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이 세상을 다 준다는 매혹적인 얘기
* * *
“마… 마왕이다!”
“마왕이 여기 나타났다!”
혼란을 틈타 성벽 위로 뛰어오른 나를 보면서 격한 반응을 보이는 병사들.
그러나,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마왕’ 이라는 이름에 난 묘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마왕이라니… 이건 조금 예상치 못한 반응인데.’
확실히 엄청난 전투력을 보여주고는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전직 용사의 몸으로 마왕 소리를 듣고 있다는 사실에 난 약간의 어색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사실과 별개로 굳이 여기서 내가 마왕이 아니니 뭐니 떠들 필요는 없는 상황.
그리고 동시에…
나의 머릿속에는 저들이 나를 마왕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해서 한가지 좋은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예정에는 없었지만, 기왕 마왕 어쩌고 하는 소리를 듣고 있는 만큼 좀 더 기름칠을 해주도록 할까?’
*
눈앞에 보이는 검은 갑주를 입은 마왕의 모습.
보는 것 만으로도 심장이 오그라들게 만드는 괴물의 등장에, 병사들은 짙은 패닉에 휩싸였다.
절망과 좌절,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 채 허우적거리는 병사들.
그때,
그런 그들의 귓가에
이런 상황에서도 아직 꺾이지 않은 유일한 인물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들 정신 차려라! 제 아무리 놈이 강력하다 해도 고작 한 명이다! 저 놈의 목을 취하기만 하면 대륙의 영웅이 될 수 있으며, 그자와 가족들에게 대대손손 먹고 살 수 있는 재물과 높은 벼슬이 주어질 것이다! 이 세상에서 너희가 원하는 전부를 손에 넣을 수 있단 말이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욕망
부, 명성, 권력.
그 모든 것을 한 손에 쥘 수 있다는 파리섹트의 충동질.
이에 공포와 혼란에 빠져 있던 병사들의 마음 속에는 순간적으로 이러한 감정들을 덮어버릴 정도의 거대한 욕망이 피어 오르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그래… 제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어차피 놈은 혼자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기왕 죽는 거 마왕 놈의 목이라도 딸 수 있다면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겠지.’
‘어떻게 보면 이건 기회다.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최고의 기회야!’
실제로 공성전을 진행할 때 성벽에 가장 먼저 도착한 병사에게는 후한 상금과 포상을 주도록 되어 있었다.
날아오는 화살과 불덩이 속에서도 병사들이 성벽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갈 수 있는 데엔 그런 물욕적인 배경이 있었기 때문.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파리섹트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던 병사들의 심리를 비슷한 방식을 유도해 욕망이라는 이름의 불을 지르는데 성공한 상황이었다.
“이 사악한 마왕! 네놈을 죽이고 상금을… 아니, 대륙의 평화를 쟁취하겠다!”
“각오해라! 우리 종족 연합군의 힘을 보여주겠다!”
물욕으로 통해 두려움을 이겨내고마왕을 향해 창칼을 겨누며 당당하게 소리치는 병사들.
그 기세를 몰아, 파리섹트는 그대로 창을 뽑아 든 채 눈 앞에 있는 마왕을 보며 말했다.
“네놈에게는 명예로운 대결조차 필요 없다! 신의 뜻에 따라 이 자리에서 끝장내주마 마왕!”
전사들간의 정정당당한 1:1 승부 같은 것은 고려할 여지조차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 자리에서 무슨 수를 써서든 마왕의 목을 따버리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
그렇게만 된다면 제국의 3기사 정도가 아닌 대륙을 구원한 최고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파리섹트는 잘 알고 있었다.
‘1:1 이라면 당연히 승산이 없겠지. 하지만 3기사보다 아주 약간 모자란 나와 다른 병사들이 힘을 합친다면 어쩌면…’
실제로 그것이 가능할지 어떨지는 몰랐다.
그러나, 이 순간 파리섹트는 자신 병사들에게 이야기했던 그 말에 자신조차도 반쯤 현혹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부, 명성, 권력.
그가 원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일생 일대의 도박판에서 그는 주사위를 굴리기로 결정하였다.
“놈을 죽여라!”
“우아아아아!!!”
파리섹트의 명령과 동시에 그대로 무기를 들고 덤벼드는 병사들.
이곳의 수장인 파리섹트의 주변에는 안 그래도 호위를 겸한 정예병력들만이 밀집되어 있었다.
마력을 사용해 무기를 강화하고 신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전사들이 이 자리에 못해도 수 십 명은 있었으며, 이들은 그대로 자신의 전력을 다한 공격을, 바위를 쪼개고 강철을 우그러뜨릴 수 있는 검격을 마왕을 향해 휘두르려 하였다.
그때.
“하아아…”
다음 순간, 그대로 들고 있던 칠흑 빛 대검에 어마어마한 마력을 응축시키기 시작하는 마왕.
일 순간 그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기척에 병사들은 본능적으로 무언가 섬뜩한 감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사들과 파리섹트는 애써 그런 감정을 무시한 채 마왕을 향해 덤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흐아아앗!!!”
그대로 마력이 응축된 검은 빛 기둥과 같은 검을 지면에 내리꽂는 마왕.
그와 동시에,
마왕이 서있던 곳을 중심으로 하여 그 일대에서는 거대한 소용돌이와 함께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마력의 파동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이건!”
“이런 씹…!”
밀려드는 해일과 같이 저항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힘이 담겨 있는 마왕의 일격.
그 엄청난 에너지의 폭풍우는 그대로 파리섹트와 그의 병사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악!!!”
“꾸애애애애액!!!”
다음 순간 그들의 온 몸을 휘감기 시작하는 끔찍하기 그지 없는 고통의 파동.
