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일주일 (1)
일론 머스크는 나에게 직간접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의 트위터 덕분에 시바 코인이 떡상해 내가 사업을 확장할 초기 자본을 벌 수 있었고, 그가 연결해준 인맥 덕분에 미국의 로날드 대통령과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로날드가 통 크게 미국 전역에 미니온-트래킹 시스템을 까는 계약을 맺은 덕분에, 나는 단숨에 수조 원의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심지어 포비드에 대해서 크게 경계하는 유럽 쪽에서도 내 시스템에 관심을 보이며 접촉을 해오는 상황이었다.
미니온-트래킹 하나로 뽕을 뽑아먹는구나.
어쨌든.
그 일론 머스크가 나를 만나러 한국에 온다고 했을 때는 나는 깜짝 놀랐다. 심지어 그걸 알게 된 것도 내게 공식적인 방문 사실을 알려서가 아니라 그의 트위트를 통해서였다.
- KW의 프리온 시스템은 미쳤다! 나는 당장 이건우와 계약할 것이다.
[···라고 일론 머스크가 트위트에 올렸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전세기를 띄울 준비를 하고 있으니 사실로 보면 좋을 듯합니다.]
“······.”
캐리온이 전해주는 말을 듣고 어찌나 황당하던지.
물론 그의 비서가 머지않아 전화해서 공식적인 약속 일정을 잡기는 했지만, 괴짜라고 불리는 일론 머스크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리 호텔 스위트룸을 예약해뒀고 그곳에서 일론 머스크를 맞이했다.
큰 키에 살짝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를 가진 중년 남성이 들어왔다.
이번이 겨우 두 번째 만남이지만, 그 이상의 내적 친밀감이 형성되어있던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머스ㅋ···”
그는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얼싸안았다가 내 손을 잡고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헤이! 드디어 보는군. 미스터 리. 그렇게 딱딱하게 부르지 말고 일론이라고 불러. 나도 건우라고 불러도 되지?”
···왜 이 사람에게서 로날드의 향기가 느껴질까?
뭐, 그래도 나쁜 의도로 이러는 것 같지는 않으니. 나는 그 말을 들은 즉시 말을 편하게 했다.
“물론. 내가 미국에 있을 때 봤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는 일이 너무 많았었어.”
“나도 귀가 있다고. 너, 엄청 바빴잖아. 다이아몬드 엠페러 호를 구한 영웅이라며 신문에서 엄청 떠들던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이야기는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일론은 자리에 앉자마자 자율주행에 대해서 말했다. 저번에 보내준 데모 버전에 몸이 잔뜩 달아있었나 보다.
“프리온은 자율주행 시스템의 혁명이야! 인간처럼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데,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니까!"
말을 하는 일론의 얼굴은 흥분으로 붉게 달아 올라있었다.
"도대체 그런 걸 어떻게 만든 거지? 네가 일하는 동안 보내준 데모 버전을 하나하나 다시 뜯어봤거든, 그런데 아무리 봐도 어떤 식으로 접근했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일론의 노골적이고도 적극적인 칭찬에, 나는 괜히 기분이 으쓱해졌다.
“흠흠, 내가 조금 대단하기는 하지.”
[···자율주행 프로그램은 제가 만들었습니다만?]
물론 그 즉시 캐리온의 태클이 들어왔지만 말이다.
프리온(Free-On)은 캐리온의 여섯 번째 부캐로, 오로지 자율주행 시스템을 위해서만 만들어졌다.
캐리온의 부캐인만큼, 일반적인 인공지능과는 차원이 다른 성능을 자랑했다. 그리고 일론 머스크는 프리온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다.
일론은 눈을 반짝이며 말을 쏟아냈다.
“어떻게 인공신경망을 구성한 거지? 에뮬레이션 된 센서값을 처리하는데 에너지 효율성도 뛰어나며 확장성도 좋아. 도대체 어떤 식으로 프로세서를 사용한 거야?”
오, 드디어 내가 아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도 왕년에는 잘나가는 개발자였다, 이 말이야.
나는 오랜만에 캐리온의 도움을 받지 않고 대화를 시작했다.
