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
199. 에임 마스터
“전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
“숫자입니다.”
장왕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답했다.
맞는 말이다.
세주와 치용, 안나는 폭발 앞으로 배리어를 만들었다.
세 겹의 두꺼운 방어막 덕분에 폭발의 여파는 없었다.
팽과 실버까지, 모두 바닥으로 안착한 상태에서 세주는 아군을 모았다.
“우리가 일당백이라면 어때 ”
“그럴 각오로 싸울 순 있습니다만.”
장왕, 생각보다 머리가 돌아간다.
유진 대신이다.
사실 여기서 머리를 안 써주면 곤란하다.
“그래도 무리라고 봅니다. 칠백을 상대로 일곱이서 싸우는 건, 거기에 적의 숫자가 고작 그 정도일리도 없습니다.”
현 상황을 파악한 그다.
“어쩌실 생각입니까 ”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온다.
장왕이 합류한 이유.
그는 나기주를 지키기 위해서 왔다.
나호필은 언제나 불안했다.
반세주의 의도와 행동을, 그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대비를 해야 했다.
전쟁이 끝난 후다.
타고난 전략가다.
미래를 위해 차분히 대책을 만든다.
당장 눈앞의 싸움이 아닌, 더 먼 미래를 본다.
그는 반세주를 이을 새로운 영웅이 필요했고, 그걸 나기주란 인물에게 맡겼다.
더구나, 저 나기주는 세주의 기준에서 보자면 멍청했다.
머리 쓰는 타입이 아니라는 거다.
생긴 건 날쌔게 생겨서 하는 짓은 치용과 맞먹는다.
서포트는 장왕, 얼굴 마담은 나기주.
호필의 생각쯤이야 그냥 읽힌다.
더구나 그는 세주에게 숨길 생각도 없다.
나쁘지 않다.
세주는 자신 이후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 자체에 찬성이었다.
“할 일 충실히 해.”
“이곳에 고작 일곱이서 온 거, 정찰이 아니었습니까 ”
“정찰 ”
이 싸움에서 서로의 전력을 파악할 필요가 있을까
3개월의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세주 일행이 어디서 뭘 하고 왔는지, 이들은 정확히 알지 못 했다.
푸른 행성을 엉망으로 만들고 왔다고 했을 뿐이다.
이들이 얻은 정보는 풀지 않았다.
아니, 극히 일부만 알렸을 뿐이다.
이유
이유야 뻔했다.
-이거 전부 알려주면, 잘도 좋아하겠네.
절대적 열세.
사단 편제에 맞춰 나눠진 적들의 병력은 절대적 우위에 서 있다.
고작 광탄 라이플과 광편 수류탄을 던지는 이들과 비교했을 때.
적들이 가진 건, 다양한 상황에 맞춰 쓰는 광학 무기다.
더구나 출력, 화력 그 모든 것이 9은하보다 압도적이다.
개인적인 능력으로 적을 압도하는 건 손에 꼽는다.
“이런 싸움에 정찰이 필요할 리 없지.”
안나가 입을 연다.
“정말 싸우러 온 거였습니까 ”
“정찰은 이미 끝냈어.”
안나가 세주를 대신해 말한다.
“눈치 빠르네 ”
“3개월 간, 깽판만 치고 왔을 리 없을 테니까.”
여자의 감이라는 걸까
나중에 이 여자와 결혼하면 비상금 숨기는 건 불가능하겠다.
“죽으러 온 것처럼 들립니다.”
장왕이 말했다.
그는 호필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나기주는 지켜야 된다는 걸.
그는 세주를 존경하고, 따르지만.
그보다 조국을 위해 싸우는 군인이며 애국자다.
개인적인 감정보다 명령이 우선이다.
“죽으러 온 거 아니니까, 표정 풀어.”
세주가 장왕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 너무 깝친다.”
그걸 본 치용이 눈을 부라렸다.
장왕은 식은땀이 흘렀다.
생각해보니, 이곳에는 언터쳐블의 사나이가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언터쳐블이 아니라, 말이 안 통하는 남자다.
덤비면 죽는다.
까불어도 죽는다.
특히나 형님을 기분 나쁘게 하면 확실히 죽인다.
그게 김치용이다.
“아닙니다. 말이 많았습니다.”
“그럼 싸울 준비들 하시고.”
전부 자세 잡기 바쁘다.
