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이 새끼들 단체로 날 엿먹이려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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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 보이는 마족들의 대군.
못해도 2만에 달하는 병력이 산을 너머 이쪽으로 진군해 오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파리섹트의 얼굴에는 짙은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저 녀석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아주 작정을 하고 온 것 같군.”
“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장군?”
“저들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저희가 과연 막을 수 있겠습니까?”
짙은 불안감이 담긴 목소리로 질문을 하는 휘하 장수들.
이에 대해서 파리섹트는 최대한 냉정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이곳에 남아 있는 병력을 약 7000.
본래라면 1만에 달하는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식량을 운송하고 이를 호위하기 위해 병력을 동원한 탓에 적잖은 숫자가 차출된 상황이었다.
즉 주변 여건의 결과, 현재 안티옥은 병력 상에 상당한 공백이 발생하고 있는 중이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지금껏 없었던 대규모 적들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거기다 안티옥은 방어에 그리 유리한 지역도 아니다. 중요도와 교통의 요지라는 이점과 별개로 이곳은 사방이 뻥 뚫려있는 평야지대. 적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일방적으로 불리해 질 수밖에 없어...’
사실상 최악의 상황에서 최악의 방식으로 적을 맞이한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
그러나…
그렇다 해서 파리섹트는 마냥 지금의 이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보고 있지 않았다.
당장 보급품이 뚝 끊긴 현 종족연합의 상황에서 안티옥은 식량을 얻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였다.
즉 그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이곳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장소,
따라서 안티옥이 공격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 그들은 분명 방어태세를 풀고 최대한 빠르게 이곳으로 진군을 해올 것이 분명했다.
그 시간은 길어야 이틀 남짓.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으며,
그렇게 지원군이 당도하기만 한다면 불리한 전세 따위는 순식간에 역전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거기다, 그렇게 방어에 성공할 경우 얻게 될 이득은 파리섹트로 하여금 더더욱 의욕을 불태우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분명 지금의 이 상황은 쉽지 않다, 하지만... 역으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이 위기를 극복해낸 다면 분명 이 몸의 이름 값을, 파리섹트님의 명성을 크게 띄울 수 있을 것이야.’
안 그래도 현재 카산드라의 입자가 흔들리고 있는 만큼, 지금 같은 상황에서 두각을 나타낸다면 꿈에 그리던 제국 3기사 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그렇게 불리한 상황에서도 희망과 욕망을 함께 불태우며 파리섹트는 이곳의 총 사령관으로서 즉각적으로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은 지금 바로 이곳을 출발해 지원군을 요청하도록 하라. 이곳 안티옥에 마족들의 대군이 쳐들어 왔다고 말이다.”
“네! 장군!”
“명을 받들겠습니다 장군!”
파리섹트의 명령에 따라 곧바로 말을 타고 출발을 한 전령들.
그 직후, 파리섹트는 그대로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근 뒤 수성전을 개시할 준비를 하였다.
“어서 오너라 이 더러운 마족놈들. 이곳이 바로 너희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이 파리섹트님이 네놈들을 모조리 쓸어주마!”
*
눈 앞에 보이기 시작한 성채도시 안티옥.
원작에서 나왔던 대로 드넓은 평야의 중심부에 도시 하나가 덩그러니 자리를 잡고 있는 그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난 내심 살짝 감탄을 하였다.
‘진짜로 넓네. 과연 마왕국의 곡창지대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장소야. 이러니까 이 전쟁 통에도 다른 지역에 군량미를 조달할 여유가 있는 거겠지.’
고개를 돌리면 산이 보이는 나라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이런 드넓은 평야를 실제로 보는 것은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마치 가슴 속에 묵혀 있던 무언가가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한 느낌.
그러나, 마치 여행이라도 온 것 같은 감상과는 별개로, 이 순간 나는 지금 내 상황이 이렇게 경치나 구경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군영을 세우고 공격을 준비하라!”
“내일 아침 전투를 개시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병장기를 점검하고 각자의 위치를 숙지하도록 하라.”
