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저놈들이 내 말을 따라줄 리가 없잖아
* * *
파리섹트의 머리를 쪼개버린 직후, 난 한쪽 손에 몰려오는 저릿한 감각으로 인해 살짝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역시, 이 공격은 제법 몸에 부담을 주는구나…’
한 순간 사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마력을 끌어 모아 날리는 일격.
일전에 시험 삼아 딱 한 번 써봤던 대로,
그 위력은 단 일격에 200명의 병사들을 몰살시킬 수 있는 수준이었으며, 덤으로 전방에 위치해 있던 내성의 일부까지 날아가 버리는 어미 무시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무리 용사의 몸을 지니고 있으며 단단한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는 지금의 나라 해도 이 정도 일격을 날리는 것은 역시 어느 정도의 체력 소모와 약간의 통증을 각오해야만 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헬스장에서 한계치 무계를 지니고 있는 바벨을 들었다 내린 듯한 감각.
조금 쉬면 회복이 되는 수준이었지만, 연속해서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는 기술이었다.
‘뭐, 솔직히 굳이 그렇게 까지 할 일이 있나 싶긴 하지만… 아무튼, 이걸로 이곳 안티옥 점령 완료.’
적들을 끌어들일 미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준 안티옥.
그것이 끝난 지금, 이곳이 계속 버티고 있는 것은 오히려 우리측에 최악의 결과를 불러 올 수 있었으며, 이에 난 지평선 너머에서 적들이 몰려오는 것을 봄과 동시에, 곧바로 마지막까지 성을 지키고 있던 파리섹트의 병력들을 싸그리 몰살시켜 버렸다.
그리고 그 직후.
“…..꿀꺽.”
난, 그런 나를 보면서 진한 충격에 빠진 얼굴을 하고 있는 레베카에게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이봐 멍하게 있지 말고 빨리 가서 깃발이나 걸라고.”
“ㄴ…네? 아…. 네! 아.. 알겠습니다!”
나의 말에 순간적으로 화들짝 몰라면서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레베카.
그렇게 부하들을 시켜 실질적으로 우리가 이곳을 점령했다는 사실을 적들에게 알리도록 한 직후, 난 그대로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다가오고 잇는 적들을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부디 저곳에 정신 나간 미친놈의 새끼가 없길 간절히 빌면서.
*
“이…이럴 수가…”
“우리가 한 발 늦은 건가…”
눈 앞에서 보이고 있는 장면.
안티옥의 내성에 마왕국의 깃발이 걸쳐 있는 장면을 보면서, 먼길을 쉬지 않고 달려온 종족 연합 군의 얼굴에는 자동적으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제길! 파리섹트 장군이 이렇게 아깝게 실패를 해버리다니…”
“최선을 다해서 달려 왔건만, 설마 그 사이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줄이야...”
내성의 가장 중심에 위치한 첨탑에서 휘날리고 있는 깃발.
이는 성 안에서 마지막까지 항전을 하고 있던 파리섹트가 결국 패배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가장 결정적인 표식이라 할 수 있었다.
비록 마왕에게 부상을 입히는 등 나름대로 결사적인 항전을 벌이긴 했지만 끝내 패배하고 만 파리섹트와 안티옥의 수비병들.
그 사실에 대해 이곳까지 먼 길을 달려온 장수들은 일단 겉으로는 애도를 표하기 시작했으나,
실제로 그들의 머릿속에는 동료의 죽음에 대한 슬픔 같은 것이 아닌,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냉정한 계산만이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파리섹트가 전사했다 라… 전략적으로는 좋지 않지만, 다른 면에서 봤을 때는 오히려 잘 된 일이야, 이렇게 되면 마왕의 목을 노리던 유력한 경쟁자가 한 명 줄어들었다 봐도 되겠지.’
‘안티옥이 넘어가 버린 건 아쉬운 일이지만, 그래도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건 아니다. 어차피 우리들의 숫자는 거의 저들의 두 배. 전열을 가다듬고 공성전을 시작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
‘본래는 안티옥의 병사들과 협곡을 해서 마족들을 단숨에 쓸어버릴 계획이었는데... 계획이 조금 틀어지긴 했지만 할 수 없지. 피해가 조금 발생하더라도 우선은 마왕을 처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그렇게, 안티옥의 함락과 별개로 결국 자신들을 이곳까지 오게 만든 ‘마왕의 목’에 초점을 맞추기로 결정하는 종족 연합군의 장수들.
이를 위해서 그들은 재빠르게 군영을 설치하고 전열을 가다듬으며 본격적으로 공성전을 실시할 준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성을 점령하고 지쳐있을 적들을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그들 역시 먼 길을 쉬지 않고 달려온 상황에서 회전도 아닌 공성전을 실시하는 것은 무리.
거기다 말을 타고 급하게 달려온 터라 기병이 대부분인 지금,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보병대를 기다리기 위해선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종족 연합 군은 어차피 안티옥이 함락되어 서두를 것도 없어진 마당에 잠시 숨을 고르며 본격적인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복합적인 이유에서 보다 유리한 전투를 치르기 위해서
그리고 이를 통해 보다 확실하게 마왕의 목을 따기 위해서 말이다.
*
‘후… 조금 아슬아슬했다.’
