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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R용사는 마왕에게 무릎을 꿇었다-55화 (55/150)

〈 55화 〉 반드시 찾아내서 묻어줄게...

* * *

눈앞에서 혼란과 광기를 발산하고 있는 엘리사.

당장 살인이라도 벌일 듯 한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레베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머리를 굴린 뒤 마땅하다 여겨지는 대답을 꺼내기 시작했다.

“저… 저기 그러니까… 일단은 조금 진정하세요 멜리사님, 물론 방금 전 대장님께서 고백 비슷한 말씀을 하시긴 했지만, 저희들은 앞 뒤 상황을 전혀 모르잖아요. 당장 그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이 그 이후로 실제로 고백을 받아들이긴 했는지도 말이에요.”

“!.... 그… 그건… 그렇긴 하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름대로 정론을 이야기하는 레베카.

이에 엘리사는 잠시 격양되었던 감정을 조금 추스르기 시작했고, 그런 그녀를 보면서 레베카는 최대한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어… 어쩌면 단순한 오해일 수 도 있고, 또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일단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나서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게 정답이 아닐까요? 전략 목표도 모호한 상황에서 함부로 나서는 건 좋지 않다 여겨집니다.”

“으음…”

어린 나이 이지만 똑 부러지는 이야기를 하는 레베카의 말을 들으면서, 엘리사는 확실히 자신이 너무 흥분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대로, 방금 전 상황에 대해서 그녀는 정보가 없어도 너무 없는 만큼 일단은 최대한 분명하게 전후 사정을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레베카의 말대로, 일단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아 볼 필요가 있겠지. 정말로 용사가 고백을 한 것인지, 상대가 그걸 받아들였는지, 그리고… 만약 받아들였다면 그년이 대체 누구인지…’

당장 엘리사의 머릿속에는 떠오르는 사람들이 몇 명 있긴 했다.

지금까지의 정황상, 문제의 그 여인은 엘리사가 잠시 마왕 폐하의 친위대로서 용사의 곁에서 떨어져 있는 동안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거나,

혹은 전쟁이 끝나고 이어진 뒷수습과 조촐한 기념행사를 함께 즐기는 과정에서 연이 생겼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서 용사와 접촉했던 이들 중에는 제법 뛰어난 미모를 지닌 여성 마족들이 적잖이 포함되어 있었다.

말단 병졸들부터 고위 마족들까지,

스펙트럼부터가 매우 다양했으며, 그 중에는 그녀와 동급의 지휘를 가지고 있는 군단장들이나 다른 친위대원들 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얼핏 봤을 때는 키가 좀 컸던 것도 같았지만… 솔직히 워낙 정신이 없어서 잘 확인을 못했어.’

하다못해 외모라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면 누군가를 특정하거나 혹은 그럴 필요도 없이 단번에 그 년이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 엘리사의 머릿속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히 특별하다 할 만한 요소가 떠오르지 않았으며 결국 그녀는 끙끙 고민을 하면서도 쓸만한 무언가를 캐내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칫… 아까 흥분하지 말고 상대방이 누구인지부터 확인 했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꼭지가 돌아 버려서 그런 중요한 점들을 놓치고 말다니…’

순간적으로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가서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시간적으로 이미 두 사람은 그곳을 떠났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감정에 휘둘린 채 경솔하게 행동한 결과, 중요한 정보를 놓치고 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기 시작하는 엘리사.

물론 조만간 용사가 대놓고 연애를 하기 시작하거나 한다면 그 상대가 누구인지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겠지만, 아마도 그럴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한쌍의 남녀가 비밀리에 연애를 하면서 애정을 키우는 것은 이곳 마왕국 에서도 매우 흔한 일.

최악의 경우 연애와 관련된 소식을 들은 날이 두 사람의 결혼식 날이 될 수도 있는 만큼,

엘리사는 용사의 고백 상대를 알기 위해선 분명 쉽지 않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대가 누가 되었든,

얼마다 대단한 집안의 아가씨께서 용사의 마음을 사로잡았든.

엘리사는 이에 대해서 조금도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 마왕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명문가의 일원인 엘리사.

당장 어머니인 일라이어스는 군단장의 자리에 앉아있었으며, 그녀 스스로도 친위대라는 중책을 맡고 있는 만큼 그녀는 다른 누군가에게 꿀릴만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배경으로 한 채,

엘리사는 방금 전 만큼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그녀의 가슴 속에서 마치 용암 마냥 흐르고 있는 분노의 감정을 그 정체 불명의 도둑 고양이를 향해 겨누기 시작했다.

‘어떤 간 큰 년인지는 모르겠지만 절대로 용사를 빼앗길 생각은 없으니 각오하고 있으라고. 반드시 찾아내서 네 년을 아주 확실하게 묻어줄 테니까.’

제국이나 마도국 같은 나라들이라면 모를까,

마왕국의 경우는 원칙적으로 첩실을 두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여성 군주의 비율이 많았던 탓도 있었고,

권력자들도 그런 쪽에 있어서 정결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전통으로 자리잡아 있는 상황이었다.

한 사람 옆에는 무조건 한 명의 부인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원칙.

그 외의 것은 불륜으로 여겨지며 죄악으로 치부 되는 만큼, 사랑의 공유라는 개념은 존재를 할 수가 없었다.

