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밀회가 분명하다!
* * *
“왜 그러느냐 용사여?”
내 눈앞에 서있는 에스더… 아니, 마왕을 보면서,
난 상당히 아슬아슬한 기분을 느끼며 일단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질문을 던졌다.
“조… 조금 호기심이 생겨서 말입니다. 그 외모는… 어떻게 하신 것입니까? 직감으로는 어찌어찌 알아차리긴 했지만 지금의 모습은 아무래도 폐하의 본래 모습과 차이가 제법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 이것 말인가?”
그 말과 함께 가볍게 자신의 금발 머리를 어루만지는 마왕.
비록 질문 자체는 급조한 것이긴 했지만, 실제로 이 순간 난 마왕의 모습에서 제법 의문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지닌 여성 마족, 에스텔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마왕.
단순히 눈동자와 머리 색이 바뀐 정도가 아닌 얼굴의 형태와 피부 톤까지 조금 달랐으며, 거기다 목소리 또한 평소의 마왕과는 제법 차이가 있었다.
솔직히 둘 다 대단한 미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을 뿐, 사실상 아무 연관 없는 다른 사람이라 해도 될 수준.
그리고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마왕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나에게 말했다.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저 신체를 변형시킬 수 있는 능력을 마법으로 보정한 것일 뿐, 아무리 그래도 기본적인 골격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말과 함께, 한 순간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시 에스텔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마왕,
얼핏 보면 카멜레온이 색깔을 바꾸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녀였다.
“이런 식으로 피부 형태나 모발과 안구의 색깔, 근육의 두께등을 조절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 간단한 일이다. 물론 모든 마족이 다 이런 것은 아니고 나처럼 어린 시절부터 비상시를 대비해 훈련을 받아온 이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지만 말이지.
“그렇군요…”
마왕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그녀가 이런’변신’능력을 익히게 된 것에 대해 어느 정도 납득을 하게 되었다.
확실히 한나라의 군주가 이런 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여러모로 수월할 터.
지금이야 마왕국이 어느 정도 위험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종족 연합군에 의해 상황이 악화되었을 경우 제법 유용한 패로 사용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내가 지금의 이 상황과 관련해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고 있던 그때였다.
“저… 용사여, 어떤가?”
“네?”
갑작스럽게 나에게 질문을 건네는 마왕.
이어서 그녀는 조금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살짝 그녀의 가슴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다.
“나의 이 모습은… 그대가 보기에 어떤가?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으음…”
얼굴에 드러나는 부끄러움과 더불어 약간의 기대감이 담겨 있는 것 같은 마왕의 질문.
여기에 대해서,
난 자동적으로 이 질문이 여자애들이 평소보다 신경 써서 꾸미고 나온 뒤 ‘나 어때?’ 하고 묻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다.
‘이런 물음이야 말로 까딱 말 한마디 잘못 하면 호감도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유형이라는데…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더 하드 한 유형이라 할 수도…’
여자가 외모를 묻는 것에는 상상 이상의 무게가 담겨 있다는 것은 이미 이런 저런 경험과 정보를 통해 알고 있었다.
거기다, 그나마 틀린 그림 찾기를 아주 잘 하면 되는 그것과는 달리. 이 순간 마왕은 누가 봐도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난이도가 매우 높다 할 수 있었다.
평소와 다른 모습을 가지고 당연히 여기서 이상하다 던가 어색하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냥 나락행 급행열차를 타는 것이라 다름 없는 사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평소보다 더 예쁘다 같은 이야기를 할 경우, ‘그럼 평소 내 모습이 못생겼다는 건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상당한 리스크가 담겨 있는 답변이었다.
결국 이쪽이든 저쪽이든 사실상 양쪽 다 지뢰가 깔려 있는 것이나 다름 없는 질문.
이와 관련해서, 난 짧은 순간 일전에 마왕 앞에 처음 무릎을 꿇었을 때 이상으로 머리를 굴리면서 어떻게 해서든 최선의 답변을 끄집어 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그 결과…
나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비록 전체적인 분위기는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마왕 폐하의 아름다움을 여전히 흔들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그런가?... 뭐… 그렇다면 다행… 이구나.”
어떻게 보면 나름대로 중립을 지킨다 할 수 있는…
‘근본적인 아름다움’ 같은 이야기로 주제를 돌리면서 답변을 넘기는 나의 행동.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다행스럽게도 마왕은 제법 기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한 층 더 붉히기 시작했고… 동시에 난 자동적으로 마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되었다.
*
“흐음…?”
연회장 한복판에서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주변을 돌아보고 있는 엘리사.
동시에, 엘리사의 곁에 함께 서 있던 레베카는 살짝 의문을 표하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상합니다, 어쩐지 대장님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너도 그래? 내 눈에도 전혀 안보여.”
친위대로서의 순찰업무로 인해 연회 시작부터 왕성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고 와야 했던 엘리사.
