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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는 종말에 적응했다-209화 (209/222)

209화

“게이트고 나발이고 이제는 한숨 놓아도 되겠어.”

“기관장님이 고생하셨죠.”

“그건 당연한 거고! 이 강부용이는 최근에 휴일이 하루도 없었어, 알지?”

“알고 말고요.”

게이트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강부용.

그리고 그를 보좌하는 보좌관과 정혜리가 널찍한 회의실에 옹기종기 모여 귤을 까먹고 있었다.

“이 귤 맛있다. 미스 정 부모님이 감귤도에서 제주 농…… 아니, 제주도에서 감귤 농장 하신다고 하셨지?”

“예. 엄마가 매번 이렇게 보내 주셔요. 그래서 저는 과일 중에서 귤이 제일 싫어요. 손만 노래지고…….”

“어머니께서 딸 하나로는 부족하다고 안 그러시나? 여기 좀 큰딸 있는데, 돈도 잘 벌고.”

보좌관이 강부용의 농담에 인상을 찡그리며 답했다.

“기관장님,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너무 교양 없었나?”

“네.”

“흐흐…… 요즘은 한가하니 아무것도 안 해도 막 즐거워서 그래. 이해 좀 해 줘.”

강부용이 무언가 떠올랐는지, 정혜리에게 물었다.

“그래서, 미스터 김이랑은 왜 같이 안 간 거야?”

“연차요?”

“그래, 밀린 거 몰아서 쓰라니까? 둘 다 자리 비워도 국존 굴러간다고. 팀 달랑 2개 있는데 팀장 둘이 없어도 굴러가잖아?”

“그렇긴 하지만…….”

성진과 한승철이 등불과 함께 종말 이후의 세계로 사라졌다.

정부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이 그들을 찾아 나섰지만, 어느 순간 흔적이 끊겨 찾을 수 없었다.

서울이 게이트에 크게 피해를 입은 상황.

국민을 안정시키기 위해, 그리고 완성자 무리가 송두리째 사라졌기 때문에 더욱 성진과 한승철을 찾았지만, 성과가 없었다.

그렇다고 안 좋은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최근까지 공간 좌표가 틀어져 게이트 발생 지점 예측이 어려웠는데, 서울에서 게이트 사고가 발생한 이후로 점차 공간 좌표가 안정되었다.

즉, 예측하고 대비가 가능한 상황.

국가 비상사태에 잔뜩 긴장했던 정부는 기존 1차 각성자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재난에 대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실제로 어떠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다행인 점은, 그 후로 한국에 게이트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대로 무서운 점은, 전 세계적으로 게이트가 단 하나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폭풍전야.

혹시나 큰 사고가 벌어질까 전전긍긍하던 정부는, 크게 상황이 뒤바뀔 전조가 보이지 않자 긴장을 풀었다.

정부 산하의 국민 재난 보호 기관도 그에 영향을 받아 긴장 상태를 해제할 수 있었다.

“혹시 자기 미스터 김이랑 요즘 사이 별로야?”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요즘 한 집에서 같이 자고 하다 보니까 뜨거운 게 조금 식은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이 맨날 뜨거우면 병원 가 봐야지. 그래도 한동안 고생했는데 같이 가자고 안 했어?”

정혜리가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말했다.

“혼자…… 있고 싶다고 해서…….”

“미스터 김이?”

“네. 같이 가자고 했는데, 자기 좀 내버려 두면 안 되냐고 해서…….”

“음, 그렇군. 딱히 식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정말요? 저는 제가 질린 줄 알고…….”

정혜리는 앙증맞은 손으로 귤껍질만 만지작거렸다.

강부용은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검지를 치켜세웠다.

“남자는 너무 잡으면 도리어 빠져나가. 고양이나 마찬가지거든. 그리고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하고.”

“제 남자친구는 강아지 상인데…….”

“아무튼, 미스 정이 걱정할 만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야.”

“그럼 다행이고요…… 근데…….”

“응?”

“기, 기관장님 오랫동안 솔로 아니셨어요?”

“…….”

“제가 알기로는 그런데…….”

“미스 정은 축구 보는 눈은 동네 조기축구회 아저씨가 제일 좋다는 말 못 들어 봤어?”

“네…… 처음 듣는데요…….”

“장기도 원래 훈수 두는…… 됐다, 그만하자. 뭔가 내가 변명하는 것 같아…….”

강부용이 보좌관을 흘끗 쳐다보자 보좌관이 괜스레 관자놀이를 긁적이며 시선을 돌렸다.

“나 동정하지 마. 나 명예, 권력 다 있어. 다 있다고!”

