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
200. 재능
검은 벼락.
벼락 200정은 곧 회수했다.
작은 쉽이 없으니, 쏴서 떨어뜨릴 것이 없다.
그 대신 세주는 큰 함선을 노렸다.
‘탄환 전환.’
-완료.
손발이 착착 맞는다.
미우나 고우나 함께 갖은 고난을 겪어 온 세주와 프로비던스다.
평소에 만들어 둔 압축 애비탄이다.
그것도 오닉스 에너지로 만든.
꽝!
거대한 벼락이 허공을 관통하고, 덩달아 적의 함선도 관통한다.
뻐-엉!
폭발하는 소리가 경쾌하기도 하다.
그렇게 몇 발을 쏴, 함선이 달려오는 걸 막는다.
공중을 제압당하면 답도 없다.
지상으로 놈들을 끌어내리고, 전면으로 싸움을 유도한다.
-함선 퇴각.
‘그럼 저건 놔두고.’
아직 쏴 죽일 적들은 널렸다.
여기서 함선에 모든 에너지와 애비탄을 쓸 생각은 없다.
소모되는 에너지가 꽤 크다.
그렇다고 무리한 건 아니다.
-레이더에 이상 감지.
프로비던스의 말이 들렸다.
아니, 그 이전에 세주의 감이, 에임 마스터 모드를 켰기에 비상할 정도로 날카로운 감각이, 그에게 경고했다.
누군가 자신을 겨누고 있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멀고, 묵직하다.
이 일격은 맞으면 치명상이다.
직감으로 구현된 이미지가 적의 모습을 그린다.
세주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긴 총신을 가진 라이플, 저격이다.
‘저격수 찾아. 몸을 숨긴 놈, 보이진 않지만 에너지 기류가 느껴지는 곳.’
-없어.
프로비던스는 단정했다.
세주의 파트너로서 프로비던스는 놀라지 않았다.
지금은 긴박한 순간이며, 단순한 일에 놀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비던스는 자신보다 적을 파악한 세주를 기억했다.
다중 연산 장치를 가진 프로비던스는 세주의 말에 답하며, 그 가능성을 따졌다.
인간이, 자신보다 빠르게 적을 파악할 수 있는가
어떤 초인도 불가능.
모드의 도움이 있다고 해도, 절대 불가다.
하지만 자신이 형이라 부르는 주인은 한다.
‘의심되는 곳은 ’
세주는 프로비던스를 놀리기 바쁘지만, 그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는다.
에너지 기류를 숨기는 종류의 능력을 갖춘 초인이라면 숨을 수 있다.
프로비던스의 정밀한 스캐닝도 못 찾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상한 지역 몇 개를 선정하는 건 무리가 없다.
거기에 세주는 제한도 걸었다.
‘나를 기준으로 먼 곳, 적군을 기준으로 가까운 곳.’
자신에겐 멀지만 적에겐 가까운 곳.
지상으로 내려 와 진군하는 놈들의 뒤다.
단숨에 연산을 끝낸 프로비던스다.
-맵에 포인트 찍었어.
총 네 군데.
“전면 막아.”
세주도 돕고 싶지만, 이 위협은 꽤 치명적이다.
알면서 맞아줄 이유가 없다.
그의 직감은 말했다.
배리어로 막을 수 없다는 걸.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 뿐이었다.
세주의 눈이 맵에 걸린 네 개의 포인트를 훑었다.
-적군 중 고위 에너지 컨트롤러 파악. 총 넷. 1급 에너지 컨트롤러.
아찔할 정도로 강한 놈들이다.
-그 중 하나 위치 파악 불가.
1급 에너지 컨트롤러 중 하나다.
오닉스 에너지를 거둔 세주는 감각을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과도한 에너지 운용은 감각을 둔하게 한다.
네 곳 중 하나, 1급 에너지 컨트롤러가 자신을 노린다.
피할 수 없고, 막을 수 없다면.
먼저 쏘면 그만이다.
위잉.
다시 오닉스 에너지를 끌어 모은다.
그리고 에임 마스터 모드에 있는 스킬 하나를 구동했다.
조준 사격.
정확한 포인트를 노리는 기술이다.
스킬에 따르는 부가 효과는 딱 둘.
하나는 상대를 놓치지 않는다.
