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그으으응.
-터널 꼬리까지 무사히 빠져 나왔습니다!
-좋아! 이대로 단박에 진입한다!
“실드가 깨졌어요!”
“그러게요. 덕분에 진입은 가능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포 쪽으로 빠져나온 거 맞나요?”
“네. 시청까지 도로가 멀쩡하면 40분 안쪽으로 들어갈 텐데, 그럴 리가 없겠죠.”
키아아아아아!
-서행으로 전환. 지금부터는 전투로 병행한다.
어느 정도 손실을 감수하고 돌파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했을 때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병력은 한정되어 있었다.
가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병력을 전부 끌어왔기에 확실한 상황이 아니라면 승부를 걸지 않는 것이 나았다.
때문에, 최선의 방법은 속도를 늦추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며 서울 중심으로 진입하는 것이었다.
투두두두!
투두두!
총탄 소리가 빗발쳤다.
몬스터의 괴성은 비명으로 변했고, 몬스터들은 서행으로 움직이는 혁명군의 진군을 막을 수 없었다.
-동북쪽 성형외과 5층 건물 옥상에 수상한 물체를 발견했습니다.
-저건 또 뭐야?
“5층?”
“저건가 본데요.”
“저게 뭐지?”
검은 철판에 사람들이 꼼짝할 수 없게 결박되어 있었다.
생긴 모습이 꼭 태양열 전지판처럼 보였고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꺼림칙한 기분이 들게 했다.
“……줘!”
“……발! 제발!”
건물 옥상에서 소리치는 사람들.
뭐라고 하는지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하는 거죠?”
“글쎄요. 일단 생존자들이 남아 있다는 게…….”
성진은 생존자들이 남아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옥상에 누군가 나타나면서 말을 잠시 멈추었다.
철판 근처에서 모습을 드러낸 남자.
남자는 밑을 내려다보며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온 거지?”
차량의 음성 장치를 통해 상대에게 혁명군의 의사가 전해졌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보면 모르나? 이곳의 새로운 주인이지.”
최별의 차량에 탄 사람들이 서로를 쳐다보고 동시에 말했다.
“완성자!”
“……완성자.”
“그럼…….”
나타난 완성자는 대군을 앞에 두고도 별달리 긴장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조금 이르지만, 때가 되었나 보군. 그럼, 시작하지!”
-무엇을 말입니까?
“종말 전쟁이지. 신조여! 듣고 있겠지? 로키 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성진을 찾는 목소리.
하지만, 성진은 나서지 않았다.
마음은 이미 시청에 가 있었지만, 함부로 적에게 말려들면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게 된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완성자는 성진에게 집착하지 않았다.
“뭐, 됐어. 어차피…….”
그 사실이 성진을 더욱 불안하게 했다.
“알아서 나올 테니까. 그럼, 열심히 찾아오라고! ……신조.”
철컥.
기이이이잉.
완성자가 철판 옆의 레버를 조작하자 철판이 빙글빙글 회전하기 시작했다.
상하, 좌우, 규칙성 없이.
“어어?”
“사, 살려 줘!”
“몸이…… 몸이 이상…….”
“누가 좀!”
이상을 느낀 성진과 이민상이 차량 밖으로 튀어 나가는 그 순간, 철판이 우그러지기 시작했다.
끼긱.
끼이이이익.
“끄아아아악!”
“으어어…… 끄으으아아아!”
우지직.
우지지직!
“우웁…….”
“저, 저게 뭐야!”
인체가 끊어지고 재분해되는 소리.
아니, 그보다 더한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철판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찰나의 시간이 지나자 새로운 공간이 탄생했다.
그것을 본 손성일의 음성이 가장 먼저 입 밖으로 빠져 나왔다.
-……게이트?
콰아아아아.
기이할 정도로 이상한 기운을 뿜어내는 저 공간은 어떻게 보아도 게이트였다.
그것도 상당히 불길한 존재들이 건너올 것처럼 생긴.
완성자는 피식 웃고 한마디를 남기고 뒤돌아 사라졌다.
“열심히 쫓아와 보라고. 그런다고 뭐가 바뀔까 싶지만.”
-전원, 정지. 사태를 수습한 후에 움직인다.
-……알겠습니다.
차량이 서행으로나마 움직이던 것을 멈추고 곧장 응전 태세에 들어갔다.
다연장 로켓의 포대가 쓰일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곧추세워졌다.
지이이이익.
게이트 너머로 무언가 튀어나왔다.