“다는…….”

“다는 아니더라도 많이 있어. 그럼, 됐지…… 뭐. 왜, 뭐?”

“아닙니다.”

“감봉 사유에 적을 뻔했어.”

“하하…….”

귤을 까먹던 강부용이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는 정혜리에게 한마디 툭 던졌다.

타닥, 탁.

“미스 정, 그 업무 좀 그만 보면 안 될까? 오늘은 일도 없는데 좀 쉬자고.”

“제가 국존 공보 SNS 계정까지 손대고 있잖아요, 아시면서…….”

“자기 계정도 아닌데 그렇게 쉬면서도 붙잡고 있어야 하는 거야? 그것도 못 할 짓이네.”

“그게…… 꼭 그렇게만 볼 수도 없는 게 팔로워가 제 계정보다 몇 곱절로 많아서……. 그 맛에 계속 붙들고 있는 것 같아요.”

“거기다 욕 써놓는 술 취한 아저씨들도 많을 텐데…….”

“그래도 생각보다 젊은 층이 많이 들르더라고요. 통계도 그렇고요.”

강부용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정혜리를 쳐다보았다.

정혜리는 그 시선을 느끼지 못하고 아직도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제 보니, 미스 정도 관심이 고픈 여자구나?”

“헤헤…… 누군들 안 그렇겠어요?”

“하기야…… 다들 그렇지. 나도 예전에는…….”

“……어?”

“뭐야? 왜 내 얘기 바로 끊는 거야?”

“기, 기관장님 이것 좀 보세요.”

“왜, 뭔데?”

“제보란에 웬 이상한 게…….”

“어디, 어디 좀 봐 봐.”

정혜리가 강부용에게 노트북을 밀어서 넘겼다.

강부용은 화면 가득 떠 있는 사진에 의문을 품었다.

“이게…… 뭐지?”

“지금 하늘 모습이라고 하는데요…….”

“누가 하늘에 빔 쏜 거 아니야?”

“배트맨 시그널도 아니고 어떻게 그래요…….”

“아니, 그럼 이게 지금 말이 된다는 거야?”

“사진만 봐서는 이상하게 보일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들로 추론했을 땐 저 하늘에 보이는 잔상이 뭔지 특정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특정할 수 있다고? 뭔 군용 차량이 잔뜩 터널 같은 곳을…… 통과하는데? 이 사람은 뭐라고 하는 거야? 종말 이후? 이건 또 뭔 밥 잘 처먹고 헛소리를…….”

“기관장님! 이것 좀!”

정혜리가 이번엔 그녀의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응? 뭔데 또…… 뭐?”

정혜리의 스마트폰에서는 미로 방송이 틀어져 있었다.

강부용이 정혜리에게 물었다.

“미스 정 요즘 이런 거 보나? 이런 거 보는 건 인생의 낭…… 잠깐만. 이거…… 설마?”

“네. 아까 하늘 사진으로 나왔던 화면과 흡사하지 않나요, 기관장님?”

드르륵.

강부용이 의자를 뒤로 밀치며 일어났다.

그러더니 일언반구도 없이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보좌관과 정혜리도 그녀를 따라 뛰었다.

“헉…… 헉…… 기관장님…… 같이…… 같이…….”

“평소에 체력을 관리했어야지!”

“그럴 시간이…….”

“연애하느라 없었겠지!”

“혹시 아까 제 말을 마음에 담아 두신…….”

“아니, 아닌데? 전혀?”

보좌관이 정혜리의 귓가에 ‘맞아요’를 속삭이며 강부용의 뒤를 따랐다.

강부용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출구를 찾고 그곳으로 뛰었다.

“헉…… 허억…….”

유리문을 열어젖힌 그녀는 이미 문밖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모두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곧 그녀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금 중간 지점 지납니다!

하늘에서 천둥이 치듯 음성이 흘러나왔다.

“맙소사…….”

뒤따라 나온 정혜리와 보좌관도 헐떡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꺄악! 저, 저게…….”

“하늘이…….”

강부용은 아까 건네받은 정혜리의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했다.

그리고 곧 어떤 사실을 확신했다.

“같아……. 영상이랑…… 하늘이 같아.”

“기관장님! 어, 어떡하죠?”

“아무래도 우리 기관이 담당하는 일 같지?”

“네, 제 생각에도…….”

강부용이 정혜리에게 물었다.

“미스 정, 미스터 김이 지금 어디로 여행 갔다고 했지?”

“보라카이로…… 아직 출국은 안 했을 거예요. 아마 비행기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래? 미스터 김 말고도 국존 오프인 사람 전부 불러.”

