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목덜미에 또렷하게 보이는 자국
* * *
“그렇군요… 그런 이유 때문에 이렇게 변장을...”:
“그렇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라면 모를까. 아무래도 지금 같은 시기에 인간인 그대와 연인이라는 사실을 공표하는 것은 여러모로 부담이 되는구나.”
마왕에게 전체적인 상황 설명을 들은 직후, 난 그대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제 막 전쟁이 끝난 입장에서 아무리 공을 세운 용사라 하지만, 인간인 내가 마왕과 대놓고 연인으로 어울리는 것은 일국을 다스리는 마왕의 입장에서 귀찮은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았다.
추후에라면 모를 까, 적어도 한 동안은 이런 식으로 지내는 편이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유리했다.
오히려 내 입장에선, 주변 눈치 볼 필요 없이 그녀와 어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상황이 더욱 편하다 할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저를 위해 배려를 해 주셔서.”
“뭐… 어찌 되었든 일단은 연인이지 않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일 뿐이다.”
그 말과 함께 살짝 얼굴을 붉히는 마왕.
그녀의 이런 의외로 귀엽기 그지 없는 모습을 보면서 난 잠시 멍한 표정을 지은 채 그대로 그녀에게 시선을 빼앗기게 되었다.
비록 외모는 다를 지언 정, 눈 앞에 있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 지금 상황에서.
난 내 앞에 있는 그녀를 보며 아까 전 경계심을 지녔던 때와는 달리 자동적으로 마음이 두근거리를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어색한 침묵 속에서 얼굴을 붉힌 채, 함께 나란히 앉아 있던 우리 두 사람.
그리고 잠시 후,
이러한 침묵을 먼저 깬 것은 마왕이었다.
“자 그럼… 앞으로 그렇게 하도록 하고 지금은 일단은 돌아가겠노라. 비록 나의 대역이 자리를 맡아주고는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너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는 것은 역시 곤란한 일이니까.”
그 말과 함께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마왕.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난 여전히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진한 행복감과 함께, 정중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네 마왕 폐하. 그럼 조금 있다 저도 따라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다음에 만났을 때는… 좀 더 방해가 없는 편한 자리에서 만나도록 하자꾸나.’
그 말을 끝으로, 우리 두 사람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끝으로 잠시 헤어지게 되었다.
비록 위장을 한 몸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눈이 많은 자리에서 가급적 우리 둘이 너무 붙어 다니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썩 좋지 않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
그렇게 마왕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난 약간 느긋한 기분을 느끼면서 그대로 천천히 연회장 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응?”
“!...”
*
명확히 알 수 있을 정도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 어머니 일라이어스
이에 대해서, 엘리사는 마음 한 켠에 담고 있던 불안감이 한층 더 진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마마… 지금 어디 갔다 온 거야?”
“응? 아… 그… 그냥 좀… 약간 취하기도 했고 바람을 좀 쐬고 싶어서.”
경직된 목소리로 마치 변명을 하듯 이야기를 하는 일라이어스.
평소와는 명확히 다른,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은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엘리사는 마음 속에 줄곧 지니고 있던 불안감이 격하게 꿈틀거리는 기분을 느끼며 그녀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연회 시작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취했다는 거야. 마마 원래 그렇게 술 안마시잖아.”
“그..그게…
엘리사의 말에 명확하게 당황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 일라이어스.
그러나, 이내 그녀는 한 순간 얼굴에 담겨 있던 표정을 바로 잡은 뒤, 눈 앞에 있는 딸을 보며 말했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역시 아무리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은 조금 마셔 줘야 하지 않겠니? 전쟁도 끝났고 잃어버린 영토도 완벽하게 되찾았으니까.”
“…그건… 확실히 그렇지만.”
어머니의 말에 대해서 여전히 여러모로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일단 입을 다무는 쪽을 선택한 엘리사.
그런 그녀를 보면서, 일라이어스는 입가에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은 채 그대로 슬쩍 딸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우리 딸… 엄마가 많이 걱정되었나 보구나? 이렇게 일부로 찾으러 와주기까지 하고, 정말 고맙다. 우리 딸도 이제 다 컸네.”
“….으음…”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에 살짝 얼굴을 붉히는 엘리사.
그렇게, 순간적으로 약간 뒤숭숭해졌던 분위기는 언 듯 빠르게 가라 앉는 듯 보였으며, 이 사실에 대해서 뒤쪽에 서있던 레베카는 마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솔직히 혹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게 아닐까 조마조마 했는데…’
이 세상에서 치정싸움만큼 무시무시한 것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만큼, 레베카는 이번 일이 심각한 쪽으로 번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일단 안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 그런 레베카와는 달리.
