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95화 (195/206)

# 195

195. 그런 이유

“어째서 늙으면 죽어야 하지 ”

“영원을 살 수는 없을까 ”

그의 최초의 관심은 하나였다.

불사.

죽지 않는 것.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면 그건 가슴이 아니라 뇌에 머무는 거겠지.”

기억이 인간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에너지가 축적되면 노화를 늦춘다.

그렇다고 해서 백 년 수명이 몇 백 년으로 늘어나는 건 아니다.

고작 몇 십 년, 잔병치레 없이 지내는 정도다.

무한한 에너지를 지녀도, 그게 전부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았다.

기억 속의 나 자신, 자아를 잃지 않는 법.

해답은 단순했다.

육체를 옮겨 타는 것.

과학의 발달이 그걸 가능하게 했다.

기술의 발달이 그걸 뒷받침 했다.

자신의 세포를 복제해서 또 다른 자신을 형성하고 그 안에 기억을 때려 박는다.

그럼 늙고 노쇠한 육체를 버리고 새로운 육체를 가질 수 있었다.

불노불사라는 과제의 종착점이었다.

*

“반쯤 미친 새끼네.”

테크룸에 들어와서 벌써 한나절 가까이 보슬의 연구실적을 살폈다.

그건 일기 같았다.

아니,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사람의 일대기였다.

어떻게 태어나고 자랐는지는 없지만, 그가 이룩한 업적이 그 안에 가득했다.

현재 9은하 기술력으로 꿈도 못 꿀, 상상 이상의 테크놀로지다.

첫 번째, 불노불사.

보슬은 그걸 자신의 은하 거주민과도 모두 공유했다.

통일은하정부에 어린아이와 노인은 없다.

그리고 이와 대치중인 원로원의 정보다.

그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가 그 안에 있었다.

처음에는 이 정보를 이용해서 반란 세력과 손을 잡을 생각이었지만.

늦은 감이 있었다.

이미 보슬의 군대에 소탕 당했고, 그 틈을 타, 알차고 재밌는 작전을 수행했으니 말이다.

불노불사 대신, 그들은 하나를 잃었다.

생식능력이다.

영원한 삶 대신 버린 것이다.

아니, 보슬이 잘랐다.

8은하 전부, 그 안에 사는 모든 종족을 거세한 거다.

그들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필요가 없었다.

통제 된 인구, 그 안에서 영원을 살아간다.

단순하게 봐서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다만, 원로원 중 하나가 남긴 말이 인상에 남았다.

어떤 종도 미래를 바라보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종은 도태되고 없어질 것이다.

그걸 막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지만, 주동자 포함 480명이 처형됐다.

“이런 건, 용케 안 지우고 놔뒀네.”

-누가 이걸 가져가서 본다고 생각이나 했겠어

안 했겠지.

세주도 자신 만큼 미친놈이 아니라면, 호랑이 아가리 같은 그곳에 들어갈 짓은 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도박같은 짓이다.

스스로 에너지를 봉인하고 위장 잠입한다.

걸리면 끝장이다.

본인 목숨도 끝장, 인류도 끝장.

“아아.”

대강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홀로그램 문서에 눈을 돌렸다.

불노불사를 해결한 보슬의 다음 과제는 평등이었다.

그는 과거의 역사를 통해 결론을 도출했다.

완벽한 군주, 힘에 의한 철권통치.

다만, 그 통치자의 자질이 뛰어나다면 해결 될 문제다.

죄는 엄히 벌하고, 상은 후하게 준다.

8은하를 통일하고 자원은 넘쳤다.

모든 인간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다.

보슬은 스스로 가장 높은 왕좌에 앉아 방임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반란은 힘으로 찍어 누르고, 가끔 얼굴이나 비추면 그만이었다.

그에게는 그럴 능력과 힘이 있었다.

“대단한 새끼네.”

솔직히 감탄이 나온다.

그는 한 번에 하나씩, 원하는 걸 끝냈다.

