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176화 (176/183)

#176

끝을 향해 (4) - 본편完

그 시각 윌리엄은 CCTV를 통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총소리가 들리자마자 리처드는 아버지인 아이작을 데리고 피신했다. 아마 준비해둔 별장으로 납치하려는 계획이겠지.

하지만 윌리엄은 리처드에게 말해준 작전을 이대로 보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시작해.”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리처드의 경호원 중 일부가 서로에게 총을 쏘기 시작했다. 사전에 윌리엄이 심어둔 사람이었다. 어느덧 리처드의 사람들은 모조리 총에 맞아 쓰러지고 그들은 아이작을 데리고 갔다.

리처드는 손을 쓰지 못하고 아이작이 그들에게 납치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혼자남은 리처드는 분통을 터뜨리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동시에 윌리엄의 휴대폰이 울렸다. 윌리엄은 발신인을 보더니 피식 웃고는 수신거절 버튼을 눌렀다.

“순진하기는.”

리처드는 아직 미숙했다. 노회한 아이작 같았다면 자신과 손을 잡을 때부터 이중, 삼중으로 대비를 해놓았을 텐데.

겨우 경호원 몇 명 심어두는 것으로 모든 일이 깔끔하게 해결되니 편했다.

이제 리처드 따위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이 작전의 목표는 리처드를 가주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작을 자신의 손에 넣는 것이었다.

아이작은 강한 사람이지만, 윌리엄에게는 그를 굴복시킬 방법이 수도 없이 많았다.

“돌아다닐 필요는 없으니까 일단 다리부터 자르고 시작해야겠군.”

아이작을 이용해서 로스차일드 가문을 흡수하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어떻게 재기할지, 어떤 식으로 이건우에게 보복할지.

머릿속에 계획이 차근차근 들어섰다.

조금 기다리자 납치된 아이작이 그 앞으로 배달되었다. 반듯하게 포마드로 넘기던 머리칼은 흐트러져 있었고, 팔다리가 묶인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윌리엄이 과장되게 팔을 벌렸다.

“오, 나의 친구 아이작.”

[···윌리엄.]

윌리엄이 그를 쏘아보는 아이작을 보며 빙글빙글 웃었다.

“그러게 진즉 내 말을 듣지 그랬나. 그렇지 않으면 이런 험한 꼴을 보지 않아도 됐을 텐데.”

윌리엄은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작은 그가 다루던 말 중에서 유난히 말을 듣지 않았다. 그토록 애먹이던 사람이 이렇게 자신 아래에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저열한 쾌감이 올라왔다.

작전은 성공했다. 아이작이 자신의 손에 들어온 이상 천하의 이건우라도 더이상 손을 쓸 수 없다.

이제 아이작을 통해서 로스차일드 가문만 장악한다면, 언젠가 윌리엄은 세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윌리엄은 마치 자비라도 베푼다는 듯 아이작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로스차일드 가문을 완전히 장악할 때까지는 네가 필요하니까 죽이지는 않겠다.”

[그것참 눈물 나게 고맙군. 그런데 어쩌나, 나는 너를 죽일 생각인데.]

아이작의 목소리에서 묻어나오는 빈정거림.

윌리엄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책상 위에 있는 총을 집어들고 아이작의 머리를 툭툭 쳤다.

“뭐? 나를 죽여? 지금 내 앞에 무릎이나 꿇고있는 주제에 허세가 너무 심하군. 아, 이건우를 믿는 건가.”

[이건우가 올 필요도 없어. 너는 내 손으로 끝장내주지.]

윌리엄은 좋아졌던 기분이 삽시간에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아이작의 당당한 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윌리엄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래. 이래야 꺾는 맛이 나지. 그럼 일단 다리부터 시작해볼까.”

윌리엄은 아이작의 다리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재미없군. 연극은 여기서 끝내지.]

어딘가 달라진 듯한 아이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

연극이라니?

아이작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윌리엄이 멈칫했고, 동시에 양옆에 있던 사람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당장 죽지는 않았지만 팔에 구멍 하나씩은 나 있는 게 마치 총알이라도 관통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총을 발사한 소리도, 흔적도 없었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윌리엄은 반사적으로 총을 발사했다. 하지만,

카앙!

당연히 무릎을 관통했어야 할 총알은 쇳소리를 내며 튕겨나갔다. 윌리엄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 아니···. 이게 무슨.”

