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일주일 (2)
여느 때와 같이 전 세계 주식시장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던 캐리온의 레이더망에 이상한 자금의 흐름의 포착되었다. 이번에 움직인 자금의 규모는 무려 수조 원.
캐리온은 즉시 자금의 흐름을 역추적했고, 그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헤지펀드 멀린 캐피탈이 게임스탑 주식을 5000만 주 공매도했습니다.]
월가의 투기 세력이 기업을 잡아먹는 게 하루 이틀 있었던 일도 아니고, 나는 그보다는 다른 이름에 집중했다.
“게임스탑? 거기 게임 유통 업체 아닌가?”
비디오 게임 전문 소매점 체인업체, 게임스탑.
하지만 보통 소매점 체인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작은 도시에도 지점 한두 개는 있을 만큼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다
요즘 온라인으로 다 거래하지 않느냐,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게임을 구매할 때 보수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많다. 직접 가서 플레이해본 다음에야 패키지를 구매하는 사람이 있다.
또한 단순히 신작 타이틀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중고 타이틀을 매입해서 판매하기도 하고, 게임스탑에서만 제공하는 각종 특전이나 한정판 물량을 풀기도 해서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안타깝게도 공매도 세력의 타겟이 되었나보다.
캐리온이 보낸 자료를 보니 이해하지 못할 내용도 아니었다. 게임스탑의 현재 주가는 57~63달러 수준으로, 상당히 고평가되어있었다. 외부의 자극이 있다면 언제든지 주가가 빠질 수 있는 상황.
물론 그것이 게임스탑이 금방 망할 기업이거나 상태가 좋지 않은 기업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게임의 유통이 점점 온라인 거래 중심으로 되어가고, 콘솔 제조사에서도 자체 온라인 스토어를 활성화하는 동시에 디지털 버전의 콘솔 게임기를 내놓는 등 오프라인 소매점의 전망이 썩 좋은 상황은 아니다.
거기에 더해 게임스탑은 포비드 사건으로 인해 오프라인 방문객들이 감소할 것으로 보여 타격이 불가피했다.
그렇기에 공매도 세력은 지금껏 늘 해오던 대로, 고평가되었지만 주가가 곧 떨어질 기업을 찾아 공매도로 돈을 벌 생각이었던 것.
하지만 캐리온이 그냥 그런 공매도 작전을 나에게 알려줄 리 없었다.
[이번 작전은 실패할 리스크가 큽니다. 먼저, 공매도 시도가 노출되었습니다.]
공매도 포지션이 노출되면 타격이 작지 않지만, 간혹 의도적으로 노출하는 경우도 있다.
고래가 특정 기업을 공매도하겠다고 타겟팅하면, 개미들은 놀라서 주식을 던지고 도망가기 때문이다. 그런 행위는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고 공매도 세력은 더 쉽게 돈을 벌 수 있다.
[그렇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및 2008년 금융위기로 미국에는 전반적으로 공매도 세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충분한 경제적 능력을 지닌 유저들의 게임스탑에 대한 애착을 고려한다면 ‘개미들의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흠···.”
개인투자자가 공매도 세력에 대항해 결집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캐리온은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공매도 세력과 이를 저지하려는 개인투자자 세력의 대결이 팽팽하다는 말인데.
수평이 맞춰진 시소. 여기에 내가 한발을 살짝 보탠다면? 결과는 뻔하다. 한번 무너진 균형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쪽에 발을 걸쳐야 할까?
이것도 답은 정해져 있었다. 개미들의 피눈물을 먹으면 욕을 처먹지만, 공매도 세력의 돈을 뜯어먹으면 칭찬을 듣는다.
돈도 벌고, 이미지도 챙길 기회이다.
그렇다면 내가 또 적극적으로 나서줘야겠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개인투자자 세력을 결집할 방법을 마련하는 것.
그건 캐리온의 부캐, 오리온 작가가 나선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캐리온.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공매도 세력에 대항해서 주식을 매수하자는 내용으로 글을 써봐.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공매도를 혐오하면서, 영향력도 있는데, 돈도 많은 사람을 한 명 알고 있다.
“일론 머스크를 끌어들여야겠군.”
다행히 일론은 지난번 나와의 대화 이후, 아직 한국에 머무는 중이었다.
나는 즉시 일론이 머무는 호텔로 출발했다.
