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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R용사는 마왕에게 무릎을 꿇었다-48화 (48/150)

〈 48화 〉 저기에 무언가가...

* * *

어둠이 깔린 밤시간.

구름이 가득 낀 탓에 별빛은커녕 달빛조자 비춰지지 않고 있었으며,

주변에는 음산하게 밤 안개까지 끼어 있었다.

말 그대로 은밀하게 무언가 일을 진행하기엔 딱 좋은 상황.

그렇게 이런 점에 있어선 제법 운이 따라준다는 생각을 하면서, 난 그대로 조심스럽게 수풀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

본래라면 움직일 수 있는 소수 부하들만 이끌고 행동에 나서려 했던 계획과는 달리, 나의 뒤쪽에는 특별히 마족 군단 전처에서 선별될 1000여명의 병사들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어그로를 위해서 검은 갑주를 입고 있는 나와는 달리,

위장을 위해서 종족 연합군의 갑옷을 착용한 채 한쪽 어깨에 검은 천으로 표식을 한 병사들.

아울러 지금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저 반대편에 위치한 수풀 속에는 삼손 장군이 이끄는 또 다른 부대원들 또한 연합군의 갑옷으로 위장을 한 채 바짝 엎드린 상태로 주변을 살피고 있는 상황이었다.

비록 피로가 가시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전투에 사실상 온 힘을 쏟아내기로 결정한 그들.

이를 보면서, 난 지금도 여전히 믿기지 않는 방금 전의 그 상황을 떠올리며 묘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날씨도 그렇고, 일이 흘러가는 상황도 그렇고, 이렇게까지 잘 흘러가게 될 줄은 정말로 몰랐어, 설마 이 마족 장군들이 순순이 내 의견에 따라 움직여 줄 줄이야...’

일전에 일라이어스를 상대로 대놓고 으르렁거렸으며, 그 이후로도 종종 드높은 자존심을 보여왔던 마족 장군들.

그러나, 그들은 앞서 있던 회의에서 무슨 바람이 분 것인지 나의 의견에 따라 행동하기로 결정을 내렸으며, 아울러 지금은 대대적으로 나서서 작전을 실행하는데 도움까지 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방해나 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내 입장에선 여러모로 의외라 할 수 있는 일이었으며,

또 그렇게 기대를 전혀 하고 있지 않았던 탓에,

난 이들의 이런 도움에 대해서 조금이지만 고마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고지식하고 답답하면서 자존심만 강한 녀석들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괜찮은 구석도 있는걸?’

그렇게 내심 그 동안 지니고 있던 삼손을 비롯한 장수들에 대한 평가를 수정하면서,

난 다시금 내 눈 앞에 보이기 시작한 ‘목표물’ 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자 그럼… 슬슬 시작 해볼까?’

*

짙은 안개 속에

별빛은 구름에 가려졌으며, 달조차도 그 빛을 잃어 버린 암흑의 시간.

그렇게 단순한 분위기 만으로도 기분을 가라 앉게 만드는 상황에서,

엘프 종족 출신 병사 아벨과 카인은 짙은 불만과 마음 한 켠에 가시지 않는 한 조각 불안감을 지닌 채 진영 입구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중이었다.

“하아…제길… 아무리 재수가 없기로 서니, 하필이면 이런 날에 보초를 서게 될 줄이야..’

“하아아암… 그러게나 말일세. 요즘 들어 왜 이렇게 운수가 더러운지. 하여튼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군.”

짙게 깔린 어둠 속에서 오직 횃불 하나에만 의지한 채 서 있는 아멜과 카인.

이 순간, 그들은 할 수만 있다면 막사 안에서 골아 떨어져 있는 다른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이대로 잠자리에 들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눈 앞이 침침해 지면서 자동으로 감기게 만드는 이 묵직한 피로감.

이들이 어떻게든 이겨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이것은 단순히 지금이 잠 시간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어제 새벽부터 시작해서 밤이 새도록 이어진 강행군.

거의 쉬지도 못하고 달려온 그 지긋지긋한 행군의 끝에 이곳에 도착한 그들이었으며, 이로 인해 그들의 지칠 대로 지친 몸은 이 순간도 끊임없이 휴식을 요구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두 사람에게 주어진 것은 달콤한 휴식이 아닌 끔직하기 그지 없는 보초 임무.

마음 같아선 이대로 그냥 맨 바닥에 드러누워 영원히 일어나지 않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었다.

전투를 앞둔 상황에서, 보초를 맡은 자가 골아 떨어져 있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분명 가벼운 처벌로 끝나지는 않을 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눈은 본능적인 휴식 욕에 휘둘린 채 지금도 슬슬 감기고 있는 중이었다.

‘상식적으로 저 놈들도 공성전이 막 끝낸 이 상황에서 이 이상 전투를 벌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우리들도 장난 아니게 피곤한데 며칠 간 개같이 싸운 저 녀석들도 더하면 더했을걸?’

그렇게 내심 불만스러운 기분 속에서 천근만근처럼 느껴지는 눈꺼풀을 억지로 비비며 잠을 쫓아내려 애쓰는 두 사람.

그때…

“…응?”

“왜… 왜 그러는가?”

다음 순간, 갑작스럽게 잡이 싹 달아난 듯 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카인.

이어서 그는 어둠 속에서 흔들거리는 수풀을 응시하며 무언가 불길하다는 듯 살짝 눈살을 찌푸리기 시작했고..

이에 아벨은 갑자기 뒤바뀐 친구의 분위기에 한 순간 짙은 긴장에 사로 잡혔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서… 설마 이 시간에 적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질문을 하는 아벨.

이에 카인은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유심히 수풀을 살펴보며 잠시 동안 묵직한 침묵을 유지하였다.