승자 독식.

즉, 이긴 자가 모든 것을 온전하게 갖는 것이 마왕국의 연애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점에 있어서…

엘리사는 이제부터 자신이 물러설 수 없는 전쟁에 돌입 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가 처음으로 경험한 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전쟁에 말이다.

한편,

그렇게, 일단 함부로 날뛰는 것은 막았지만 여전히 속으로 칼을 득득 갈고 있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게 해주는 엘리사의 모습을 보면서,

레베카는 당장 급한 불을 끄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위험이 남아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마음 속으로 진한 우려와 안도의 감정이 담겨 있는 한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뭐… 분위기로 봐선 이후로도 이런 저런 일들이 터질 것 같지만 내가 그 부분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어쨌든 이걸로 당장 어떤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테니까…’

애초에 크게 접점을 지니고 있지도 않았으며, 오늘일 또한 그저 우연히 마주하게 되면서 발생한 일이었다.

그런 만큼, 이 용사를 둔 치정싸움에서 자신의 역할을 딱 여기까지라 판단 하면서, 레베카는 슬슬 발을 빼려 하기 시작했다.

“저.. 그…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엘리사님의 사랑이 꼭 이루어지길 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레베카는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 제 갈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때.

“잠깐.”

“ㄴ…네?”

갑자기 그녀를 불러 세우는 엘리사.

차디찬 한기가 담겨 있는 듯 한 그녀의 목소리에, 레베카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제자리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레베카를 향해서.

엘리사는 차가운 한기가 담겨 있는 듯 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너 말이야. 오늘 있었던 일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아… ㄴ…네. 무… 물론… 이지요.”

얼굴에 경련이 일 것 같은 감각을 느끼면서 레베카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그런 그녀를 보면서, 엘리사는 입가에 서늘하기 그지 없는 표정을 내보이며 말했다.

“그래, 꼭 그렇게 해줘. 만약 이런 사실이 세어 나가면 나도 너한테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니까 말이야.”

“무… 물론 이지요! 저.. 절대로! 이 비밀은 무덤까지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레베카의 말에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 엘리사.

그 안에 담겨 있는 싸늘한 한기에 공포를 느끼며 레베카는 한 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 그리고.”

“?”

“미안하지만, 혹 괜찮다면 앞으로도 종종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 마침 넌 용사의 부관이니까. 그쪽 소식을 알기도 쉬울 거 아니야.”

“!!?!”

“부탁 좀 할게. 그래도 괜찮지?”

웃는 얼굴로 레베카에게 ‘부탁’을 하는 엘리사.

그러나, 그 웃음 안에 담겨 있는 ‘협박’의 의미를 아주 잘 알고 있는 입장에서, 레베카는 애초에 자신에게 선택권 따위는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ㄴ…네. 무… 물론 입니다. 제가 어찌 감히 엘리사 님의 부탁을 거.. 거절 할 수 있겠습니까?”

“후훗.. 그래, 정말로 고마워. 혹 나중에 일이 잘 되면 너에게도 이래 저래 보답을 해주도록 할게. 그럼 나중에 연락 할게.”

그 말을 끝으로 그대로 레베카를 놔둔 채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엘리사.

그렇게 줄곧 그녀의 심장을 옥죄어 왔던 공포의 근원이 사라진 직후,

레베카는 마치 목 앞에서 칼날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그대로 제자리에 주저 앉았다.

“하… 씨발…”

그녀의 입에서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짧은 욕설.

이어서 레베카는 그대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쥔 채, 그녀가 처한 이 지랄 맞은 팔자에 한탄하기 시작했다.

“아니… 대체 요즘 들어 왜 이렇게 거지 같은 일들에 자꾸 휘말리는 건데? 그냥 적당히 좋은 연줄을 잡아서 출세하고 싶었을 뿐인데 대체 이놈의 인생은 어째서…. 응?”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르기 시작한 한 가지 생각.

이에 대해서, 절망만을 느끼고 있던 레베카는 문득 지금의 이 상황이 그저 나쁘기만 한 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잠시만… 비록 치정 싸움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것도 엄연히 그거잖아?... 평소에는 내가 쳐다볼 수도 없는 높으신 분이랑 커낵션이 생긴 거… 거기다 여기서 일을 잘 하면 보답도 해 준다고 했고…’

생각하기에 따라선, 사회인으로서 줄곧 원해왔던 ‘연줄’ 이라는 것이 생겼다고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치정싸움 이라는 무언가 질척질척한 느낌의 배경이 깔려있긴 했지만 살벌한 정치판이나 전쟁터와 비교하면 여러모로 양반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이것도 나름 출세를 위한 길. 잘 하면 여기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르잖아?’

어차피 저 무시무시한 엘리사에게 찍힌 이상 여기서 몸 성하게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터.

그렇게, 약간의 욕망의 감정을 느끼면서, 레베카는 앞으로 엘리사를 위해 이런 저런 일을 열심히 수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론, 이런 사실과 별개로 여전히 그녀의 마음 속에는 엘리사에 대한 짙은 두려움의 감정이 깔려 있었으며,

사실상 그녀를 움직이게 만드는 주요 동력은 그 공포라는 감정이었지만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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