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
198. 사단장
인생의 가치는 무엇으로 판단하는가
“넌 쓰레기야.”
“평생 그렇게 살아.”
“머저리 같은 자식, 넌 오늘부터 내 자식이 아니다.”
다른 이의 시선이 판단의 기준이라면, 그건 실패한 인생이다.
“후회한다고 해, 빌어라. 무릎을 꿇어라. 죄송하다고 빌어.”
싫다.
너무도 싫다.
어릴 때부터 말하는 것에는 재주가 없다.
말로 누군가를 설득하는 건 무리다.
“난 내 행동을 후회한 적 없어.”
신념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다.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했고, 그 결과일 뿐이다.
사형수 김치용.
“죽을래 아니면 나라를 위해서 그 한 몸 바칠래 ”
“싸우다 죽겠수다.”
*
“염병할.”
정말 싫은 꿈이다.
눈을 뜨자마자 욕부터 내뱉은 치용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아주 오래 전 일이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과거고, 그 때의 사람들은 지금 내 곁에 없다.
그 대신 다른 사람들이 있지.
치용은 세수도 하지 않은 채, 급히 누군가를 찾았다.
위잉!
양 옆의 자동문이 신속하게 열렸다.
그 안, 인준이 있다.
조용히 책을 읽는 모습이다.
그 옆에 다양한 무기가 널려 있다.
“꺼져라. 짐승.”
그는 여느 때와 같이 인사를 건넸다.
“한가할 때, 머리를 쥐어박아 주마!”
그렇게 말하고 치용은 몸을 돌렸다.
심한 육두문자를 날려봤자, 인준은 화내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어린아이 취급하거나, 무시하는 쪽이 더 효과가 좋다.
생각하고 하는 말이 아니다.
옛날부터 도발하는 수법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뛰다가 유진을 만났다.
이 말쑥한 얼굴의 동료는 부드러운 미소로 그를 맞았다.
웃는 얼굴에 침 뱉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하는 치용은 남자 중의 남자였다.
놀라운 반응속도로 침을 피한 유진이 그를 노려봤다.
“아, 뭐에요.”
“생긴 게 재수 없어서.”
“미쳤어요 ”
“내가 언제 정상으로 보이디 ”
“…인정 안 할 수가 없네.”
그런 유진을 뒤로 하고 앞으로 다시 내달렸다.
“어디 가는데요!”
묻는 말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위잉!
이번에 문을 연 곳은 훈련장이다.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반세주 휘하 몇몇만 와서 훈련을 받는 곳이다.
퉁! 탕!
격타음이 들린 곳을 기대감 어린 눈으로 살피니, 실버와 팽이 보였다.
기계 팔이 팽의 머리를 후려친다.
쩡!
맞으면서 몸을 비튼 팽이 발을 올려 찬다.
놀라운 반응속도와 재치다.
둘 모두, 잘 싸운다.
하지만 일선에서 싸우기에는 부족하다.
저들은 서포트 병력이다.
물론, 치용은 위와 같은 이유를 몰랐다.
‘약해 빠졌네.’
그저 보는 것만으로 에너지가 현저히 부족하다는 걸 느낄 뿐이다.
문제는 찾는 사람이 여기도 없다는 거다.
치용이 다시 몸을 돌렸다.
“어디 가냐 ”
자신이 찾는 얼굴이 보였다.
이상한 인간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똑같이 이상한 인간.
미친놈, 또라이, 이런 단어가 자신보다 어울리는 사람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싸우러 갑시다.”
대뜸 얼굴보고 하는 말이다.
반세주가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럴래 ”
끄덕!
고개를 강하게 위 아래로 흔들자, 뒤에서 그를 빤히 보는 눈빛이 느껴졌다.
“팽, 비틀 쉽 가져와.”
[지금 ]
“그럼 날 샐래 작전 시간 현 시간 부로 30분 내, 주황이라 부르는 행성을 조사한다. 작전 참여 인원은, 자유 참가다. 넌 갈 거지 ”
“물론!”
치용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
급조된 작전이다.
인준과 유진은 빠졌다.
“바빠.”
“전 싸울 때 불러주세요.”
세주는 둘을 놔뒀다.
안나, 나기주, 장왕, 치용.
총 넷이 지원했고, 서포트 멤버로 실버와 팽이 함께 했다.