“네?”

“보라카이라…… 그럼 다들 지금 내가 좀 보자카이.”

“…….”

“…….”

강부용이 당황했지만, 권력은 이럴 때를 위해 있는 법이었다.

“리액션.”

“……하하하하하!”

“꺄하하하하!”

“내 배꼽! 미스 정이 가져갔나? 돌려줘!”

“보좌관님이야말로 제 배꼽 밟으신 것 같아요! 아얏! 아파라! 꺄하하!”

“이크! 미안, 미안!”

***

신림동의 반지하 원룸.

반지하의 장점이라면 낮과 밤을 굳이 바꾸려 하지 않아도 알아서 바뀐다는 것이었다.

낮에는 햇빛이 잘 들지 않고 밤에는 더욱 어두워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지하에 파묻혀 있는 느낌.

마치, 무덤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신용일.

그는 이 원룸의 주인이었다.

뭔가를 소유한다는 건 굉장히 멋진 일이었지만, 이 반지하에 있어서만큼은 적용이 어려울 것이다.

아까 언급한 반지하의 장점이 두 줄이라면 단점은 논문으로 쓸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었으니까.

누워서 잠을 청할 땐 등으로 지하철이 지나다니는 진동이 느껴지고 끔찍한 곰팡이들은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까꿍 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빨래는 주인의 의도와는 달리 함부로 마르지 않았고, 어떻게 마르더라도 꿉꿉한 냄새를 풍겨 마치 생고기를 의복으로 입고 다니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하기 꺼려지는 것은 물론이고, 땅벌레와 날벌레 그리고 배수구를 타고 나타나는 지렁이까지.

이곳에서의 삶은 비참했다.

쏴아아.

“아, 시발. 녹물은 또 뭐야.”

오래된 배관.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기상부터 심상치 않았다.

물론, 아침이 아니라 정오였다.

그의 삶은 남들이 일찍 출근해 일하다 잠시 숨을 돌리는 그 틈, 그 틈을 비집고 시작했으니까.

“물 온도는 또 왜 오락가락이야. 짜증 나게…….”

한없이 뜨거웠다가 한없이 차가워지는 물의 온도.

“앗, 뜨거!”

한순간 튀겨질 뻔한 신용일은 이번엔 얼음장같이 차가워진 물에 신음했다.

“종말 이후인가…….”

그의 삶은 의욕을 잃었다.

정확히는 그가 살아갈 의지를 잃은 것이었다.

취업은 어렵고, 갖춘 것은 부족했으며, 받은 것은 없었다.

“아…… 눈물 나오려 그러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학교를 마친 그.

인생은 그에게 불친절했다.

그의 부모님은 하나뿐인 자식이, 서울 소재 대학에 척하고 붙었으니 신용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렇다고 보태 줄 건 없었지만, 열심히 공부했으니 선물 하나 정도는 쥐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단 하나, 이 자취방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물건이 자리 잡게 된 것이었다.

가상현실 캡슐.

신용일은 이 캡슐에 몸을 실을 때면 웃었다.

그는 스칸다에서 두려움을 모르는 검사였고, 종말 이후에서는 주민들의 신망이 두터운 병사였다.

캡슐 내부의 크기는 몸 하나 눕고 조금 남는 정도.

관과 비슷한 사이즈였다.

하지만,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관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그가 사는 반지하였다.

지하에 내려와 있으니 하관(下棺)한 것이나 마찬가지겠지.

신용일은 이런 생각도 종종 했다.

그의 일상은 별다를 게 없었다.

돈이 떨어지지 않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사람은 만나지 않았다.

밥은 하루에 많아야 두 끼를 먹었고 이틀에 한 번은 라면을 먹었다.

치킨은 보름에 한 번.

그가 누리는 사치였다.

배달원이 반지하에 내려오기 무서워해 건물 입구에 나가 받는 코미디도 매번 펼쳐졌지만 괜찮았다.

그는 우울했다.

신용일을 현실에서 도망치게 도와주었던 스칸다와 종말 이후에 더는 그의 자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딱히 늪에서 벗어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를 한없이 가라앉게 만드는 이 늪도, 찬바람이 몰아치는 시선을 견뎌야 하는 사회보다는 나았으니까.

그래서 계속해서 가상현실의 주위를 맴돌았다.

게임을 끊고 현실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져도, 그는 인터넷 방송과 디스토피아 커뮤니티에 접속해 얘기를 나눴다.

그것이 그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나도 어딘가에 속한 사람이라고.

이 보라고.

