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175화 (175/183)

#175

끝을 향해 (3)

윌리엄은 세 가지 루트의 작전을 준비했다.

먼저, 리처드를 이용해서 아이작을 유인하는 플랜 A.

파티에 혼란을 일으키고, 리처드가 아이작을 미리 준비한 안전가옥으로 유인한다.

리처드에게는 플랜 A에 대해서만 알려주었다. 그는 지금 윌리엄이 이 계획으로 진행할 거라고 믿고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윌리엄은 이 계획을 끝까지 이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건 그저, 이건우와 리처드를 동시에 속이기 위한 버림패였다.

둘째, 가문의 요원을 이용한 플랜 B.

미네르바 가문은 이건우에게 털렸고, 대다수는 지금 조사를 받거나 수사망을 피해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윌리엄은 그중 남은 사람을 마지막으로 모아서 이번 계획에 투입하기로 했다.

충성심 높은 가문의 요원들은 리처드보다 훨씬 더 믿음직스럽고, 입도 무거워 어떻게든 명령을 수행해낼 것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그가 가진 민간군사기업인 '브람스 그룹'을 이용한 플랜 C.

윌리엄은 민간군사기업 ‘브람스 그룹’을 운용하고 있다. 브람스는 여러 국가에 자회사를 두고 있지만, 주로 활동하는 지역은 동유럽과 중동, 아프리카이다.

군대 인프라가 형편없는 국가에는 군대로서 고용되기도 하고, 내전이 발생한 곳에서는 용병으로 뛰며, 가끔은 마약 카르텔에도 손을 대는 등.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들은 고문부터 민간인 학살까지 안 좋은 쪽으로도 명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그 실력만큼은 최고이다. 아프리카 내전에서 다이아몬드 광산 지대를 장악한 반군에 의해 정부군이 수도까지 점령당할뻔하자, 브람스 그룹이 투입되었다. 그들은 6주 만에 반군을 국경까지 밀어냈다.

미네르바 가문이 조사받으면서 브람스 그룹도 조사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브람스 그룹은 기반을 둔 지역이 체첸 공화국이라서 그나마 강도 높은 조사를 피할 수 있었다.

체첸 공화국에서 군대의 역할을 대신 해주는 곳이 브람스 그룹이기 때문에, 공화국 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수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윌리엄은 브람스 그룹을 마지막 계획의 멤버로 낙점했다.

야심차게 준비한 세 가지 계획.

계획 중 어떤 경로로 아이작을 납치할 것인지는 아직 윌리엄 자신도 모른다. 그건 당일에 가서 볼 것이다.

과연 자신도 모르는 계획을 이건우가 알고 막을 수 있을까?

'이번만큼은 네 뜻대로 되지 않을 거다.'

윌리엄은 이번만큼은 통할 거라고 자신했다.

*

캐리온이 말했다.

[윌리엄이 리처드와 만났습니다.]

본진이 털렸는데도 끝까지 질척대는군.

나는 윌리엄이 이렇게 로스차일드를 들쑤시고 다니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미네르바 가문이 박살 났으니, 이제 로스차일드 가문을 방패막이로 이용하려는 거겠지. 리처드 정도면 적당히 쓰다가 버리기 좋고.'

윌리엄이 로스차일드에 접근하는 동기는 차고 넘치는데, 문제는 리처드가 윌리엄의 손을 잡느냐는 것이다.

평소라면 리처드는 윌리엄을 거들떠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약간 애매해졌다.

리처드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장남이다. 에드먼드가 나에게 박살 난 이후 유일한 후계자가 될 뻔했지만, 상황이 급변하였다.

에드먼드가 내 밑으로 들어오고 윌리엄 덕분에 아이작과 나의 관계가 화해 모드로 돌아서면서, 에드먼드도 자연스럽게 가문 내부로 돌아갈 수 있었다.

심지어 내 후광을 입어 에드먼드가 승승장구하는 덕분에 리처드는 불안해하고 있다.

궁지에 몰린 리처드.

과연 그는 전전긍긍하며 아버지가 제발 자신을 택해주기를 원할까? 아니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어떻게든 가주 자리를 가지려고 할까?

나라면 후자를 선택하겠다.

그리고 아들이 아버지를 쫓아내고 왕좌를 차지하는 건 유서 깊은 이야기이다.

