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일주일 (3)
3월 22일.
투기 세력이 공매도했다고 알려진 시점. WSB 유저들도 집단행동을 시작했다.
- 다들 월가 새끼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기 위해서 얼마를 쓸 거야?
처음 불을 지른 것은 캐리온이었지만, 한번 불이 붙자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캐리온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수많은 사람이 합류하며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 내 전 재산을 불사르더라도 월가 놈의 부랄을 떼버릴 거야!
- 계급장 떼고 한번 붙어보자
월가를 박살 내버리자.
그 하나의 기치 아래 사람들이 단결했다. 사람들은 게임스탑 주식 및 콜옵션을 집단 매수했다. 주가가 미친 듯이 올라가며 거래가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서킷 브레이커도 수차례 발동되었다.
공매도 세력 중 한 곳은 이들을 꼬집어 ‘상투에서 사는 호구’라고 비난했지만, 이는 오히려 개인투자자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격이 되었다.
- 월가새끼가 우리를 호구로 본다고?
- 어디 호구한테 된통 당해봐라
- 가즈아!
개인투자자들은 개의치 않고 미친듯이 주식을 매수했다.
결국 주가는 더욱 올라가며 69% 폭등한 80.1달러에서 마감했다.
1차전은 개인투자자들의 승리였다.
이날 거래 규모는 평균 거래 규모인 2380만 주의 8배가 넘는 1억 9400만 주에 이르렀다.
그리고 일론 머스크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미쳤어, 미쳤다고! 이게 진짜 일어날 줄이야.”
나는 미소지었다. 캐리온이 미국 Z세대의 저변에 깔린 심리를 정확하게 읽어낸 덕분이었다. 물론 캐리온의 심금을 울리는 글이 사람들의 마음을 확실하게 잡은 탓도 있었지만 말이야.
일론이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게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지금 거품이 너무 낀 상황인데 과연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을 더 살까?”
“살 거야. 이제 이건 이성의 문제가 아니거든.”
이미 분노가 이성을 모두 불태웠다. 여기까지 온 이상, 발을 먼저 빼는 놈이 지는 싸움이다.
투기 세력으로서는 이런 상황을 한 번도 만나본 적 없겠지. 과연 그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
개인투자자들은 미친듯이 주식을 사들였다. 그들의 적극적인 매수에 헤지펀드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저 주식이 올라가는 것을 지켜만 봐야 했다.
그리고 사흘 뒤, 결국 게임스탑의 주식이 150달러를 달성했다. 무려 300%나 상승한 가격이었다.
*
헤지펀드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개인투자자들이 집결하다니.
처음 맞이하는 상황에, 멀린 캐피털을 비롯한 투기 세력은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회의실의 공기는 무거웠다. 양복을 입은 월가의 펀드매니저들의 표정은 보기 드물게 창백했다.
“개인투자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요. 주가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공매도는 결국 '미래에 주식을 사서 되갚는' 방식이다.
나중에 주가가 떨어졌을 때 주식을 싸게 사서 갚아 이윤을 먹어야 하는데, 주가가 떨어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주가가 계속해서 오르고 있는 상황.
문제는 구매 가능한 주식의 수가 유한하며, 기존의 주식 보유자들은 물량이 나오는 족족 사재기를 한다는 것이다.
물량이 없으니 주가는 폭등하며, 투기 세력은 예상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주식을 되사서 갚아야 할지도 모른다.
참고로 이번에 헤지펀드에서 공매도한 게임스탑 주식의 양은 게임스탑 발행 전체 주식의 140%다.
이대로라면 천문학적인 손실을 보는 게 분명해 보였다.
‘···아니, 어쩌면 파산할지도 몰라.’
위기감이 엄습했다. 멀린 캐피털을 통해 투자한 시타델 헤지펀드가 말했다.
“저희가 HTS 앱의 지분을 좀 가지고 있습니다. 정 안되면 게임스탑을 비롯한 몇 가지 옵션에 대해 어플을 통한 매수 자체를 막아버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흐음···. 일단 추이를 한번 지켜보지요. 다행히 지금 150달러 선에서 더 오르고 있지는 않아요.”
