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제작 과정에서 정말로 대충 설정을 짠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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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라이어스의 품 안에 안겨 있던 엘리사와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두 사람.
그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난 자동적으로 일단 여기선 자리를 피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낄만한 분위기는 절대로 아닌 것 같네.’
다크엘프가 된 아멜다의 경우는 현재 엄연히 엘리사의 소유물이자 그녀의 가문에 속해 있는 존재였다.
레베카의 경우는 좀 애매했지만 근래 들어 붙어 다니는 모습을 종종 봐온 만큼 아마도 친구 같은 존재 일 터.
그런 사람들 앞에서 어머니의 품 안에 안겨 있는 엘리사의 일에 내가 깊게 신경을 쓰는 것 자체가 여러모로 그런 만큼, 난 약간 묘한 기분을 느끼면서 그대로 슬그머니 그곳을 빠져 나왔다.
마지막 순간, 어쩐지 나를 보는 엘리사의 눈빛이 조금 미묘한 것 같았지만 거기에 대해서 굳이 깊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을 터.
그렇게, 난 엘리사 일행을 놔둔 채 그대로 슬그머니 연회장으로 되돌아 왔다.
마왕과의 대화로 인해 잠시 중단되었던 식사도 마저 할 겸 말이다.
그때…
“오오 여기 있었군 용사! 안 그래도 어디 갔나 찾고 있었다!”
다음 순간, 약간 우악스러운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와 팔장을 두르는 근육질 남성.
삼손의 행동에 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잠시 바람을 좀 쐬러 나갔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식의 식전에는 그리 익숙지 않아서 말입니다. 무엇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전 일단 인간이고 말이지요.”
“하하, 그렇게 부담 가질 필요 없다네 용사. 솔직히 그런 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 자네와 우리들은 함께 피를 흘리며 싸운 전우, 같은 마왕국의 장수이자 동료로서 편하게 여기도록 하게나!”
“하하, 뭐…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자 그럼 내 잔도 한잔 밭게,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이 아닌가! 어리 오늘 밤은 한 번 흠뻑 취해 보세나!”
“알겠습니다. 허면 저도 간만에 좀 마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삼손의 권유대로 난 내 앞에 놓여 있던 술잔을 든 뒤, 그대로 이를 쭉 들이켰다.
그 직후 느껴지는 시원하면서도 감미로운 맛.
이를 통해서, 난 내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있는 이것이 단순한 술이 아닌, 상당히 공을 들여 주조하고 숙성시킨 명주라는 것을 또렷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캬… 술맛 좋다.”
“역시 마시는 것도 시원시원하기 그지 없군! 자! 한잔 더 받게, 이건 이번에 종족연합군 측에서 노획해온 고급 술이라네.”
그 말과 함께 내 앞에 놓여진 잔 안에 따라지는 황금빛 술.
고급 양주를 연상시키는 그것을 집어 든 뒤, 난 그대로 거침 없이 이를 쭉 들이켰다.
본래 세상에서도 제법 술을 좋아했던 나에게 있어서 이런 좋은 술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실제로 고급이기도 했고 아울러 승리의 미주라는 점에서 평소 이상으로 달달하게 느껴지는 술을 삼손과 함께 들이키고 있던 그때…
문득 나의 눈에는 여전히 옥좌에 앉아 끝없이 밀려오고 있는 사람들을 연연하고 있는 마왕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황상 지금 저 자리에 앉아 있는 건 아마도 마왕 본인이겠지? 그렇다 하지만 솔직히 여러모로 힘들어 보이는걸… 이런 자리에서 즐기지도 못하고 내내 인사만 하고 앉아 있으니…’
생각해 보면 비단 정치적인 부분 때문이 아닌, 마왕 본인의 개인적인 시간과 피로도 때문에라도 그녀가 변장을 하고 대리를 새워 놓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그렇게, 여러 마족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실시간으로 피곤한 기색이 짙어지는 듯 한 마왕을 보면서 난 내심 상당히 안쓰럽다는 기분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연회에서 속 편하게 즐기지도 못하고 저러고 있어야 하다니, 역시 왕 노릇도 쉬운 게 아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난 앞으로 가능하다면 그녀가 에스더로 변장을 하고 있는 동안 만이라도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과거라면 모를까, 지금의 나는 엄연히 그녀의 연인.
애인으로서 상대에게 행복을 안겨 주는 것은 일종의 의무와 같은 것인 만큼 , 난 이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기로 나름대로 각오를 다졌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다시 한 번 술잔을 기울이던 그때...
“후냐….”
“응?”
“아, 왔는가?”
기묘한 소리를 내면서 우리들의 맞은편에 앉는 마족 장수.
전신에 은백색 감주를 두르고 있는 그자는 얼굴부분 까지 투구로 감싸고 있는 통에 정확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직후,
삼손은 그를 알아본 듯 반가운 표정을 지어 보였고, 이어서 그자는 조금 피곤한 듯 한 반응을 보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힘들었다… 확실히 호위 업무는 적응이 안 되는 것이다.”