한국만 해도 견훤이 있지 않은가.

"거사를 치르기도 딱 괜찮은 타이밍이네. 마침 이번 주에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연회가 열리지?"

[네. 클로이 양이 직접 이건우 님을 초대했습니다.]

클로이는 나에게 에스코트를 신청했고 나는 흔쾌히 받아주었다.

이 연회에는 가문연합에 있던 다른 가문까지 몰려드는 만큼, 윌리엄이 작전을 벌일 기회가 많았다.

그리고 캐리온이 전달해준 정보에 따르면, 실제로도 이번 연회를 노리고 작전을 짜고 있었다.

문제라면,

[아이작을 납치하기 위해서 세 가지 계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윌리엄이 꽤 머리를 써서 여러가지 작전을 동시에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작이 세 명이 아닌 이상 이 작전을 모두 시행할 리는 없을 테고···.”

세 작전에 모두 대비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인력이 분산될 게 뻔했다.

어떻게 하면 역으로 노려서 윌리엄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나는 이것이 마지막 판이 될 것을 직감했다.

조금 생각하던 나는 결론을 내렸다.

“아무것도 하지 말자. 아이작이 납치되도록 방관하지 뭐.”

[···네?]

그리고 잠시 후 내 생각을 읽은 캐리온이 소리쳤다.

[절대 안 됩니다!]

“왜? 올로프와 달리 아이작 정도면 미중년인데. 네 취향에 맞지 않아?"

바로 캐리온이 윌리엄을 끌어내는 트로이의 목마가 되어줄 것이다.

*

로스차일드의 저택.

나는 연회가 열리기 전 아이작과 비밀리에 만났다. 다행히 아이작은 나와의 만남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조금은 반기는 모양이었다. 티격태격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꽤나 괜찮은 사업 파트너가 되었다. 이게 다 윌리엄의 덕분(?)인가.

아이작이 물었다.

“무슨 일인가?”

“윌리엄이 당신을 노리고 있어서 말입니다.”

내 말에도 아이작은 코웃음을 쳤다.

“내 경비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

“뭐 어련히 잘 하고 있겠지만, 그래도 아들놈이 윌리엄이랑 손잡고 배신을 했다면 말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뭐?”

아이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벨라가 그렇게 당하고 난 후 그토록 윌리엄을 조심하라고 입이 닳도록 말했건만. 결국 또다시 윌리엄에게 넘어간 놈이 생겼다.

윌리엄이 얼마나 능숙하게 사람의 욕망을 들었다놨다 하는지는 알고있지만, 그래도 실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멍청한 놈. 콜린인가?”

콜린은 아이작의 셋째였다.

첫째인 리처드나 둘째인 에드먼드보다 어리숙하고 제 감정을 감추는 데 능숙하지 못한 녀석이었다. 그래서 가끔 자신 앞에서도 에드먼드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적이 있다.

만약 윌리엄에게 넘어간 놈이 있다면 콜린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작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하죠.”

“···설마 리처드가?”

아이작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잠시 침묵했다. 첫째 아들의 배신. 그건 단단한 아이작의 마음에도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도 그럴 것이 리처드는 모난 데 없이 정말 반듯하게 커왔다. 물론 질투심이 조금 있기는 했지만, 그 때문에 다른 형제들보다 열심히 후계자 경쟁에 참여했다. 그래서 그에게 금융업을 제일 먼저 맡긴 것이기도 하고.

아이작은 곰곰이 생각했다. 사실 짚이는 것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최근 아이작은 이건우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 에드먼드와 자주 이야기를 나눴으며, 에드먼드에게 영란은행의 관련 사업을 하나둘씩 넘겨주려고 하고 있었다.

리처드의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둘째에게 가주 자리를 넘겨줄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였을 수도 있다. 마치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는 느낌이었겠지.

생각을 정리한 아이작이 물었다.

"윌리엄이랑 손을 잡았다면 목적은 하나겠군. 나를 쳐낸다던가?"

"정확히 짚으셨네요."

"그렇군."

대답하는 아이작의 표정은 어느새 담담해져 있었다.

