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기회
* * *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 시작하는 삼손.
이어서 그는, 살짝 목소리를 낮춘 뒤 그대로 나와 이 이모티콘… 아니, 샤뮤엘 이라는 여자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둘 다 잘 듣게, 이건 제법 믿을만한 소식통을 통해서 알게 된 정보인데… 아마도 조만간 마왕 폐하께서 주최하시는 나르실 선별이 있을 것 같다는군.”
“나르실 선별?”
“그게… 뭡니까?”
나와 더불어서 살짝 고개를 갸우뚱 하는 샤뮤엘.
이에 대해서 삼손은 순간적으로 살짝 멍한 표정을 지은 뒤, 이내 약간 당혹감을 담아 우리들에게 말했다.
“아… 아니… 정말로 모르는 건가? 용사야 그렇다 치더라도 샤뮤엘 너도?”
“모른다, 들어본 적이 없다. 대체 그게 뭐 하는 것인가?”
“으음…”
샤무엘의 반응에 살짝 답답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삼손.
이어서 그는 입에서 작게 한숨을 흘린 뒤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아… 뭐, 모른다면 어쩔 수 없지… 일단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자면 나르실 이란 우리 마왕국 내에서 최고의 전사를 일컫는 말로, 이를 가려내기 위해서 본래 우리 마족들은 5년에 한 번씩 대회를 열어 전사들간의 자웅을 겨루는 시합을 진행해 왔다.”
“대회라… 일종의 결투시합 같은 겁니까? 인간들이 투기장에서 벌이곤 하는 검투사들의 승부 같은..”
“뭐, 비슷하다 할 수 있겠지만 그것과는 성질이 조금 다를 것이다. 이 나르신 선별은 인간들의 그것처럼 단순한 오락 목적이 아닌, 신분에 상관 없이 마왕국의 유능한 인재를 선출하기 위한 목적도 있으니까 말이다.”
즉, 이 나르실 선별이라는 것은 조선시대로 치면 무과 과거시험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필연적으로 실력 있는 전사들간의 전투가 이어질 것인 만큼 그 안에 오락성이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 안에는 시험으로서 사람을 판별하고 그 결과 명성과 부, 관직과 같은 확실한 보상을 준다는 점에서 제법 큰 동기부여가 된다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질문에 대답을 해준 뒤, 삼손은 그대로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쭉 들이킨 뒤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비록 지금까지는 종족연합과의 전쟁으로 인해 대회가 중단되었지만, 이제 전쟁도 끝나고 했으니 조만간 대회를 열기로 했다는 것 같다. 특히 이번의 경우는 그 동안 공백기가 워낙 길었던 만큼 아마 규모 또한 역대 최대로 열릴 가능성이 높겠지.”
제법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삼손.
그러나, 이에 대해 난 생각 했던 것과는 달리 그리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약간 심드렁한 태도를 내보였다.
“뭐, 제법 흥미로운 일이긴 합니다만… 그래 봤자 제 입장에선 그저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전 인간이라 참가도 못 할게 아닙니까.”
“마찬가지, 이제 겨우 3년 차 이지만 나도 엄연히 군단장, 신입을 뽑는 자리에 나 같은 사람의 참가가 허가 될 리 없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구경거리라고 친다면 나쁘지 않은 이야기이겠지만 단지 그것뿐.
굳이 삼손이 이를 진지하게 운운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선 나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직후…
그런 우리들의 반응을 예상한 듯, 삼손은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다. 나 같이 일전에 이미 나르실로 선별된 사람의 경우는 당연히 참가가 금지되어 있지,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떤 종족이든 어떤 자리를 가지고 있든 상관 없이, 그저 마왕국의 백성이기만 하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
“그게 정말입니까?”
“흐음… 그게 사실이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는 것이다.”
나르실 선별에는 우승한 전적이 있는 자만 아니라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는 삼손의 말.
이에 대해서, 난 자동적으로 이번 일에 대해 진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커다란 부와 명성, 그리고 권력까지 한 손에 쥘 수 있는 나르실 선별 대회.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거창한 것들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 대회에서 우승하게 되면 세간에 대한 나의 생각이 많이 바뀔 지도 모르겠어.’
