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177화 (외전) (177/183)

외전 1. 예비역 병장의 북한 통치기 (1)

윌리엄이 죽고 난 후 나는 그가 가지고 있던 세력을 완전히 흡수했다.

그가 가지고 있던 민간군사기업부터, 세계 최대의 곡물 기업, 러시아의 석유가스회사 등.

세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던 거대한 회사들이 모두 나에게 넘어왔으며, 당연히 그 일을 승계하고 인사를 관리하는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회사에서 더 이상 내가 신경 쓸 부분은 없었다. 나는 대부분의 실무를 캐리온에게 넘겨준 다음, 얼굴마담 노릇을 해야할 일들만 골라서 돌아다녔다.

가끔 회의나 연회에 가서 얼굴을 비추는 등, 최소한의 스케줄을 소화하며 나름대로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상에 균열이 생겼다.

캐리온이 말했다.

[중요한 알림이 있습니다.]

“중요한 알림?”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윌리엄이 난리를 칠 때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캐리온이 중요하다고 할만한 게 뭐가 있을까.

[예비군 훈련소집 통지서가 왔습니다.]

예상치 못한 말이었기에 나는 한 박자 늦게 대답하고 말았다.

“···뭐?”

아니 예비군이라니?

작년에는 그런 말이 없었잖아.

[작년에는 포비드 사태가 터지면서 중지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이번에는 KW 제약의 치료제에 힘입어 포비드 사태가 극적으로 완화되었고, 따라서 예비군이 정상적으로 진행됩니다.]

그러니까 이게 다 내 업보라는 말이지?

“끄응···. 그래서 훈련 일정은 어떻게 되는 거지? 동원 훈련은 아니겠지? 내가 지금 몇 년 차더라?”

[이건우 님은 4년 차이므로 동원 훈련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젠장”

나는 뒤늦게 이건우의 병역 내역을 살펴봤다.

의외로 이건우는 현역으로 멀쩡하게 군대를 갔다왔다.

물론 일반적인 시점보다는 조금 늦게 입대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망나니가 군대를 정상적으로 갔다왔다는 게 신기했다. 재벌이라서 적당히 핑계를 대고 빠졌을 줄 알았는데, 요즘은 재벌이나 연예인의 병역 기피를 더 엄격하게 잡아서 어쩔 수 없었다나.

그리고 무엇보다 할아버지의 입김이 강력했다. 제일그룹 회장인 할아버지는 멀쩡한 성인 남성이라면 무조건 병역의 의무를 다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어떻게든 미루고 미루고 미루던 군대를, 모든 카드를 끊어버리겠다는 협박에 당시 이건우는 울며 겨자먹기로 현역 입대를 했었다.

하지만 나는 지난 생애에서 현역, 예비군, 민방위까지 다 마친 몸이다. 이번에 또 예비군에, 심지어 동원 훈련에 참여하는 건 절대 싫었다.

나는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캐리온을 대신 보낼까? 아마 아무도 모를거야. 그동안 나는 별장에서 모처럼 푹 쉬다가 오면 되고.’

내 생각을 들은 캐리온이 극렬하게 반발했다.

[평소에도 모든 일을 저한테 다 맡기면서 또 놀러 간다고요?]

[미네르바 가문을 합병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거기에 군대까지 가란 말입니까? 제가 군대에 가면 미네르바 가문에서 진행하는 모든 일을 그만둘 겁니다. 절대 네버 안 됩니다. 진짜로요.]

얘가 이렇게 반발하는 건 처음 봤다.

후···. 2박 3일 동원이라니.

심지어 이걸 가도 앞으로 2년이나 동미참에 가야 하는 거 아냐? 민방위도 10년은 남았고.

어떻게 피할 방법은 없을까?

그러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냥 군대를 필요 없게 만드는 건 어떨까?'

나는 즉시 차민태를 찾아갔다.

*

차민태 대통령은 임기를 하루 남겨두고 있었다. 대부분의 일은 인수위에 넘겨주었고 이제 그는 다소 한적한 상황 속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차민태는 남은 일을 정리하다가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조용했던 적은 오랜만이군.’

그의 임기 중 후반부는 이렇게 평가할 수 있었다.