마치, 저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수풀 사이에…

이곳에서는 그저 순수한 암흑으로만 보이는 그곳에 무언가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꿀꺽…”

무겁게 이어지는 카인의 침묵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키기 시작하는 아벨.

이에 아벨은 자신도 저 어둠 속에 무언가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를 유심이 살피기 시작 했다.

안개가 스믈스믈 올라오는 캄캄한 암흑.

금방이라도 무언가 튀어 나올 것 같은 음산하기 그지 없는 분위기.

심장을 옥죄는 것 같은 압박감에 사로잡힌 채, 그는 동료가 말한 저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보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며, 이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러나,

그렇게 약 10여분이 지났음에도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저 흔들리는 수풀뿐.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으음…, 아무래도 내가 착각을 한 모양이다.”

“후우…”

카인의 말에 그대로 짙은 한숨을 내쉬는 아벨.

그 안에 담겨 있는 감정은 안도감, 그리고 이런 식으로 자신을 쫄게 만든 친우에 대한 불만이었다.

“나 참… 똑바로 보고 있으라고. 진짜 마족이 공격이라도 한 줄 알고 바짝 쫄았지 않은가.”

“미… 미안하네… 사실 나도 긴가 민가 했는데… 워낙 피곤해서 헛것을 봤나 보군…’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카인이 말했고, 여기에 대해 아벨은 김이 새는 듯 한 느낌을 받으며 그대로 다시 앞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어?”

“…또 왜 그러는 가? 이번에도 헛 것을 보고 있는 건가?”

다시 한 번 들려오는 카인의 당혹감으로 가득한 목소리.

이에 아벨은 이 친구가 장난이라도 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자…자네… 여… 옆에… 옆에….”

“옆에?”

카인의 말에 의문을 느끼면서 그대로 고개를 돌리는 아벨.

그때…

“안녕?”

­팍!

누군가의 짧은 인사말과 동시에, 한 순간 느껴지는 이해할 수 없는 느낌에 아벨의 얼굴은 그대로 경악으로 물들었다.

찰나의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검은 대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섬광.

동시에 아벨은 목이 불타 오르는 듯한 느낌과 함께, 모든 것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기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언가 편안한 듯한 감각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 직후, 아벨의 눈에는 허공을 날아 다니고 있는 카인의 머리가 들어오기 시작했으나,

그의 머리는 그 이상 무언가를 생각해내지 못한 채 그대로 짙은 피로 속에서 눈을 감게 되었다.

경비를 서고 있던 내내 그가 줄곧 바랐던 대로…

*

“기습이다!”

“적이다! 적들이 쳐들어 왔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

이에 한참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멤논은 갑옷조차 챙겨 입지 못한 채 그대로 검 하나만을 들고 막사 밖으로 나왔다.

“뭐… 뭐냐? 뭐가 어떻게 된 것이냐?”

“자… 장군! 크… 큰일 났습니다! 마족들이.. 마족들이 기습을 해왔습니다!”

“기습이라니! 이 시간에 말인가? 저.. 적의 규모는 얼마나 되지? 적장은 누구인가!”

“그.. 그것이… 적의 규모는 현재로서 파악이 불가능 합니다. 어둠과 안개가 워낙 짙은 데다가 적들이 저희 연합군의 갑주로 위장을 하고 있는 지라.."

"큭...!"

"다… 다만 병사들의 보고에 따르면 적들 중에 마왕의 모습이 보인다 했습니다! 검은 대검을 들고 있는 검은 갑옷의 마왕이!”

“뭐라고? 마… 마왕?”

생각지도 못한 적들의 기습.

거기다 그 이름 만으로도 공포라는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존재인 마왕의 등장.

이에 멤논의 얼굴에는 한 순간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 졌으나, 이내 그는 정신을 차린 뒤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다.. 당장 아군 병사들을 집결 시켜라! 진영을 갖추고 적을 맞서 싸울 준비를 하라!”

“알겠습니다 장군!”

“제길… 설마 저 녀석들이 이런 식으로 허를 찌를 줄이야…”

적들의 피로도가 자신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다는 사실은 멤논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들은 이 시각 단호하게 기습을 감행했으며,

이는 멤논을 비롯한 장수들에게 마치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감각을 안겨주고 있었다.

“오냐… 이런 식으로 우리를 물 먹였겠다? 마왕, 내 직접 이 자리에서 네놈의 목을 쳐주마!”

그렇게 분노에 찬 표정을 지은 채 안개 속으로 향하는 멤논과 그의 부하들.

비록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 숫자는 고작 100여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나, 적들의 공세가 이어지고 있는 지금은 이 이상의 병력을 모을 시간은 없었다.

“가자! 가서 마왕 녀석의 목을 치는 것이다!”

혼란 속에서도 억지로 사기를 끌어 올리기 위해 목청을 높이는 맴논

그때…

“어?”

짧은 순간 안개 속에서 반짝이는 검은 섬광.

동시에 느껴지는 무언가 섬뜩한 감각에 멤논의 얼굴에는 반사적으로 의문과 공포라는 감정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이에 대해서 미처 어떤 대처를 하기도 전…

­콰과과광!!!

그대로 안개를 꿰뚫고 이쪽으로 날아오는 어마어마한 충격파.

그것을 본 순간 멤논의 얼굴에는 경악의 감정이 깃들기 시작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 버리고 말았다.

한 순간 온 세상을 뒤덮는 검은 빛.

그 끔직하기 그지 없는 힘의 파동에 휘말린 채 멤논과 그의 부하들의 몸은 그대로 산산이 부숴져 버리고 말았다.

자신들이 무엇에, 어떻게 당했는지 조차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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