그것을 끝낸 뒤, 그녀는 곧바로 미리 챙겨왔던 드레스 차림으로 이곳에 도착했으나 현재 엘리사의 눈에는 아무리 봐도 용사의 모습이 도통 보이질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깜박 늦잠을 자면서 연히장에 늦게 도착했다 우연히 엘리사를 만나 반 강제적으로 동행하게 된 레베카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장님이 나처럼 늦잠을 자셨을 리는 없을 텐데… 대체 어디에 가신 거지?’
주변을 아무리 열심히 둘러봐도 통 보이질 않는 용사의 모습.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자동적으로 이 순간과 연관해 한가지 사실이 떠올려지기 시작했다.
“…저기… 엘리사님? 이거 설마…”
“너…너도 그런 생각 하고 있었어? 우연이네… 나도 그런데…”
화려하고 소란스러운 연회장에서 이유도 없이 사라진 남성.
그것도 단순히 화장실을 가거나 한 것이 아닌, 무려 20분 이상 모습이 보이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서 두 사람이 떠올릴 수 있는 것은 한가지뿐이었다.
“밀회..이겠지요?”
“밀회 맞을 거야… 분명히…”
정황상 이 왕성 어딘가에서 문제의 그 고백을 한 여성과 함께 노닥거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용사.
이와 관련해서, 엘리사는 자동적으로 눈에 불이 들어오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살벌한 목소리로 말했다.
“찾으러 가자. 레베카. 그리고 아멜다.”
“네? 아… 네, 알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주인님.”
엘리사의 말에 살짝 당혹감을 내보이면서도 일단 이에 순응하는 레베카와. 충성심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다크엘프 아멜다.
그렇게 세 사람이 막 연회장을 나서려던 그때였다.
”! 아… 냐단.”
“응?”
연회장을 나서려던 엘리사의 눈에 들어온 한 사람.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이 드레스차림을 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눈에 띄는 황금빛 갑주를 착용한 채 투구까지 쓰고 있는 그녀는, 엘리사의 말에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엘리사, 무슨 일?”
“저기 말이야. 오늘 연회에 용사가 오지 않았어?”
“왔어. 아까 벨제랑 이야기하는 거 봄.”
“그… 그렇구나. 그럼 혹시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알아?”
“모름.”
“으음…”
엘리사의 말에 약간 미묘한 무미건조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는 그녀. 냐단.
하다못해 용사가 누구와 함께 어느 쪽으로 갔는지 라도 알 수 있으면 좋겠다만, 보아하니 이와 관련된 사안은 냐단도 모르는 듯싶었다.
이에 대해서 엘리사의 마음 속에 한층 진한 초조함이 깃들기 시작하던 그때…
“…저기 말이야 냐단. 그럼 혹시…”
다음 순간 문득 떠오른 이름을…
마찬가지로 이 자리에 보이고 있지 않고 있는 인물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엘리사.
이에 대해서, 냐단은 별다른 고민 없이 약간 기계적인 느낌으로 엘리사에게 답을 산출해 주었다.
“마찬가지. 그분도 처음에는 보였다 지금은 안보임.”
“큭…”
냐단의 말에 한 순간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 엘리사.
그러나 그 직후, 그녀는 얼굴에 담겨 있던 이런 표정을 지운 채 최대한 빨리 도로 표정의 가면을 착용하였다.
“알았어. 고마워 냐단. 호위 임무 잘 하고.”
“수고.”
그렇게 ‘친구’를 통해서 추가적인 정보를 획득한 직후, 한층 초조한 느낌을 받으며 곧바로 왕성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하는 엘리사.
한편, 그런 그녀의 뒤를 따르면서 일련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레베카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저… 저기 말입니다 엘리사님. 혹 엘리사님은 지금 정말로 대장님의 연인이 된 그 사람을 그분이라 생각하고 계신 것입니까?”
“…확신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가능성은 제법 높다 보고 있어.”
“하…하지만 만약 정말 그렇다면 아무리 엘리사님이라 해도…”
“몰라, 지금은 일단 찾기나 해. 이건 어디까지나 의심일 뿐. 아직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으니까.”
복잡하기 그지 없는 기분을 억지로 억누르며 이야기를 하는 엘리사.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며 레베카는 차마 이 이상 뭐라 말을 하지 못한 채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때…
“!”
“아…”
다음 순간, 갑자기 제자리에 딱 멈추어 서는 엘리사와 레베카. 그리고 아멜다.
그들의 눈 앞에는, 안 그래도 막 엘리사가 찾으려 했던 그 사람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어째서인지 평소와는 달리 살짝 흐트러진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얼굴에 살짝 홍조가 남아 있는 그녀의 모습.
모르긴 몰라고, 방금 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 하다는 느낌을 안겨주고 있는 그녀는…
엘리사를 본 순간 약간의 당혹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어머… 우리 딸,여기서 뭐하니?”
“마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