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오히려 좋은 기회다
* * *
세계수를 눈앞에 둔 채 허망하게 꺼져버린 검은 불꽃.
이에 세계수가 무너지는 것을 기점으로 하여 전투를 준비하고 있던 제국군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비록 검은 화염의 결과 그들의 앞을 가로 막고 있던 칸나숲은 극심한 피해를 입었으며,
세계수를 에워 싸고 있던 숲이라는 이름의 벽에도 큰 구멍이 뚫린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처럼 제법 유리하다 할 수 있는 상화에도 불구하고, 현재 팔콘 제국군은 여기서 이 이상 진군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여부를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대체 무엇을 망설이시는 것입니까? 아무리 검은 불꽃이 꺼졌다 해도 지금은 보시다시피 세계수로 향하는 길이 훤히 뚫려 있습니다. 당장 달려가서 제국의 깃발을 꽂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칸나 숲이 온전할 때라면 모를까. 저 정도면 어느 정도의 피해를 감수하면서 충분히 돌파할 수 있습니다.”
“명을 내려 주십시오 소장이 선봉에 서겠습니다!”
도통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이들을 보면서 답답함을 담아 이야기를 하는 젊은 장수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고참 장수들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침착 하고 일단은 앉게. 이 문제는 그렇게 섣부르게 결정할 사안이 아닐세.”
“이 이상 회의 중에 소란은 용납하지 않겠네, 일단은 진정 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어 보게나.”
“큭…”
“하아…”
고참이자 상급자로서의 권위를 내세우며 이야기를 하는 장수들.
이에 젊은 장수들은 그들의 말대로 일단은 자리에 앉았으며,
그런 그들을 보면서 고참 장수들은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확실히 지금 우리들의 상황은 적들의 심장부를 직접 타격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거기까지 갈 수 있는 길을 뚫어 놓았다 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 해서 여기서 무모한 진격을 감행하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일일세.”
“세계수가 가진 힘, 그것을 얄봐선 안 된다. 저 신성력의 결정체나 다름없는 거대한 나무를 잘못 건드렸다간 오히려 공격을 가한 우리들이 당할 수 있어.”
“거기다 엘프 놈들은 아마도 지금쯤 우리들의 공격에 대비해 어마어마한 방어 태세를 갖춰 놓았겠지. 아무리 약화되었다고는 하지만 놈들의 총 전력을 절대로 만만히 볼 수준이 아닐세.”
“이런 상황에서 적들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곳으로 생각 없이 진군을 한다는 건 무모한 짓. 그대들의 열의는 알겠지만 지금은 일단 대기하도록 하게.”
“큭…”
본래라면 확실한 승리의 요건을 달성한 이후에 움직임을 계시하려 했던 지휘부.
그러나, 비장의 카드가 허망하게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적들이 독이 단단히 오르게 된 이 상황에서 그들은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함부로 움직이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결국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자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진 회의
이에 젊은 장수들은 불만을 품으면서도 차마 이를 더 이상 내색하지 못한 채 그대로 군막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젠장, 하여튼 장수라는 것들이 저렇게 소심해서야 원…”
“아무리 매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하지만 저건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저까짓 엘프 놈들이 무서워 봤자 얼마나 무섭다고.”
“숲이 사라진 이상, 엘프들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을 텐데, 왜 이렇게까지…”
그렇게 자신들 끼리 있는 자리에서 상황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젊은 장수들.
그때…
“이래저래 마음에 안 드는 점이 많은가 보군.”
“!”
“아… 아킬레스 장군님!”
그들의 뒤쪽에서 들려오는 아킬레스의 목소리.
이에 젊은 장수들은 당혹감을 느끼면서 일단 그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사실상 이곳에 있는 장수들 중 가장 큰 발언권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으나, 방금 전 회의에서 일절 자신의 의견을 내놓지 않았던 아킬레스.
그런 사람이 자신들 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에 장수들은 자연스럽게 의문과 더불어 약간의 기대감을 지닌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장군님, 방금 전 회의에 대해서 장군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회의 내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던데, 장군님께서도 이대로 진군을 하는 것은 무모하다 여기고 계신 것입니까?”
“뭐, 솔직히 말하면 여러모로 변수가 많이 있다는 생각 정도는 하고 있지, 하지만 그렇다 해서 딱히 우리가 질 거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렇습니까?”
“허면 어째서…? 장군님의 발언권 이라면 충분히 방금 전 상황을 뒤집을 수 있지 않으셨습니까?”
의문을 담아서 질문하는 장수들.
그들을 보면서, 아킬레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우리들의 적이 단순히 엘프들 뿐이라면 분명 승리는 어렵지 않겠지. 하지만 만약 저들 사이에 다른 자들이 끼어있다면 그땐 이야기가 달라질 가능성이 아주 높지.”
“다른 자들이라 하시면?...”
의외의 말을 하는 아킬레스.
여기에 대해서 병사들은 자동적으로 의문을 표하였고, 그런 그들을 향해서 아킬레스는 진중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마도국의 마녀들, 지금의 정황을 살펴보면 아마도 그들이 이번 일에 개입되어 있는 것 같다.”
“네?”
“마…마도국이 말입니까?”