*
일론 머스크는 공매도 세력을 정말 싫어한다. 아니, 그냥 싫어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아주아주아주아주 혐오한다.
한때 공매도 세력의 작전에 당해 각종 악성 루머에 고통을 받고, 테슬라는 파산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그는 트위터에 “없는 집, 없는 차는 팔 수 없어. 그런데 없는 주식을 팔 수 있다고? 그건 사기야!”라는 내용을 공공연하게 올릴 정도로 분노했었다.
나는 일론 머스크에게 연락했고 지난번의 만남으로 꽤나 친해진 그는 흔쾌히 만남을 수락했다.
그가 머무는 호텔의 스위트룸에 들어간 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헤이 건우! 무슨 일이야?”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편하게 인사를 건네는 일론.
그런데 티셔츠에는 왜 때문에 코바야시가 대문짝만하게 그려져 있는 건데?
내 시선이 티셔츠에 가 있는 걸 눈치챈 일론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거 한정판 굿즈라고. 너도 한 장 줄까?”
“···됐어. 그보다 요즘 게임스탑 동향에 대해서는 들어봤어?”
“게임스탑? 거기 어렵다고는 들었는데. 특히 미국에 포비드가 터진 후로 말이야. 안타까운 일이지. 내가 스탠퍼드에 있을 때 종종 게임스탑에 가서···”
그는 자신의 대학 생활에 어떤 게임을 했고, 그래서 게임스탑 점장과 친해져서 가끔 점장이 꿍쳐놓은 한정판 굿즈와 사전예약 보너스를 받기도 했다고 연설을 늘어놓았다.
과연 게임 광팬답다. 나는 다시 한번 일론을 이번 파트너로 선택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대부분의 미국인이 게임스탑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이 일론 머스크와 같다.
수십 년 전부터 게임 유저들에게 사랑을 받아왔으며, 각자 어렸을 때 게임스탑과 관련된 일화가 하나쯤은 있는 추억과도 같은 존재.
지금은 망해버린 비디오 대여점과 달리 그 추억은 아직도 존속하고 있으며, 특유의 수익모델을 창출하며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
그런데 투기 세력이 이 게임스탑을 사양 사업으로 인식하고 정리해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게임 광팬의 분노를 맞닥뜨리는 건 당연한 수순.
나는 일론에게 현재 게임스탑의 상황이 어떤지 말해주었다. 헤지펀드들이 게임스탑 주식의 140%가량 공매도를 넣었다는 얘기를 듣자 일론은 분노했다.
“뭐? 공매도 새끼들이 내 게임스탑을 망하게 하려고 한다고?”
앞서 말했듯이 일론 머스크는 공매도를 싫어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미국인도 공매도를 싫어한다.
바로 2008년에 있었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문.
지금 게임스탑을 지탱해주는 유저들은 과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문에 실직하거나 어려움을 겪었던 세대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번에도 헤지펀드 세력들이 공매도한다면 반발심리가 생기게 될 것이다.
예전에도 저 새끼들 때문에 내가 힘들었는데, 이제는 내 추억이 담긴 보물상자를 뺏어가려고 해?
일론도 마찬가지였다.
“그 새끼 때문에 테슬라도 망할 뻔했는데, 이제는 게임스탑까지 가져가려고 해?”
나는 길길이 날뛰는 일론의 옆에서 슬쩍 제안했다.
“이봐 일론. 나한테 공매도 세력을 엿먹일 수 있는 작전이 있는데, 들어볼래?”
나의 달콤한 꾀임에 일론은 바로 관심을 가졌다.
“엿을 먹여? 어떻게?”
방법은 간단하다. 공매도는 하락장에서 큰 이익을 얻는다. 그러면 반대로 주식을 대량 매수해서 주가를 올려버리면 된다.
우리가 나서서 주식을 대량 매수할 수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성은 못 느꼈다.
게임스탑 주식을 사서 어디에 쓴단 말인가.
대신 다른 방법이 있다.
“커뮤니티를 이용해 개인투자자를 결집하는 거지.”
“흠. 쉽지 않을 텐데.”
개인투자자는 확실한 구심점이 없으므로 모이기가 쉽지 않다. 그들의 성향은 제각각이며 단합할 동기도 없기 때문이다.
뭐, 그게 쉬웠다면 애초에 작전세력이니 공매도니 하는 것들이 있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누군가가 나서서 구심점을 만들어준다면?
그들에게 단합할 동기를 제공해준다면?