조준하는 순간, 그 대상에 트레이싱 스킬이 붙는다.
어디로 움직여도 목표를 따라간다는 소리다.
두 번째 효과는 파괴력이다.
딱 한 발, 위협적인 한 명을 처리하기 위한 스킬이다.
당연하게도 파괴력의 증대는 필수였다.
우우우우웅!
세주의 몸에 타오르는 검은 에너지 오라가 치솟는다.
쿠구구구구!
땅이 떨리고 대기가 떨린다.
상대와 세주는 완벽히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한 쪽은 숨고, 한 쪽은 드러낸다.
-어디를 쏘는 거야
프로비던스가 물었다.
세주의 총구가 향한 곳은 그가 찍어준 곳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다.
네 군데 어디도 아니다.
호흡을 멈추고, 말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1초가 아깝다.
늦으면 먼저 피격 당한다.
꽝!
벼락이 울며 총신이 들린다.
반동으로 몸이 뒤로 밀린다.
훙!
적군 앞으로 강력한 검은 뇌전이 날아간다.
눈앞에서 갑자기 검은 빛이 번쩍이는 기분일 것이다.
빠르고 강력하다.
그의 총알은 그랬다.
동시에 휘었다.
커버링 기예 커브다.
훙! 휘어진 탄이 프로비던스가 겨눈 포인트 네 곳을 점과 점으로 이어 가로지른다.
그리고 세 번째 포인트에서.
꽈-앙!
폭음이 터졌다.
“이노오오옴!”
적군에서 거친 고함이 터졌다.
세주는 눈을 가늘게 떠, 자신의 탄환이 떨어진 지점을 살폈다.
너덜너덜하게 찢긴 인영이 옆으로 나가떨어지는 게 보였다.
‘죽었나 ’
-간신히 숨만 붙어 있어.
그래도 전투력은 전무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 누구도 양 팔과 다리가 날아간 상태에선 싸울 순 없다.
정말로 간신히 숨만 붙은 상태다.
‘방금, 좀 아찔했다, 그치 ’
-그런가
정작 프로비던스는 대수롭지 않다고 느꼈다.
네 곳의 포인트를 찍었을 때부터, 이 남자는 직감을 버렸다.
맞출 수 없으면, 네 곳 전부를 공격하면 된다.
하지만 대비한 적을 죽이려면 파괴력을 높여야 하니, 한 발로 승부를 봐야 하고.
연사는 늦다.
그는 방법을 바꿨다.
네 곳 전부를 단 한 발로 처리하는 거다.
휘며 적들 사이를 누빈 검은 벼락은 그걸 가능케 했다.
능력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가진 능력을 어떻게 쓰느냐.
에너지 컨트롤 능력, 비아냥거리는 능력을 떠나서.
그의 재능은 이거였다.
가진 걸 최대한의 효율로 쓰는 것, 활용 능력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진즉에 죽었을 거다.
반세주의 가장 큰 힘은 프로비던스도, 저격 능력도 아니었다.
더구나 가진 걸 쓴다는 건, 사람에게도 적용 되는 일이다.
1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그는 자신의 사람을 그보다 높은 곳에 있는 적과 대등하게 만들었다.
“어흥!”
기묘한 기합소리가 대기에 울렸다.
치용의 목소리였다.
*
1급 에너지 컨트롤러라는 건, 애초에 에너지 보유량이 다른 걸 말했다.
치용은 그동안 세주의 에너지 바도 얻어먹고, 에너지 주입량을 늘리기 위해 각고의 훈련을 했다.
단순하지만 무식한 방법이었다.
에너지를 단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쓰는 거다.
단 한 톨의 에너지도 없이 버티고, 다시 회복한다.
생각보다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유진이나 인준에 비하면 치용은 참을만 했다.
칼날에 위장을 뚫리는 것보다 나았고.
자신의 소중한 이가 죽는 것보다 나았으며.
무엇보다 적을 앞에 두고 무기력하게 물러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기에, 그는 만족했다.
쾅!
사이클롭스를 입은 채 달려드는 무식한 덩치다.
그 맞은 편, 브라드초프가 목표였다.
3사단장이자, 김산을 제외하고 가장 강력한 근력의 소유자.
꽝!
둘이 맞붙는 순간, 폭음이 터졌다.
