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마족들의 절대군주이자 공포의 상징
* * *
눈 앞에 보이는 수많은 마족들.
대로변을 가득 채우다시피 하고 있으며, 동시에 하나같이 이쪽을 보면서 흉흉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엘프 교국의 사신단 단장으로 온 그녀.
옥타비아는 슬쩍슬쩍 느껴지는 불안한 기분을 억누르며 조용히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우리들을 경계하거나 증오하는 눈들 뿐이다. 사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그러했지만. 이곳은 특히 더 심한 것 같군’
마왕국의 수도이자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도시 제루살렘.
적대국인 엘프 교국의 사신으로서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옥타비아를 비롯한 일행은 지니고 있는 모든 무기를 압수당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향해 지속적인 감시와 경계심을 유지하며 증오를 발산하고 있는 마족들.
그들의 시선에는 마치 당장이라도 무슨 짓을 저지르기 위해 이곳에 온 테러범들을 보는 것 같은 감정이 담겨 있었으며, 동시에 그런 짓을 저지르는 낌새가 보인다면 즉각적으로 공격을 하겠다는 명확한 적의가 서려 있었다.
그리고.
마족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옥타비아는 예상보다 일이 더욱 어렵게 흘러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한층 더 진한 긴장과 우려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해. 여기서 우리가 실패한다면 엘프 교국은 그야말로 완벽하게 끝장이다. 칸나 숲과 세계수 유피테르를 지켜내고 복수를 완수하기 위해서라도 어떤 굴욕이든 이겨내고 말 것이야.’
자신들의 마지막 희망이 불과 얼마 전까지 멸망 시키길 고대하고 있던 마족들이라는 사실은 그녀가 생각해도 아이러니한 일.
하지만 이미 그녀뿐만이 아니라 다른 엘프들 또한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 만큼, 그녀는 다시 한 번 무슨 일이 있어도 임무를 완수하고 말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잠시 후, 드디어 눈 앞에 보이기 시작한 마왕성의 성문.
그 앞에 정지한 마차에서 옥타비아는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
“옥타비아님… 이십니까?”
마차에서 내린 그녀의 귓가에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이에 옥타비아는 약간의 경계심을 지닌 채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그 직후, 그녀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 한 마족의 모습.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옥타비아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놀란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그녀의 앞에 서있는 약간 작은 키를 가지고 있는 마족.
백옥같이 희디 흰 피부에,
이마에는 작은 뿔이 나았으며, 루비와 같은 붉은 눈동자에 마치 백금과 같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머리칼을 지니고 있는 그녀는.
지금까지 옥타비아가 봐왔던 어떠한 엘프들 보다 고결하면서도 순수한 느낌을 안겨주고 있었다.
‘이런 사람이… 마족이라고? 이마의 뿔만 제외하면 꼭 천사같이 생겼는데?’
그렇게 처음 보는 마족의 고귀한 외모에 잠시 넋을 잃었던 그녀는 이내 최대한 빨리 정신을 수습한 뒤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네,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이번에 교국의 대표로서 이 자리에 나온 옥타비아 입니다.”
“그렇군요, 이렇게 만나 뵈어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엘리사. 마왕 폐하의 친위대중 한 사람으로 이번에 폐하의 명에 따라 옥타비아님을 맞이하라는 명을 받고 나왔습니다.”
여전히 느껴지고 있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별개로, 정중함이 담겨있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엘리사라는 마족.
이에 옥타비아는 그래도 일단 여기까지 와서 이런 사람에게 문전박대를 당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예를 표하였다.
“이렇게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엘리사님. 짧은 시간이지만 앞으로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네, 그러지요. 과연 짧은 시간이 될지 긴 시간이 될지는 두고 봐야 알겠습니다만.”
“…”
정중한 목소리로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은 채, 참으로 무덤덤하게 날이 선 발언을 하는 엘리사.
이에 옥타비아는 일단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주고 있을지언정 눈 앞에 있는 그녀 역시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것을 인지하며, 어째서인지 살짝 마음이 아파오는 듯한…
정확히 말하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칼을 맞은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단 엘리사의 뒤를 따라 조심스럽게 이동하기 시작하는 옥타비아와 사신단원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이 도착한 장소는 마왕성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해 있는 거대한 회의실.
소위 대전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가운데 나 있는 길을 따라서 못해도 수십 명 이상의 마족들이 양쪽에 도열한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대전 내부.
그리고,
그 길의 끝에 위치해 있는 화려한 옥좌 앞에는 검은 갑주를 착용한 채 대검을 매고 있는 전사의 모습이 보였으며,
문제의 그 옥좌에는 바로 그 사람이…
마왕국의 군주이자.
현존하는 최강의 마족인 마왕이.
보라빛 갑주로 전신을 감싼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저 사람이 마족들의 절대군주이자 공포의 상징인 마왕... 역시 느껴지는 위압감 부터 보통이 아니야.'