그리고 나에게는 그 어려운 일을 해줄 조력자가 있었다.
우리 캐리온이 그 일을 해줄 것이다.
“저번에 얘기한 인공지능을 살짝 개조해서 글을 창작하는 알고리즘을 추가해봤거든. 이번에 한 번 시험해볼래?”
그 말에 일론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인공지능이 글을 쓴다고?”
AI에서 글을 창작하는 영역은 가장 나중에 개발될 분야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가성비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기껏 고생해서 글 쓰는 AI를 만들었는데, 개쩌는 글을 써봤자 돈을 얼마나 벌겠는가?
그러니 일론이 이렇게 흥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나는 웃으며 빈 모니터를 보여주었다.
눈치 빠른 캐리온은 모니터에 글을 써 내려갔다.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캐리온은 꽤나 긴 글을 완성했고, 글을 읽은 일론의 표정은 실시간으로 붉어졌다.
"글만 읽었는데 월가 놈들에 대한 분노가 끓어오르는군."
"어때? 이 정도면 개인투자자들을 결집할 수 있겠지?"
“충분해 보여. 혹시 나중에 어떻게 프로그래밍했는지 소스만 살짝 알려줄 수 있나?”
나는 씩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대신 너는 그냥 내가 말할 때 트윗이나 한번 날려주면 돼.”
일론의 트위트가 합세한다면 꽤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오케이. 그럼 나는 게임스탑 콜옵션이나 사둬야겠어.”
일론이 생각하기에도 이번 작전은 가능성이 있어보였나보다. 그는 즉시 게임스탑 관련 콜옵션들을 매수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잊지 않고 콜옵션 매물을 있는대로 쓸어담기 시작했다.
*
대형 커뮤니티 ‘래빗’에는 ‘월스트리트베츠(Wall Street Bets, WSB)’라는 주식토론게시판이 개설되어 있었다. 그런데 요즘 WSB에는 게임스탑과 관련된 주식 정보가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었다.
- 멀린 캐피털이 게임스탑에 5000만 주 공매도 했다는데
ㄴ 미친넘들 공매도가 주식발행량보다 더 많네
ㄴ 이새끼들 또 이ㅈㄹ이냐
- 진짜 게임스탑 망하나?
- 헐 우리 아빠 게임스탑 운영하시는데···. 진짜 망하면 어떡해?
ㄴ 님 좀 큰일난듯
ㄴ 진짜 어떡함
게임스탑이 소매점의 형식으로 체인점으로 운영하고 있다보니 소규모 자본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리온 작가는 게시물을 올렸다.
「2008년에 월가 새끼들이 우리 가족을 엿먹인 게 아직도 기억나요.
하룻밤사이에 회사에 돈이 없다고 월급이 반토막이 났죠. 아버진 그렇게 4년을 버티셨어요.
그런데도 빚을 내야만 했죠. 그래도 우린 다 갚았어요. 다 아버지 덕이죠.
그런데 월가는 이제 내 인생을 집어삼키려고 해요.
겨우 모은 돈으로 게임스탑 체인점을 냈는데 곧 망한다고 하네요. 하지만 나는 버틸 거예요.
나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어요. 돈을 얼마나 써야하건 상관없어요. 사랑해요 아버지.」
캐리온의 글은 베스트 게시글이 됐으며, 이 글을 본 유저들도 하나둘씩 게시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당 글마다 어마어마한 수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 ㅈ까 월스트리트 십ㅅㄲ들아 난 아직 잊지 않았어
-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월가 때문에 고통받으신 부모님 이야기가 남일 같지 않아.
- 내 할아버지는 몇십년을 정직하게 일해오셨는데, 월가 쓰레기 때문에 전재산의 70퍼센트를 날리셨어. 노인정은커녕 쓰러져가는 트레일러 방에서 돌아가셨지.
- 존버 가즈아!
- 우리 어머니도 2008년 이후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어. 뭐, 이건 존나 개인적인 일이지만. 망가진 인생을 위해 존버한다!
- 개같은 양복쟁이의 피를 봐야 쓰것다
이들에게 돈을 잃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한번 월가에 의해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 세대였고, 돈을 다 불태우더라도 그들에게 복수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탐욕이지만, 가끔은 분노가 탐욕을 태우고 사람들을 움직인다.
그렇게 오래도록 증권가의 전설로 남을 미친 일주일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