주변에서 소란스럽게 전투를 준비하고 있는 병사들.
말 그대로 전쟁 통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는 듯한 복잡하기 그지 없는 이곳에서, 난 짧은 시간의 감상을 끝낸 뒤 그대로 천천히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있는 것은 갑주를 차려 입은 채 무기를 점검하고 있는 100여명의 마족들이었으며, 이번 전투에서 나의 지휘를 받도록 되어 있는 이들이었다.
조금 거창하게 표현을 하자면 나의 직속 부하들이라 할 수 있는 자들.
이들의 전투력은 엄밀히 말해 그냥 딱 평균적인 마족 병사들 정도 밖에 안 되는 수준이었으며, 농담 안 보태고 지금의 나 혼자 마음 먹고 싸워도 가볍게 처치할 수 있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아울러 인간이라는 나의 특성상 생각 없이 이들을 소모할 경우 그것은 그것대로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을 수 있는 만큼 여러모로 아껴서 사용해야만 하는 전력.
하지만 이러한 리스크와 별개로 1명과 100명 사이에는 엄연히 큰 차이가 존재하는 법이었으며,
이와 관련해서, 난 기왕 주어진 전력인 만큼 이들을 어떻게 써먹으면 좋을지를 진지하게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때…
“용사님, 삼손 장군님께서 회의를 소집하셨습니다. 속히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알았다.”
전투를 앞두고 마지막 회의를 진행하려는 듯한 삼손, 이에 난 그대로 이야기를 전하러 온 부관과 함께 삼손이 있는 사령관 막사로 향하였으나…
솔직히 이동을 하면서도 딱히 무언가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일라이어스 같은 사람이 총사령관으로 있다면 모를까… 솔직히 저런 녀석이 주관하는 회의 내용이야 뻔하지.’
만일에 대비하여 마왕성를 지키겠다는 ‘명목’ 하에, 이곳에 오지 않은 상태인 일라이어스.
그나마 지금까지 내가 만나온 군단장들 중에서 가장 머리가 잘 굴러가는 그녀가 없는 만큼 이후에 이어질 회의가 어떻게 흘러갈지 난 굳이 안 봐도 훤히 보이는 듯 했다.
그리고…
“굳이 복잡한 설명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적들의 수는 적고 심지어 보급품마저 끊긴 상황. 단숨에 돌격해서 놈들을 끝장내 버린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저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저희 마족들의 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놈들의 지원군이 언제 올지 모르는 만큼 시간을 끌 필요도 없습니다. 순식간에 끝을 보도록 하지요.”
나의 예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근육뇌 들의 회의 장면
정확한 작전 따위는 없으며, 단순 무식하게 힘으로 적들을 찍어 누를 생각만을 하고 있는 그들.
그리고, 그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난 속으로 살짝 쓴웃음을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뭐… 이렇게 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이리 되는 걸 보고 있자니 이건 이거대로 상당히 웃긴걸.’
말 그대로 근육뇌가 아무리 많이 모여봤자 이미 결론은 정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한 장면.
그러나… 그들의 이런 모습에 대해서 난 딱히 불만을 느끼거나 우려의 감정을 느끼지는 않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일라이어스가… 정확히 말하면 내가 이곳을 전장으로 선택한 데에는 이들의 이런 성향을 염두 해 둔 것이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모략이나 매복을 펼치기 힘든 평야지대에 위치해 있는 안티옥.
거기다 현재 종족 연합군을 위해 식량을 운송하고 있는 이곳의 특성상 주군 병력이 상당히 빠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가능한 빨리 점령하지 않으면 제법 귀찮은 일이 벌어지겠지만… 그것 만으로도 우리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라 할 수 있겠지.’
전체적인 전쟁의 판은 이미 사전에 확실하게 짜둔 상황.
남은 것은, 그 과정에서 내가 최대한으로 이득을 취하는 것뿐이었다.