의외의 말을 꺼내는 아킬레스,
이에 병사들의 얼굴에는 그대로 진한 당혹감과 우려가 깃들기 시작했다.
줄곧 같은 인간 동맹국이라 여겨왔던 국가이자 실제로 제국과 긴밀하게 교류를 해오고 있던 마도국.
그러나, 얼마 전에 있었던 연이은 테러사건으로 인해 제국과 마도국의 관계에는 커다란 금이 가기 시작했다.
비록 이와 관련해서 마도국은 철저하게 부인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현재 제국 고위층 중에서 그들의 말을 믿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마법의 성격상 엘프들을 파훼가 불가능한 검은 불꽃이 단순에 소멸된 장면을 통해 아킬레스는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의 배후에는 또다시 제국을 방해하려는 마도국의 수작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선 마족들이 개입을 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럴 확률성은 그리 높지 않다. 애초에 종족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니지도 않은 지금 마족들이 순순히 엘프들을 도와줄 리가 없으니까.’
그렇게 전체적인 정황과 소거법에 의해서 이번 일의 배후를 마도국이라 단정 짓고 이러한 사실을 이야기 하여 젊은 장수들을 설득하는 아킬레스.
비록 이들은 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장기 말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여기서 허망하게 소모해도 되는 전력은 아닌 만큼 아킬레스는 일단 진실을 이야기해 이들의 분노를 달래고 동시에 보다 확실한 자신의 수족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아킬레스는 알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이는, 이 당시 엘프들의 상황은 해상봉쇄와 항상 역주행하는 해류의 흐름을 뚫고 그 먼 마도국까지 갈만큼의 여유도 여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것.
그 결과,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결국 마족들과 손을 잡는 것 뿐이었으며. 실제로 오랜 원한에도 불구하고 엘프들은 끝내 머리를 조아리면서 까지 이를 달성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결국,아킬레스가 이러한 판단 착오의 결과로 이야기 한 사실로 인해,제국군 내부에는 이번에 자신들을 방해한 자들의 정체가 마도국이라는 설이 거의 정설로 굳어지게 되었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마도국을 향한 제국의 적개심에 더욱 불을 지르는 모양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비록 오해로 인해서 발생한 일이었으나, 그런 사실과 별개로 아킬레스에게 있어서 이는 또 다른 기회라 할 수 있었다.
엘프 교국에서의 일이 어떤 식으로든 정리가 되고 나면, 이 다음에 제국의 칼날이 자연스럽게 마도국을 향하도록 만들 수 있는 기회 말이다.
‘당장 세계수를 직접적으로 타격하지는 못했지만… 이를 노출 시켜 놓은 것 만으로도 나름대로 성과라 할 수 있겠지. 이 다음에는 마도국에 있는 그것을 노리기 위한 준비를 진행해야겠어.’
*
앙그리머 마도국의 중심에 위치한 공중도시 르히에.
그곳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옥좌에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보라 빛 로브로 모습을 가리고는 있는 그 사람.
그러나, 그렇게 로브를 뒤집어 쓴 채 정체를 숨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옥좌의 크기에 비해선 터무니 없을 정도로 작은 그자의 체구는 쉽게 가려지지 않고 있었다.
마치 이런 소년 혹은 소녀가 아빠 의자에 앉아 있는 것만 같은 미묘한 느낌을 주고 있는 그것.
그러나,
이 순간,
그 옥좌의 앞에 엎드린 채, 그것의 위세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네 명의 사람들 중.
감히 그런 생각을 지니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은 기껏 신경 써서 진행하라 했던 계획이 전부 파탄이 나버렸다 이건가?”
차가운 목소리로 눈 앞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바로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마녀 에게 이야기를 하는 그 사람.
그 말에, 평소 누구에게든 고개를 뻣뻣히 치켜 든 채 오만함을 방출하고 있던 그녀는…
4마희의 일각이자 전 용사파티의 전사였던 슈드는
눈 앞에 보이는 그 사람에게 이마에서 피가 날 정도로 머리를 박으며 사죄를 청하기 시작했다.
“며… 면목이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소신의 잘못 입니다. 부디 소신을 죽여 주십시오!”
그 말이 진심이건 아니건 상관 없이 일단은 전력을 다해 사죄의 말을 올리는 슈드.
그러나,
그런 그녀를 보면서,
그 사람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뭐,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고, 그냥 한 동안 조금 자중하고 있기나 해, 딱히 이 일을 가지고 문책을 하거나 할 생각은 없으니까.”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폐하!”
그 자의 말에 연신 고개를 숙이는 슈드.
이어서 그녀는, 퇴실 허가가 떨어짐과 동시에 마치 도망치듯 그곳을 벗어났으며,
그런 그녀를 보면서 그곳에 있던 나머지 세 사람은 의문이 담긴 표정을 지은 채 옥좌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 물었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만한 실패를 저지른 저년을 이대로 용서해 주셔도.”
“괜찮아, 사실 따지고 보면 딱히 실패한 것도 아니니까.”
“네?”
의외의 이야기를 하는 그자의 말에 의문을 표하는 세 사람.
그런 그들을 바라보면서,
그 자는…
아니,
그녀,
마도국의 군주.
마도왕
오버시어 아즈타스는.
그녀가 지니고 있는 10대 초반의 소녀의 얼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가운 미소를 내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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