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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R용사는 마왕에게 무릎을 꿇었다-38화 (38/150)

〈 38화 〉 포기하면 편해

* * *

어떠한 일은 진행하는데 있어서,

특히 그것이 혼자의 힘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닌, 여러 사람들이 함께 협력해서 일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난 한가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매우 중요한 원칙을 알고 있었다.

­빠른 포기­

안 되는 일에 대해선 미련을 갖지 않으며. 이를 억지로 돌리려 애쓰는 것 보다는 차라리 이를 활용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궁리하는 쪽이 훨씬 현실적이면서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삼손을 비롯한 강경론을 펴는 마족들을 딱 그런 종류의 녀석들이라 할 수 있었다.

단단한 근육뇌에 타협이라는 것을 잘 모르는 고집 쌘 녀석들.

이런 놈들을 이성적인 말로서 설득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라는 것을 난 지금까지 현실에서 혹은 게임 상에서 보아왔던 인간 군상들을 통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설령 거기서 내가 일라이어스 편을 들어 줬어도 어차피 놈들은 의견을 돌리긴커녕 더 발작을 했을 거야. 더 나아가서 내가 인간출신이라는 점을 물고 늘어질 수도 있을 테고..’

물론, 억지로 이들의 의견을 꺾는 것이라면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럴 바엔 차라리 포기할건 미리미리 포기하고 이를 통해서 무엇을 가져올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이용할지를 고민 하는 편이 여러모로 현명한 길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난 회의가 끝난 직후 곧바로 일라이어스와 접촉을 시도했다.

그 결과..

*

“그럼, 다들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전쟁을 개시하기로 동의한 만큼 앞으로의 구체적인 계획을 논의해 보도록 하라.”

“예 폐하.”

생각보다 빠른 의견 일치에 의외라는 감정을 느끼면서 마왕은 보다 상세한 사안에 대한 논의를 지시하였다.

그리고 그 직후…

“그와 관련해서 소장이 한 말씀 올리고 싶습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마왕의 말이 떨어지지가 무섭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발언권을 요청하는 일라이어스.

이에 대해서 마왕은 역시 무언가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대로 일라이어스를 보며 말했다.

“좋은 의견이 있다면 어디 말해 보게.”

“감사합니다 폐하. 그럼 지금부터 소장이 생각해온 이번 전쟁의 진격로에 대해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엘리사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일라이어스.

이에 엘리사는 기다렸다는 듯 미리 준비해 둔 지도를 펼쳐 원탁의 중앙에 펼쳐 놓았다.

이런 저런 표시들이 되어 있는 작전 지도.

이를 눈 앞에 펼쳐둔 채, 일라이어스는 곧바로 그녀가 준비해 두었던 ‘브리핑’을 시작해 나갔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번 전투에서 저희들의 최종 목표는 마왕국 곳곳을 점령하고 있는 종족 연합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첫 번째 발판으로 소장은 여기 이곳, 안티옥에 대한 공격을 건의하는 바 입니다.”

지도까지 가지고 오면서 철저하게 준비를 한 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일라이어스.

이에 대해서, 삼손을 비롯한 군단장들은 반사적으로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일단 일라이어스가 작전 회의를 이끌어 가는 것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지도까지 가져오면서 철저하게 준비를 해온 일라이어스와 달리, 그들은 당장 전투를 개시하자는 의견을 피력하는 데만 집중했던 만큼 그들이 특별히 좋은 생각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무엇보다 일단 자신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진 만큼 그들은 그 뒤의 일에 대해선 한결 누그러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안티옥이라… 거기까지 가려면 거리가 제법 있긴 하지만. 뭐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어차피 우리들이야 원 없이 싸우기만 하면 그만이고...’

‘전쟁이다! 안티옥이건 어디든 상관 없다! 더러운 연합 녀석들을 쓸어버릴 수 있는 곳이라면!'

그렇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단 일라이어스가 주장한 곳에서부터 공격을 시작하기로 결정한 마족 군단장들.

한편…

이처럼 자신의 의견에 대해서 별다른 반발 없이 순응하는 그들을 보면서, 일라이어스는 내심 안도감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과연, 용사가 말한 대로 이쪽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준 효과가 확실하게 보이고 있어..’

평소라면 이 정도까지 준해왔더라도 이런 저런 군소리가 나왔을 것이 분명한 군단장들.

그러나, 현재 삼손을 비롯한 강경파의 입장에선 사실상 자신들의 뜻대로 ‘양보’를 해준 일라이어스에게 일단은 한 발 물러서 줄 수밖에 없었다.

정치적인 부분에서도, 그리고 심리적인 부분에서도 말이다.

그렇게, 결과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정확히 말하면 어제 용사가 그녀에게 이야기를 해준 대로 삼손을 비롯한 강경파들의 공격 지점과 이동 경로 들을 경정해 내는 데 성공한 일라이어스.

그것이 별다른 잡음 없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내심 안도하면서, 일라이어스는 이 다음에 이어질 일을 생각하며 자신의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용사를 바라보았다.

1차 목표를 성공적으로 그녀를 보면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이는 용사.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일라이어스는 계획의 성공과 별개로 역시 저 남자는 여러모로 재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그대로 시선을 돌렸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역시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야…’

*

안티옥

마왕국의 남쪽에 위치한 도시로 드넓은 평야지대의 중심부에 세워진 성체 도시.