“싸우러 가는 겁니까 ”
흥분과 긴장이 섞인 상태의 기주다.
작전 참여도나 이제까지의 일들로 봤을 때, 베테랑이 분명한 그지만.
세주 앞에서는 언제나 같은 모습이다.
어미 새를 보는 아기 새 같다.
“싸울 일이 있으면 싸우겠지.”
세주는 그리 말하곤 이들을 이끌었다.
“출발!”
비틀 쉽이 날아갔다.
[대장, 나 좌표 모르는데]
홀로그램으로 본 것만으론 알 수 없다.
‘브로 ’
-아무리 나라도 보는 것만으로 위치를 알아내라는 건 무리지. 난 기계지, 점쟁이가 아냐.
‘쓸모없는 고철덩이. 꼭 필요할 때 쓰려면 효용가치가 제로야. 개똥만도 못 한 놈.’
-기회만 잡으면 아주 욕을 못해서 안달이지.
잘 알고 있다.
‘그럼 통신 연결해 봐.’
-누구한테
‘힘센 게이가 아니라, 김보슬 그 새끼.’
-이거 진심이야
‘그럼 ’
[대장 ]
“기다려 봐. 좌표 따는 중이니까.”
‘시간 없어. 연결해. 너 하나만 기다리는 사람들 안 보이냐 ’
프로비던스가 전파 파장을 찾았다.
김보슬과 통신하는 건 가능했다.
그 휘한 인간들도 있고, 3개월 간 행성 푸른에 있으면서 그 안에 통신 코드도 어지간한 건 전부 복제했다.
몇 가지 과정을 통해 프로비던스는 푸른 행성의 관리자에게 연결했다.
쥬니퍼가 죽은 뒤다.
다른 이가 그 통신을 받았다.
[누구야 이거 기밀 코드인데 어떻게 알고 연결하는 거냐 ]
투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주는 처음 듣는 목소리다.
보슬도, 산이라는 1사단장도, 그 존이라는 재수 없게 생긴 2사단장도 아니다.
[넌 누군데 ]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이]
상대방의 거친 목소리에 세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오해할 소지가 있었다.
[시파 새끼야, 네 군주랑 친구니까 김보슬 그 새끼한테 연락 넣어 봐]
그래서 얌전하게 상대를 타이르는 걸 포기했다.
어차피 정상적으로 말해봤자, 설명하기도 어렵다.
[…너 9은하 그 새끼냐 ]
대뜸 상대가 물었다.
생각보다 날카로운 구석이 있는 놈이다.
[정답, 상금은 없다]
[군주님은 바쁘신데 용건은 ]
[주황이라는 행성 좌표 좀 찍어 봐]
당당히 요구한다.
둘의 대화를 듣던 프로비던스는 적의 반응을 예측했다.
미쳤다고 난리나 안치면 다행이라는 결론이다.
[9은하 식으로 줘야지 ]
[그럼 편하고]
곧 좌표가 전송되었고, 프로비던스는 그걸 똑똑히 기억했다.
동시에 이해불가라는 판정이다.
통신을 끊은 프로비던스가 물었다.
-왜 알려줘
‘뭐가 ’
-아니, 왜 순순히 좌표를 알려 주냐고
세주가 들은 좌표를 팽에게 전하고 자리에 앉았다.
부드러운 솜뭉치 같은 의자다.
다른 건 몰라도 편안함만큼은 그 어떤 침대보다도 나은 의자다.
장시간 비행을 대비한 물건 중 하나다.
작은 쉽에 일곱이나 있다 보니 공간이 작게 느껴졌다.‘몰라.’
-근데 왜 물어봐
‘알려주라고.’
프로비던스는 자신의 연산 장치에 이상이 있는지 의심했다.
-연산 장치 점검한다.
‘이해하려고 하지 마. 인간이 계산만으로 움직이겠냐 ’
감이다.
지금의 놈이라면 어지간한 건 알려줄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감.
결과적으로 맞았고.
세주는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김보슬은 뫼비우스의 띠를 원한다.
그런 결론을 내렸었다.
지금은
3개월동안 놈의 신상을 털고,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알 수 없다.
놈은 속내를 감춘 괴물이다.
놈의 진짜 목적을 알아내려면 하나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박 터지게 싸우는 것.