불노불사, 정치, 엘릭서.

엘릭서, 어떤 병이든 치료하는 약이라니.

듣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문제는 원로원이었다.

직접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원로원만 관리하는 거로 비리를 없앴지만.

그 원로원이 번번이 반란을 꿈꿨다.

“당연한 걸지도.”

-어떤 점이

“정체되는 걸 원하는 인간은 없어.”

그리고 지금 놈이 원하는 건 하나다.

뫼비우스의 띠, 그 블랙홀을 원한다는 건.

-시간.

프로비던스가 세주를 대신해 읊조렸다.

놈이 원하는 건 시간이다.

뫼비우스의 띠는 시간을 고정한다.

사이킥 에너지도, 노블에너지도, 어떤 과학 기술도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시간을 되돌린다는 건, 그런 일이었다.

*

아그작.

먹는 즐거움은 아무리 긴 시간을 살아도 변하지 않는다.

보슬은 짭짤한 과자를 입에 물었다.

‘내 연구기록이라면, 뭐에 쓸모가 있다고 ’

그것뿐이 아니다.

이제까지 명을 달리한, 기억만이 남은 역대 원로원의 메모리까지 가졌다.

차분히 상황을 살피고, 정보를 정리한다.

오랜 버릇 중 하나였다.

평소 가볍게 일을 처리하는 건, 모두 긴 시간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이기도 했다.

물론, 다른 이와 차원이 다른 경험치가 있으니 고민의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이번 경우가 특이한 거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당해보지 않았다.

더구나 저 반세주는 이미 자신의 손아귀에서 몇 번이나 되새김질 당한 놈이다.

자기 손에 죽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그 외에도 정말 많은 걸 봐왔다.

의외의 행동이고, 놀라운 반전이다.

‘무슨 짓을 하고 싶은 거냐 ’

더구나 자신에게 편지도 남겼다.

한 판 붙자. 남자답게.

“이건 그냥 미친놈인가.”

그런 의심이 들기도 한다.

1사단장, 김산은 그 메모를 보자마자 썩은 미소를 보였다.

상한 우유를 마시고 억지로 웃는 얼굴 같았다.

“다 죽여 버리겠습니다.”

충성심이 과하다.

“됐어. 한 판 붙자니, 붙지 뭐.”

보슬은 그렇게 결론 냈다.

고민해봤자 남는 게 없다.

그렇다면 시간 낭비다.

그에게도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이번 생은 여기서 끝내자.’

다른 건 그렇다고 쳐도, 의문점이 하나 남는다.

반세주란 놈은 어떻게 자신이 반란군을 진압하러 간 걸 알았을까

*

“싸울 겁니까 ”

신난 치용이 묻는다.

“딱 이번에 뽑은 병력만 데리고.”

“후아!”

어떤 이유든 일단 싸우면 좋은 거다.

그게 김치용이란 인간이다.

“야, 치용아.”

“네. 형님.”

단 둘이 있는 자리다. 엄밀히 말하자면 세주의 개인 공간, 그의 방이다.

치용은 가끔 별 일 없이 세주를 찾아오곤 했다.

마치, 자신이 본래 그 자리에 있는지 확인이라도 하러 오는 것 같다.

“넌 왜 나 따라 오냐 ”

원하면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

말하지 않았지만, 인준이나 유진도 알고 있다.

치용은 대답 대신 머리를 긁는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건 왜 물으십니까 ”

“그냥.”

긁적.

머리를 긁는 손을 멈추지 못하는 거 보니, 곤란한 거다.

어떤 점이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아니면

머리를 긁던 손을 내린다.

그리고 치용이 입을 열었다.

“그냥 그러기로 했습니다.”

“그냥 ”

어미를 올려 되묻자, 치용이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웃는 얼굴도 저러니, 인간 흉기란 별명이 더 없이 잘 어울린다.

“네. 설명 같은 건 무립니다. 그런 건 인준이 그 대머리 놈한테나 물어보십쇼.”