안티옥에 마왕국의 깃발이 걸린 모습을 보면서 곧바로 진격하는 것을 멈추고 진지를 구축하기 시작하는 종족 연합군
그들을 보면서, 난 살짝 위험했던 순간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야, 혹시나 저 것들이 미친 척 하고 이대로 밀고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역시 안티옥이 점령 당한 시점에서 무모하게 들이대지는 않는 것 같네.’
적들의 눈에 들어오기 전에 서둘러 깃발을 달아 놓은 것과 별개로, 이제 막 안티옥을 점령하는데 성공하면서 지칠 대로 지쳐 있는 마족들.
공선전이 막 끝난 터라 진형도 엉망이었으며, 장비들도 급하게 점검을 필요로 하는 이 상황에서,
만약 적들이 곧바로 전투를 개시해 난전을 유도했다면 전황이 정말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일이었다.
최악의 경우, 모처럼 되찾은 안티옥을 버리고 비참하게 패퇴해야 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 난 설마 적들이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으며, 실제로도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 주었다.
상식적인 지휘관이라면 먼 거리를 달려온 직후 공성전을 벌이기에 앞서 일단 병력을 추스르는 것이 정답.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워낙 정신 나간 놈들이 많은 만큼, 난 이와 관련해서 불안감을 안 느낄 수가 없었으며, 때문에 저들이 숨 고르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나 역시 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자 그럼, 위험한 고비도 지나갔고, 이제 남은 건 저 녀석들을 어떤 식으로 청소할지 결정하는 것 뿐인데 말이지…’
현재 우리측이나 적들이나 모두 지칠 대로 지쳐 전투를 벌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당장 나의 직속 부하들 조차도 죽지는 않았을 지언정,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자들까지 발생한 상황.
그러나, 이런 때에도 나에게는 나름대로 방법이 있었으며, 이를 실행할 준비 또한 얼추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용사님.”
“응?”
다음 순간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레베카의 목소리.
이에 난 그대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려 보았고 그곳에는 일전에 한 번 본적이 있었던 부관이 서 있었다.
당시 그 부관이 들고 왔던 전령.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것은 분명…
“회의를 진행한다고?”
“네, 그렇습니다 용사님.”
“그래 알았다 곧바로 가도록 하지.”
이전에 봤던 상황의 데자뷰…
그러나,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설마 그때와 같이 또 지랄 맞은 선봉대 같은 것을 시키려 드는 개 아닐 가 하는 불안간 기분을 느끼면서,
난 정말로 내키지 않는 기분과 함께 그대로 성 한쪽에 잡아둔 회의장으로 향하였다.
‘뭐, 혹 녀 저 석들이 내 말을 잘 따라주기로 한다면 일이 아주 쉽게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그럴 일은 없겠지.’
무식하면서도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녀석들이며, 동시에 나를 화살받이로 선봉에 내세울 정도로 나를 싫어하고 있는 놈들이었다.
그런 녀석들이 내 말을 들을 리가 없는 만큼, 난 공연한 기대는 하지도 않은 채 그대로 회의실로 향하였다.
*
마족 군단장 삼손.
이 순간 그를 비롯한 장수들은 상당히 난감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적들의 규모가 그렇게나 많단 말이냐?”
“네, 얼추 확인해 본 바로는 못해도 2만 이상 이며, 추가적으로 오고 있는 적들까지 합하면 거의 4만에 달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큭…”
“제길, 어째서 이런…”
아슬아슬하게 점령을 하는데 성공한 안티옥 성.
그러나,
이에 대해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그들의 눈 앞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규모의 적들이 몰려와 있었다.
안티옥을 구원하기 위해 지원군이 올 것이라는 사실은 아무리 무식한 그들이라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의 이 상황은 그들의 예측을 아득히 뛰어 넘는 수준.
이대로 있다간 기껏 얻은 안티옥을 다시 빼앗긴 채 패퇴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들 한탄만 하고 있지 말고 무언가 좋은 의견을 내놓아 보게!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뭘 어떻게 하였으면 좋겠는가?”
“으음…”
“…”
다급함이 담겨 있는 삼손의 말
당연한 말이지만, 그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 무식한 정면 돌격은 그냥 무덤을 향해 돌진하자는 것 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적들의 수는 많고 아군은 지쳐 있는 상황
그렇다 해서 공성전을 펼치려 해도 이곳 안티옥 성의 방어력은 그리 도움이 안되었다.
공격도 수비도 모두 그리 좋은 느낌을 주지 않고 있는 상황.
그러나, 이에 대해서 마족들은 서로 눈치만 살필 뿐. 딱히 좋은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자리에 있는 장수들은 삼손을 포함해서 하나같이 소위 돌대가리로 정평이 나있는 자들 뿐이었다.
셋 이 모이면 무언가가 나온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머리가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
그때,
문득 삼손의 시선에는 회의장에 들어온 이래 줄곧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그 자의 모습이,
용사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유일하게 머리가 잘 돌아갈 것으로 여겨지는 인물이자, 이번 전투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운 용사의 모습이 말이다.
‘…으음… 그래 어쩌면 차라리 그게 나을 지도 모르겠어… 무식한 우리들 10명 보다는 무언가 기만한 모습을 용사 한 명이 더 나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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