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쓸모없이 돈만 날린 정책
* * *
다그닥 다그닥
어둠이 깔린 시간, 약간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마을 롭에서 출발한 한 무리의 마차들은 도로를 따라 빠르게 이동을 시작했다.
전선에 지급될 병장기와 식량을 잔뜩 싣고 있는 마치들.
그 주변에는 적잖은 수의 병사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으며.
어둠 속에서도 경계를 철저히 하기 위해 일부러 불을 환하게 켠 채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마차가 롭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좁은 길가에 그때..
“응?”
“뭐냐 저것은..”
다음 순간, 그들의 눈 앞에 보이기 시작한 한 명의 사람.
일단 환하게 불을 켜고 있었으나, 그가 착용하고 있는 짙은 보라 빛 갑주는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은 느낌을 안겨주고 있었다.
“네놈은 누구냐?”
“감히 우리가 누군 줄 알고 겁도 없이..”
상황이 상황인 만큼 곧바로 무기를 뽑아 든 채 앞으로 나아가는 병사들
그때..
파아아악!!
다음 순간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무언가 끊겨져 나가는 듯 한 소리와, 동시에 보이기 시작한 장면..
순식간에 달려들어 병사들의 머리를 날려버리는 검은 갑주의 전사의 모습에,
그곳에 있던 병사들의 짙은 당혹감을 느끼며 곧바로 전투 태세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저.. 저 녀석은 마족 인가?”
“딱히 뿔은 보이지 않는데..”
“지금 그게 중요한가? 갑작스럽게 우리를 공격한 녀석이다! 당장 녀석의 목을 처 버려라!”
그 말과 함께 그대로 눈 앞에 있는 ‘적’을 향해 달려드는 병사들.
그러나, 이 순간 그들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병사로서 당연히 선택한 그들의 행동은.. 그들에게 상상 이상으로 허망하면서도 처참하기 그지 없는 결과를 안겨주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
“커허헉!!!”
“큭! 크허어억…”
끊어지는 듯 한 비명소리와 함께 피를 쏟으며 죽어가는 병사들.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목숨이 사라지고, 그 대신 묵직한 침묵과 넘쳐흐르는 핏자국만이 남게 되는 살육의 현장.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본래의 나였다면 보는 것 만으로도 구토를 하고도 남았을.. 아니, 그 전에 인간적인 감정으로 인해 차마 시작조차 하지 못했을 일을 직접 내 손으로 자행하면서.
나는..
용사 엘런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제는 마왕의 부하가 된 나는.
상상 이상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감각에 오히려 짙은 의아함을 느끼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공격 했을 때 느끼게 되는 양심의 가책이나 주저함 같은 것은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검은 대검을 가볍게 휘둘러 사람의 목을 베어내고 심장에 칼을 박아 넣고 있는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의 수준은, 굳이 묘사를 하자면 게임 상에서 인간형 적을… 아니 그 조차도 약간 과장이었으며..
정말로 솔직히 비교를 하자면, 딱 레벨업을 노가다를 위해 던전에서 아무 생각 없이 몬스터들을 때려잡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 할 수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건 처음 있는 일인데.. 이걸 이런 식으로 게임 감각으로 인지하게 될 줄은 몰랐어..’
그 사실 자체에 대해서 약간의 충격을 느끼면서, 동시에 어떤 면에서 보면 불가피한 상황에서 감정의 불편함이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난 그대로 나를 향해 무기를 뽑아 든 채 덤벼드는 병사들을 한 명도 남김 없이 모조리 처치해 나갔다.
그렇게 내가 잠시 동안 압도적인 무력을 보이며 일방적인 살육을 벌이고 있던 그때였다.
“도.. 도망치자! 저 녀석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빠.. 빨리 롭으로 돌아가자! 가서 이 사실을 알려야 해!”
승산이 없음을 인지함과 동시에 그대로 다급하게 도주를 시도하는 병사들.
비록 여기서부터 롭까지의 거리는 제법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살아 남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컥!”
“커허허헉!”
다음 순간, 그대로 비명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쓰러지는 병사들.
그들의 앞에는, 나의 감시 역으로 와 있던 마왕의 간부와 그자의 부하들이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서 있었다.
그렇게, 단 수 초 만에 이곳에 있던 인간들을 모조리 참살하고 군수품을 강탈하는데 성공한 나와 마족들.
그러나, 이것으로 마왕이 내린 임무를 달성한 것 과 별개로. 난 여기서 마족들을 설득해 이 다음 단계의 일을 진행해 나가기 시작했다.
방금 전과는 달리, 한 바탕의 전투 이후 조금은 고분고분 해 진 듯 한 그 키 작은 간부의 태도에 약간의 다행스러움을 느끼면서..
*
항구 마을 롭의 중심에 위치한 군사기지
실질적으로 이곳의 영주성 역할을 겸하고 있는 이곳에서는 한 여성이 부하들을 대동한 채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붉은 갑주를 입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차가우면서도 성숙한 인상을 지니고 있는 여성.
인간들의 제국 팔콘을 상징하는 3장군 중 한 명이자, 이곳 롭의 총 책임을 맡고 있는 인물.
카산드라 잉클리먼트 장군.