이건우의 뒤치다꺼리.

처음에는 이건우 코인에 탑승해서 꿀이나 좀 빨자는 생각이었고, 실제로도 그 덕분에 지지율이 많이 올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이건우가 자신을 부려먹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그 느낌은 확신이 됐다.

‘일개 기업이 중국에 선전포고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물론 지금이야 다시 사이가 좋아졌지만, 당시는 중국이 보복무역을 하면서 국가가 파탄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휘청거렸다. 그때 뒷수습을 하느라 뛰어다녔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눈에서 땀이 난다.

문제는 거기서 그친 게 아니었다.

‘김정안이 포탄을 쐈다고 북한을 통일시켜버리다니.’

심지어 그 시점이 임기가 딱 한 달 남았을 때였다.

여유 있게 인수인계하고 임기를 마무리 지으려고 했건만, 여유는 개뿔.

차민태는 마지막까지 당선인과 북한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고민을 하느라 주름이 열 개는 더 늘었다.

이건우. 고맙지만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그때 비서실에서 알려왔다.

“이건우 사장이 찾아왔습니다.”

차민태는 약간 불안해졌다.

‘설마 임기가 며칠밖에 안 남았는데 여기서 또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암. 양심이 있다면 그러지는 않겠지. 그냥 퇴임을 축하해주려고 온 걸거야.’

하지만, 이건우에게는 양심이 없었다.

*

나는 차민태의 임기가 며칠이라도 남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당선인은 나와 접점이 없는 사람인지라, 아무래도 이런 딜을 치기 위해서는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차민태가 더 편했기 때문이다.

퇴사를 얼마 앞두지 않은 직장인에게 일을 던져주는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미안한 마음은 딱히 없었다.

솔직히 차민태가 내 덕을 얼마나 많이 봤는가?

통일을 이룬 대통령.

미스리늄과 희토류를 장악하며 자원강국으로 일어서게 한 대통령.

핵융합 발전에 성공하며 에너지 안보를 지킨 대통령.

배터리와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며 산업 강국을 만든 대통령.

모두 차민태에게 붙은 타이틀이다. 덕분에 차민태는 역대 최고의 대통령으로 불리고 있었고.

내가 없었다면 이 타이틀 중 하나도 못 땄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간단한 일쯤이야 가볍게 처리해주겠지.

그런데 차민태는 왜 저렇게 긴장한 얼굴인 걸까?

“오랜만입니다. 퇴임을 축하드려요.”

“···고맙네.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왔는가?”

“간단한 민원을 넣고 싶어서요.”

차민태는 얼굴이 약간 흐려졌다.

“혹시 조만간 내 임기가 끝나는 건 알고 있나?”

“네.”

“······.”

차민태가 왜 이렇게 질색하지? 나는 당근을 흔들었다.

“제가 언제 손해 볼 일을 가지고 온 적이 있습니까? 그냥 가벼운 부탁이라고 생각해주세요.”

“끄응.”

차민태도 알았다. 이건우의 말을 들어서 손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을. 대신 몸이 많이 피곤해져서 그럴 뿐이다. 차민태는 대놓고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제발 이번에는 정말로 가벼웠으면 좋겠군.”

나는 차민태의 말은 귓등으로 넘기며 서류를 내려놓았다. 차민태는 제목을 보고 조금 당황했다.

“···예비군 훈련소집 통지서?”

“제가 이걸 보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나라의 부름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대통령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런 건 피하면 피할수록 좋다는 것을.”

“뭐 그렇지?”

“그래서 이참에 대한민국에 사는 남성의 고민을 덜어보려고 합니다.”

“응?”

차민태는 무슨 말인지 감이 안 잡혔지만, ‘가벼운 부탁’은 아니라는 건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빙긋 웃으며 용건을 꺼냈다.

“군대 체제를 바꿔보려고요.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말입니다.”

차민태의 턱이 툭 떨어졌다.

“···자네 미쳤나?”

“못할 건 없지요.”

우리나라가 징병제를 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이다.

일각에서는 ‘흡수통일을 하고 있으니 곧 모병제로 바뀔 수 있지않을까?’라며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지만, 사실 그게 말만큼 쉽지는 않다.

