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요즘들어 재수가 더럽게 없다
* * *
마족 여전사 레베카.
보라 빛 머리칼에 얼굴에는 작게 주근깨가 나 있으며,
추녀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 해서 미녀라고도 할 수 없는 수수한 외모를 지니고 있는 인물.
그러나..
이런 평범한 외모와 별개로,
레베카는 근래 들어서 자신이라는 존재가 정말로 재수없는 운명을 타고났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전사로서 나름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마족들의 정규군에 배치된 레베카.
그러나,
부푼 기대를 안고 자신이 소속된 부대를 확인한 레베카는
자동적으로 머릿속에 한 문장을 떠올리게 되었다.
‘좆됐네요..’
그녀가 소속된 부대의 지휘관.
그자는 그녀가 기대했던 삼손이나 사울 같은 유명한 마족 장수가 아니었다.
인간 용사
엘런 세이비어.
본래 마왕 폐하를 암살하려는 용사파티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마왕폐하의 압도적인 무력에 굴복해 그분의 부하가 되었다는 인물.
레베카는 이번 전쟁에서 그런 용사의 부하로 차출된 병사들 중 한 명이었으며,
거기다 덤으로 100명의 동료들 중에서 유일하게 용사의 부관으로 일하라는 지시까지 받은 상황이었다.
믿을 수 있는 사령관이 아닌 말 그대로 속에 드래곤 한 마리가 똬리는 틀고 있을지 모르는 인물인 용사.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상당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지만 전공에 상당히 욕심을 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며, 상황에 따라선 이를 위해 휘하 병사들을 모조리 몰살 시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는 존재.
그렇게 신뢰 따위는 1도 가질 수 없는 인물이 자신의 상관이 되었다는 사실은…
심지어 자신이 그런 인물을 바로 옆에서 보좌해야만 하는 부관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은,
레베카로 하여금 자동적으로 머릿속에 한탄의 말이 출력 되도록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제 인생은 어쩌다 이리 기구하게 흘러간 걸까요…’
종족부터가 다르며 따라오는 소문조차 썩 좋지 않은 상관.
거기다 심지어 그는 어제 회의를 통해 선봉장 이라는 가장 명예로우면서도 가장 위험하기 그지 없는 선봉장의 자리까지 맡게 되었다.
그 결과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관을 눈 앞에 둔 채 전선의 최전방에 서게 된 레베카.
이러한 엿 같은 상황 속에서,
레베카는 진군을 시작할 때부터 사실상 반쯤 체념을 한 채 그대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굳히고 있는 중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자신이 100% 확률로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눈 앞에 보이는 무수한 화살의 비.
하늘을 가로지르며 이쪽으로 떨어지고 있는 죽음의 폭우를 보면서, 레베카는 이곳이 바로 그녀의 무덤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씨발. 이라는 말을 해도 되는 상황이겠지요.’
그렇게 검 한 번 휘두르지 못하고 쓰러지게 되었다는 사실에 진한 아쉬움을 느끼며, 레베카는 이럴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죽음을 받아들이려 하였다.
그런데…
“전원 고개를 숙여라.”
“?”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용사의 차분한 목소리.
이에 레베카와 동료들은 그런다 해서 뭐가 달라질까 하는 의문을 느끼면서도 일단은 명령에 따라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그 직후…
팟!
“!”
갑작스럽게 번쩍이는 검은 섬광.
고개를 숙여 시선을 돌리고 있음에도 인식할 수 있는 강렬하기 그지 없는 검은 빛은 레베카를 비롯한 동료들도 하여금 갑작스러우면서도 충격적인 느낌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 직후..
검은 섬광이 사라짐과 동시에 고개를 든 그들의 눈에는, 방금 전까지 날아오던 무수한 화살들을 한 순간에 지워버린 용사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상상했던 것 이상의 전투력을 과시하며,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용사의 모습.
그 사실에 레베카를 비롯한 이들이 당혹감과 놀라움을 느끼고 있던 그때였다.
“!”
“제길 이번에는 마법인가!”
다시금 이쪽을 향해 달아오는 적들의 공격.
방금 전 화살비 이상의 위력을 지니고 있는 마법 공격이 날아오는 모습을 보면서,
레베케를 비롯한 이들은 이번에야 말로 이어지게 될 명확한 죽음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
“요.. 용사님!?”
다음 순간, 그대로 이쪽으로 날아오는 마법을 향해 가볍게 뛰어 오르는 용사의 모습.
이에 레베카의 얼굴에는 그대로 짙은 경악의 감정이 깃들었다.
한 순간 저 용사가 자살이라도 하려는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한 레베케
그러나 이어진 상황에서.
용사는 마치 그런 그녀의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대로 쏟아지는 마법의 폭풍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콰과과광!!!
그대로 들려오는 요란한 폭발음.
용사의 검에서 쏟아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마력의 파동은 그대로 이쪽으로 떨어지던 마법 공격을 말 그대로 깔끔하게 지워버렸다.
“이… 이 무슨…”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용사의 충격적이기 그지 없는 일격에 멍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레베카와 병사들.
그때,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용사는 마치 아무일 없었다는 듯 차분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뭘 멍하니 서 있는 것이지? 어서 진군 해 나가도록. 뒤쪽 부대가 기다리게 할 수는 없다.”