“어차피 저들은 개인투자자들 아닙니까. 저들도 생계를 고려해야 하는 처지에서 여기서 더 매수하는 건 부담스럽겠지요.”
어차피 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고려해서 행동한다. 지금은 군중심리에 휘말려 잠깐 이상 반응이 나왔을 뿐이지,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며 행복회로를 돌렸다. 어차피 개인투자자들은 자신들을 이길 수 없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당연히 이번에도 웃는 것은 자신들이겠지.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몇 분 지나지 않아 박살이 났다.
게임스탑 주식의 추이를 지켜보던 한 사람이 비명을 질렀다.
“큰일 났습니다! 주가가, 주가가!”
“무슨 일입니까? 주가가 왜요?”
“미쳤어! 왜 이렇게 올라가는 거야!”
“이 새끼들 미친 거 아니야? 그만해! 그만하라고!”
150달러에서 머물던 주가가 200달러를 뚫고 300달러를 향해 수직상승을 하고 있었다.
다들 허둥거리면서 투자자들이 이 미친 행동을 보이는 이유를 찾았고, 결국 동양의 한 기업가에게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이건우, 그가 행동을 개시했다.
*
주가가 150달러 선에서 주춤할 때, 나는 먼저 보도자료부터 돌렸다.
보도자료의 내용은 아직 게임스탑의 주가가 최고치에 오르지 못했다는 것.
캐리온이 분석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보도자료는 굉장히 논리적으로 현 상황을 판단하고 있어, 한번 읽게 되면 게임스탑의 주가가 당연히 더 오를 거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사업가라는 이미지가 더해져, 보도자료의 신빙성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기자들은 내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신나게 기사를 써재끼기 시작했다.
<”개미들이여 공매도에 맞서라”···이건우도 참전했다>
<한계까지 오른 게임스탑, 또 오르나?>
보도자료를 모두 뿌리고 나서 일론 머스크에게 연락했다. 이제 두 번째 펀치를 먹일 시간이었다.
“지금이야.”
“오케이. 내가 멋진 멘트까지 생각해뒀다고.”
공매도 세력에게 엿먹일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일론은, 내 기사를 링크하면서 트윗을 남겼다.
- GAMESTONK! (가즈아!)
···기껏 생각한 게 이거냐?
하지만 이 짧은 멘트의 효과는 굉장했다.
주춤했던 주가가 미친듯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일론의 트윗에 열광한 사람들이 이성을 놓고 미친듯이 주식을 구매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투기 세력에게 엿을 먹이겠다는 집념 하나밖에 없었다.
- HOLD THE LINE! (대열을 지켜라!)
- BIG FUCK TO WALLS (월가 놈들에게 빅엿을!)
- I M NOT FUCKING SELLING (존버한다)
래빗이라는 갤러리의 작은 게시판에서 캐리온이 만들어냈던 작은 움직임은, 여러 개인투자자를 움직이면서 하나의 물결을 만들어냈다.
사실 ‘여러 개인투자자’라고 하기에는 그 규모가 컸다. 게임스탑 사태에 들어서면서 HTS 앱 이용자 수가 무려 두 배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사회적 움직임이나 다름없다.
과거 금융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 시장을 조작하고, 공매도로 회사를 착취했음에도 처벌은커녕 되려 구제금융까지 받은 덕에 오늘날의 멀린 캐피털이 존재했다.
지금의 게임스탑 사태는 헤지펀드들이 저지른 과오들에 대해, 그 피해자였던 개미들이 행하는 복수였다.
물론 헤지펀드 세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보다. 캐리온의 감시망에 주가조작 행위가 걸린 걸 보면 말이다.
[로빈우드를 비롯한 HTS 앱이 게임스탑 주식 매수에 락을 걸어놨습니다.]
스케일 한번 엄청나군. 주식 매수를 강제로 막아서 주가를 폭락시키려는 속셈이다.
대놓고 주가조작을 하다니, 참 어떤 의미로는 대단한 놈들이었다.
커뮤니티에는 ‘매수 버튼이 안 눌려.’ ‘이 십ㅅㄲ가! 그래도 내가 파나봐라!’ 등의 말이 올라왔다.
이렇게 되면 내가 나설 수밖에 없지. 이래 봬도 나는 반칙을 아주 싫어하거든.