전신을 칼날로 난도질 하는 것 같은 감각이 그들을 쓸고 지나가는 것을 감각 속에서, 파리섹트는 간신히 마력을 발산해 스스로의 몸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제길! 이 더러운 마왕 녀서어어억!!”
밀려드는 고통의 파도 속에서 이를 악 문 채 앞으로 나아가는 파리섹트.
지금껏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최악의 고통보다 4배는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은 바람의 폭풍우 속에서도 그는 간신히 들고 있던 창을 바로 잡은 채 자세를 잡았다.
“이 정도로… 이 정도로 나를!!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라 여기지 마라!!!”
그 말과 함께 온 힘을 다해 땅을 박차고 전진해 나가는 파리섹트
한 걸음 한 걸음을 내 디딜 때마다 더욱 강해지는 고통
그 속에서도 그는 눈 앞에 있는 마왕을 똑바로 응시한 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절대로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다! 절대로! 네놈을 여기서 쓰러뜨리고 말겠다!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위해서!!’
지극히 순수하게 속물적인 욕망을 불태우면서 초월적인 의지를 발하는 파리섹트 장군의 모습.
이를 보면서, 극심한 고통 속에서 전진을 하기는커녕 자리에 일어서지도 못하고 있던 병사들의 얼굴에는 자동적으로 짙은 존경의 감정이 깃들기 시작했다.
‘과연 파리섹트 장군님! 대륙의 평화를 위해 저렇게 까지…’
‘역시 우리 같은 놈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분이시다! 저 강철과 같은 의지는… 분명 세속적인 욕망 따위를 능가하는 사명감에서 나오는 것일 게 분명해!’
그렇게,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나아가는 파리섹트의 모습에서 병사들이 전사의 고결함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던 그때…
“하아아아앗!!!!”
“….”
드디어 폭풍우를 뚫고 마왕이 있는 곳에 도착한 파리섹트.
이어서 그는 온 힘을 다해 마왕이 있는 곳으로 창을 휘둘렀으며, 이에 마왕은 재빠르게 지면에 박혀있던 검을 뽑아 들어다.
그리고.
파캉!!!!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파리섹트의 창을 막아내는 마왕의 검.
그와 동시에 마왕이 내뿜고 있던 폭풍우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으며,
이에 파리섹트는 가시지 않는 고통 속에서도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금이다! 해치워라!”
“아… 네! 장군님!”
파리섹트의 명령에 그대로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을 차리고 마왕에게 덤벼드는 병사들.
그들의 대장이 마왕을 붙잡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은 병사들에게 있어서도 절호의 기회로 보여지고 있었다.
“이 더러운 마왕! 이곳에 너의 무덤이 될 것이다!”
“연합을 위하여!!!”
사방에서 마왕을 향해 쏟아지는 검과 창.
마력이 담겨 있는 그 일격은 비록 하나하나는 그리 강하지 않으나, 수 많은 이들이 힘을 모아 공격을 날리고 있는 만큼 그 파괴력은 절대로 얕볼 수 없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
‘좋았어! 잡았다!’
‘이것으로 마왕은 끝이다!’
그렇게 무방비 상태의 마왕을 확실하게 처치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기며 승리를 확신하는 병사들.
그런데…
끼기기기기!
“!? 어?”
다음 순간, 갑작스럽게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하는 마왕의 힘에 전력을 다해 그의 검을 붙잡아두고 있던 파리섹트의 얼굴은 그대로 사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콰과과광!!!
그대로 파리섹트의 창을 밀쳐냄과 동시에, 무시무시한 기세로 거대하게 휘둘려지는 대검.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힘의 파동에 간신히 마왕을 붙잡아 두고 있던 파리섹트의 몸을 그대로 허망하게 튕겨져 나가 바닥에 처박혔으며,
동시에 마왕을 향해 덤벼들던 병사들 또한 그대로 충격파에 휩쓸려 집단마냥 우수수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커허헉!”
“크으윽…”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된 채 바닥을 나뒹구는 병사들.
그런 그들에 대해선 일절 신경 쓰지 않은 채,
마왕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파리섹트가 있는 곳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큭… 이대로.. 이대로 주저 앉은 성 싶으냐!”
그런 마왕의 모습을 보면서 고통 속에서도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파리섹트.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그였지만, 이런 상황에서 조차도 파리섹트는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눈빛을 내보이며 앞에 서있는 마왕을 응시하였다.
이미 자신의 승산이 절망적으로 적다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도박을 결행하기로 결심한 몸으로서 파리섹트는 마지막 남은 동화 한 닢까지도 모두 털어놓을 각오를 한 상황이었다.
‘남은 힘을 모두 모아 일격을 날리는 수밖에. 그래 봤자 소용은 없겠지만… 그렇다 해도 최후까지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그렇게 각오를 다진 채 온 몸에 남아있는 마력을 모조리 창끝에 끌어 모으는 파리섹트.
이미 정상이 아닌 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힘을 끌어다 쓰면서 그는 순간적으로 정신이 혼미해 지는 것 같은 감각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파리섹트는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한 채 눈 앞에 있는 마왕을 향해 창을 겨누었다.
권력과 명성, 그리고 재물을 향한 굳건한 욕망을 통해 이루어진 그 강철과 같은 최후의 의지를 담아서.
“죽어라 마왕!!”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그대로 파리섹트의 손을 떠나 마왕에게 날아가는 창.
그러나,
비록 상당한 힘이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강한 의지를 담았음에도,
파리섹트의 본능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날린 일격은 마왕에게 허망하게 튕겨져 나갈 뿐이라는 것을.
자신의 힘으로는 무슨 짓을 해도 저자를 쓰러뜨릴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분명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크윽!”
“….?! 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