얼굴이 붉고 체구는 작았으며, 손톱이 긴 것이 특징이었다.
별다를 거 없는 모습에 안심한 병사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을 때, 성진과 등불은 반대로 긴장했다.
“무스펠하임…….”
“악마들이잖아!”
게이트를 넘어온 건 작은 불의 악마들이었다.
케륵.
케르륵.
입가에서 넘실거리는 불을 뿜는 괴물들.
-소형이군. 일단…….
손성일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불의 악마들이 움직였다.
등불은 한곳에 모여 있지 않았고 여러 차량에 나뉘어 있었는데, 부대 규모에 비해 인원이 부족하니 그들이 탑승하지 않은 차량도 분명 있었다.
하필, 불의 악마들이 노린 차량이 그랬다.
“어, 어어?”
차량에 탑승해 있는 병사가 그가 탄 차량으로 돌진하는 악마들을 보고 놀라 사격을 가했다.
투두두두!
키에에!
몇 마리는 쇼크 건에 의해 튕겨 나갔지만, 그것으론 역부족이었다.
병사는 황급히 소형 차량에서 내려 뒤로 물러났다.
서걱!
“거, 거짓말!”
저 작은 괴물이 차량을 종이 자르듯이 반듯하게 잘랐다.
괴물의 긴 손톱은 불길을 두르고 있었고, 차량의 절단면에서도 불길이 치솟았다.
화르륵!
-……작은 게 오히려 문제군. 대응 사격!
투두두두!
투두두!
그들의 움직임은 분명 잽쌌지만, 다행히 총탄보다 빠르진 않았다.
그리고 쇼크 건 자체에 저 괴물들을 즉살할 파괴력은 없었지만, 타격이 중첩된다면 얘기는 달랐다.
-쏴라, 아예 곤죽을 만들어 버려!
투두두두!
키에에에에!
사격을 가해 구석으로 몰아넣은 게 주효했다.
총탄을 버티던 악마들은 결국에 터져 버리거나 도주를 선택했다.
본대가 악마들을 상대할 때, 성진과 조병창이 철판이 있던 곳에 도착했다.
조병창이 아직도 지독한 기운을 뿜어내는 게이트를 보고 말했다.
“……생존자들이 어디 갔나 했더니 이런 용도로 쓰이고 있었군요.”
“저기 보입니까?”
“어디…… 이런, 쓰레기들!”
철판이 설치된 곳은 이곳만이 아니었다.
끝없이 펼쳐진 빌딩 숲.
앞으로 지나쳐야 하는 옥상 곳곳에 철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막아야 합니다!”
“우선, 닫는 것부터.”
키에에에!
또 1마리의 무스펠하임의 악마가 게이트를 넘어오려 했다.
그것을 가만히 보아 넘길 성진이 아니었다.
곧, 그의 폭풍이 게이트를 때렸다.
콰르릉!
키아아아아아아!
지지지지징.
악마의 비명과 함께 게이트가 우그러졌다.
“강도는 약합니다. 등불이라면 혼자서도 닫을 수 있을 정도예요.”
“그나마 양심적이네요.”
“본대와 함께 움직이면 어디까지 깔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울 곳곳에 설치된 이 장치가 전부 작동할 겁니다. 막아야 해요.”
조병창이 잠시 턱을 괴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한 후 성진에게 말했다.
“하지만, ……함정 같습니다. 이런 장치를 설치해 뒀으면 응당 한꺼번에 가동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한꺼번에 가동할 만한 신성도 모자라고 제물을 받고 넘어와 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다른 세계의 괴물들의 숫자도 제한이 있고요.”
“계속해서 가동할 수밖에 없다는 거군요. 그걸 노리는 게 유일한 돌파구겠어요.”
“네, 사람들을 구해야 합니다.”
“함정이면…….”
“그래도 구해야 합니다.”
“…….”
“지금이라면 구할 수 있으니까요.”
조병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하죠!”
조병창이 바이저에 손을 얹고 무어라 말할 때, 성진은 다른 철판이 설치된 곳으로 건너갔다.
완성자는 다급하게 움직이느라 이 근방에 있는 철판을 가동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만약, 가동했다면 성진에게 뒤를 잡혀 처참하게 죽었을 것이다.
그도 그것을 짐작하고 일단 멀리 이탈한 듯 보였다.
본대에서 등불들이 빠져 나왔다.
슈트를 착용한 그들이 건물을 뛰어올라 철판들을 해제하기 시작했다.