한쪽은 손바닥 넓이의 긴 에너지 블레이드였고,
다른 한쪽은 그보다 세 배는 넓은 면을 가진 대검 형태의 에너지 블레이드다.
부딪침과 동시에 둘의 몸이 뒤로 밀려난다.
반발력을 견딘 치용은 오른발을 바닥에 찍었다.
쿵! 드드드드.
그래도 몇 미터는 훅 밀려났다.
“내 힘은 은하제일이다!”
브라드쵸프가 그렇게 외치며 다시 달려들었다.
힘뿐만 아니라 속도도 발군이다.
전신이 흐릿해진 순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치용이 반은 운으로 블레이드를 세웠다.
꽝!
다시 폭음이 터졌다.
다리가 붕 뜬다.
머리털 나고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어지간한 운동선수와도 힘으로 겨뤄, 져 본 적이 없었다.
에너지를 사용한 뒤로는 더욱 더.
치용의 에너지 보유량은 4급 초반.
사실상 맞붙는 건 자살 행위다.
다만, 그의 에너지 가속 법은 보유량보다 출력량을 절대적으로 높여준다.
현 상태는 적어도 2급 수준의 컨트롤러와 비슷했다.
덕분에 두 번의 공격에도 죽지 않았다.
어금니를 문 치용은 기합을 내지를 힘마저 모아서 다시 앞으로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꽝! 꽝!
둘의 싸움은 폭탄과 폭탄이 맞붙는 것 같았다.
공격을 서로 교환할 때마다, 주변에 있는 3사단 휘하 병사들이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7급 이하라면 근처에도 못 갈 정도로 격했다.
꽝! 꽝! 꽝! 꽝!
수 없이 부딪치고 또 부딪친다.
이 싸움은 치용에게 불리했다.
그는 임의로 에너지 출력량을 높였기에 지구력이 약하다.
더구나 상대는 눈썰미로 그 점도 파악했다.
“흥! 고작 편법으로, 나를 상대해 ”
비웃는 여유까지 보인다.
치용은 말이 없었다.
평소라면 도발이라도 해볼 법하지만.
그 또한 본능적으로 알았다.
상대는 숱한 사선을 넘어 온 군인, 가벼운 도발로 승세를 뒤집을 순 없었다.
겉으로 보면 절대적으로 불리한 싸움.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할 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이지만.
치용의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대련 상대는 언제나 반세주였다.
그는 리미트리스 급, 오닉스 에너지를 개방한 세주를 상대로 한 힘 싸움의 결과는 언제나 패배였다.
경험치는 치용을 색다른 세계로 인도했다.
그저 치고 박는 싸움이 아닌, 전술 형태의 전투.
그게 세주가 만든 김치용이란 병기였다.
쩡!
상대의 칼날을 옆면으로 막으며 비껴낸다.
카가가각!
불똥이 튐과 동시다.
서로의 시야가 가려진 순간, 치용은 그립을 쥔 손 하나를 등 뒤로 돌렸다.
꽈드득!
순간 왼팔이 비틀리는 느낌이다.
고작 흘리는 것으로도 힘에 부친다.
대신 기회를 잡았다.
땅!
어느새 꺼내든, 산탄총이 불을 뿜었다.
펑!
근접 거리에서 화력을 극대화한 산탄총이다.
배리어가 찢기는 건 물론이고.
가까스로 피한, 브라드쵸프의 어깨에 치명상을 남긴다.
팔 근육이 찢기고, 살점이 뭉텅이로 날아갔다.
“일단 한 방.”
치용이 중얼거렸다.
동시에 왼팔을 안으로 당겼다.
시큰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이 새끼가.”
브라드쵸프가 일그러진 미소를 보였다.
힘 싸움으로 유도하고 근거리 산탄으로 빈틈을 노린다.
힘 싸움이 아니라, 머리싸움이다.
쾅!
어깨 상처를 돌볼 새도 없이 달려드는 놈이다.
치용은 순간 생각했다.
‘김산이란 놈도 이놈처럼 단순하려나.’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그놈에게는 인준과 유진이 섞인 냄새가 난다.
짐승과도 같은 그의 본능에 잡히는 김산이란 인간은 적어도 자신보다 머리가 잘 돌아간다.
지금 놈처럼 단순하다면.
‘쉬울텐데.’
양손에 그립을 쥐고 앞으로 찔러 넣었다.