“메인 프로세서는 비정규성 알고리즘 코드를 구현할 수 있는 범용 프로세서 형태로 구성했고, 다양한 뉴럴넷 알고리즘을 효과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해서···.”
“그러면 알고리즘을 효과적으로 실행시키기 위한 아키텍처로서···.”
천성이 개발자인 나와 일론 머스크는 그렇게 한참을 대화에 빠졌다. 인공지능과 프로그래밍이라는 공통된 분야에서 대화가 통하는 상대를 찾았다는 게 이렇게나 기쁠 줄이야.
우리는 그렇게 대화를 하다가 지쳐서 맥주를 시켜서 먹었고, 또다시 정신없이 대화를 나눴다.
맥주가 몇 잔 들어가자 말도 편해졌고, 프로그램 개발이라든지 회사를 경험하는 이야기라든지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소재들도 많았다.
그래, 우리는 꽤 잘 맞았다.
일론이 말했다.
“프리온을 내가 독점으로 공급받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헛소리하지 마. 내 목표는 프리온을 자동차계의 안드로이드로 만드는 거니까.”
“하긴 테슬라 안에서만 머무를 수 있는 수준의 인공지능이 아니야.”
일론은 아쉬워하면서도 납득했다. 나는 그가 여기서 포기할 줄 알았지만, 그건 일론을 너무 얕본 소리였다.
“이 알고리즘을 자율주행으로 국한시키는 건 낭비야. 좀 더 발전시켜서 자율주행 우주선을 만드는 게 어때?”
“켁.”
나는 맥주를 마시다 사레에 들리고 말았다.
그제야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일론 머스크가 화성에 미쳐있었다는 것을.
일론이 말했다.
“왜? 재미있어 보이지 않아? 네가 원한다면 내 스페이스 Z 프로젝트에 끼워줄 수 있어.”
사양하고 싶다.
거기 업무 강도가 그렇게 높다고 들었는데 공돌이로 갈려 나가는 건 전생에서도 충분히 당해봤다. 게다가···
“···그거 미군이랑 같이 하는 거잖아. 내가 껴도 되는 문제야?”
“너 같은 천재 개발자가 한국에 썩고 있는 건 말도 안 되지. 어때 화성에 가보고 싶지 않아?”
우주탐사 사업이라. 언젠가 한번 건드리고 싶은 사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나는 적당히 여지를 두는 것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
윤단아는 전자영과 만나고 있었다. 한국대학교의 한 동아리에서 만난 둘은 인연은 꾸준히 이어가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합방도 하면서 더 가까워지기도 했고, 얘기를 하다 보면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소스도 얻을 수 있었기에 둘은 종종 만남을 갖는 편이었다.
오늘의 만남 장소는 윤단아 집 근처의 한 순대국밥집. 두 사람은 단골 순대국밥집에서 국밥과 소주를 시켜놓고 낮술을 즐기는 중이었다.
다데기를 푼 뜨끈한 순대국밥 국물을 후루룩 마신 전자영이 말했다.
“크, 여기는 항상 와도 맛있네. 근데 너는 아직도 여기 사냐? 이제 돈도 벌 만큼 벌었을 텐데 좀 더 좋은 데로 가지그래?”
“귀찮아. 여기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윤단아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시큰둥한 표정과는 달리, 젓가락은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순대를 집어 먹고 있었다.
처음 신문사에 입사하고부터 윤단아는 계속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회사랑 가까워서 방을 얻었는데, 막상 퇴사하고 나서도 이사하는 게 귀찮아서 계속 살고 있다.
물론 가끔 회사 사람들을 만나서 방송에 쓸 소스들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맛집이 있는데 이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전자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평소에는 칼 같은 녀석이 이상한 데서 은근히 게으르단 말이야.”
그렇게 잡담을 나누던 때였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는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주변이 조금 소란스러워져서 카페나 갈까 생각하던 찰나, 누군가가 윤단아를 불렀다.
“어이! 이게 누구야, 윤단아 아니야?”
윤단아는 익숙하면서도 재수없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고, 전혀 반갑지 않은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한국일보 연예부 부장. 한때 그녀의 상사였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녀가 퇴사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었다.