아이작은 피식 웃으며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를 속박하고 있던 끈이 투두둑 끊어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윌리엄은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뭐야! 무슨 짓을 하는 거야!”

탕 타앙 탕탕

그는 발작적으로 총을 쏴댔지만 아이작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못했다.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며 그저 튕겨나갔다.

철컥철컥

윌리엄은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겼지만 어느새 텅 빈 탄창에서는 철컥대는 소리만이 났다.

동시에 가까이 다가온 아이작이 윌리엄의 손목을 잡았다. 그는 윌리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소용없어.]

이제는 완전히 바뀐 목소리. 아이작의 목소리는 여성스러운 캐리 교수의 것으로 이미 돌아와 있었다.

윌리엄은 그 순간 전율했다.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연극에 놀아난 것은 본인이라는 것을.

밖에 대기하고 있는 브람스 그룹도 아마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 작전은 시작부터 실패한 것이었다.

윌리엄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 아이작이 아니군.”

[맞아. 난 아이작이 아니야.]

그리고 윌리엄은 본능적으로 상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가 이건우로부터 그토록 뺏고 싶어했던,

“캐리온.”

그와 동시에 별장의 문이 열렸다.

끼이익

윌리엄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문 뒤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와 검은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았다.

뚜벅뚜벅

걸음 소리가 다가올수록 실루엣이 선명해졌다.

“이건우.”

나는 윌리엄을 향해 손을 흔들어줬다.

“이야,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너!”

윌리엄이 나에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캐리온이 순식간에 그를 제압해서 무릎 꿇렸다. 윌리엄은 분노와 수치스러움이 뒤섞인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나를 죽인 놈의 발밑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마침내 내 아래에 꿇렸다.

그를 보니 처음 이건우의 몸에 들어왔던 일이 떠올랐다.

캐리온과 함께 넘어온 건 천운이었다. 지난 생에서 빛을 보지 못했던 캐리온은, 재벌가 장손이라는 지위와 시너지를 내며 결국 나를 세계적인 사업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렇다고 딱히 윌리엄에게 고마운 마음이 드는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그는 나를 죽인 원수일 뿐이었다.

나는 윌리엄에게 다가갔다. 이제 나와 그 사이에 얽힌 원한의 매듭을 풀어낼 때가 왔다.

“캐리온을 만든 개발자. 누군지 기억나나?”

윌리엄은 코웃음을 쳤다.

“그 개발자가 뭐가 중요하다고. 내가 죽인 놈이 몇인데 그까짓 개발자?”

나는 미소지었다.

“글쎄, 기억해야 할걸.”

동시에 윌리엄의 눈앞이 암전되었다.

*

윌리엄은 눈을 떴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한 어둠. 축축한 흙냄새가 올라왔다. 손가락을 움직이자 온몸의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어디지?’

가만히 있자 어렴풋하게 시야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주변에 보이는 것은 텅 빈 공터뿐, 다행히 이건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도망치자.

사방이 뻥 뚫린 공터라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지만 그는 일단 어디로라도 걸음을 옮겼다.

여기에 더 남아있다가는 이건우가 자신을 죽이러 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몸을 옥죄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식은땀이 나며 숨이 가빠왔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을 죽여왔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살인이란 그저 목적을 이루는 수단에 불과할 뿐, 언제나 수십 겹의 방패를 두르고 사는 그에게 죽음은 먼 말이었다.

하지만 이건우에 의해 그 방패들이 하나하나 벗겨지고, 이제는 몸뚱이 하나만을 남긴 채 열심히 도망가고 있을 뿐이었다.

죽음 앞에서, 윌리엄은 초라해졌다.

빠른 걸음은 이내 달음박질이 되었고, 그렇게 윌리엄의 눈앞에 공터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윌리엄이 기쁜 표정으로 발을 내딛으려 할 때,

타앙!

총성이 울렸다. 윌리엄은 저도 모르게 우뚝 섰다. 총알은 바로 그의 발 앞에 박혀 있었다. 만약 조금만 더 앞으로 갔다면 총에 맞아 죽었을지도 모른다.

윌리엄은 총알이 날아온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하늘 위에는 수십 기의 드론이 원을 그리며 포위망을 이루는 모습을.

“으으···.”