성진도 서둘렀다.
“살려 주세요! 제발!”
“구하러 왔습니다. 안심하세요.”
“오, 맙소사…….”
“정말…… 정말 구하러 왔어……. 흑…… 흐윽.”
감정이 북받쳤는지 오열하는 사람도 보였다.
성진은 철판의 구조를 순식간에 파악하고 그곳에 구속된 사람들을 풀어 주기 시작했다.
“허억…… 헉…… 허억.”
“사, 살았다.”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성진은 그들의 감사에 짧은 미소로 화답하고 할 일을 했다.
이들을 구하는 일 때문에 본대가 시청으로 향하는 속도가 늦춰지긴 했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성진이 마지막으로 묶인 남성을 구속에서 풀어 주는데, 그 남성이 돌연 이런 말을 했다.
“혁명군이십니까?”
“……누구십니까?”
“김정우 박사님과 드문드문 연락했던 사람입니다. 폭풍 때문에 제대로 전달되지는 않았겠지만, 그쪽의 메시지는 전해졌습니다.”
뜻밖의 수확이었다.
이 침착한 남자는 자신을 정홍서라 소개했다.
성진은 김정우 박사에게 정홍서라는 사람을 아냐고 물었는데, 김정우 박사는 놀라며 성진의 질문에 답했다.
-정홍서? 방금 정홍서라고 했나?
“예.”
-살아 있었군. 서울의 소식을 전해 주던 사람이야. 몬스터로 난리 난 서울에서 군집을 이루고 살아남은 유능한 사람이지. 그 사람을 이곳에서 만날 줄이야……. 연결을 좀 해 줄 수 있나?
성진은 정홍서에게 잠시 인이어를 넘겼다.
정홍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자신이 아는 바를 김정우에게 소신껏 넘겼다.
김정우와 얘기를 마친 정홍서는 다시 성진에게 인이어를 넘겼다.
-남은 얘기는 정홍서에게 듣게. 지금은 본대가 할 일이 태산이라.
“알겠습니다.”
삑.
정홍서는 어깨를 회전하며 몸을 풀었다.
성진이 가만히 서서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자 정홍서가 말했다.
“지옥이 된 서울에도 사람은 살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꽤 많은 사람이.”
“그랬군요.”
“어느 날 사도들이 들이닥치기 전까지만 해도요. 지금은 지옥보다 더한 곳이 되었죠. 절 보시면 아시겠지만, 방금까지만 해도 짓이겨져 죽을 위기였잖아요?”
정홍서는 죽을 위기를 겪은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담담했다.
특이한 사람이었다.
“이번에 날 죽이지 못했으니, 사도들은 대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
“네?”
“난 사람들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동네 이장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성진은 순간, 정홍서의 얘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정홍서는 성진을 위해 짧게 설명했다.
“서울에 싸울 의지는 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어 발만 구르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본적인 이념은 혁명군과 유사하고요.”
“그렇습니까?”
“당신들…… 무기는 산더미만큼 있는데, 사람은 부족하다고 했죠?”
김정우가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또한, 정홍서의 도움을 원했을 것이고.
정홍서가 입매를 비틀며 말했다.
“갑시다! 나와 함께 갈 곳이 있어요!”
***
“끄아아아악!”
“으어어…… 끄으으아아아!”
우지직.
우지지직.
철판에 고정된 채로 으깨지는 사람들.
그 끔찍한 광경이 하늘에 떠 있었다.
“종말이다! 종말이야!”
“누구야? 헛소리 좀 하지 마! 불안하게!”
“아니면, 저게 다 뭐야? 신이 우리를 위해 스크린에 빔이라도 쏘셨나?”
“그건…….”
“거봐! 대답 못 하잖아!”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저것이 무슨 현상인지, 정확히 어떤 원리로 하늘에 영상이 투영되며 왜 하필 그 영상이 올빼미의 스트리밍 영상인지.
모두가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저 현상이 무슨 현상인지 ‘대강’이라도 아는 사람은 있었다.
트레이닝 복장으로 서울 한복판을 걷고 있는 신용일처럼.
하지만, 그도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신이 존재하고, 그 혹은 그녀가 자신이 사용하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을 남겼으며 그 글에는 종말 이후의 세계가 현실이고 그 증거로 하늘을 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것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 말을 믿게 하려면 당장에 무신론자들을 설득해서 신의 존재를 설득해야 했다.
