.

그녀의 말대로, 비록 어마어마한 손해를 입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녀의 선택은 동족들을 지옥의 화염에서 구원해 낸 것이었다.

사형을 당할 바에는 비싼 보상금을 내고 목숨을 건지는 편이 훨씬 나을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

물론 여기에는 어떻게 해서든 이 막중한 심적 부담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다는 옥타비아의 정신적인 도피의 영향도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그녀는 엘리사의 말에 마음의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엘리사… 아니… 엘리사님… 비록 마족이고 마왕의 수하 이긴 하지만 좋은 사람인 것 같아.이런 상황에서 나를 위로해주기 까지 하다니.’

일을 진행하는데 있어선 냉정하기 그지 없었지만,

그 과정에서 도 그녀에게 소소한 배려(?)를 남겨준 엘리사.

그 사싱에 대해서 옥타비아는 붉게 상기된 표정을 지은 채, 이재는 그녀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엘리사의 뒷모습에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하였다.

*

“이… 이게 무엇이냐! 지금 이걸 협상이라고 받아왔단 말이냐!”

“죄… 죄송합니다 교황성하.”

“하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마족들이 저희들을 감옥에 가두기 까지 하면서 워낙 완고하게 나왔던 터라…”

“큭…”

세계수 유피테르 내부에 위치해 있는 대 신전.

그곳에서, 교황과 고위 엘프들은 사신 단이 가져온 결과물을 보면서 경악과 분노의 감정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엘프 교국의 기둥뿌리를 뽑아가 버리는 수준의 요구를 하고 있는 마왕국의 요구와, 거기에 담겨있는 옥타비아의 서명.

그 중에서도 특히, 교황이 직접 사과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이 계약서에 옥타비아가 서명을 했다는 사실을 교황으로 하여금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안겨주고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구나.”

“교… 교황 성하?”

“분하고 원통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전권을 위임한 사신단장의 서명이 적힌 이상 이를 어길 수는 없다. 그리고… 우리들에겐 더 이상 시간이 없다는 것 정도는 자네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큭…”

“교황 성하…”

그러한 점에도 불구하고,

교황과 고위 엘프들에게는 더 이상 이를 뒤집으려 드는 시도를 할 명분도 여유도 없었다.

이미 칸나 숲의 6할을 잿더미로 만들었으며 세계수 유피테르의 코앞까지 다가온 검은 화염.

이를 막기 위해선 당장 그들의 눈 앞에서 시현을 보여 주었던 마족들의 마법이 반드시 필요했으며, 결국 교황을 비롯한 이들은 이를 공식적으로 인준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의 인장이 담겨 있는 서찰이다. 이를 밖에 있는 마족들에게 전하도록.”

“예… 알겠… 습니다.”

“그들의 모든 요구 조건을 수용할 것이다. 그 대신 계약에 따라 지금 즉시 그 마법을 사용해 줄 것을 요청하는 바 이다. 시간이 없다. 서두르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그리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교황의 명을 받들어 다급하게 밖으로 달려나가는 신하.

그 모습을 보면서, 교황은 참으로 복잡하기 그지 없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것으로 어떻게든 세계수와 엘프 교국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뒤로 한동안은 정말로 어려워지겠어.’

구원의 대가로 한쪽 팔을 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

이와 관련해서, 교황은 어쨌든 국가의 목숨을 건졌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봐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로 인해서 자신의 권위가 추락하고 국력이 뿌리째 흔들리는 결과를 맞이했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봐야 하는 것인지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줄기의 안도감과 진한 괴로움을 함께 느끼면서, 교황은 그대로 사신단을 보면서 이 자리에 없는 그 아이에 대한 질문을 하였다.

“그래… 옥타비아는 그곳에 협상자로 남겨 있다 이것인가?”

“네, 그렇습니다.”

“계약을 확실하게 이행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증표라 했습니다.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곧바로 다크엘프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군요.”

“하아…”

사실상 말이 협상자 이지 포로와 같은 신분으로 마왕국에 잡히게 되어 버린 교황의 딸 옥타비아.

말 그대로 마왕에게 잡힌 공주와 같은 상태가 된 자신의 딸에 대해서 교황은 한가지 더 짙은 고민거리가 쌓이게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좀 더 유연하게 상황에 대처하지 못한 채, 이런 끔직하기 그지 없는 협상안에 서명을 한 이상 옥타비아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교황은 딸의 무력한 행동에 대한 분노보다는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이 더 앞서고 있는 중이었다.