[대장이라면 일당백이 아니라 일당만도 가능하니까, 걱정 마!]
팽이 외친다.
아이고, 골이야.
믿어도 너무 믿는 거 아니냐
“흥! 그 전에 제가 더 썰어버리겠습니다.”
치용이다.
후웅.
그 옆, 안나가 황금빛으로 전신을 물들이고 말을 이었다.
“함께 하지. 난 내 낭군이 될 남자를 믿어.”
언제 이렇게 한국말이 늘었는지.
“낭군이란 단어는 어디서 배웠냐 ”
당황하지 않고, 말꼬리를 잡았다.
이런 일에 당황하면 지는 거다.
“유진이.”
이 새끼가.
하여간 쓸데없는 걸 잘도 가르친다.
“팽 말대로 일당만은 무리지만.”
세주가 중얼거리며 모두의 앞에 섰다.
“그거랑 비슷한 짓은 할 수 있을 지도 모르지.”
우우웅.
전신이 떨리며 풀 업에서 번 업으로 전환된다.
화륵.
진청색 에너지가 빛난다.
부족하다.
이런 화력으로는 적의 선두를 꺾을 수 없다.
그보다 더 강하고, 세게.
날카롭기보다는 묵직한 공격.
혼자서 성벽을 무너뜨리는 절대적인 강함.
고작 일곱이지만, 단 한 명도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힘.
‘모드 온 에임 마스터.’
화르르륵.
모드를 켜며 에너지를 가속하자, 전신에 불꽃이 검게 타오른다.
“으음.”
곁에 있던 안나와 치용이 거리를 벌린다.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따갑다.
그만한 에너지 출력이다.
콰우우우우우!
전면에 적의 비(bee)쉽을 비롯한 비행체가 날아온다.
공중을 제압하는 건, 지상 공격 보다 유리하다.
더구나 기체를 자유롭게 운행하며 움직이는 기술력까지 보유한다면 굳이 지상 병력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그런 이유로 전면을 가득 채운 적기들이다.
-1250기.
숫자를 확인하고.
세주는 눈을 감았다.
가만히 자신의 몸 안에 차오르는 에너지를 타일렀다.
에임 마스터 모드는 이제까지의 저격과 사격에 관한 모든 걸 통합한 모드다.
거기에 하나 더.
세주의 재능을 현실화해서 넣었다.
어릴 때부터 가졌던, 움직이는 이동 에너지를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리드 샷을 할 수 있는 재능.
팟.
눈을 뜨자, 눈앞에 붉은 점이 가득하다.
-동시 목표 포착 완료.
-탄창, 에너지 충전 완료.
-오닉스 애비탄 준비 완료.
-명중률 100%.
‘모드 온, 마리오네뜨.’
두두두두두둥!
거기에 모드를 하나 더 띄운다.
혼자서 연사하는 걸로는 부족하다.
이걸 위해 에너지를 때려 부어서 만들어줬다.
벼락 200정이다.
촤아아아악!
허공에 나타난 벼락이 세주를 기준으로 좌우로 퍼진다.
염동력이 작용한 것처럼 공중에 뜬 벼락이다.
하지만 염동력이 아니었다.
그걸 본 장왕과 나기주가 놀라 눈을 부릅떴다.
당연한 일이다.
둘은 사이킥 에너지를 다룬다.
하지만 여기에 사이킥 에너지는 1도 관여하지 않았다.
전부 에너지 컨트롤로 하는 짓이다.
허공에 푸른 그림자가 얼핏 보였다.
“시바, 말도 안 돼.”
나기주가 자기도 모르게 읊조렸다.
다른 사람의 입장도 별 다를 게 없었다.
치용도 놀랐고, 안나도 놀랐다.
물론 기주와 장왕만큼 놀라지는 않았다.
자신 옆에 선 이가 누구인가.
미친놈, 또라이라 불리고, 개자식이라는 애칭이 있지만.
그는 영웅이었으며, 멸망이 분명한 인류를 구한 자다.
반세주.
그 이름 세 자가 주는 힘은 적지 않다.
그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이였으며, 일곱으로 적의 오천을 막겠다고 했으면 막는 자였다.
꽈르르르릉! 꽈과과과광!
벼락 200정이 울리는 소리는 하늘이 노해 수 백의 벼락을 내려치는 소리 같았다.