베기가 아닌 찌르기다.
같이 죽자고 덤비는 것처럼 보였다.
브라드쵸프는 아랑곳 않고 달려들었다.
그럴 것 같았다.
자신의 몸과 방어력, 그리고 손에 든 저 대검은 일격에 사람을 반으로 쪼개 놓을 테니.
지금 공격은 살을 주고 뼈를 깎는 게 아니라, 목숨을 주고 살을 베는 행위다.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는 대검을 보며, 번 업 상태의 치용은 커버링을 변환했다.
풀 업과 번 업은 기초 중의 기초다.
그 이후부터는 자신의 스타일대로 나뉜다.
치용을 보고, 다들 힘 위주의 형태로 갈 것을 예상했지만.
그는 다른 길을 택했다.
힘으로는 꺾을 수 없는 상대가 너무 많다.
단순함은 때로는 강점이지만, 약점이기도 했다.
‘윙 업.’
그의 선택은 속도였다.
세주의 오버 페이스에 버금가는 순간 가속.
훙.
가진 에너지의 빛이 등 뒤로 날개를 만든다.
순간, 시간의 틈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립은 놓아버렸다.
속도가 적의 허를 찌르는 첫 번째라면, 이건 두 번째다.
상위의 에너지 컨트롤러일수록, 자신의 무기에 애착이 강하다.
그렇기에 생기는 빈 틈.
쿠앙!
브라드쵸프의 대검이 어깨를 스친다.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동시에 또 다른 블레이드 그립을 쥔다.
검붉은 빛을 내뿜어 타는 칼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콴의 보물이다.
치용의 모습을 순간 놓친 고르바쵸프는 배리어를 여러 겹 펼쳤다.
당연한 반응이다.
치용이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방금 전, 산탄총에 일격을 당했으니 그거에 대한 대비다.
산전수전 다 겪은 군인이니까.
싸움의 프로니까.
더구나 근접전을 전문으로 삼는 놈이니, 거의 반사적으로 행했을 거다.
그리고 치용의 타는 칼이 놈을 사선으로 갈랐다.
검붉은 칼날은 뭐든 다 태운다.
주인의 의지가 함께한다면, 더불어 먹는 에너지 출력량이 높다면.
배리어를 자르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배리어는 사출무기를 막는 데 최적화 된 방어 기술.
고출력의 블레이드를 막을 방패는 절대 아니었다.
콰가가가가각!
경쾌한 소음이 터졌다.
화르륵!
동시에 불꽃이 솟는다.
“끄아아아악!”
불에 타 죽는 건, 가장 괴로운 방법 중 하나라 했다.
불길은 그의 안구를 태우고, 단숨에 몸을 집어 삼켰다.
짧은 비명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전신에 힘이 쪽 빠진다.
타는 칼을 회수하고, 자신의 그립을 쥔다.
사방이 잠시 고요에 잠겼다.
3사단장, 브라드쵸프 그의 별명은 철의 방벽이다.
그는 김산을 제외하고 은하 제일의 강력한 힘을 지닌 남자였다.
“뭘 봐 빨리 덤벼. 피곤하다.”
그런 이를 죽인 남자가 그들에게 입을 연다.
꼴깍.
누군가 침을 삼켰다.
싸움의 프로, 전투의 프로.
군인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군인도 사람, 겁에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타오나 히로츠키를 죽였다면 이해하겠지만.
브라드쵸프가 죽는 건, 그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죽여!”
누군가 외쳤다.
잠시 태풍의 눈처럼 조용했던 치용의 주변으로 적들이 몰려들었다.
‘무지 피곤하겠네.’
가진 에너지의 반 이상을 썼다.
에너지 가속은 무리다.
그는 조용히 칼 두 자루를 손에 쥐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어중이 떠중이에게 죽을 생각은 없었다.
‘무슨 생각이 있것지.’
또 속 편하게 세주에게 책임을 넘기기도 했다.
계속 싸우다보면 죽는다.
아무리 뛰어난 초인이라도 체력의 한계는 존재하니까.
고로, 이 싸움은 시작부터 배수진이다.
멍청한 치용도 그 정도는 알았다.
“오라! 오라!”
그는 생각을 접었다.
지금부터는 생각이 아니라 본능이 몸을 지배해야할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