그것도 놈이 상상할 수 없는 방식과 상상할 수 없는 형태로.
“팽.”
[응!]
“지구에 연락 넣어.”
이틀, 쉽을 타고 날아온 참이었다.
잠시 뒤면 주황 행성에 도착할 참이고.
“푸른 행성을 급습한다. 지구에 남은 전 병력 투입해.”
프로비던스는 세주의 좋은 조언가이자, 전략을 실행하는 서포터다.
말하지 않아도 세주의 뜻을 알 수 있었다.
-양동작전이구나.
그리고 프로비던스만큼이나 눈치 빠른 이가 이곳에 둘이나 더 있었다.
[양동작전입니까 ]
실버와.
“저희 역할은 뭡니까 ”
장왕이다.
둘 모두, 무리를 이끌어 본 경험이 있다.
치용에게 생각은 무리고.
나기주는 그저 묵묵히 앉아 있다.
저 치도 어떻게 보면 전략보다는 앞선에서 치고 박는 스타일이다.
영웅은 될 수 있어도, 참모는 될 수 없다.
“싸울 작정 ”
여자의 직감인지, 안나가 묻는다.
“대차게 싸울 거다. 다들 목숨 간수 잘해.”
“푸른 행성 쪽이 더 재밌는 거 아닙니까 ”
“아닐 걸 ”
세주는 고개를 저었다.
싸우기로 한 곳은 여기다.
지금 지구에서 함선과 주 병력이 출두한다면.
도착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그 때까지 세주는 여기서 쇼를 벌일 작전이었다.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신호탄은 이곳이다.
그러니까 적의 병력을 이곳에 모을 거다.
-인준과 유진은 왜 놓고 온 거야
프로비던스가 대뜸 물었다.
‘인준은 그쪽에 필요하고, 유진은 잠시 쉴 시간이 필요하니까.’
김소혜의 죽음이 그에게 어떤 충격을 줬을지는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짧은 3개월, 그것도 엄밀히 말하자면 적이라 볼 수 있는 사이.
그런데도 유진은 그녀의 머리를 보는 순간 무너졌다.
평소의 페이스가 깨졌다.
그런 이를 데려갈 순 없다.
세주의 생각은 처음과 같았다.
가능하다면.
한 명도 죽이지 않고 이 싸움을 끝낼 생각이다.
*
주황 행성에 모인 병력은 총 4개 의 사단이다.
반란으로 제압된 8사단, 군주의 첩이라는 별명을 지닌 1, 2사단을 제외한 네 개의 사단.
3, 4, 5, 6사단이다.
7사단은 비밀 임무 수행이라고 빠졌다.
보슬은 돌아오자마자 전시 체제를 알렸다.
그리고 4개의 사단을 주황 행성에 보냈다.
“누구랑 싸웁니까 ”
“작전 상 최우선 방침은 무엇입니까 ”
1사단의 김산과 2사단의 존을 제외하고 가장 오래 된 이들이다.
통일은하정부의 주 병력이자, 보슬의 개인 병력이기도 한 이들.
“9은하 인간과 싸울 것이고, 명령은 전멸쯤으로 해두자.”
“알겠습니다.”
다른 의견이 나올 것도 없다.
원로원과는 다르다.
군부의 병력은 완벽하게 보슬의 통제 하에 있는 이들이었다.
그렇게 명령을 받은 이들이 주황에 모였다.
3사단장, 브라드쵸프가 말했다.
“대기 후 칠까 ”
어쨌든 전장은 주황 행성에 국한 된 것이다.
행성에 놈들이 들어오면 칠지 아니면 들어오는 것 자체를 요격할지를 묻는 것이다.
3사단은 대인전 최강의 돌격 사단이라는 별명을 지녔다.
그 사단장인 브라드쵸프는 3m에 달하는 거구의 남자.
대머리에 강력한 에너지 컨트롤러로 김산을 제외한다면 최강이라 불린다.
그는 드물게도 보슬보다는 김산을 존경해 강해진 케이스였다.
전신에 진녹의 아머를 입은 그의 존재감은 전체를 아울렀다.
그 바로 옆, 체구가 반의 반도 안 되는 여자, 아니 여자 아이다.
4사단장, 천리안 사단이라는 별명이 붙은 사단을 이끄는 리더다.