머리로는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드론의 총구가 일제히 그를 향해 겨누어졌다. 한 발짝이라도 더 벗어나면 죽여버리겠다는 듯이. 그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또 놈의 짓이다.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은 놈.

이건우가 분명히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터를 휘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윌리엄은 악에 받쳐 소리 질렀다.

“이건우!!!!!!!”

그 순간이었다.

번쩍

윌리엄의 뒤편에서 강렬한 헤드라이트가 켜지며 공터를 환하게 비추었다.

“윽.”

갑작스러운 불빛에 윌리엄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손틈 사이로 비쳐오는 빛살 속에서 볼 수 있었다.

한가운데에 있는 푸른색 페라리.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탄 이건우를.

그제야 윌리엄은 이건우가 마지막으로 한 말을 떠올렸다.

- 기억해야할 거야.

“미친 새끼.”

이건우가 어떤 짓을 할지 짐작이 갔다. 평소 윌리엄이 잘 사용해 먹던 방법이었다.

부와아앙!

차에 탄 이건우가 액셀을 꽉 밟았다.

그와 동시에 윌리엄은 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있던 자리를 페라리가 쓸고 지나갔다. 윌리엄은 이를 악물었다.

그래. 기억났다. 그가 일년 전에 캐리온을 만들어낸 개발자를 죽여버린 사실을. 당시에도 요원을 보내 페라리로 치어죽이라고 했었지.

그때 이건우가 페달을 밟으며 그대로 후진을 했다. 윌리엄이 있는 방향이었다.

끼이이이익

타이어가 마찰하는 소리가 귀를 찢었다. 윌리엄은 그대로 몸을 굴려 피했다. 손바닥과 무릎이 다 까지고 흙먼지가 입안으로 들어왔지만 그런 걸 느낄 새조차 없었다.

“으아아아!”

공포가 턱끝까지 차올랐다. 피하는 게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치여 죽었을 거다. 이건우는 진심으로 자신을 죽일 생각이었다.

그것도 그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마치 사냥감을 사냥하듯 이건우는 윌리엄을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윌리엄은 무작정 달렸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뛰고, 피하고, 또 뛰었다.

그러다, 경계선에 도달했다.

타앙!

그가 선을 넘으려는 순간 드론이 귀신같이 총을 쏘아 저지했다.

“제기랄!”

윌리엄은 뒤돌아섰다.

후욱 후욱

입에서 거친 숨이 새어나왔다. 뒤에는 드론이, 앞에는 이건우가. 도망칠 수 없다.

유리창 사이로 이건우와 눈이 마주쳤다. 윌리엄은 문득 한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누가 무의식에 손을 넣어 잡아꺼내듯 불현듯 떠올랐다.

“윤환.”

그 순간, 강렬한 헤드라이트가 윌리엄을 덮쳤다.

*

“헉!”

윌리엄은 눈을 떴다. 마지막에 본 광경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그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던 이건우는 그가 이름을 떠올리자마자 멈춰섰다. 그리고 따끔거리는 느낌과 함께 윌리엄은 기절했었다.

철컹

그때 묵직한 쇳소리가 들려왔다. 철문에 달린 무거운 자물쇠를 돌리는 소리였다. 윌리엄은 그제야 눈을 돌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작은 공간이었다. 겉면에 녹슨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쇠 냄새가 진동하는 작은 컨테이너. 그는 그곳에서 팔다리를 모두 묶인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

윌리엄은 몸부림치며 팔다리를 흔들었다.

“제길! 이게 어떻게 된거야!”

끼이이익

“그런다고 수갑이 풀리지는 않을텐데.”

그 타이밍에 철문이 열리며 이건우가 들어왔다. 윌리엄은 저도 모르게 주춤 물러났다가, 이내 자기가 무슨 짓을 한지 깨달았다.

그는 이건우가 무서워서 뒤로 피하려고 한 것이다.

차를 몰며 광기에 차 그를 사냥하듯 몰아붙이는 모습에, 윌리엄은 모욕보다는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마치 자신을 죽이려드는 포식자 같았다. 이제 이건우와 윌리엄은 그런 관계였고, 윌리엄은 그에게서 본능적인 껄끄러움과 공포를 느꼈다.

이건우는 그런 윌리엄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내가 무섭나?”

윌리엄은 분한 듯이 이를 갈았다.

“···나를 왜 살려둔거지?”