‘간신히 저 검은 화염에서 살아 돌아온 아이 이거늘… 어째서 또다시 이런 위험에 처하게 되었단 말인가.’

제 아무리 신의 뜻을 받드는 냉철하고 강인한 교황이라 할지라도, 딸의 앞에선…

그것도 자신들 중에서 가장 사랑하고 있는 그녀,

옥타비아의 앞에선 한낱 아버지에 불과했다.

당장 그 아이가 검은 화염에 휩싸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까지만 해도 교황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간신히 죽음의 위험에서 목숨을 건져왔으나, 그녀는 이후로 자진해서 저 마족들과 협상을 하러 가는 위험한 길을 택했고, 이제는 마족들에게 포로로 잡힌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 사실을 진심으로 슬퍼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해서든 일을 잘 마무리 짓고 그 아이를 다시금 데려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교황은 단순한 신의의 문제 때문이 아니더라도 일단은 이 치욕스러운 조건을 최대한 성실하게 이행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잘 타는군.”

“과연, 이대로 있으면 조만간 세계수까지 잿더미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검게 물들여진 대지와 그 끝에서 이글거리고 있는 검은 화염.

이를 바라보면서, 제국 기사 아킬레스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엘프들의 천해의 요새라 할 수 있는 칸나 숲과 세게수.

그것이 불타 사라진다면 더 이상 엘프들에겐 저항을 할 여력이 남지 않게 될 것이며, 남은 것은 그저 단순하게 진군을 해 잿더미만 남은 놈들의 영토를 점령하지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엘프들을 점령하게 되면…

아킬레스의 계획은 한층 더 큰 진전을 이루게 될 것이 분명했다.

‘엘프들이 사라지고 세계수가 없어지면 이 세상에 작용하고 있는 신성력이라는 힘은 현격하게 약해지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그분을 위한 계획도 바짝 앞당길 수 있을 것이야.’

그렇게 진한 기대감을 느끼면서 얼마 남지 않은 엘프들의 최후를 기분 좋게 감상하고 있는 아킬레스.

그때.

“응?”

“뭐… 뭐지?”

다음 순간, 갑작스럽게 보이기 시작한 예상 밖의 상황.

이에 아킬레스의 얼굴에 담겨 있던 여유는 순식간에 사라짐과 동시에, 그는 그대로 짙은 당혹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방금 전까지 세계수를 단번에 집어 삼킬 기세로 뻗어나갔던 검은 불꽃.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 검은 불꽃은 갑작스럽게 피어 오르기 시작한 정체 불명의 푸른 불꽃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뭐… 뭐가 어떻게 된 거냐?

“저…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저 푸른 불꽃은 대체..”

사방에서 불타 오르면서 그대로 검을 불꽃을 집어 삼키기 시작하는 푸른 화염.

그것은, 평범한 산불이었어도 인위적으로 막는 것이 불가능할 수준으로 커져 버린 검은 화염을 순식간에 소멸시켜 나갔으며, 그 결과 방금 전까지 칸나 숲을 빠르게 태워버리고 있던 검은 화염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그대로 깔끔하게 소멸해 버리고 말았다.

“거…검은 화염이 이렇게 허망하게…”

“엘프 놈들의 마법인가? 설마 그 짧은 시간에 대비책을 세울 수 있었을 줄은.”

“젠장! 조금만 더 가면 세계수까지 태워 버릴 수 있었을 텐데, 하필이면…”

진한 분노와 아쉬움을 토로하기 시작하는 제국군.

그러나, 정작 이들 중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아킬레스 장군이었다.

‘불가능하다… 저 검은 불꽃은 내가 그분께 직접 받은 물건. 엘프들과는 상극의 위치에 계신 그분의 힘이 이렇게 간단하게 소멸될 리가 없어, 하지만 대체 어떻게…’

다른 누구보다 저 검은 불꽃의 정체를 잘 알고 있는 아킬레스.

그런 만큼 그는 이 상황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서 누군가가 이 일에 따로 개입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마도국… 인가. 설마 그 더러운 마녀들이 엘프들과 손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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