요즘 그녀가 잘나가자 끈질기게 연락을 하길래 차단해놨더니 어째 여기서 다 만나네.
‘자영이 말대로 진짜 이사를 해야하나.’
윤단아는 고개를 까딱했다.
“오랜만이에요.”
인사를 하는 와중에도 그녀의 젓가락은 마지막 남은 순대를 향하고 있었다.
얼굴에 철면을 깐 부장은 자연스럽게 합석하며 전자영에게도 인사를 했다.
“아이고. 쉬림프월드 님 아닙니까. 저도 가끔 들어가서 봅니다.”
“하하. 안녕하세요. 구독자님이셨군요.”
“요즘 뜨는 주식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에이. 그런 걸 맨입으로 물어보면 안 되죠.”
“아이고. 내가 또 센스가 없었네.”
성격이 원래 털털한 편인 전자영은 부장과도 곧잘 이야기를 나눴지만, 윤단아의 표정은 썩어들어갔다.
전자영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어라? 두 사람 사이가 별로 안 좋은가 보네. 이 사람이 누구길래 그러지?’
부장은 전자영보다는 윤단아가 목표였던지, 다시 윤단아에게 말을 걸었다.
“윤 기자. 요즘 그렇게 잘나간다며? 회사로 다시 돌아올 생각은 없냐?”
윤단아는 피식 웃었다.
“진짜 돌아갈까요? 근데 제가 몸값이 좀 높아졌는데 감당할 수 있겠어요? 연예부 부장 자리 정도는 줘야 할 거 같은데요.”
윤단아의 팩트에 부장은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돌렸다.
“커흠 뭐, 그냥 해본 소리지. 너는 기자보다 뉴튜버가 더 잘 어울려. 그냥 계속 뉴튜브나 해.”
윤단아는 별 반응을 하지 않았고 잠깐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누가 봐도 꺼지라는 신호였지만, 부장은 끝까지 질척거렸다.
“그런데 말이야. 네가 그렇게 잘 터뜨리던데 요즘 좀 괜찮은 소스 좀 없냐?”
역시 목적은 이거였나.
윤단아가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 전자영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럼요. 아주 좋은 소스가 하나 있죠."
윤단아의 말에 부장은 초롱초롱 눈빛을 빛내며 윤단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전자영은 알고 있었다. 지금 저 웃음의 의미는, 윤단아가 폭발하기 직전이라는 것을.
‘어쩐지 잘 참는다 했다. 지금쯤 터질 때가 됐지.’
동시에 윤단아가 말했다.
“예전에 김우영 마약 사건 때 한국일보의 어떤 부장이 뒷돈을 받고 기사를 엎으라고 했었죠. 그 사건에 대해서 다뤄보려고 하는데, 어때요. 관심이 좀 생기시려나?”
찔린 부장이 벌떡 일어나서 삿대질을 했다.
“뭐, 뭐라고? 내가 언제 그런 일을 했다는 거야!”
“제가 언제 부장님이 그랬다고 했나요? 찔리시나 보죠? 당장 안 꺼지면 정말 다음 저격은 이 주제로 할 거니까 알아서 해요.”
윤단아의 조곤조곤한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부장은 정말 윤단아가 자신을 저격할까 하는 두려움에 빠졌다. 윤단아는 한다면 진짜 하는 성격이다. 결국, 부장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윤단아는 그렇게 사람 하나를 쫓아 내놓고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그래서 좋은 콘텐츠가 뭔데?”
“게임스탑이라고 들어봤어?”
“게임스탑? 그냥 오프라인 게임 유통업체 아니야?”
전자영은 씩 웃으며 본격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요즘 보니까 이게 흐름이 심상치 않더라고. 내가 좀 알아봤는데···.”
*
게임스탑의 심상치 않은 조짐은 캐리온에게도 포착되었다.
자금의 흐름이 이상하게 변하자, 캐리온이 이건우에게 보고했다.
[게임스탑에 공매도 세력의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그리고 캐리온의 보고를 듣는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돈을 빨아먹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