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생각보다 적이 강하다 그렇다면...
* * *
눈앞에 나타난 제국 3기사의 일각 아킬레스.
은백색으로 빛나는 검을 든 채 차가운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선,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의 강자의 기척이 느껴지고 있었다.
“저 녀석… 제법 강한 것 같은 것이다.”
“정확히 짚었다. 저 녀석은 팔콘 제국이 자랑하는 3기사 중 한 명. 순수한 전투력만 따지면 나보다도 우위에 서있는 강자다.”
“호오... 제국 3기사라… 이야기는 들어 봤지만 설마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이거 제법 상황이 재미있어 지는 것이다.”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최상위 강자인 아킬레스를 보면서도 전혀 기죽지 않는 모습을 내비치는 샤뮤엘.
오히려 이 순간 그녀에게선 강자와 싸운다는 기대에서 우러나고 있는 진한 투지가 느껴지고 있었으나 그런 그녀를 보면서 헥토르는 진한 우려를 표하였다.
“섣부른 짓은 하지 마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자는 강하다. 나하고 비등한 실력을 지닌 네가 혼자서 당해낼 수 있는 적이 아니다.”
“그래도 상관 없다. 저쪽은 하나고 우리는 둘 이상인 것이다.”
“그야 그렇긴 하지만….?”
지극히 평범하게 이야기를 하는 샤뮤엘의 말.
이에 헥토르의 머릿속에선 문득 한가지 의문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 아니 잠시만, 그 말은 지금… 1:1 결투를 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 이게 무슨 시합도 아니고 그런 병신 짓을 왜 하는가? 이런 상황에선 당연히 다굴이 정답인 것이다.”
“저..저기.. 그렇게 되면 전사로서의 긍지 같은 것은….”
“그런 건 경기장에서 시합 할 때나 찾아라. 지금 우리는 적진 한복판에서 잠입 임무 수행 중이다. 긍지 찾다가 모가지 떨어져도 칭찬해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으음…”
정확하게 팩트를 후려 갈기는 샤뮤엘의 말에 더 이상 할 말을 잃어버린 헥토르.
그런 그를 보면서 샤뮤엘은 다시금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잡담 끝났으면 검이나 들어라. 네 부탁으로 인간 수십 명을 고생해서 살려줬는데 이 정도론 원금을 택도 없고 이자라도 갚는 것이다.”
“… 제국 3기사 중 한 명의 목이 이자 수준이라니 완전 악성 채무로군.”
“이제 알았나? 앞으로 영원히 대대손손 갚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이야기를 하면서 건틀릿에 마력을 불어 넣는 샤뮤엘.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헥토르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게 되었다.
‘역시…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여자다.’
그 생각을 끝으로 다시금 정면에 있는 적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는 헥토르.
한편, 그들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킬레스는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지막 인사는 잘 끝냈나 보군. 그럼 황도에서 소란을 피운 죄를 물어 네놈들을 이 자리에서 즉결 처형하겠다.”
그 말과 함께 그대로 전신에서 어마어마한 마력을 발산하기 시작하는 아켈리스.
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샤뮤엘과 헥토르는 즉시 전투 태세를 갖춘 뒤 그대로 놈의 공격이 들어오길 기다렸다.
‘섣불리 공격을 들어갔다간 오히려 낭패를 볼 수 있다. 비록 총 전력의 합산을 우리들이 유리하다 할 수 있지만 각계격파를 당해버리면 정말로 답이 없을 테니…’
솔직히 지금까지 한 번도 합을 맞춰본 적이 없는 입장에서 헥토르는 여전히 과연 이 싸움을 잘 이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를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쪽은 현재 상대의 힘을 잘 알고 있는 반면, 저쪽은 이쪽의 전력은커녕 정체조차 불확실 하다는 점.
그 헛점을 잘 노린다면 제법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게 헥토르의 생각이었다.
그때…
“!”
“웃!”
일 순간 어마어마한 속도를 내면서 이쪽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하는 아켈레스.
마치 쏘아진 화살과 같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달려오는 그를 보면서,
샤뮤엘과 헥토르는 반사적으로 무기를 들어 공격을 방어해 내었다.
그리고.
챙!
“으음…”
“큭!”
한 순간 그들의 팔에 느껴지는 묵직하기 그지 없는 감각.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공격에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그들은 생각 이상의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에 자동적으로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호오… 설마 이 공격을 막아내다니 생각보다 보통 녀석들이 아니…?”
약간의 감탄과 여유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아킬레스.
그러나 그 순간, 아킬레스는 이어진 상화에 대해서 자신도 모르게 살짝 당혹감을 느끼게 되고 말았다.
콰과광!!!
그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날아드는 거대한 건틀릿.
이에 아킬레스는 말을 중단한 채 이를 방어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그의 뒤쪽에서 날아들기 시작하는 한 자루의 검격.
이를 간발의 차이로 감지한 아킬레스는 그대로 몸을 비틀어 이쪽으로 날아오는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회피한 뒤, 그대로 힘으로 재빠르게 건틀릿을 밀친 다음 그 자세에서 크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탓!
