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 개인적인 원한은 억누를 수 있는 것
* * *
눈앞에서 또렷한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고 있는 마왕.
이를 보면서,
옥타비아는 온 몸이 덜덜 떨리는 공포심에 사로잡힌 와중에도 어떻게 해서든 정신을 수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치.. 침착하자, 어차피 이런 상황은 이미 충분히 각오하고 왔던 거잖아. 물론 마왕의 위세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무시무시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어.’
자신을 보면서 발버둥을 쳐보라는 마왕의 말.
그 안에는 단순히 부질 없는 희망에 기댄 채 어디 한 번 최선을 다해보라는 조롱의 의미가 담겨 있었지만,
동시에 어찌 되었든 마왕이 그녀의 말을 들어준다는 의미 또한 함께 담겨 있었다.
아울러, 비록 겉보기에는 당장이라도 그녀의 목을 벨 기세를 보이고 있는 마왕이었지만, 그럼에도옥타비아는 한가지 알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눈 앞에 있는 이 마왕이라는 자는,
겉보기와는 달리 단순히 감정에 따라서 움직이는 존재가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까지 이어졌던 전쟁 양상을 보면 마왕은 언제나 최선의 이득을 추구하는 모습만을 보여왔어. 그런 마왕이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잖아.’
비록 전쟁은 승리했지만, 마왕국의 내부 사정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은 굳이 옥타비아 뿐만이 아니라 대륙의 고위층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너무나도 길게 이어져온 전쟁으로 인해 국토는 황폐화 되었으며 수십만에 달하는 마족들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마왕국은 한시라도 빨리 내실을 복구시키고 혹여 추후에 이어질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국익을 추구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마왕국에 있어서.
‘어떠한 조건이든 최대한 들어주겠다’는...
사실상 엘프 교국이 입장에선 백지수표를 내민 것이나 다름 없는 이 상황은 제아무리 종족 전쟁의 일로 원한이 깊은 마왕과 마족들 이라 할 지라도 쉽게 거절할 수 없는 일일 것이 분명했다.
‘거기다 한가지 더… 이 부분은 조금 민감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마왕도 모르고 있지는 않겠지. 세계수 유피테르가 소멸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그렇게,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는 이 상황에서 최대한 감정을 진정시킨 뒤,
옥타비아는 눈 앞에 있는 그 무시무시한 암흑의 군주의 모습을 똑바로 응시하였다.
이 순간도 그녀의 몸은 마왕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척으로 인해 섬뜩한 고통에 사로잡혀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비록 전투력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교황의 딸로서 남들보다 강인한 정신력을 타고난 몸이었다.
스승과 동료들을 불태웠던 죽음의 화염 속에서 간신히 살아날 수 있었던 것 또한 그런 강인한 정신력을 통해 마지막까지 삶의 의지를 놓지 않았기 때문.
그렇게,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잡은 채.
옥타비아는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저희 엘프들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계신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겨우 수개월이 지난 지금, 마왕국과 저희 엘프 교국 사이에는 여전히 과거의 앙금이 남아 있다는 사실 또한 말이지요.”
“…”
“하지만 폐하. 아무리 그렇다 해도 과거의 일로 인해서 눈 앞의 이득을 놓칠 수는, 아울러 다가올 재난을 그냥 방치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마왕의 기척에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또렷하게 이어지는 옥타비아의 말.
이를 보면서 마왕은 어디 계속 해보라는 듯한 태도를 내보였으며,
그런 그의 태도에, 옥타비아는 혹여 마왕의 분노를 사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의 감정을 최대한 억누른 채 계속해서 주의를 기울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말씀 드렸듯이, 저희에게 조금만 도움을 주신다면 엘프 교국은 마왕국을 위해서 저희들이 내놓을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드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거기다 만에 하나, 저희 엘프 교국이 이대로 무너진다면 그 다음에 벌어질 일은 폐하께서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흐음…”
옥타비아의 말에 긍정인지 부정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흘리는 마왕.
이에 대해서, 그녀는 확신을 서지 않고 있지만 자신의 설득이 어느 정도 먹혀 들어가고 있다 믿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저희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폐하의 앞에 있는 그 검은 화염을 막아낼 방법을 찾는 것뿐입니다. 마왕국에는 어떠한 해도 가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막대한 이득을 안겨줄 것을 약속 드리는 바 입니다. 폐하. 부디 저희들의 부탁을… 엘프 교국의 요청을 받아주십시오.”
그렇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은 뒤, 옥타비아는 마왕을 향해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떨지 않고 제법 논리 정연하게 잘 끝마쳤다 여겨지는 설명.
이 정도 수준이면 어느 정도는 마왕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옥타비아는 약간의 안도와 기대를 느끼며 마왕의 답변을 기다렸다.
그리고…
“….과연, 나쁘지는 않군.”
“…”
그녀의 말에 대해서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마왕.
이에 옥타비아는 그대로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마왕을 바라 보았다.
“확실히, 네 말대로 이런 종류의 마법을 분석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반면에 그 대가로 우리 마왕국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참으로 크겠지.”