비록 삼손 같이 호탕한 인물은 그렇지 않았지만,
여전히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로 인한 편견은 나로 하여금 주변 마족들에게 썩 좋지 않은 시선을 받도록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당장 오늘 이곳에서도 나를 보면서 내키지 않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고 있던 자들이 제법 있었으며, 결정적으로 마왕은 이런 나의 상황으로 인해 사귀는 사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눈치를 보느라 편하게 나를 만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때에 내가 나르실로 선별이 된다면… 나에 대한 마족들의 반응도 조금은 누그러지지 않을까? 물론 그 편견이라는 것이 완벽히 사라지긴 힘들더라고 어느 정도는…’
힘을 숭상하는 마족들의 특성상 이는 제법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지난 전쟁에서 내가 이루어낸 성과는 분명 대단한 것이었으며, 이 덕분에 나에 대해서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마족들도 적잖이 있었지만 대다수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전장에서 나와 함께 싸웠던 이들을 제외하면 그저 지나가는 이야기만으로 들은 입장에서 그것이 잘 와 닿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
거기다 정확한 내막을 모르는 마족들 입장에서, 난 갑작스럽게 영입된 낙하산 같은 느낌도 어느 정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난 대부분의 마족들의 이목이 한곳에 집중되어 있는 이 나르실 선별전이 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실하게 개선할 수 있는 기회라 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도 참가해 보고 싶습니다. 이래 보여도 저 역시 힘을 숭상하는 무인. 전사로서 힘을 증명할 수 있는 자리에 빠질 수는 없지요.”
“하하, 그래 자네라면 그렇게 말해 줄줄 알았지! 좋은 모습을 기대하게 있겠네.”
“나도 참가해 보고 싶다. 군단장이긴 하지만 지난 전쟁에선 후방이나 지키면서 심심한 싸움만 했다. 간만에 강한 녀석들이랑 마음껏 싸워보고 싶은 것이다.”
●w● 모양의 얼굴을 한 채 고기를 우물거리면서 참가 의사를 밝히는 샤뮤엘.
비록 얼굴만 보면 개그였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 순간 그녀의 몸에선 은은한 투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는 듯한 모습.
이를 보면서,
난 대충 만들어진 얼굴과 무관하게 그녀 역시 군단장다운 만만치 않은 실력자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다.
‘전투력만 따지면 최소 엘리사 이상인가… 뭐 자세한 건 일단 붙어 봐야 알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절대로 만만하게 봐서도 안 되는 존재.
그렇게, 일단 눈앞에 있는 이 이모티콘에 대한 부분을 잘 기억하면서 난 내 앞에 놓여 있는 술잔을 마저 쭉 들이켰다.
*
일라이어스와 헤어진 뒤, 홀로 마왕성 뒤뜰을 거닐고 있는 엘리사.
레베카와 아멜다까지 떼어 놓은 지금,
그녀는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마가 용사와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건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어…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해야 할 선택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그녀를 사랑해주었던 모친인 일라이어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읜 엘리사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라이어스의 헌신적인 사랑은 엘리사로 하여금 충분한 애정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어 왔다.
그런 점에서 엘리사는 늘 딸로서 진심으로 어머니를 사랑하고 또 존경해왔으며, 이는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러한 모녀간의 애정과 별개로, 엘리사는 제아무리 상대가 어머니라 할지라도 그녀의 사랑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처음을 느낀 남자에 대한 진심 어린 호감.
그 두근거리면서도 달콤하기 그지 없는 감정을 포기한다는 선택지를 엘리사는 결코 고를 수 없었다.
‘놓치지 않을 거야. 제아무리 마마라 해도 이대로 내가 용사를 포기할 것 같아? 그 달콤하면서도 감미로운 손길을 절대로 빼앗기지 않을 거야. 반드시… 반드시 용사의 마음을 손에 넣고 말겠어.’
그렇게 일라이어스를 향해 여지껏 가져본 적도 없고 가지게 되리라는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는 투지를 불태우기 시작하는 엘리사.
그러나,
그녀의 이런 각오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는 이번 일이 정말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정황상 이미 어느 정도 일선을 넘은 것으로 보이는 일라이어스와 용사의 관계.
아무리 그래도 잠자리까지 가지지는 않았겠지만. 목덜미의 자국이나 체취 등으로 봤을 때 서로 농밀한 스킨쉽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았다.
이미 시작지점부터 엘리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앞서있다 할 수 있는 일라이어스.
거기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냉정하게 봤을 때 엘리사는 여러 면에서 일라이어스에 비해 한발자국 뒤떨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친위대 사천왕과 군단장 이라는 지위는 대외적으로는 동등하다 치고 있었지만, 세간에선 거대 군단을 통솔하는 권한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군단장의 자리를 더 높게 치곤 하였다.
아울러 그런 지위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지니고 있는 개인의 무력 또한 일라이어스가 한 수 위였으며, 여성으로서의 매력 역시 이런 꼬맹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엘리사와는 달리 완숙한 미모를 지니고 있는 일라이어스가 더욱 우위에 서 있다 할 수 있었다.
‘그나마 가슴 크기는 그렇게 크게 차이가 안 나지만, 역시 마마의 농후한 매력 앞에선 아무래도 내 쪽이 묻힐 수밖에 없다고… 제길… 대체 어떻게 하면 좋지? 어떻게 해야 마마를 이길 수 있을까?’
그렇게 싸움을 시작하려 해도 당장 불리한 점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에 한층 더 암담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하는 엘리사.
그때…
그녀는 자신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르기 시작한 한가지 사실에 살짝 실마리가 보이는 듯 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조만간 나르실 선별전이 있다고 했었지? 그걸 잘 이용한다면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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