그녀는 이동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부하들에게 현 상황에 대한 보고를 듣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 결국 용사 파티가 마왕 척살에 실패했단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장군님. 그들 중 한 녀석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마왕의 강력한 힘 앞에 용사는 허망하게 당해 버렸고, 자신들은 간신히 목숨만 건진 채 도망쳐 나왔다 합니다.”
“칫.. 그래도 이번에는 신탁도 있고 해서 제법 기대를 걸었거늘. 결국 이번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이건가.”
부하의 말에 불만이 담긴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는 카산드라.
마왕 퇴치의 사명을 지니고 출전했던 용사파티가 패배했다는 소식은 얼핏 들으면 상당히 심각한 이야기로 들릴지 몰랐으나..
솔직히 이에 대해서 카산드라를 비롯한 장수들이 받고 있는 느낌은 이번에도 상층부는 돈만 날렸구나 하는 정도의 감상뿐이었다.
현재 그들에게 있어서, 용사파티라는 것의 의미는 딱 그 정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의 그 용사파티의 전사들 중 한 명은 어떻게 하고 있지? 듣자 하니 귀한 수인전사라 들었는데.”
“일단은 지배의 족쇄를 채우고 지하실에 감금해 두었습니다. 어느 정도 마음은 꺾인 것 같지만 아무래도 안심을 하기엔 조금 이른 것 같다 판단했습니다.”
“알았다. 그래도 혹 모르니 일단은 잘 감시하도록, 강력한 수인 전사인 만큼 앞으로 죽을 때까지 군인으로서 부려먹어서 확실하게 본전을 뽑아야 하는 놈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장군님.”
*
마왕국과 대치한 채 지속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는 종족연합군.
그 결과, 현재 마왕국의 영토의 30% 가량은 이미 연합군의 손에 떨어진 상황이었으며 이 순간도 전선 곳곳에선 연합군의 승전보가 전달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유리한 전황이 지속되고 있는 와중에도 연합군은 현 상황을 마냥 낙관적으로만 볼 수는 없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현재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예의 주시해야 할 존재는 결국 마왕성의 옥좌에 앉아 있는 마왕이었다.
압도적인 힘과 마족들을 아우르는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는 마왕.
그자가 한 번 친위대를 이끌고 전장에 나타나게 되면 패배 직전까지 몰렸던 마족들 조차도 최후까지 무기를 들고 결사적으로 항전했으며,
동시에 그와 그의 부하들이 지니고 있는 어마어마한 무력은 연합군의 진격 시도를 번번히 좌절시키곤 하였다.
이로 인해 지난 전쟁 동안 거듭된 승리에도 불구하고 일정 수준 이상으로 진격을 하는데 곤란함을 겪고 있는 종족연합군.
이러한 대치 상태가 장기화 됨에 따라,
종족 연합의 수뇌부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도중의 공백기는 있을 지언 정,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이 전쟁을 끝내고 확실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한가지 작전을 꾸준히 진행해 오고 있었다.
용사파티.
종종 연합의 자유 전사들 중 강자들을 선출하여 이루어진 일종의 특수한 용병 부대.
평소 종족연합의 막대한 지원을 받으며,
오직 마왕의 척살만을 목표로 활동하도록 되어 있는 그들은, 지금까지 연합군의 대규모 공세에 맞춰 약해진 방어선을 뚫고 마왕성으로 들어가 마왕을 처치하기 위해 진격해 나갔다.
그러나,
지금껏 내로라 하는 용맹한 전사들이 포함되어 있는 수 많은 용사파티가 마왕 퇴치를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맞이한 결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호기롭게 출발을 했으나 끝내 마왕성 근처에도 못 가보고 깔끔하게 전멸당 하는 것.
다른 하나는, 동료들의 죽음이나 전투의 패배를 거치면서 마음이 꺾인 끝에 용사 파티를 유지하는 것을 포기하고 뿔뿔이 흩어지는 것.
나름 연합에서 뛰어난 전사들만을 모아 움직인 것이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왕군의 대처는 그들이 생각 하는 것 이상으로 기만하면서도 강력했으며,
그렇게 지금까지 용사파티는 종족연합의 투자를 받은 것에 비해 그리 신통치 않은 결과만을 내놓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소위 ‘신탁에서 지명 받은 전설의 용사’ 라는 자가 포함되어 있었던 이번의 용사파티 또한 마찬가지였다.
교황을 비롯한 이들의 남다른 기대를 받고 있었던 용사와, 그와 뜻을 함께하여 마왕토벌에 참여한 종족연합 최강의 전사들.
그러나.. 이 선택받은 용사가 있는 용사파티라는 이름의 용병들의 결말은 지원금만 더 퍼 먹은 채 또다시 패배와 도주라는 쓸모없는 결과만을 내놓았다.
그나마 유일한 성과라 하면 이번 파티는 마왕성 안에 들어가 보기라도 했다는 점 정도.
그런 점에서 보면 확실히 '역대 최강'이라는 이름값은 할만 했으나 결국은 이번 용사파티 역시 아무 의미 없이 돈만 잡아먹고 끝장 났다는 것으로 카산드라를 비롯한 이들은 결론을 내렸다.
그나마 노예로 팔려온 강력한 수인 전사를 군인으로서 평생 굴리는 것으로 손실을 메울 수는 있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용사파티라는 정책 자체는 이 전쟁에서 아무 의미도 없는 돈 낭비 인력낭비일 뿐이라고 말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 정도 로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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