독일도 통일이 되고 무려 25년이 지나고 나서야 모병제로 전환을 했다. 그러고 나서도 아직 징병제로 가야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온다.

하지만 내가 북한의 시스템을 즉시, 그리고 완전히 안정화할 수 있다면?

더이상 한국 남성들이 청춘을 군대에 갖다 바쳐야할 일은 없어질 것이다.

내 말을 들은 차민태는 고민에 잠겼다.

“지금까지 자네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한 일을 해냈지. 하지만 어떻게 말인가? 아무리 자네라고 해도 지금까지 서로 다른 국가관 속에서 살아온 민족을 하나로 합칠 수는 없어.”

그러면서 덧붙였다.

“그냥 차라리 예비군을 가는 게 낫지 않겠나? 그저 2박 3일일세.”

사실 예비군은 그냥 가라고 하면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예비군을 보며 떠오른 영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북한 사회체제에 인공지능 시스템을 전격적으로 도입하겠습니다.”

과연 인공지능이 통치하는 사회는 어떨까?

판사가 아니라 인공지능이 판결을 내리고, 국회의원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입법을 하며, 행정관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사무를 본다.

치안과 국가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서 전투 로봇이 돌아다닌다.

과연 그 사회는 사람이 통치하는 것보다 좋을까, 안 좋을까?

그리고 북한은 내 영감을 실험하기 최적의 장소였다.

*

솔직히 말하자면 북한은 지금 개판 일 분 전이었다. 내가 김정안 정권을 무너뜨리기는 했지만, 그 뒤처리는 모두 차민태에게 맡기고 튀어버린 탓이다.

임기 말에 ‘통일’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넘겨받은 차민태는 굉장히 난감했다.

지금 일을 처리해봤자, 바로 다음 달에 새로운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정책을 낸다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혼란만 가중될 수 있다.

당선인과 논의하여 당장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만 합의를 보고, 나머지는 다음 정권으로 넘겨버렸다.

그러는 와중 북한은 권력 공백기가 발생했다.

김정안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무너졌고, 마철규 부위원장이 권력을 잡았다.

하지만 마철규는 김정안처럼 대단한 카리스마가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만만했다.

마철규가 가진 유일한 끈은 우연히 이건우의 마음에 든 것뿐인데, 사실 이건우 입장에서는 마철규는 언제든지 갈아치워도 상관이 없는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마철규도 알고, 다른 세력들도 아주 잘 알았다. 그래서 다른 세력들은 당장 권력을 잡은 마철규의 말을 따르는 척은 하지만, 언제든지 기회가 온다면 마철규를 쳐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철규는 언제 배신을 당할까 전전긍긍하다가, 마침 이건우가 온다는 소식에 헐레벌떡 달려나갔다.

“아이고 이건우 동지.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일단 이건우의 공식 직함은 예비역 병장이다.

그리고 비공식 직함은 무려 대통령 권한대행이다.

차민태는 귀찮았는지 당선인을 불러서 그에게 북한과 관련된 일을 짬 때렸다.

당선인은 이건우의 계획을 듣고는 잠깐 고민하더니 북한과 관련된 일은 이건우에게 일임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건우는 북한을 맡은 동안 방침 전면보류자가 되어 예비군은 자동 이수한 것으로 처리하도록 했다.

마철규는 불쌍할 정도로 굽신거렸다.

“남조선 소식은 방금 들었습니다. 북한을 위해서 파견 나오셨다고요.”

“에, 뭐. 그렇게 됐습니다.”

“북조선 인민을 대표하여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머무르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모시겠습니다.”

“아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는 곧 돌아갈 거라서요.”

“···네?”

이건우는 뒤에 서 있는 캐리온을 가리키며 말했다. 캐리온은 뾰로통한 얼굴로 입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소원대로 군대는 안 갔잖아? 대신 북한을 통치하는 거지.

이건우는 힘내라는 듯이 캐리온의 어깨를 두드리고 말했다.

“이 친구가 모든 일을 처리할 겁니다. 저는 원격으로 상황만 살필 거고요.”

빨리 집에 돌아가서 꿀이나 빨아야지.

그렇게, 캐리온의 본격 북한 통치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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