괜히 귀찮은 수고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신용일은 스마트폰을 들고 거리를 헤맸다.
그는 마치 홀로 세계의 진실을 깨우친 점성술사라도 되는 것처럼 그와 편견 없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을 찾아다녔다.
‘찾았다!’
뚱뚱한 몸에 상의와 하의의 색이 다른 트레이닝 복.
면도를 안 해 너저분한 이목구비.
스마트폰으로는 올빼미의 미로 방송과 종말 이후 커뮤니티인 디스토피아를 왔다 갔다 하는 모습.
저 남자가 자신이 찾던 사람이었다.
신용일은 저 남자에게 말을 걸기 전, 아까 보았던 게시글을 확인했다.
이미 성지가 되어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린 곳.
아까와 달라진 내용이 있는지 확인했고, 신이라는 존재가 대댓글까지 달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헐;; 진짜 신이였누;; 질문 받음?
-ㅇ
-하늘에 저런 걸 띄운 의도가 뭐임? 겜덕인 거 커밍아웃하는 거?
-뭘까? 종말 이후가 현실이라고 했잖아.
-어;; 그건 그렇다고 치고…… 종말 이후가 현실인 거랑…… 엥?
-종말 이후의 세계. 지금 너희가 보고 있는 게 그곳의 최후야.
-그럼…… 저 사람이 실패하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거야?
-글쎄, 어떻게 될까?
-ㅅㅂ 구라지? 구라잖아? 진짜 현실도 ㅈ된다고?
-네가 더 잘 아네.
신용일은 다급하게 자판을 두들겼다.
-너. 아니, 신님. 우리한테 바라는 게 뭡니까?
-뭐?
-바라는 게 있으니 하늘에 저런 걸 띄우는 쇼까지 하는 거 아니에요?
-너희들의 최후가 될지도 모르는데 이유도 모르고 최후를 맞이하면 억울할 것 같아서. 그래서 띄운 거야.
-거짓말.
-이게?
-거짓말이잖아요. 우리가 뭔가 바꿔 줬으면 하는 거잖아요?
-바꿀 수는 있고?
-해 봐야지!
신의 대답은 확인하지 않았다.
그는 커뮤니티에 다른 글을 남겼다.
[제목 : 시청 광장에 사람 존나 많네;; 지금 다들 어디?]
나 시청 광장, 님들은 어디?
-나 광화문 광장 ㅋㅋ 여긴 시발 종말보다 이 새끼들 땀 냄새 때문에 먼저 죽을 듯.
-여기 강남. 넥타이 맨 전부 넋 놓고 하늘 보는 중.
-압구정에서 회 뜨다 회칼 들고 뛰쳐나온 횟집 아재다. 질문받는다.
이내, 원하는 댓글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님 시청 광장? 나돈데;
-와씨ㅋㅋ 니네 시청 가까이 사냐? 나도 지금 시청인데;
-시청에 썩은 베이컨 냄새 풍기는 놈들이 네 녀석들이렸다? 경찰 아저씨, 여기에요! 네? 저는 아닌데? 네? 저는 왜요!
-너도 시청? 나도!
-야나도!
-야 ㅋㅋㅋ 모여서 볼래?
신용일의 의도대로였다.
옆에 서 있는 남자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게 자신과 같은 이를 찾는 것 같았다.
신용일이 장소와 시간을 공지하자, 얼마 뒤 그에게 한 남자가 찾아왔다.
“저…… 혹시…….”
“네. 맞습니다.”
“맞군요! 그…….”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그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수는 군집을 이뤄 어느새 10명이 넘었고 그들의 얘기를 듣고 설득된 사람들까지 20명, 곧이어 30명이 넘는 머릿수가 되었다.
혁명가가 된 듯한 짜릿한 기분에 신용일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자신에게 모인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게 현실이라는 걸 사람들에게 알려야 해요!”
“현실이라는 걸 알려서 어쩌려고?”
“그건…… 그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죠.”
신용일 패거리는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파고들어 이와 같이 전했다.
“저건 모두 현실입니다! 저 사람이 실패하면 우리도 위험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저건 그러니까…….”
설득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은 하늘에 떠 있는 저 상황이 현실이라고 해도, 그걸 자신이 안다고 뭔가 바뀌긴 하나라는 의문을 품었다.
“그래서 뭐? 우리보고 어쩌라는 건데?”
신용일의 말에 반문하는 남자.
신용일은 갑자기 커뮤니티를 떠올렸다.
신과의 대화.