아, 물론 내가 당하는 것만 싫어한다.
“개인의 재산권 행사를 강제로 방해하면 안 되지. 캐리온, 원상태로 복구해놔.”
[알겠습니다.]
캐리온은 즉시 HTS 시스템을 해킹해서 매수 버튼을 되돌려놨고, 사람들은 ‘그냥 시스템 오류였나보다’ 하며 신나게 매수 체결을 눌렀다.
그러자 HTS 운영진은 매수 버튼 자체를 삭제하려고 했지만, 캐리온이 그들의 접근을 원천 차단했다.
도둑이 남의 집에 들어가서 집주인이 못 들어오게 막는 상황에 운영진은 당황했고, 결국 그들의 시도는 좌절되고 말았다.
그렇게 공매도 세력과 개인투자자 세력의 싸움이 치열하게 펼쳐졌다.
주가는 개미와 공매도 세력의 접전 속에서 막판 10분 전까지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다가, 마지막에 주가가 급락하려고 했다.
나는 잠시 당황했다.
‘어? 개인투자자 쪽이 힘이 빠졌나?’
그러나 내 걱정이 무색하게 누군가가 2만 주가량 되는 물량을 지속적으로 매수하며 주가를 끌어올렸고, 결국 339달러에서 장을 마감했다.
그리고 다음 날.
투기 헤지펀드의 대표 격인 멀린 캐피털이 공식 트위트 계정에 올렸다.
“우리는 공매도를 중단하고, 투자자들에게 장기적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
사실상 항복 선언이었다.
개미들이 승리했다.
*
나는 옵션만기일에 맞춰서 콜옵션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고 수익을 확정 지었다.
옵션매입액은 총 700만 달러로 약 85억이었다. 나로서는 무척 소소하게 투자한 편이었다.
애초에 게임스탑의 옵션 시장이 그렇게 크지 않던 데다, 나와 동시에 일론 머스크가 콜옵션을 쓸어 담았기 때문에 많이 가져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수익률은 장난이 아니었다. 무려 800배가 넘는 7조 3610억을 벌어들였다.
미니온 트래킹을 미국에 깔면서 얻은 이익을 단 몇 주 만에 벌다니! 기뻐서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그건 일론 머스크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는 아침부터 우리 집으로 달려와서 나를 끌어안고 춤을 추었다.
“이건 미쳤다고! 멀린 캐피털의 손해가 얼마인지 들었어?”
“···얼마인데?”
물론 그가 흥분한 부분은 나와 핀트가 많이 달랐다.
이미 300조가 넘는 자산을 가진 그에게 단지 몇조가 더 추가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지만, 그간 그를 괴롭혀왔던 공매도 세력에게 크게 한 방 먹였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었다.
“무려 40억 달러를 잃었다고! 헤지펀드들의 총 손해 예상액에 708억 달러야! 으하하하!”
“정말 미쳤군.”
708억 달러면 한화로 80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투자는 제로섬 게임이니 내가 얻은 약 8조의 수익은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나 다름없다.
그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어제 막판에 누가 2만 주나 물량을 쓸어가서 주가를 방어했는데, 설마 그게 일론은 아니었겠지? ···라는 킹리적갓심이 드는데.
공매도 세력에 상당한 원한이 있는 일론이라면 충분히 할만한 행동이다.
일론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요즘 들어 이 자식의 얼굴을 너무 자주 보는 느낌이 들었다.
일주일에 5일은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여자친구도 이렇게 자주 보지는 않겠다.
“그런데 너는 언제 미국으로 돌아가?”
“응? 나 당분간 한국에 있으려고. 미국은 지금 포비드 때문에 박살 났어. 한국이 더 안전하고 좋던데 그냥 너네 집에서 살까?”
그냥 좀 돌아가!
*
한국에 오래 머물 수 없었던 일론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미국으로 돌아갔다.
돌아가기 전 그가 나에게 말했다.
"새로운 사업을 찾는 거라면 에너지 시장 쪽을 눈여겨봐."
에너지 시장이라.
그의 말은 나에게 좋은 힌트가 되었다.
그리고 최고의 인공지능인 캐리온은, 그 작은 힌트를 가지고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