“재미있잖아. 내 손아귀를 피해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 꽤 인상깊었어.”

그렇게 말하며 이건우는 리모컨을 눌러 구석에 놓인 TV를 틀었다. 화면이 켜지며 윌리엄이 나왔다.

멀끔한 모습으로 기자회견장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윌리엄이.

진짜 윌리엄은 입을 벌리며 화면에서 나오는 가짜 윌리엄을 쳐다보았다. 이건우가 말했다.

“어때? 감쪽같지?”

“설마···.”

“어 맞아. 캐리온이야. 잘 봐. 앞으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테니까.”

이건우의 목소리에는 즐겁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윌리엄은 두려워졌다. 화면에 나오는 가짜가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윌리엄으로 변장한 캐리온이 기자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며 진짜 윌리엄이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제발. 여기서 멈춰.”

하지만 이건우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티비 화면을 바라볼 뿐이었다.

윌리엄은 저도 모르게 손을 꽉 쥐었다. 그의 손은 어느새 땀으로 흥건해졌다.

하지만 저놈의 얼굴만 보면 입이 열리지 않았다.

포식자 앞에 선 초식동물이 딱 굳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듯이, 지금 윌리엄이 그랬다. 그저 다가오는 최후를 무방비하게 받아들이는 것뿐.

그리고 캐리온이 담담한 어조로 지금까지 저지른 악행을 읊었다.

- 중국에서 인체실험을 해서 포비드를 퍼뜨린 것부터, KW 데이터센터에 인체폭탄을 보낸 것까지. 모두 제가 한 일입니다. 그 이외에도···.

“안돼!!!!!!”

윌리엄이 튀어나갈 듯이 발악했다. 하지만 사지를 구속한 수갑은 그를 억제했고, 그저 침대 위에서 몸부림치는 게 윌리엄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는 이건우를 노려보았다.

“너, 너 이 새끼가!”

하지만 이건우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윌리엄에게 다가가 그의 뒷목을 잡았다.

“내가 아니라 저걸 봐야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억센 손아귀가 강제로 시선을 화면으로 돌리게 했다.

화면 안에서, 캐리온이 말했다.

- 사죄의 뜻으로 제가 모아둔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습니다.

“···뭐?”

윌리엄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살짝 벌렸다. 그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저 나불대는 가짜의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

그만, 그만, 그만하라고!!!!

하지만 캐리온은 거침없이 말했다.

- 제가 보유한 기업은 KW의 대표인 이건우 님께 매각할 예정입니다. 매각 대금은 저로 인해 피해입은 분들께 돌아갈 것입니다.

- 남은 생은 죗값을 치르며 속죄하며 살도록 하겠습니다.

화면 속의 캐리온은 말을 마친 뒤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와 동시에 윌리엄의 고개도 툭 떨어졌다.

그가 수십 년 동안 모아온 모든 권력과 부가 이건우에게 고스란히 넘어갔다.

윌리엄의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마치 영혼이 나간 것처럼 그의 동공에는 초점이 없었다.

그의 귓가에 이건우의 차가운 목소리가 넘어왔다.

“살아. 끝까지 살아남아서 네가 받아야 할 고통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받아라.”

*

세상을 제 손에 넣고 주사위처럼 굴리던 윌리엄은 결국 구속되었다. 이후 이어진 재판에서 그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마치 모든 걸 잃은 사람처럼 다가오는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마지막으로 들은 그의 소식은, 감옥에서 포비드로 가족을 잃은 죄수들에게 구타당해 죽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윌리엄이 가지고 있던 성에 들어갔다. 내가 윌리엄을 처음으로 만났던 곳으로, 그는 여기서 늘 가문연합을 주최하고는 했다.

긴 복도를 따라 걷자 넓은 홀이 나왔다. 천장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으며,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탁자가 놓여있었다.

그곳에는 먼저 온 사람들이 있었다.

라울 발렌베리가 나를 발견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자리에는 에드먼드가 앉아있었다. 다른 사람과 얘기하고 있던 그는 나를 보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케네디와 록펠러 가문의 가주도 나를 보곤 인사를 건넸다.

나는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들 가운데에는 나를 위해 마련된 의자가 있었다. 한때 의장이었던 윌리엄이 앉았던 자리에, 나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나를 향해 쳐다보는 이들에게 말했다.

“가문연합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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