예상치 못한 그의 반격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를 능숙하게 회피해내는 건틀릿을 낀 인물.
이에 아킬레스는 실시간으로 올라가고 있는 상대의 전력 평가에 살짝 눈살을 찌푸리게 되었다.
‘이 녀석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하다.’
어마어마한 마력이 담겨있는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반격까지 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는 제국 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사람은 그를 상대로 하면서 거의 밀리지 않는 수준의 힘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이는 아킬레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상대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중이었다.
이어진 공방 전에서도 절대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두 사람.
비록 그들의 합동 공격에는 연계 부분에서 약간의 어색함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킬레스는 상황이 썩 좋지 않게 돌아가는 것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대체 정체가 뭐지?... 얼핏 듣자 하니 마도국에서 보낸 마녀들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설마.. 4마희?’
4마희(??)
마도국이 자랑하는 최강의 4 마녀들을 일컫는 말로, 제국의 3기사와 비견될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다 추정되는 존재.
그러나,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체는 거의 비밀에 부쳐져 있으며 그나마 알려져 있는 존재는 용사파티에 속해있던 슈드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아킬레스는 자신과 거의 호각 이상으로 맞붙고 있는 이 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 강자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귀찮게 되었군, 상대가 4 마희 중 두 명이라면 나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손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 정도를 예상하고 왔으나, 그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적들이 강한 상황.
물론, 만약 여기서 운이 따라준다면 아킬레스는 4마희중 둘을 한꺼번에 처치하는 기회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역으로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그의 목숨은 이곳에서 끝장날 것이었으며, 이에 아킬레스는 자신이 냉정하게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능성이 적은 도박을 벌여 승리를 잡을 것인지.
그도 아니면 적당히 물러나서 안전을 취할 것인지.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아킬레스의 결정은 당연히…
“하아아앗!!!”
팍!
한 순간 강력한 힘을 폭발시켜 눈 앞에 있는 두 사람을 밀쳐내는 아킬레스.
이에 4마희로 추정되는 그들은 일단 아킬레스와 거리를 벌리게 되었으며, 그런 그들을 보면서 아킬레스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보다 제법이군. 설마 이정도 실력자들을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걸?”
“…”
아킬레스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이쪽의 동태를 살필 뿐인 두 사람.
이에 대해서, 아킬레스는 방금 전 자신의 말을 씹고 돌진한 것은 물론이고 애초에 이 둘은 말이 통하지 않는 녀석들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뭐 좋다. 이렇게 된 이상 내 특별히 경의를 담아. 전력을 다해 네놈들을 상대해 주도록 하마!”
그 말과 함께, 일 순간 지금까지와는 다른 금빛 마력을 발산하기 시작하는 아킬레스.
이에 그를 상대하던 두 사람.
샤뮤엘과 헥토르는 곧바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여겨지는 일격에 대비하기 위해 마력을 끌어 올리며 방어를 굳혔다.
‘방금 전처럼 고속 검으로 돌진을 해올 생각인 건가?’
‘그도 아니면 회피하지 못하도록 검기를 날릴 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나름대로 상대가 어떤 수를 둘지 생각하면서 동시에 이에 대해서 어떻게 반격을 할지 까지 수를 계산하기 시작하는 그들.
그때…
“!!! 위… 위험!”
“!!”
한 순간 헥토르의 뇌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
이에 그는 그대로 온 힘을 다해 자신의 몸을 옆쪽에 서 있던 샤뮤엘을 향해 던지기 시작했으나,
그의 이런 행동보다 한 발 빠르게 샤뮤엘을 향해서 날아오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아켈리스의 손에서 쏘아져 나오고 있는 한 줄기의 황금빛 창.
사실상 그의 전력이나 다름 없는 어마어마한 마력이 담겨 있는 그 일격에 이를 방어하려 했던 샤뮤엘은 일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이… 이건 위험한 것이…!!’
“제기랄!”
그리고…
콰과광!!!!
한 순간 울려 퍼지는 요란한 폭음과 짙은 먼지 구름.
그러나 그 직후, 아킬레스는 그 결과물을 보기도 전에 그대로 남아 있는 전력을 다해서 전장을 이탈해 버렸다.
‘이걸로 운이 좋으면 한 놈 정도는 처치했겠지.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은 일단 후퇴가 답이다.’
언제나 최악의 수를 염두해 두며 무모한 짓을 하지 않는 아킬레스.
그런 그에게 있어서, 목숨을 건 도박을 하는 것은 맞지 않는 일이었으며.
결과적으로 그는 일 순간 최대 전력을 쏟아내 상대를 무력화 시킨 뒤 그 틈을 타서 도주를 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렇다 하지만, 사실상 오늘 하루 전투가 불가능할 정도의 전력을 쏟아낸 그의 일격을 날린 만큼 그 결과에 대해서 약간은 기대를 가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도주를 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상,
그것을 지켜보고 있을 여유는 없었지만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