갑주의 투구 사이로 보이는 이글거리는 마왕의 황금빛 안광.
그것이 이쪽을 응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옥타비아는,
마치 자신의 목덜미에 칼날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그녀도 모르게 식은땀이 흐르는 주먹을 꽉 쥐게 되었다.
“폐하 왔습니다.”
“....”
정중하게 예를 표하는 엘리사 에게 가벼운 손짓으로 답을 하는 마왕.
그 모습을 보면서,
옥타비아는 한 순간 마치 악마의 군주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천사를 보는 것 같은 묘한 안타까움 같은 감정을 느끼며, 일단은 눈 앞에 있는 마왕에게 예를 표하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마왕 폐하. 엘프 교국의 사자 옥타비아라 합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참으로… 커허어어억!!!!”
그 순간,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격통.
마치 심장을 생으로 쥐어 짜내는 듯한 통증에 옥타비아의 입에선 그대로 처절한 비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주… 죽는… 거야? …나… 이..이대로?’
끔직한 고통 속에서 본능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는 죽음의 공포.
그것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커져가던 그 순간.
옥타비아는 자신을 감싸고 있던 고통이, 갑작스럽게 사라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허으으윽! … 허억….허억…허억…”
죽음의 문턱 바로 앞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힘겹게 숨을 토해내는 옥타비아.
그리고,
그런 옥타비아를 바라보면서.
그녀의 앞에 앉아 있는 마족들의 군주 마왕은,
진한 분노가 서려있는 굵은 남성의 목소리로 조용히 그녀에게 말했다.
“누가 너더러 입을 열랬지? 질문은 짐이 한다.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거기에 대답을 하는 것 뿐. 그 점을 명심하도록. 엘프.”
“ㄴ….네! 자… 잘 알겠습니다. 마왕 폐하.”
무시무시한 카리스마와 공포를 동시에 느끼게 만드는 마왕의 말에 옥타비아는 다급하게 대답을 하였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제 아무리 적국이라 해도 당연히 외교적 결례가 될 수밖에 없는 마왕의 태도.
그러나 당장 아쉬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이쪽이었으며, 무엇보다 상대는 인간도 엘프도 수인도 아닌 마족들의 군주인 마왕이었다.
그런 자에게 일반적인 외교 상식을 기대하는 것은 그 자체로 어리석은 행동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안 그래도 궁지에 몰려 있는 입장에서 소위 말하는 관습의 보호조차 받지 못한 채.
옥타비아는 일단 눈 앞에 있는 마왕이 자신에게 무엇을 질문할지를 짙은 긴장 속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말해라, 네 녀석들이 이 땅에 그 더러운 발을 다시 디딘 이유가 뭐지?”
사실상 용건을 말하라는 이야기를 또렷한 적의를 담아서 묻는 마왕.
이에 옥타비아는 최대한 정중한 모습을 보이며 그녀가 가져온 서신과 문제의 검은 불꽃이 담겨 있는 유리병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저희는 교황 성하의 명에 따라… 마왕 폐하께 이것을 전해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
그녀의 이런 행동을 보면서 가볍게 턱짓을 하는 마왕.
이에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엘리사는 그대로 옥타비아의 손에 들려 있는 그것들을 받은 뒤, 서신을 펼치고 그 내용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자잘한 서론을 제외하면 그 내용 자체는 그리 많은 것이 아니었다.
간단히 말하면 현재 엘프 교국의 숲을 불태우고 있는 검은 불꽃에 대한 정체와 그것을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것이며,
그 대가로 엘프 교국은 마왕국의 요구하는 것을 최대한으로 들어주겠다는 이야기였다.
“이상입니다 폐하.”
“…”
“…”
서신을 끝까지 읽어 내려가던 엘리사의 목소리가 사라진 직후, 대전 안에 감돌기 시작하는 묵직한 침묵.
그 속에서, 옥타비아는 진한 긴장에 사로 잡힌 채, 눈 앞에 있는 마왕의 어떤 결정을 내릴지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훌륭하구나...”
“…”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마왕.
그러나, 얼핏 긍정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그 말을 들으면서 옥타비아는 본능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 순간,
마왕의 말 안에는 긍정적이라 볼 수 있는 감정 따위는 손톱만큼도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참으로 훌륭하기 그지 없구나. 너희 엘프놈들의 그 더러울 정도의 뻔뻔함은.... 그저 감탄만이 나올 정도다.”
“!!!”
그 말과 함께 몸에서 진하디 진한 살기로 뒤엉킨 검은 마력을 발산하기 시작하는 마왕.
마치 혹한 속에서 알몸으로 버려진 것 만 같은 그 끔찍하기 그지 없는 기척에 옥타비아는 자동적으로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서.
마왕은 섬뜩하기 그지 없는 한기를 담아조용히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자 그럼, 어디 한번 그 뻔뻔한 입으로 발버둥을 쳐보거라. 짐이 네놈들을 살려서 보낼 생각이 들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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