어머니 일라이어스의 품 안에 살짝 안겨 있는 엘리사는 여전히 뒤숭숭하기 그지 없는…
아니, 어떻게 보면 방금 전보다 오히려 더욱 심각해진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채 감각의 날을 바짝 세우고 있는 중이었다.
‘이 채취… 평소 마마의 것이 아니야. 다른 남자 놈의 것이 섞여 있어. 그리고 이 심장 소리로 봤을 때 마마는 여전히 상당히 긴장하고 있어… 거기다, 멀리서 봤을 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내 눈에 보이고 있는 저것… 저것은 분명…’
이 순간 엘리사의 바로 코앞에 보이고 있는 일라이어스의 목덜미.
그곳에는, 방금 전까지는 인식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그녀의 눈에 또렷하게 들어오고 있는 ‘자국’이…
누군가 남겨둔 옅은 입술… 혹은 이빨 자국과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비록 실전 경험은 없었지만 나름 책으로 보고 들은 것은 있는 엘리사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 엘리사는 그 사실에 대해서 차마 대놓고 지적을 할 수 없었다.
그것을 물어본 순간,
그녀의 사랑하는 어머니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딸인 그녀에게 조차도 감추고 있는 어머니의 비밀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너무나도 두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마... 아니…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거… 아니지? 제발... 제발 아니라고 해줘... 제발...’
그렇게 애써 눈 앞에서 아른거리는 그림을 부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엘리사.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응?”
“!...”
옆쪽에서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
이 순간, 엘리사의 입장에선 전대로 듣고 싶지 않았던 바로 그 목소리에.
그녀는 그대로 천천히 옆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그녀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한 사람의 모습.
그것이 무엇인지를 인지한 순간.
엘리사는 더 이상 정상적인 얼굴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요.. 용…사?”
“어…음…”
이 순간 엘리사를 보면서 여러모로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는 용사의 모습.
그 직후, 용사는 슬슬 이쪽의 눈치를 살핀 뒤 그대로 재빠르게 이곳을 떠나 어딘가로 사라졌다.
한 눈에 봐도 무언가 숨기려는 것이 있는 것 같은 용사의 태도.
그것을 인지함과 동시에,
엘리사는 순간적으로 그녀의 마음 속에 담겨 있는 무언가가 크게 뒤흔들리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말… 이었어?... 정말로… 정말로 마마가 용사하고?... 그… 그럼 지금 마마의 목덜미에 나있는 이 자국은 바로 용사가 남긴…’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엘리사의 머리를 어질어질하게 만드는 차가운 현실.
그것을 인지한과 동시에,
엘리사의 눈에선 그대로 눈에선 그대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엘리..사?”
“후에엥…. 후에에엥….”
자신의 품 속에서 흐느껴 울기 시작하는 딸아이 모습.
이에 일라이어스의 얼굴에는 적잖은 당혹감이 깃들기 시작했으며, 이내 그녀는 바로 앞에 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레베카와 아멜다에게 물었다.
“이 아이… 지금 왜 이러는 거니?”
“어… 음… 그게… 그러니까…”
여러모로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에 주저하는 반응을 보이는 아멜다.
그때, 그런 그녀를 대신해서, 옆에 서있던 아멜다는 차분함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실례했습니다 마님, 아무래도 주인님께선 조금 취하신 것 같습니다.”
그녀들 역시 용사가 잠시 이곳에 왔다가 일라이어스와 엘리사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돌아간 사실을 똑똑히 본 상황.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자동적으로 인지하게 되었지만 그렇다 해서 차마 이와 관련된 진실을 이야기 할 수는 없었다.
일라이어스와 밀회를 가진 그 사람을 사실 엘리사가 좋아하고 있었다는 콩가루 같은 사실을 잘못 운운했다간, 그들 입장에선 정말로 감당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하게 도리 가능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아멜다의 이런 말에 일라이어스는 이해했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에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긴… 이 아이는 술에 취하면 종종 울곤 하니까. 이제 괜찮아… 마마가 여기 있으니까. 울지 마렴 우리 아가.”
“히끅.. 히끅… 흐에에에엥…”
그 말과 함께 그대로 어머니의 손길로 딸을 달래주기 시작하는 일라이어스.
이에 엘리사는 그저 그녀의 손길을 받으며 더욱 서럽게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일라이어스는 물론이고, 이를 지켜보고 있는 레베카와 아멜다 또한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은 결코 체념이나 절망과 같은 눈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것은… 사랑하는 어머니와 한바탕 혈전을 치르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각오와 슬픔의 감정이 담긴 눈물이라는 사실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