“ㄴ…네? 아…ㄴ… 네!”
용사의 단호한 지시에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병사들은 다시금 진군해 나가기 시작했다
용사의 활약 덕분에 적들의 공격이 뜸해진 지금이 바로 기회라는 것을 그들도 인지할 수 있는 사실.
그렇게 마족들은 어째서인지 평소 이상으로 가볍게 느껴지는 몸을 이끌고 용사와 함께 전력을 다해 안티옥으로 진격해 나갔다.
한편, 그렇게 동료들과 함께 이동을 하면서.
레베카는 문득 한가지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설마… 방금 전 그건, 용사가 우리들을 보호해 준 것인가?’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어마어마한 공세를 단순히 검을 휘두르는 것 만으로 순식간에 날려버린 용사.
저만한 힘을 지닌 자가 그까짓 화살이나 마법 따위에 목숨이 위험할 것 같지는 않았다.
방어 마법을 사용하거나 회피기술을 사용한다면 분명 그만한 공격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을 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굳이 검을 휘둘러 공격을.
레베카와 병사들이 있는 곳을 향해 날아오던 그 무수한 공격을 굳이 어마어마한 힘을 사용하면서 까지 지워버렸다.
용사가 지니고 있는 힘의 총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방금 전 일격에 담겨 있는 힘은 한눈에 보기에도 보통이 아니었다.
잘만 조준한다면 어쩌면 성문조차 날려버릴 수 있을지 모르는 힘.
하지만 그는…
인간 출신인 용사는,
이러한 힘을 그런 화려한 공적을 세우는 것이 아닌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그의 부하가 된 마족 병사들을 위해 사용했다.
그 사실을 인지하면서.
레베카는 지금까지 그녀가 지니고 있던 용사에 대한 평가가 틀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제가 생각한 것 보다는 괜찮은 사람일 지도 모르겠군요…’
*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존재.
검은 갑주를 착용한 채 대검을 들고 있는 그 ‘마왕’의 모습은 안티옥 병사들의 사기를 바닥까지 추락시키기 시작했다.
“마… 마왕… 이라니..”
“그 괴물이 이곳에…”
“우… 우린 끝이야. 용사조차 가볍게 쓰러뜨린 마왕을 우리가 이길 수 있을 리 없다고!”
절망에 빠진 한탄을 여과 없이 토해내는 병사들
그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파리섹트 장군 본인 또한 묵직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마왕 이라니… 하필이면 종족연합 최강의 적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이건가? 젠장… 어째서 나에게 이런 재수 없는 일이…’
다른 적이라면 모를까. 마왕의 출현에 대해선 파리섹트 조차도 절망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단신으로 군단급의 전력을 낼 수 있다는 제국의 3장군 조차도 1:1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 다는 최강의 괴물.
그런 마왕과 1:1로 대적할 수 있는 자는 용사 밖에 없다 들었으나 그런 용사 조차도 이미 마왕의 손에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지 오래였다.
그런 존재가 지금 자신을 향해 무기를 들고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공포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섹트는 어떻게 해서든 정신을 수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뒤,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뭐.. 뭣을 하고 있는가! 어서 쏴라! 놈이 쓰러질 때까지 계속 공격을 퍼부어라!”
가까스로 두려움을 삼킨 채, 목청이 찢어져라 울려 퍼지는 그의 목소리,
이에 병사들은 어떻게 해서든 다시금 활시위와 마법 지팡이를 부여 잡으려 하였다.
그러나…
“으… 으으…”
이 순간, 그들은 자신의 손에 든 무기를 도저히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압도적인 공포.
자신들이 전력을 다해 공격을 날려봤자 어차피 저 마왕 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은,
그리고 동시에, 그런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는.
병사들로 하여금 당장이라도 뒤를 돌아 도망치고 싶다는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극심한 절망으로 인해 몸이 굳어 있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파리섹트 장군은 극단적인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것은…
“커허어헉!!!!
“히이익!”
“헉!”
다음 순간, 파리섹트 장군이 휘두른 검에 그대로 목이 달아나 버린 한 명의 병사.
옆에서 피를 쏟으며 죽어버린 동료의 모습에 병사들은 찬물을 끼얹는 듯한 충격에 휩싸이기 시작했고,
그런 그들을 향해서 파리섹트 장군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여기서 물러나면 우리는 모두 이 것보다 더욱 끔찍한 방법으로 죽을 것이다. 자, 선택해라. 여기서 내 손에 죽을 것이냐. 아니면 마지막까지 종족연합의 이름으로 정의를 위해 싸울 것이냐!”
피갑칠을 한 모습으로 단호하게 소리치는 파리섹트.
그의 이러한 행동에, 혼란에 빠져있던 병사들은 강제적으로 정신을 수습할 수밖에 없었다.
“저.. 적들을 막아야 한다!”
“어차피 우리에게 물러설 곳은 없다!”
“유감이지만 늦었어.”
“!?”
“헉!”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누군가의 차가운 목소리.
이에… 그곳에 있던 파리섹트와 병사들의 얼굴은 그대로 사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어느 틈에 그들 사이에 서 있는 한 존재.
검은 갑주를 입고 있으며 검은 대검을 들고 있는 공포의 상징…
마왕이그 자리에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