이름은 타오 윙, 외모로 보여 지는 나이는 고작 열 셋 정도.
얼굴은 언제나 딱딱한 마스크를 쓴 채로, 그 본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4사단은 사출 무기, 즉 쏘아 죽이는 것이 최강인 사단이다.
“격추시키면 편해.”
“군주의 명령은 주황 행성에서 싸우라는 것이다.”
“그 주황 행성의 범위가 어디부터인데 ”
일단 대기권에 진입하면 격추하겠다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다.
“싸우다 날 새겠어. 언제 올지도 모르는 놈들인데 천천히 생각하자고.”
히로츠키의 말이다.
방위사단이라는 5사단의 장이다.
수수한 얼굴에 검은 머리칼을 가진 이십대 쯤의 남자다.
결벽주의자로 지저분한 걸 싫어한다.
말하면서도 손수건으로 입가를 가리고 있다.
“주황은 공기가 좋지 않군. 싸그리 무너뜨리고 싶어.”
“좋을 수가 없지.”
마지막 6사단장이다.
육감적인 몸매의 여자다.
폭격사단, 다수의 적을 짧은 시간에 박살내는 걸 특기로 삼는 이들이다.
장신혜, 6사단장은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은 물론, 생명체가 하나도 살지 않은 불모의 땅.
공기 중의 산소가 희박해서 아머와 호흡기가 필수인 곳.
주황은 그런 곳이다.
과거, 보슬이 은하를 통일할 때, 전장이었던 곳.
그 이전에는 전장 경계선의 중심에 걸쳤던 곳이다.
한때는 무장을 불허하며 회담을 나누는 장소였으며.
보슬이 통일을 마음먹고 전쟁을 일으킨 순간, 가장 먼저 폭격과 파괴의 현장이 된 곳이다.
수 십 년 이상을 유독가스가 자리 했으며.
그 가스를 터트린 당사자가 장신혜 자신이었다.
파괴는 쉽지만 회복은 어려운 법이다.
그때의 흔적이 드문드문 남은 곳이다.
한 행성의 생명체를 싸그리 말려죽인 싸움이 일어난 곳이다.
환경 자체를 변화시킨 그 싸움은 이 행성의 생명력을 급속도로 마르게 했다.
“죽은 행성이니까.”
그리고 결국 이 행성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행성.
과거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보슬이 친히 이름을 부여한 행성 중 하나.
그에게는 통일전쟁의 시작을 알렸던 행성.
그런 곳이었다.
주황 행성이란 곳은.
“음.”
4사단장은 팔짱을 낀 채로 서 있다 입을 열었다.
“침입자 감지.”
천리안 부대는 탐색과 저격이 특기다.
“누구 ”
신이 난 브라드쵸프가 물었다.
유럽 출신의 거구 사단장은 단순한 만큼 명확한 의지를 갖고 있다.
싸우고 싶다.
말하지 않아도 알 만큼 몸으로 표현한다.
“기대하던 손님들인데, 숫자가 너무 적은데.”
“몇 명인데 ”
“많아야 일곱, 여덟 정도. 재밍이 있는데, 꽤 복잡한 형태의 방해 전파네.”
흥미로운 얼굴로 타오 윙이 말했다.
“너무 적은데.”
5사단장, 히로츠키가 말을 받는다.
이곳에 모인 병력은 대략 오천.
그것도 통일은하정부, 9은하와는 병력의 질이 비교도 안 된다.
콰웅.
그 사이, 한 줄기 빛이 레이더에 표시된 곳으로 쭉 뻗어갔다.
사단장들이 의식한 순간 펑하고 허공에 폭발이 일어난다.
“누구 ”
브라드쵸프가 묻는다.
“인사는 해야지. 손님인데.”
타오 윙이 말했다.
요격하겠다고 말한 걸 지킨 셈이다.
“흥.”
브라드쵸프가 콧방귀를 꼈다.
“생명신호는 그대론데 ”
6사단장, 장신혜가 레이더를 보고 말한다.
“그러게.”
타오가 답했다.
가면에 가려 진 얼굴 덕에 웃는 건지 실망한 건지 전혀 모르겠다.
“그럼 잡으러 가지.”
브라드쵸프가 결론을 내렸다.
어쨌든 이곳에 온 적을 전멸시키라는 명이다.
그리고 그 적이 왔다.
싸울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