아이작은 이 상황을 충분히 납득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원래 이런 곳이다. 최고 권력을 향한 욕망을 끊임없이 부추기며 이를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도록 자극한다. 본인부터가 윌리엄과 손을 잡고 경합에서 승리하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해서 화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뒤통수를 치려는 멍청한 아들놈과 또다시 로스차일드에 마수를 뻗는 윌리엄. 그 둘에 대한 분노가 아이작의 가슴에서 은은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더욱 말이 없어진 아이작을 보며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윌리엄을 없앨 기회입니다. 지금까지 한 일을 돌이켜보면 알겠지만, 윌리엄 그 새끼는 또라이에요."

아이작은 그 말을 반만 동의했다.

'이건우도 똘끼로는 어디 꿇리지는 않지. 하지만 적어도 그는 선을 지킨다. 가만히 있는 자기 편의 뒤통수를 치는 일은 하지 않아.'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건우와 손을 잡고 윌리엄을 쳐 낸다.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이대로 제가 마련해둔 별장에 가셔서 사흘만 푹 쉬다 오세요.”

“내가 없어진다면 윌리엄이 의심할 텐데?”

나는 씩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세상은 당신이 사라졌을 거라고는 꿈에도 모를 겁니다.”

왜냐하면 캐리온이 그 역할을 대신 수행하고 있을 거니까.

*

오랜만에 로스차일드 가문의 저택 문이 활짝 열렸다. 정원으로 검은색 세단이 하나둘씩 들어오고, 그들은 간단한 신분검사를 한 후 안으로 들어왔다. 모인 사람의 수는 많지 않지만 면면이 한 나라를 좌지우지할 사람이었다.

연회장 내부는 부산했다. 직원들은 샴페인 쟁반을 들고 돌아다니고 있으며, 화려하게 세팅된 음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부지런히 움직였다.

‘윌리엄이 저들 사이에 사람을 심어놓았다고 했지.’

리처드는 연회장 한구석에 적당히 자리 잡은 후 내부를 훑어보았다.

리처드가 적당한 때를 살피고 신호를 주는 순간 계획은 시작될 것이다. 윌리엄과 손을 잡고 아버지를 쳐내기로 했지만, 리처드는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찝찝함이 남아있었다.

과연 잘한 선택일까? 윌리엄의 손에 놀아나는 건 아닐까? 그를 믿어도 되는 걸까? 지금이라도 그만둬야 하는 걸까?

밤새 고민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고민은 아직도 마음속을 맴돌며 리처드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때였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에드먼드 로스차일드군요.”

“결국 이렇게 돌아왔네요. 역시 사람은 줄을 잘 잡아야 한다니까.”

“어머, 저분은 영란은행의 총재가 아닌가요?”

“아이작이 차남에게 사업을 넘겨주려고 한다더니. 그 말이 진짜였나 봐요.”

리처드는 사람들의 말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동시에 그는 표정관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하게 굳었다.

그곳에는 아이작과 에드먼드가 나란히 들어오고 있었다. 옆에는 사람들의 말대로 영란은행 총재가 있었는데, 딱 봐도 에드먼드에게 사업을 넘겨주려는 모습이었다.

그 순간 리처드는 마음속에 남아있던 일말의 고민이 사라졌다.

그가 들고있던 와인잔이 기울어지며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동시에,

타앙!

총성이 울렸다.

*

나는 클로이와 함께 연회장으로 입장했다. 캐리온은 이미 아이작으로 변해서 에드먼드와 함께 있었다. 에드먼드는 아이작이 가짜인 줄도 모르고 그를 깍듯하게 대했다.

캐리온은 보란 듯이 에드먼드를 끌고다니며 인맥을 소개해주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리처드의 얼굴은 시시각각으로 썩어들어갔다.

나는 캐리온에게 신신당부했다.

“적당히 앙탈을 부리면서 끌려가는 것도 잊지 말고.”

[다음부터 이런 일 좀 시키지 마십시오.]

툴툴거리기는 했지만, 캐리온이라면 누구보다 잘 해낼 것이다.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없다. 캐리온이 얌전히 납치당하기를 즐겁게 기다리면 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회장에서 총성이 울렸을 때도 딱히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놀라서 아버지에게 달려가려는 클로이를 뜯어말리며 생각했다.

‘아이작을 구출하는 척이라도 해야하나? 귀찮은데.’

그렇게, 세기의 납치극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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