언제나 옅은 노을빛이던 행성의 허공에 검은 에너지 탄이 뿌려졌다.
꽈과과과과광!
벼락은 언제나 두 번 울렸다.
그건 이번에도 같았다.
검은 벼락이 쳤고.
적의 선두라 할 수 있는 천기가 넘는 비행체가 허공에서 폭사했다.
*
뛰던 신혜가 발을 멈췄다.
방금 터진 병력의 반이 그녀의 사단 병력이다.
“땅굴 부대!”
그녀는 급히 일부 병력을 다른 방식으로 운용했다.
땅을 파서 적의 뒤를 치라는 명령이다.
동시에 다른 사단장을 바라봤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다들 표정이 변했다.
작은 유희로 생각한 싸움이다.
아니다.
방심하면 아플지도 모른다.
산은 그들을 향해 그리 말했다.
보슬은 그 말에 그저 빙그레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유희라니.
‘미친.’
순간 감지한 에너지는 1급 이상, 1급 이상의 에너지 컨트롤러는 통일은하정부에도 셋뿐이다.
리미트리스 급이라 불리는 셋, 보슬, 김산, 존.
그리고 지금 그 네 번째 괴물이 코앞에 있었다.
적으로.
“전 병력! 화력 집중!”
그녀는 세차게 외쳤다.
공격 능력이 리미트리스라면, 방어 능력은 어떨까
“너론 무리다.”
그 옆에서 브라드쵸프가 스쳐 나가며 말했다.
장신혜의 6사단은 강하다.
하지만 그녀의 강함은 국한적이다.
다수의 약자를 상대할 때, 그녀의 힘은 빛을 발한다.
지금은 아니다.
소수의 강자 앞에서 그녀의 사단 병력은 인형이 되기도 했다.
이제까지, 통일은하정부의 역사가 증명한 일이었다.
“내가 직접 간다!”
장신혜는 외쳤다.
긴 삶 동안 싸움에서 한 번도 져 본적이 없다.
그녀의 사단이 진 건, 리미트리스의 세 명 뿐이다.
적을 상대로 진 적이 없는 그녀다.
자존심이 찢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무리는 말고.”
브라드쵸프는 그녀에게 개인적인 관심이 있다.
“상관 마.”
신혜는 그녀에게 별 감정이 없었지만.
사단장이 모두 개인 쉽에서 내렸다.
저격은 가장 거추장스러운 공격수단이다.
타오 윙은 내리면서 자신이 애용하는 무기를 꺼냈다.
무려 1m가 넘는 총신을 가진, 저격총이다.
그녀가 이름 붙이길, 시끄러운 암살자.
“무기 타입이 같아. 내가 잡는다.”
세주의 벼락과 비슷한 타입이다.
시끄럽고, 위력적이며, 저격이다.
총신보다는 짧지만 본래의 것보다 긴 스코프에 눈을 대고 타오가 숨을 멈췄다.
곧 그녀의 존재감이 사라진다.
특기 중 하나다.
숨바꼭질.
호흡을 멈추면 같은 사단장인 그들도 그녀의 존재를 찾을 수 없다.
완벽하게 모습을 숨긴, 그녀의 총격은 그야말로 사신의 일격이다.
“쳇.”
진지한 그녀의 모습에 브라드쵸프가 불만을 표했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보슬이라도 저 한 방을 맞으면 치명상이다.
그만한 위력의 공격이다.
그러니 같은 리미트리스 급이지만.
‘산님만큼 압도적이지는 않으니.’
이 공격이 유효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건 전쟁이다.
적이 고작 일곱이어도, 필히 죽여 승전보를 알려야 할 전쟁.
타오 윙을 제외한 이들이 앞으로 뛰었다.
그녀가 성공하더라도 뒷정리는 필요하다.
선두가 부서져도, 사단장들은 당황하지 않는다.
그건 나머지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현재의 통일은하를 만든 장본인들이다.
자리를 추스른 그들이 다시 앞을 향해 함선의 방향을 틀었다.
스몰 쉽은 대부분 터졌지만, 함선이라 부르는 대형 쉽은 그대로다.
그렇게 전세를 추스르는 순간.
꽈르르릉!
두 번째 벼락이 울렸다.
동시에 펑펑! 거대 함선에 구멍이 뻥뻥 뚫린다.
하늘에서 신이 검은 벼락을 잡아 던지는 것 같았다.