그는 저 남자와 비슷한 질문을 했었다.
그 질문을 자신이 직접 받게 될 줄 몰랐던 신용일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뭐든…… 뭐든 하라는 거예요.”
“뭐?”
“응원이든, 무시든 그냥…… 선택하라는 거예요. 그냥 죽기에는 억울하니까.”
“…….”
신용일은 대화를 마치고 커뮤니티를 확인했다.
-바꿀 수는 있고?
-해 봐야지!
그 밑에 달린 신의 답.
-그럼 해 보든가.
신용일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 그의 곁으로 머리가 까진 남자가 지나가다 멈췄다.
주변에서 사람들에게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설명하던 신용일의 일행에게 언성을 높여 무어라 말했다.
“에잉…… 사회 부적응자들, 그런 식으로 현실도피 한다고 밥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정신 차리고 일터로 돌아가서…….”
“아저씨가 뭘 안다고 그렇게 말씀하세요?”
“뭐? 나이도 어린 게 버르장머리 없이 뭐라고 했냐?”
“아저씨야말로 되는 대로 살아온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지!”
“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신용일과 나이 든 남자가 설전을 벌이는 이때, 신아름도 시청 광장에 나와 있었다.
그녀는 한참 전부터 하늘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헬이 그녀에게 말했으니까.
하늘을 보라고.
“오빠…….”
신아름은 알 수 있었다.
비록, 생김새는 자신이 아는 최성진과 다를지라도 목소리와 분위기를 통해 알아챘다.
성진은 저곳에서 싸우고 있었다.
이제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된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제발…… 제발!”
돌아올 수 있기를.
이제는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녀는 얌전히 두 손을 포개고 눈을 감았다.
신아름의 주위에는 그녀와 같은 행동을 보이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
“어디를 가는 겁니까?”
“다 와 갑니다! 이제 거의 다 왔어요! 어, 억?”
키에에에에!
갑자기 튀어나와 정홍서에게 돌진하는 무스펠하임의 악마.
콰르릉!
성진이 주먹을 내지르자, 작은 악마의 가슴팍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키, 키이.
콰직!
성진은 악마의 머리를 군홧발로 으깬 후에 정홍서에게 물었다.
“여기입니까?”
“네, 지하로 들어가죠.”
정홍서는 폭이 좁은 입구를 통해 들어갔다.
성진도 곧,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후욱, 불빛 좀 비춰 줄 수 있어요?”
딸깍.
성진이 소총에 연결된 램프를 켜 전방을 비췄다.
“이제야 좀 보이네. 통신 장비로 향할 거예요.”
“거기 뭐가 있습니까?”
“통신 장비가 있겠죠?”
“제 말은…….”
“당장엔 아무것도 없죠. 하지만 잘만 하면…….”
정홍서가 말했다.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죠.”
“갑시다.”
키이이이이!
기이잉.
퍼어엉!
가는 길목에 몬스터가 몇 마리 튀어나왔다.
몬스터들은 길목을 통과할 정도로 작았고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성진이 불빛을 번쩍이자 놀라 도망치기 일쑤였다.
그러나 도망치려는 시도는 시도로 그쳤을 뿐 성진의 총탄을 피하지 못했다.
“든든하네요.”
퍼어엉!
“얼마나 더…….”
“다 왔어요! 여기예요!”
낡은 통신 장비.
전력이 차단된 곳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여기 이렇게 비상 전력을 가동하면…… 딱 1분 정도 웅얼댈 수 있겠네요.”
“…….”
툭툭.
음성을 인식하는 입력 장치를 두들긴 그는, 서둘러 버튼을 조작했다.
치이익.
치직.
삐이.
“신호가 갑니다. 이제부터 아무 소리도 내지 마세요.”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홍서가 정면을 응시하며 입력 장치에 대고 중얼거렸다.
“후우…… 안녕하십니까, 종말로 인해 집값이 폭락한 서울 시민 여러분. 여러분들이 그토록 원했던 구원이 도착했습니다.”
치이익.
치익.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이쪽도 급해서 할 말만 하겠습니다. 이번에 온 구원이 총탄을 가득 싣고 왔는데, 머릿수는 좀 부족하네요. 그래서 말인데…….”
정홍서가 머뭇거리다 말했다.
“밖으로 좀 나와 줄래요? 혹시라도 아직 살아 계신 분 중에 이걸 듣고 계신 분이 있다면. 우리는 마포에서 시청 방향으로…….”
삐이.
통신이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