치용이 슥 하고 자리를 비운다.

“그냥이라.”

이유가 있을 거다.

그가 이곳에 있을 합당한 이유가.

치용도, 인준도, 유진도.

하물며 팽과 실버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팽은 세주에게 바라는 게 있다.

8은하 군주든, 콴이든, 메카니모스 든 그 누구에게서도 위협을 받지 않길 바란다.

그녀는 외계 인류의 안전을 원한다.

“그걸 왜 나한테 ”

[대장 밖에 못 해요]

묻는 말에, 그렇게 답한다.

팽은 그걸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다고 한다.

그 방향성이, 세주만을 향해서라는 게 아이러니긴 하다.

하지만 못 들어줄 건 없다.

실버의 이유도 알고 있다.

[안드로이드도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되는 겁니까 ]

그는 그저 삶을 원한다.

안드로이드도 살아도 되냐 묻는다.

물론 대답만을 바라는 건 아니다.

팽과 실버는 일맥상통이다.

팽은 무조건적으로 세주가 그걸 해주리라 믿을 뿐.

실버는 더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자신을 위협하는 적과 세주의 적이 동일하다고 판단했다.

‘아니, 같은 건가 ’

-무슨 생각해

‘필요한 생각.’

세주는 내친 김에 몸을 일으켰다.

각자의 이유, 그게 궁금해졌다.

한참 훈련과 휴식을 병행하는 병사를 찾아가 물었다.

“싸우다 죽고 싶냐 ”

고작 스물이나 된 것 같다.

피부가 까칠하긴 해도, 화장과 옷을 입혀 놓으면 꽤 예쁜 여자아이 일 듯하다.

아이다.

스물이면 세주의 입장에서는 아직 아이였다.

그녀의 볼에 깊게 파인 상처가 보였다.

선명하진 않지만, 쉽게 지워 질 흉터는 아니다.

에너지 컨트롤러가 되기 전에 당한 상처다.

오래된 상처는 세주도 지울 수 없다.

재생력을 활성화해서 치유력을 높이는 과정은 그 육체에 기억된 과거의 모습을 기초로 한다.

그래서 불가능하다.

“하사 김태영!”

세주를 알아 본 이가 목청이 찢어져라 관등성명을 외친다.

“대답은 ”

그녀의 눈빛이 세주를 직시한다.

“싸우다 죽고 싶습니다.”

싸우다 죽고 싶단다.

빼자.

이유가 뭐가 됐든, 죽을 각오를 한 사람은 이곳에 필요 없다.

“소속 ”

“골드 부대입니다.”

안나 휴이츠에게 배속 된 부대다.

때마침 안나가 옆으로 다가왔다.

대화를 들은 듯, 그녀가 세주를 향해 입을 연다.

“복수야.”

“복수 ”

안나에게 시선을 돌리지도 않은 채다.

김태영의 눈이 불꽃이라도 담은 듯, 뜨거웠다.

“무슨 복수 ”

“가족입니다.”

입을 여는 태영은 지금 화제를 좋아하는 편이 아닌 듯싶다.

그녀의 얼굴이 더없이 굳어져 있으니.

“…좋아. 하지만 죽자고 덤비지는 마.”

“그럼 어떻게 싸웁니까 ”

“살기 위해 싸워.”

강하게 말하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방향을 돌려 걸었다.

뒤 따라온 안나를 향해 물었다.

“벌써 그런 것도 알아 ”

개인 신상을 넘어, 사정까지 안다.

함께한지 고작해야 1년도 안 됐다.

“좋은 상관은 부하의 개인 컨디션까지 고려해. 거기에 나 혼자 수천을 책임지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야.”

“그래도.”

“여자는 여자끼리 통하는 것도 있고.”

세주가 안나를 다시 바라봤다.

“여자끼리 ”

“…그 말에 매우 불손함이 느껴지는데 ”

아니다.

따지면 불리한 화제다.