나도 다른 이들과 어울릴 수 있고 나 같은 사람들이 세상에는 이만큼 많다고.

나는.

나는 잘못된 게 아니라고.

오늘도 디스토피아에 접속해 그는 남들을 헐뜯었다.

교양 없는 말로, 사람을 괴롭히는 단어들을 선택해 논리는 유머로 뭉뚱그려 악질적인 글을 남겼다.

그는 천직이다 싶을 정도로 나쁜 글을 잘 썼다.

하지만, 목표가 있어 쓰는 게 아니었다.

그의 오염된 정신을 그렇게라도 배설하고 싶었을 뿐.

일말의 죄책감, 그리고 자괴감이 찾아오고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아, 시발 뭔데…….”

오늘, 현실의 온도는 다른 때보다 조금 차가웠다.

이 눈물의 원인은 아무래도 기상부터 그를 맞이한 녹물은 아닐 것이고 물 온도의 변덕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속상한가.

자신.

변하지 못하는 자신이 오늘은 조금, 아주 조금 슬펐다.

스마트폰에서 인터넷 방송이 흘러나왔다.

올빼미.

그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

게임을 하며 돈을 벌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위치.

“너는 뭐가 잘나서 이렇게 복을 타고 났냐? 나도…… 나도 거기서 싸우고 싶은데…….”

괜히 스트리머를 헐뜯고 디스토피아를 확인하던 그는 어떤 글을 보게 되었다.

[제목 : 아, 이거 안 되겠네. 으라차차!]

후.

자, 하늘을 봐봐.

얘들아.

이제 믿지?

“얘도 심하게 맛이 갔네.”

그래도 오랜만에 하늘이나 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신기한 일이었다.

신용일은 사람들의 발이 지나다니는 커튼을 걷었다.

촤륵.

그리고 잠시 멈췄다.

“……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무사히 진입했습니다!

“저, 저게…….”

하늘에는 그가 익히 아는 화면이 펼쳐져 있었다.

종말 이후.

올빼미가 싸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적나라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어, 어어?”

쿵!

뒤로 캡슐을 밟고 넘어진 그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크으으…… 아파…….”

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몸에 활력이 솟았다.

방정맞게 옷을 입기 시작했다.

팬티 바람이었다가 순식간에 트레이닝 복 차림이 되었다.

그에게는 이 옷이 가장 격식 있는 옷이었다.

스마트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1층에 올라선 그는, 잠시 고민하다 뒤로 돌았다.

쾅! 쾅! 쾅!

그는 1층에 있는 가정집의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하늘을! 하늘 좀 보세요!”

“낮부터 무슨 이상한…….”

“일단 보세요!”

문을 비집고 나온 이는 가정주부였다.

그녀는 신용일의 몰골을 보고 잠시 인상을 썼다가 하늘을 보았다.

“저, 저게 뭐야?”

“보시라니까요! 지금 뭔가 문제가 생긴 거예요!”

“이, 일단 가스 불 좀 끄고…….”

신용일은 다른 가정집의 문을 두드렸다.

쿵! 쿵! 쿵!

늘 반응은 같았다.

신용일을 한차례 멀리하다 하늘을 보고 화들짝 놀라 밖으로 뛰쳐나오는 반응.

신용일은 지금 이 순간, 본인이 위대한 계몽가라도 된 것처럼 들떴다.

“세상이, 세상이 이상해요!”

그는 그렇게 떠들었다.

놀라운 점은 사람들은 그의 말에 수긍한다는 점이었다.

신용일의 내면에서 뭔가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의 변화는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되었다.

밖을 나서는 것.

다른 이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모두 밖으로 나와요! 큰일 났으니까!”

인간은 춥거나 두려움을 느끼면 몸이 움츠러든다.

그 과정이 더 진행되면 움츠러드는 것으로 모자라 다른 사람과 모인다.

옹기종기 모여, 하나가 된다.

신용일은 이제 그의 거짓된 세계를 깨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끌었다.

사람들이 점차 모여들었다.

1명, 2명.

그런 사람들이 모여 군중이 되었다.

뉴스는 시끄럽게 이 사태를 떠들어 댔고 국존이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람들은 두려움과 호기심에 모였다.

그렇게 거리에 사람들이 들어찼다.

그들의 스마트폰에는 성진의 방송이 흘러나왔다.

전국적으로, 또 전 세계적으로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

“로키 님, 우리 측에서 할 수 있는 준비는 거의 끝났습니다.”

“진작 그랬어야지. 나 없으면 일이 진행이 안 되네?”

“……죄, 죄송합니다.”