종족연합이 점령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마왕국의 곡창지대 역할을 했던 지역이자 마왕국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검은 산맥을 넘어갈 수 있는 관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그 중요성은 연합이 점령한 이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들로 인해 항상 소란스러움과 진한 활기를 지니고 있던 이곳은. 현재 짙은 어둠이 깔린 것 마냥 우중충한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는 중이었다.

“디모데에서 또 식량을 보내달라 요청했다고?”

“네… 그렇습니다 장군님.”

“갈라디아에서도 똑같은 요청이 올라왔습니다. 이대로 있다간 병사들이 모조리 아사해 버릴 위험이 있다면서…”

“하아…”

오늘도 끝없이 올라오고 있는 식량지원 요청.

이와 관련해서, 이곳 안티옥을 관리하고 있는 장수 파리섹트는 자동적으로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답답할 노릇이군, 비축해 두었던 식량에도 한계가 있는 법인데 상황을 갈수록 악화되고 있으니…본국에선 아직도 지원 소식이 없는가?”

“죄송합니다, 계속해서 지원 요청을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더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으음….”

부하의 말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파리섹트는 그대로 인상을 찌푸렸다.

비록 팔콘 제국의 3기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상당한 무력을 지니고 있는 파리섹트.

그러나, 지금과 같이 시시각각으로 악화되고 있는 보급 상황에 대해선 그도 딱히 어떤 대안을 내놓을 수 가 없었다.

‘제길.. 카산드라 그 여자가 방심만 하지 않았어도 일이 이 지경까지는… 우리라고 식량이 넘쳐나는게 아니란 말이다.’

이곳에서 급하게 조달한 식량으로 타 지역에 도움을 주고 있는 파리섹트.

그러나… 그의 이런 행보에도 불구하고 롭에서 오던 병참이 뚝 끊겨버린 지금,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현지 조달에도 한계가 있었으며, 식량이야 어찌어찌 억지로 해결을 한다 해도 병장기를 비롯한 물품 부족에 대해선 그야말로 답이 없는 상황.

때문에 현재 마왕국 내에 들어와 있는 연합군은 최대한 방어태세를 유지한 채 몸을 사리고 있었으며, 적들을 향한 일체 도발 또한 허용되지 않고 있었다.

싸우기 위해 온 자들이 발이 묶여서 집안에 웅크리고 있어야만 하는 상황이었으며,

그 와중에 안티옥은 식량에 여유가 있다는 이유로 타 지역에 지원까지 해줘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파리섹트를 비롯한 수하들의 불만은 자연스럽게,

실질적으로 이 사태를 유발한 롭의 책임자 카산드라 장군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답답할 노릇이군, 카산드라 그자가 일을 똑바로 처리하기만 했어도 상황이 이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을 텐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무려 제국 3기사라는 자가 어떻게 이런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인지…”

“아무리 마왕의 습격이 있었다 하지만 보급품을 그렇게 깡그리 날려버릴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참으로 실망이 큽니다.”

그렇게 이 답답한 현실을 이 자리에 없는 상관을 까는 것으로 풀고 있는 파리섹트와 수하들.

특히 카산드라에게 밀려 3기사에 들지 못한 파리섹트의 경우는 슬그머니 그의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던 불만의 감정을 내놓고 있는 중이었다.

“그 사람 그래도 예전에는 제법 유능했었는데, 후방에만 있다 보니 사람이 아주 빠져버렸어. 3기사라는 이름 값이 아까울 지경이란 말이지.”

“저희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응당 파리섹트님께서 3기사가 되셨어야지요.”

그렇게 자신의 직속 상관의 말에 약간의 아부를 곁들여 동감을 표하는 부하들.

그들을 보면서, 파리섹트는 내심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 롭이 타격을 받은 지금, 이곳 안티옥의 중요성이 더 커진 건 나에게 기회가 될 지도 모르겠어… 이 위기를 잘 넘긴다면 어쩌면…’

안티옥은 군사적 요충지임과 더불어서,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보급을 본국에서 실어오고 있는 종족 연합국 입장에서, 식량을 자급자족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역이었다.

지금과 같이 전선으로 오던 보급품들이 뚝 끊겨버린 종족 연합 입장에선,

입에 아슬아슬한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반드시 사수해야만 하는 중요한 장소가 된 것이 바로 이곳 안티옥이었다.

그렇게 아군의 시선이 모여 있는 지금,

이곳에서 어떤 일이 생긴다면 이는 파리섹트의 이름을 크게 알릴 수 있는 기획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만약 마족들이 이곳을 쳐들어 온다면 아마 연합군은 총력을 기울여 이곳을 보호하려 들겠지.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 파리섹트님이 서게 될 터… 그렇게만 된다면 나에게도 제국 3기사를 노려볼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찾아올 지도 몰라.’

그렇게 위기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욕심을 품은 채 일단은 지금 해야 하는 식량 조달 문제를 진행하려는 파리섹트

그때…

“자.. 장군님! 파리섹트 장군님!”

“무슨 일이냐?”

“저… 적입니다! 마족들의 대군이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

숨을 헐떡이며 다급하게 이야기를 하는 병사.

이에 파리섹트의 얼굴에는 한 순간 복잡하면서도 약간의 기쁨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감정이 깃들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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