안나 휴이츠는 매력적인 여자지만, 그 내면은 매우 남자답다고 생각했다.

“나 굉장히 상냥하고 요리도 해.”

“그럴 때는 요리도 잘한다고 하는 거야.”

어리숙한 한국말이 벌써 능숙해졌다.

“잘은 못 해.”

솔직한 점을 칭찬해줘야 할까

“그래. 옳다. 네가 뭐든 옳다.”

안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대답 없이 세주의 손길을 느꼈다.

그대로 걸으며 지나가며 눈에 보이는 이들에게 이유를 묻는 일을 반복했다.

정유석 대위는 나라를 위해, 그리고 인류를 위해 싸우고 싶다고 한다.

그의 자긍심에 상처를 낼 순 없었다.

감덕진 상사는 죽은 아이에게 부끄러운 부모가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복수는 이미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도망가고, 모두가 도망가면 누가 남아 싸웁니까 ”

비무장지대에서 아이를 잃은 아버지의 말이다.

숀 테일리 소령은 안나의 팬이었다.

“제 생에 최고의 상관이자, 가장 매력적인 여성입니다. 여자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게 남자라는 동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보다는 존경에 가까운 눈이다.

세주는 처음에 앳된 얼굴의 김태영 하사를 되돌려 보내려고 했던 점이 오만이었다는 걸 알았다.

자신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고된 훈련을 겪고, 여기에 남은 이들은 전부 각자의 이유가 있다.

세주가 남기로 한 이유가 있듯.

모두, 목숨을 걸고 여기에 있는 거다.

스스로의 과거를 돌아봤다.

수 백 번의 회귀를 했다지만, 세주의 기억에는 없다.

그건 자신이 아니다.

‘그건 내가 아냐.’

새삼 또 남은, 누구보다 가까운 동료의 이유가 궁금했다.

‘브로.’

-가을 타  왜 그래  아니면 정말 약이 필요해  신경안정제 처방해 줘

미친 녀석.

‘넌 왜 싸우냐 ’

누구나 각자의 이유가 있다.

그런데 프로비던스의 이유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생각해보니, 이 녀석은 여전히 비밀이 많다.

-알아서 뭐 하게

대답을 얌전하게 해준다면, 그건 프로비던스가 아니다.

‘그래서 이유는 ’

-없어. 나는 그런 거.

프로비던스는 대답을 회피했다.

묵묵히 번쩍이는 렌즈의 빛을 본 세주는 더 묻지 않았다.

그 누구라도, 대답하고 싶지 않은 일은 있다.

방금 배운 참이다.

김태영 하사를 통해서 말이다.

그녀는 가족의 복수를 위해서 이곳에 있다.

그리고 세주는 그 내막을 자세히 물을 수 없었다.

프로비던스에게도 이유가 있을 거다.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이유가 아니라도.

적어도 세주는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이유.

웨에에엥!

생각의 끝은 사이렌이다.

[대기권 이내, 이상 인류 감지]

외계 인류 언어다.

그들에게 맡겨 진 임무였다.

단순한 프로세스 시스템이었다.

수작업이지만, 남는 인력 어디다 쓸까.

“야, 별동대 임무다!”

세주가 세차게 외쳤다.

어디선가 고개를 삐죽 내민 유진이 달려왔다.

“제 일이네요.”

“침입자 발견!”

“왜 신나 보여요 ”

“그냥. 먼 길 떠나는 애들, 웃으며 인사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나 죽으러 가요 ”

“설마.”

“사람 되게 찝찝하게 하네요.”

“그런 거 아냐. 자식아.”

고민은 짧고, 삶은 즐겁게.

세주가 싸우는 이유는 하나다.

즐겁게 살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에 있는 누구의 죽어선 안 된다.

김태영 하사도, 정유석 대위도, 감덕진 상사도, 숀 소령, 치용, 인준, 유진, 팽, 실버, 호필, 기주, 장왕  그들 모두가 행복하길 바란다.

그게 세주의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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