검은 빛이 지그재그를 그리며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온다.
동시에 함선이 하나씩 허공에서 요격 당한다.
“전부 지상으로 내려와!”
폭격이 무기라면 흩어지는 게 낫다.
“이런 빌어먹을, 대체 무슨 무기야.”
저격도 이런 무식한 수법은 처음이다.
당황하지 않으려 노력한 그들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평소와 같을 순 없다.
노력한다 해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내가 잡아.”
통신기를 통해 타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들의 시력은 일반 병사를 초월한다.
적이 누군지도, 무슨 짓을 했는지도, 계속 보고 있었다.
고작 한 명이다.
수작을 부려, 여러 정의 저격포탄을 쏘는 단 한 명.
“그럼 잡아!”
부하들이 다 죽게 생겼다.
장신혜가 외쳤다.
“포착 완료.”
타오 윙이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
본 조르노는 자신의 타고난 재능에 대해 별 다른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그저 미리 승부를 예측하는 것.
그제 전부니까.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타고난 성격도 고민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게으른 놈.”
그런 본을 세주가 꾸짖었다.
“내가 ”
“응.”
“어디가 ”
나름 열심히 운동도 한다.
체력적으로 뒤처지면 머리도 안 돌아가는 법이니까.
그리고 전략과 전술도 공부한다.
승부를 예측하는 건, 사실 외줄타기를 하는 셈이다.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는지 알지만, 그 어떻게가 그냥 나오는건 아니니까.
“무슨 짓입니까 ”
그의 형이자, 보모, 본을 지키는 초인이 입을 연다.
“얘 좀 빌리자.”
“날 왜 ”
세주의 말에 본이 고개를 갸웃했다.
반세주는 엄밀히 말하면 전투원이고, 본은 전략가 쪽이다.
“쓸 만하게 만들어 줄게.”
“불가!”
그의 형이 고개를 젓는다.
본의 성격을 잘 아는 그다.
반세주와 충돌해서 남는 게 없다.
더구나 아무리 인류 수호를 위한 방위대라고 해도.
국적이 다르다.
이 일이 모두 끝나면 서로 좋은 사이로 남을지 아닐지 알 수가 없다.
저 반세주를 상대로 덤빌 이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뻑!
세주는 말보다 빠른 수단을 썼다.
주먹을 휘둘렀고, 그 주먹의 잔상도 못 본 본 조르노의 보모가 쓰러졌다.
“어이구, 하늘에서 돌이 떨어졌나.”
함선 안이다.
지붕으로 꽉 막혀 있는 곳에서 돌이 왜 떨어져.
아니, 밖이라도 말이 안 되는데.
“무슨.”
“자, 이제 닥치고 따라올래 아님 돌 맞을래 ”
“갑시다.”
본 조르노는 승부를 예측한다.
어떤 대답을 해도 이 남자의 뜻대로 된다.
그게 결론이다.
그는 세주에게 끌려갔고 식사, 수면, 운동 시간을 제외하고 딱 한 가지 일을 해야 했다.
“해.”
전력시뮬레이션이었다.
수 백, 수 천의 상황에 놓여지는 것.
지옥이었다.
신경성 스트레스가 전신에 없는 근육통을 만든다.
얼마나 리얼한지, 도저히 대충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지치고 지친 그의 눈앞에서 다크써클이 진하게 배인 이가 물었다.
“너도 ”
나호필이다.
자신과 똑같은 처지의 인간이 있었다.
그것만으로 버틸 수 있었다.
그 지옥의 시간을 견딘 둘은 현재 푸른 행성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사령관 실에 나란히 선 둘 중 호필이 홀로그램 형상에 눈을 떼지 못하고 물었다.
“칠형포 ”
“동의.”
빠르고 정확한 명령 체계는 가끔 최고의 전술보다 낫다.
“칠형포!”
“준비 완료!”
“쏴!”
주저하지 않았다. 함선에서 포신이 나타나, 빛을 모은다.
죽음의 오로라라는 포탄이다.
죄가 없는 적의 일반 시민을 죽이면 안 된다고
이건 전쟁이었다.
이기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 따위 가리지 않는.
반세주의 이 말에 호필과 본은 완벽하게 동의했다.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콰아아아앙!
포탄이 불을 뿜었다.
죽음의 오로라, 칠형포의 재현이었다.
그 빛이 곧 푸른 행성을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