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96화 (196/206)

# 196

196. 소심, 쪼잔.

전쟁과 훈련을 거듭하다보니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았다.

가끔 동기 중에 마약에 손을 대는 이들도 있었다.

외계인의 피로 만든 각성제도 유행이다.

외계와의 전쟁은 문물의 발전을 앞당겼고, 그중에서도 뇌와 몸에 손상이 미미한 마약이 미친 듯 쏟아졌다.

물론 그 중에 반은 불량품이었다.

잘못 먹으면 뇌가 곤죽이 돼서 식물인간이 된다.

종종 그런 소식이 들렸다.

마크 드웰은 마약에 손대지 않은 자신을 칭찬했다.

훈련을 거듭하다 가끔 도시 치안 관리나 휴가를 나오면 꿀맛 같았다.

“역시, 공기는 사제 공기지.”

빌어먹을 군 생활이라고는 할 것도 없다.

그는 싸우기 위해 그곳에 갔으며, 자신만의 이유를 갖고 그곳에서 버티는 중이다.

다만, 그래도 휴가나 외부에서 하는 근무는 돈을 주고라도 사고 싶다.

정유진 산하, 치료근위부대.

일명 치근대.

치근대에만 있는 도시 내 순찰 임무다.

돌격대나 다른 부대로 갔다면, 택도 없을 일이다.

‘치근대라니, 누가 지은 이름인지, 진짜 만나면 한 대 때려주고 싶다.’

마치 누군가에게 치근대는 것 같은 말이다.

거기에 유진의 여성편력이 알려져, 그 이름이 더 없이 어울린다는 평이다.

이름을 지은 건, 물론 반세주다.

마크가 그를 만날 일도 거의 없고, 때릴 일은 더더욱 없는 존재다.

“마크, 떡볶이 먹어 봤어 ”

같은 순찰조의 말이다.

박상천, 작은 키와 통통한 몸 덕에 볼링공이라는 별명이 붙은 친구다.

“물론.”

“넌 ”

상천이 바로 옆의 여자를 향해 묻는다.

짧은 검은 머리에 갈색 피부, 티셸 케레케스라는 이름의 이스라엘인이다.

여기 오기 전 모사드 소속이었다는 소문이 도는 여자다.

차가운 성격에 가까이 하기 어렵다.

“안 먹어.”

역시나다.

마크는 상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키 차이가 있어, 위에서 내리 누르는 모양새다.

하지만 둘 모두 보는 눈을 의식하는 타입은 아니다.

“일은 일이야. 집중해.”

티셸이 말했다.

벌써 1년, 누군가의 노래처럼 시간은 쏜살 같이 지나갔다.

마크는 꽤 성실한 성격이지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늘은 높고, 날씨는 좋다.

한국의 가을은 본국만큼이나 좋았다.

가로수의 단풍잎을 보며, 마크는 딱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가로수가 많아서 가로수길이구나!”

한국 사람들이 이곳을 그렇게 부른다고 들었다.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고, 분위기 좋은 카페가 많이 보인다.

왕왕!

가끔 애완견을 데리고 돌아다니는 사람까지.

“…그런가 ”

마크의 말을 들은 상천이 진짜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떡볶이는 ”

“내가, 기가 막힌 맛집을 알지.”

상천이 그를 데리고 움직였다.

마크가 슬쩍 뒤를 돌아봤다.

티셸이 둘을 따랐다.

어쨌든 셋은 팀이다.

그리고 안 먹는다고 세차게 거절한 티셸은 생각보다 먹는 걸 밝힌다.

맛있다고 들이밀면, 차마 거절은 못 할 거다.

그렇게 몇 걸음 걷기도 전이다.

귀 밑에 붙여 놓은 부착형 전파송신장치, 즉 개인통신장비로 급한 정보가 송신됐다.

[현 시간 부로 1급 경계 태세 발동. 가까운 지역의 쉘터로 시민 대피 요망]

이런 명령이 나오는 이유는 하나고, 마크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둘도 물론이고.