방금전에 비해 한결 누그러진 듯한 태도를 내보이는 마왕의 말에, 옥타비아는 자동적으로 일이 잘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이럴 때 당연히 그 손을 붙잡겠지. 짐 또한 국익을 위해서 개인의 사사로운 원한은 억누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아…!”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마왕.
이에 옥타비아의 얼굴에는 일 순간 감출 수 없는 진한 미소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 엘프여.”
“?”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짐은 그대가 이야기한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네? 어…. 어째서 입니까? 대… 대체 왜 그런 결정을… 커허어억!!!”
일순간 내보였던 무뎌졌던 감정의 날을 다시금 세우며 싸늘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마왕.
마왕의 이러한 태도 변화에 옥타비아는 진한 당혹감과 의문을 동시에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서.
마왕은 다시금 끔찍할 정도의 마력을 발산하며 그녀의 목을 옥죄기 시작했다.
“꺼…꺼허…어…어…”
“네놈은 참으로 기억이 짧은자로군. 짐이 분명 질문 따위는 허락하지 않는다 말했을 텐데?”
“끄….어….어…어…”
고통에 젖은 채 신음소리를 흘리는 옥타비아.
그녀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 마왕은 섬뜩한 증오심을 담아 그대로 조용히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그렇게 궁금하다면 특별히 알려주도록 하지,”
그 말과 함께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마왕.
이어서 그녀는 고통에 몸부림 치면서 그대로 비참하게 바닥을 구르기 시작하는 옥타비아를 보며 말했다.
“말 했듯이 짐은 국익을 위해서 개인적인 감정을 얼마든지 접을 수 있다. 허나.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이 나라에는 네놈들 때문에 평생 씻지 못할 고통과 원한을 지니게 된 백성 수천 수만 명이 존재하고 있다.”
“끄허…어….어.”
그 말과 함께 그대로 손을 뻗어 옥타비아의 목을 더욱 강하게 압박하는 마왕.
이에 그녀는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 질 듯한 고통을 느끼며 그대로 절망에 찬 눈으로 마왕을…
그녀에게 진심 어린 분노를 쏟아내고 있는 어둠의 지배자를 올라다 보았다.
“그리고 짐은, 이 나라의 군주로서. 그런 백성들의 원한 섞인 절규를 외면할 생각이 없다. 네놈들의 뼈를 갈아 죽은 이들을 위해 공양하고 네놈들의 피로 그들의 눈물을 닦아 내기 전까진, 결코... 제 아무리 달콤한 제안을 들고 온다 해도 협상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뻗고 있던 손을 강하게 움켜 쥐는 마왕.
그것을 마지막으로, 옥타비아는 한 순간 온 세상이 검게 물드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정신을 잃어 버리고 말았다.
밑바닥을 알 수 없는…
어둡고 어두운 절망에 던져지는 것 같은 기분을 맛보면서.
*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는 시점.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의 감각을 느끼면서 옥타비아는 깨질듯한 통증 속에 힘겹게 눈을 뜨기 시작했다.
“큭….”
“일어났어?”
그 직후 그녀의 귓가에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이에 옥타비아는 여전히 침침하기 그지 없는 눈을 억지로 뜨면서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으으… 여… 여긴…?”
그 직후 그녀의 눈에 흐릿하게 들어오기 시작하는 장면.
그것은, 축축한 느낌이 드는 지하 감옥안에 갇혀 있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철창 너머에서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그 사람.
그것은 일전에 그녀를 마왕 앞까지 안내해 주었던 그 천사 같은 미색을 지니고 있던 마족.
분명 엘리사 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는 마족의 모습이었다.
“보아하니 정신이 든 것 같군.”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지요? 부… 분명 전 마지막에 마왕에게 분노를 사서…”
너무나도 급박하게 흘러가는 상황 속에서, 한 순간 약간의 호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던 인물에게 자신도 모르게 다급하게 질문을 하는 옥타비아.
그때…
“마왕 폐하.”
“!...”
“똑바로 존칭을 붙이도록. 상황에 따라선 내 손으로 네 년의 목을 날려버릴 지도 모르니까.”
한 순간, 서슬이 시퍼런 칼날과 같은 감정을 내보이며 그녀에게 말하는 엘리사.
이에 옥타비아는 한 순간 공포와 더불어 마음 속에 무언가 떨림과 같은 감정을 느끼며 잠시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 보았다.
한편, 그렇게 자신의 말 한마디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이 어린 엘프 여성을 보면서.
엘리사는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대답은?”
“!... 아…네… 죄… 죄송 합니다. 그… 그러니까. 제가 마왕 폐하의 분노를 샀고.. 그 다음에 뭐가 어떻게 된 것이지요? 제 동료들은 어디에..”
엘리사의 말에 조금 과하게 당혹감을 내보이면서도 급한 질문을 이어가는 옥타비아.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엘리사는 계속해서 서늘한 칼날과 같은 기척을 내보이며 조용히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질문의 답은, 앞으로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겠지.”
“네?...”
엘리사의 말에 일순간 무언가 불길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하는 옥타비아.
그리고.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엘리사는 속으로 조용히 특유의 잔혹함이 담긴 미소를 지은 채 눈 앞에 있는 그녀에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