‘역시 이런 때는 적당히 흐름을 보아 개입하는 게 정답이겠지. 우선 다른 마족들이 적들의 힘을 빼놓을 때까지 기다린 다음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식으로…’
생각 없이 돌격하는 아군을 이용하는 방법은 많이 있는 만큼, 난 이를 활용해 효율적인 전투를 치를 수 있는 방법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허면 이제 선봉을 정해야 하는데 누가 나서면 좋겠는가?”
기세 등등한 목소리로 질문을 하는 삼손.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 난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선봉이라… 소위 명예 어쩌고 하는 식으로 포장을 해주긴 하지만 사실상 화살받이나 마찬가지인 역할이지.’
흔히 장수들 사이에선 이를 영광스러운 자리라 이야기하곤 하지만, 그런 영광 따위는 실리를 추구하는 내 입장에선 오늘 아침 먹은 빵 쪼가리 만도 못한 것이었다.
반면, 어차피 이 자리에 있는 녀석들 특성상 그런 영광에 목을 매는 자들 뿐일 만큼, 하려고 하는 사람은 아주 많을 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난 지금까지와 같이 침묵을 유지하였다.
그런데...
“소장의 생각은 선봉으로서 용사를 내보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엥?’
“소장의 생각 역시 같습니다. 듣자 하니 용사의 무용이 보통이 아니라 하였는데, 이 참에 그 힘을 저희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습니다.”
‘야.. 잠깐만..’
“나 역시 그리 생각하네. 모두의 뜻이 그러한 만큼 용사 자네에게 기회를 주도록 하지. 우리 대 마왕국의 전사가 된 만큼 어디 한번 마음껏 날뛰어 보게나.”
‘이런 씹…’
그렇게 삼손의 못질을 끝으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나에게 선봉을 맡기는 그림이 완성된 상황.
이에 난 그대로 쌍욕이라도 퍼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욕은커녕 거절의 의사조차 내뱉을 수 없었다.
애초에 내 발언권이 강한 것도 아니고,
더욱이 지금은 가능한 나라는 존재의 이미지를 좋게 포장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이를 거부하는 것은 용사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
그렇게 순식간에 외통수에 놓이게 된 입장에서 난 속이 쓰려오는 것을 느끼며.
동시에 예전에 회의에서도 그렇고, 혹 이새끼들이 단체로 날 엿먹이려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난 그대로 입가에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에게 그런 영광…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마왕 폐하의 이름을 아래 반드시 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말겠습니다.”
*
용사에게 선봉을 맡긴 삼손과 그의 수하들.
솔직히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이러한 사실에 진심으로 아쉬움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마음 같아선 내가 선봉을 서고 싶은데…’
‘적들의 예봉을 꺾고 가장 먼저 칼을 맞대는 희열은 정말 최고지, 하지만 이번에는 이 기회를 양보할 수밖에.’
마왕국의 명예로운 장수로서, 자신의 이름을 가장 먼저 앞세우며 전투를 개시한다는 것은 누구나 탐낼만한 일.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 삼손을 비롯한 마족들은 이 영광을 용사에게 주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는 중이었다.
정치적인 의도 같은 복잡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것을 생각할만한 이들은 이 자리에 없었다.
그들이 이런 선택을 한 것은 어디까지나 순전한 호의 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일라이어스와 의견충돌을 했을 때 고맙게도 우리편을 들어주었지.’
‘분명 용사도 우리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뜻. 같은 무장으로서 내심 선봉을 원하고 있었겠지.’
‘대단한 무력을 지니고 있다는데 응당 선배로서 신참에게 기회를 줘야지. 간만에 좋은 구경을 할 수 있겠군’
비록 태생은 인간이었지만, 무력과 명예를 숭상하는 그들로서 용사라는 존재는 본능적인 친근함을 느끼게 만드는 존재였다.
심지어 이전의 회의에서도 그들의 편을 들어준 만큼 어느 정도는 호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
그렇게,
당장 의심부터 하고 보는 누구들과는 달리 이런 쪽에 있어서 상당히 순수한 편인 삼손과 그의 동료들은, 신입인 용사에게 기꺼이 기회를 주기로 결정하였다.
분명 용사도 이를 바라고 있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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