상천이 홀로그램 맵을 열고 입을 연다.

“쉘터는 여기서 2,500m 서남지점.”

“대피 완료까지 40분.”

티셸의 말이 이어진다.

패닉은 사양이다.

주변 치안을 담당한 경찰들도 출동하고 그들은 곧 쉘터로 시민들을 이끌었다.

*

9은하의 외계 인류는 몇 십 년을 넘게 숨고 도망 다니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숨는 데 능했고, 적을 먼저 발견하는 재주가 탁월했다.

무력화 시키고 도망가기 위해 개발한 게 EMP 쇼크였고.

적을 먼저 발견하기 위해 탐지 능력을 개발하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세주는 그 사실을 알고 그들에게 지구로 이주를 권유함과 동시에 방위 임무의 일부를 맡겼다.

들어오는 적을 탐지하는 일이다.

아프리카 대초원에 자리를 잡은 그들은 제 할 일을 잘 해냈다.

유진을 내보낸 세주는 손을 놔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유진이 만든 치근대는 꽤 쓸 만 했으니까.

거기에 나기주와 장왕도 나갔다.

“격멸 완료.”

유진을 통해 직통으로 통신이 들어왔다.

나기주도 장왕도 어렵지 않게 격퇴할 거다.

그들의 기준으로 6급 이상, 고급 에너지 컨트롤러만 아니면 된다.

‘체크하고 있지 ’

지구에 그런 고위 에너지 사용자가 나타난다면 프로비던스가 찾을 거다.

처음부터 모든 사람을 지킬 순 없다.

세주는 지키는 것보다 들어오는 적을 찾아 없애는 쪽을 택했다.

그게 더 빠르고 편리한 방법이었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한은.

불안하게 만들기는.

‘놓치면 욕할 거다.’

-해. 평소에는 안 하는 것처럼 구네.

‘아주 심한 욕을 할 건데 ’

-아니, 그러니까 평소에는 심한 욕 안 해

그보다 심한 욕이 무엇이 있나 샘플을 지금 막 들려주려던 참이다.

지직.

프로비던스가 홀로그램 빛을 뿜어낸다.

-고위 에너지 컨트롤러 감지.

-위치 강남 가로수길.

감지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였다.

“팽!”

나가자마자 외치니, 그녀가 어디선가 답한다.

[응! 대장!]

“수송선!”

그리고 뛰었다.

-에너지 등급 확인 불가.

‘뭐라는 거야 ’

-내 눈으로도 측정 안 된다고.

‘염병.’

어느 놈이 온 거냐.

자신이 했던 짓을 적도 못 하리란 법은 없다.

물론 그 대비도 했다.

프로비던스와 외계 인류가 괜히 이곳에서 고되게 일을 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상정한 최악의 사태가 일어났다.

“엑셀 밟아!”

실제로 팽이 조종하는 비틀 쉽에 엑셀은 없다.

[그런 건 없어!]

“관용적 표현이다!”

부웅!

비틀 쉽이 뜨고 곧장 함선 밖으로 뛰쳐나갔다.

*

마크 드웰은 잘린 팔을 지혈하며 앞을 바라봤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

다쳤다.

티셸 케레케스는 셋 중 최고의 전투 능력을 지녔다.

그녀는 저 한 구석에 구겨져 처 박혀 있다.

바로 옆, 상찬은 피를 게워내며 바닥에 엎어져 고개를 든다.

“도망 가.”

그가 읊조린다.

어딜.

마크는 물러나고 싶은 마음을 다잡았다.

인간은 누구나 공포를 느낀다.

직업이 군인이 아니었다면 그는 일찌감치 도망갔을 거다.

아닌 게 아니라, 경찰병력은 이미 한참이나 물러났다.

저 뒤로 바리케이드를 만든 이들이다.

‘저게 소용이나 있으려나 ’

마크는 기억을 더듬었다.

처음, 적을 발견했고 교전을 시작했다.

원군을 부를 틈도 없었다.

유진에게 배운 대로, 가혹할 정도로 구른 대가는 확실했다.