진심으로 피로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은백색 갑주의 마족.
목소리 변조를 꺼둔 탓인지 이 순간 그자의 입에서는 여성의 목소리가 비교적 정확히 들였다.
“하여튼 넌 너무 일을 하는데 진지하게 임해서 탈이다. 그렇게 매 순간 온 몸에 힘을 주고 있으면 오히려 오래 못 버틴다고.”
“참고하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쪽의 인간은 누구냐?”
삼손의 말에 대답을 한 직후, 그대로 나를 보면서 의문을 표하는 마족.
이에 대해서, 삼손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말에 대답을 해주었다.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겠지? 이 친구가 바로 이번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용사 엘런이다. 나 역시 지난 전쟁에서 이 친구 덕을 좀 봤었지.”
“용사? 그렇군… 확실히 느껴지는 힘이 범상치 않은 것이다.”
나를 보면서 약간 특이한 말투이지만 또렷한 진지함이 깃든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그녀.
그 직후, 그녀는 그대로 천천히 투구를 벗은 뒤 정식으로 자신을 소개하려 하였다.
그런데 그 순간…
“!!?!”
“만나서 반갑다 용사. 내 이름은 샤뮤엘. 마족 군단장 중 한 명이다. 앞으로 잘 부탁하는 것이다.”
나를 보면서 약간 특이한 어조로 이야기를 하는 그녀, 샤뮤엘.
그러나 이 순간…
난 그녀의 얼굴을 봄과 동시에 묵직한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이 얼굴은… 대체…’
*
원작에선 일라이어스 이외엔 등장조차 하지 않았으며 오직 설정 정도로만 존재해 왔던 마족 군단장들.
그나마 게임 소개 삽화 같은 것을 통해서 이들의 모습을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는 있었으나, 정확한 설정이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
이 샤뮤엘이라는 군단장을 보면서, 난 한가지 사실을 자동적으로 추론할 수 있었다.
눈 앞에 있는 그녀는 비록 원작에 나오지는 않았을 지언 정, 분명히 어떤 설정은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도…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채 지어 놓은 설정이 말이다.
나의 앞에서 투구를 벗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군단장 샤뮤엘.
투명한 피부에, 눈에 띄는 긴 연 분홍빛 양 갈래머리를 지닌 작고 아담한 느낌이 드는 그녀는 옆에서만 보면 제법 미인이라는 느낌이 드는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난 그런 매력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순간 내 앞에서 술잔을 들이키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아니. 무슨 사람 얼굴이… 이모티콘…?’
이 순간, 그녀의 얼굴을 묘사하자면 딱 ●△● 이런 형상을 띄고 있었다.
말 그대로 이목구비를 이모티콘으로 대충 박아 넣은 모양을 하고 있는 그녀.
비록 주변의 마족들은 이와 관련해서 일절 신경을 위화감을 느끼고 있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내 입장에서 그녀의 이런 얼굴을 여러모로 복잡 미묘한 기분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등장도 안 하는 만큼 대충 설정을 짜두다 이렇게 된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 얼굴이 ●△● 이지?’
그렇게, 이 세상이 게임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다시금 느끼면서,
난 일단 최대한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샤뮤엘 군단장님. 용사 엘런 세이비어라 합니다. 비록 인간이긴 하지만 앞으로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네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롭을 털어버리고 안티옥도 털어버리고 그걸로 낚시를 해서 종종 연합 전체를 털어버렸다. 대단한 일을 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아…네. 감사합니다.”
나름 진지하게 칭찬을 하고 있지만, 여러모로 얼굴 때문에 집중이 안되게 만드는 그녀의 이야기에 난 살짝 어색함을 담아 대답하였다.
그때, 그런 나의 반응을 보면서 옆에 앉아있던 삼손은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하하! 용사 너무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마라. 물론 마족 최고의 미녀에게 칭찬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는 나도 잘 알고 있지만 이 정도 가지고 그렇게 안절부절 못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아…”
한 순간, 나의 미적 기준을 흔들리게 만드는 삼손의 발언.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샤뮤엘은 술잔을 홀짝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마라. 어디 까지나 운이 좋아서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한 것뿐이다. 호들갑 떨 필요는 없는 것이다.”
겸허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샤뮤엘.
아마 본인은 거기에 대해 그리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은 듯 한 느낌이었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이런 이모티콘 얼굴이 공식적인 미인으로 먹혀 든다는 사실에 난 마족들의 미적 감각에 대해 약간의 의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아무튼 잘 되었군, 마침 샤뮤엘도 오고 했으니 이 자리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응?”
“무엇입니까?”
다음 순간, 얼굴에 담고 있던 취기를 살짝 지우며 진지하게 입을 열기 시작하는 삼손.
이와 관련해서, 난 본능적으로 그의 입에서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 것 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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