“됐어. 그래서 서울의 인적 자원은 정확히 얼마나 됐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생존자는 약 3만 명입니다. 다른 건물이나 개인 방공호에 숨어 있는 자들은 모르겠지만, 그들을 전부 찾는 건 시간상 불가능합니다. 서울을 전부 뒤지면 약 15만 명 정도가 생존해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만 아무래도 계획은 이 정도 수준에서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조금 더 될 줄 알았는데……. 아쉽긴 하네.”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김우열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정말 3만 명을 제물로 사용해도 되는지…….”

“음…… 내가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웠나? 다들 마음들이 너무 약해진 것 같은데?”

“아! 그, 그것이 아니라 좀 더 효율적인 곳에 사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네. 그래도 어쩌겠어. 추우면 돈도 땔감으로 쓰는 게 인간인데, 안 그래?”

“그, 그렇지요! 로키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얼굴이나 보자고.”

“생존자들을요?”

“그래, 안내해.”

“네!”

남자는 김우열의 앞에서 길을 안내했다.

도시의 모든 것이 김우열의 것이었다.

고층 빌딩.

넓은 도로와 적막한 침묵까지.

서울의 모든 것들은 광대의 손아귀에 있었다.

“끄아아아!”

“괴로워!”

김우열이 입술을 삐죽 내밀고 말했다.

“저기인가 보네?”

“네, 맞습니다.”

“듣기 좋은 소리야. 계속 가 보자고.”

“예!”

김우열이 당도한 곳에는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건물들을 허물고 그곳에 세워진 구조물들.

마치 태양열 전지판을 연상케 하는 사각 철판.

그곳에 촘촘하게 구속되어 자유를 잃은 사람들.

이런 구조물이 세기도 어려울 정도로 늘어서 있었다.

“장관이네.”

묶여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로키가 찾아온 것을 보고 소리쳤다.

“네가 지시한 거구나! 이 악마!”

“천벌을 받을 것이야!”

“우리를 풀어 줘! 시키는 대로 다 할게! 제발!”

애원과 욕설, 끝없는 저주까지.

아수라장이 이런 광경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김우열은 제일 밑에 묶여 있는 젊은 여인에게 다가갔다.

표정이 없는 얼굴.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살려 줘!”

“자, 잘못했어!”

김우열이 주변의 소음을 무시하고 여인에게 물었다.

“이봐, 무슨 생각해?”

“…….”

“응?”

“……각.”

“잘 안 들리는데, 기운이 없나? 크게 좀 말하지?”

그런데 김우열이 여인의 입가에 귀를 가져다 댄 그 순간, 여인의 눈이 번뜩 뜨였다.

“로키 님!”

여인은 입을 크게 벌려 김우열의 귀를 물어뜯었다.

찌이익!

귀를 찢어 입에서 질겅질겅 씹는 여인이 웃었다.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반드시…….”

“하하, 재밌어. 그래야지. 벌써 포기하면 재미없잖아. 싸움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그보다, 너만 배를 채우니 나도 허기지네.”

“뭐? 무슨…… 커헉!”

푸우욱!

김우열의 손이 아무런 반발 없이 여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촤아악!

김우열이 여인의 가슴에서 뿜어지는 피 분수도 아랑곳하지 않고 꺼낸 것은 심장이었다.

여인은 절명했고, 김우열은 그 심장을 베어 물었다.

으그적.

“우욱…….”

“우웨에엑!”

그 모습을 보고 구토하는 사람들.

김우열은 남은 심장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철퍽!

찌지직.

그의 잘린 귀가 재생되었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모, 못 이겨…….”

“누가 좀…… 우리를 구해 줘…….”

김우열이 그것을 비웃었다.

“하하하! 너희를 누가 구해 주겠어?”

그때, 헐레벌떡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김우열의 측근이었다.

“뭐야?”

“그게…… 실드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왜?”

“강한 충격이 한 곳에 집중돼서…….”

“그게 무슨 소리야? 다리는 전부 제대로 지키고 있는 거 맞아?”

“네. 그, 그건 맞는데…… 다리가 아닙니다.”

김우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

“신조의 군대가 이미 강북에 나타났습니다.”

“……푸하하! 또 무슨 짓거리를 벌인 거지?”

“아, 알 수가…… 아마도 비밀리에 만들어진 진군로가…….”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야. 드디어 온 거군, 신조도.”

“어떻게 할까요?”

“맞이해야지. 다들 준비하라고 지시해.”

“예!”

김우열이 측근의 뒷모습을 보다가 뒤돌았다.

구속된 자들이 김우열을 보고 있었다.

김우열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희가 기다리는 뭔가가 온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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