그의 블레이드가 적의 팔을 잘랐고, 티셸은 라이플을 갈겨 다른 적 하나를 벌집으로 만들었다.

순간적인 판단과 전투 센스는 최상의 대처능력이었다.

둘을 무너뜨린 순간이었다.

섬뜩한 감각이 목 뒤를 때렸다.

직감, 또는 육감이라 부르는 것이었다.

마크는 몸을 비틀었고, 팔을 잃었다.

상찬은 배에 구멍이 났고 티셸은 생사를 알 수 없다.

공격  보이지 않았다.

이전과 달라진 건 하나 뿐이었다.

사람이다.

처음 보는 이가 헐렁한 바지를 입은 채, 물끄러미 그를 바라본다.

“여긴 좀 춥네.”

“군주님!”

그를 본 적군이 희색이 만연해 외쳤다.

“둘이나 당했어 ”

“생각보다 전투능력이 높고 은신을 꿰뚫어보는 이상한 장치를 갖고 있습니다.”

적과의 싸움이 쉬웠던 이유를 저 둘이 말한다.

외계 인류의 선물이었다.

인간이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감각인 육감을 이용한 탐지기다.

식스센스 마인이라는 것으로, 바닥에 심어두면 주변의 모든 생명체를 탐지한다.

퉁. 펑!

또 무슨 짓을 한 건지.

보이지도 않는데 바닥에 깔아 둔 정사각형의 기계, 식스센스 마인이 터졌다.

“니들은 은밀 기동이 목적이니까, 본래 정보수집이나 하는 게 맞는 거야. 그렇다고 스스로를 너무 비하하진 말고.”

여유 있게 말하며 어깨를 툭툭 두드린 남자가 다가왔다.

마크가 남은 팔을 들었다.

우웅!

그립을 꺼내 블레이드를 뽑는다.

푸른 칼날이 주변의 빛을 반사했다.

“싸우게 ”

그가 물었다.

대답은 아니오가 맞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크는 답 대신 칼날을 들이밀었다.

인류를 멸살하려는 적이다.

협상은 없다.

“용감하다고 해야 하니  아니면 멍청하다고 해야 하니 ”

덜덜덜.

공기가 변한다.

적은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바라만 보는데 몸이 알아서 떨린다.

공포가 물밀 듯이 밀려온다.

마크는 혀를 깨물었다.

통증과 피 맛이 입안을 감돌자,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만의 기도를 읊조렸다.

“반세주 개자식.”

자신이 죽어도 그라면 인류를 구하리라.

자신과 동료, 인류의 반이 죽어도 그라면 복수를 하리라.

그가 봐온 반세주라면 그럴 것이다.

“뭐  뭔 개자식 ”

모기 소리만 하게 중얼거린 걸 들은 적이 피식 웃었다.

“뒤지라고.”

마크는 앞으로 성큼 뛰었다.

공포를 이겨낸 그의 몸은 그 어느 때보다 활력이 넘쳤다.

팔 하나를 잃은 것쯤은 아무렇지 않았다.

주변 시간이 느려지는 착각이 들고, 칼날이 천천히 적의 목을 노려 날아간다.

‘내가 잡는다.’

사아아악.

그제야 마크는 볼 수 있었다.

적의 공격을.

팅.

손가락이다.

엄지를 튕긴 적의 손가락 끝에서 빛이 흘렀다.

그리고 그 빛이 그대로 쇄도한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었다.

아니, 지금 어떤 깨달음으로 에너지를 운용하지 않았다면 또 못 봤을 거다.

동시에 마크는 깨달았다.

‘못 피해.’

그렇다면 최소한 같이 죽자.

회피 대신 휘두르는 팔에 에너지를 들입다 주입했다.

우웅!

힘을 받은 블레이드가 폭주하며 칼날의 형태를 잃고 불길을 뿜었다.

그리고 적의 얼굴을 확인한 마크는 절망을 느꼈다.

그는 무료한 얼굴로 반대쪽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 손날을 따라 또 다른 빛이 뿜어졌고, 그 빛은 아무렇지 않게 마크의 칼날을 쪼개고 분쇄했다.

‘젠장.’

주마등이 스친다.

죽음을 직감한 순간이다.

꽝!

폭음이 터졌다.

퍽!

무언가 머리를 때리고 왼쪽 허벅지 뒤를 강타했다.

극심한 통증이 뱃속에서부터 밀려왔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두어바퀴 돈 뒤에야.

“우웩!”

피를 토했다.

“미친놈.”

상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나 살았냐 ”

자기도 모르게 영어로 물었다.

상천은 답하지 않았다.

그는 앞을 주시했다.

마크의 시선도 그를 따라갔다.

그 앞, 적이 뿜어낸 이상한 빛줄기 두 개를 막아낸 남자의 등이 보인다.

“야, 아프냐  미안. 급했다.”

“…개자식 ”

그 소리에 그가 미간을 가볍게 찌푸린다.

“마크!”

옆에서 상찬이 정신 차리라고 그를 부르자, 마크가 말을 바꿨다.

“아, 반세주 대장님!”

그가 환희에 차 외치다 다시 통증에 몸을 움츠렸다.

아랫배가 심히 아프다.

“나 어떻게 된 거냐 ”

“몰라, 나도. 그냥 대장님이 오시더니 네가 튕겨 나왔어. 발로 찬 것 같긴 하더라.”

상천은 눈이 좋다.

셋 중에서 유일하게 저격병으로 재능을 보인 이이기도 했다.

무지막지하게 아프다고 생각했더니 차였구나.

“넌 치사하게 대장이 직접 오냐 ”

그 반세주가 그들을 뒤에 두고 입을 연다.

마크는 현재 이곳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신문에서 오늘 운수 터진 날이라고 하더니.’

살았다.

*

세주는 급히 적이 나타난 곳으로 날아갔다.

[도착!]

팽이 외친 순간, 이미 비틀 쉽에 앉아 있지도 않았다.

그가 밑을 향해 쇄도했다.

-죽는다.

프로비던스가 말했다.

누구를 지칭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블레이드를 뽑으며 휘두르는 아군, 그리고 그 앞에 선 놈.

김보슬.

“예쁜 이름 변태 새끼가!”

전신에 에너지가 차오르며 단숨에 풀 업, 번 업 상태를 지나친다.

커버링 기예 그 이후다.

광체, 라이트 벨로시티.

전신에 빛이 머무는 순간, 공간은 제약이 될 수 없었다.

과거 신선의 축지법이라도 쓰는 듯 공간을 접고, 적의 코앞에 도달한다.

-그대로 차면 형이 죽이는 격이고!

‘알아.’

적과 아군의 틈 사이에서 급히 힘을 빼고, 번 업 상태로 변환.

발로 마크를 걷어찬다.

펑!

폭음과 함께 그가 뒤로 날아간다.

그리고 동시에 보슬이 뿜어 낸 두 개의 빛을 포착하고 손목을 흔든다.

그립 두 개가 잡히고, 작은 단검 형태의 블레이드를 뽑아낸다.

진청 빛의 칼날이 빛 두 개를 마주쳐 때렸다.

꽈-앙!

마크의 입장에서 폭음이 먼저였지만, 실제로는 세주가 찬 게 먼저였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그건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과 같았다.

한숨을 돌린 세주다.

“…개자식 ”

뒤에서 중사가 중얼거린다.

이 일이 끝나면 기필코 저 자식을 기억해 두리라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살려줬더니, 개자식이란다.

“반세주 대장님!”

늦었어. 이 새끼야.

살려줬더니, 개자식.

정확하게 기억한 세주다.

-소심하고 쪼잔 해.

‘언제 내가 나보고 대범하다고 하디 ’

그런 적 없다.

세주는 자신이 쪼잔 한 것을 인정하는 쿨한 남자다.

-…싸우기나 하자.

그 앞, 보슬이 즐겁다는 생글생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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