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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는 종말에 적응했다-144화 (144/222)

# 144

144화

성진 일행은 유리온이 깨어난 이후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요정들이 평생의 은인이라도 만난 것처럼 졸졸 따라다녔고 바깥세상의 일을 물었으며 자신들이 얼마나 감사하는지를 계속 말했다.

-요정들은 귀찮습니다. 이 종족의 특색입니까?

‘아니.’

-그렇다면 개체 특이성이 발현된 것으로 기록하겠습니다.

용의 피를 마신 유리온은 전보다 훨씬 건강해졌다.

숲이 밝아진 것도 유리온이 힘을 되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유리온은 전보다 자주 웃었다.

힘없는 웃음은 온데간데없었고 껄껄대며 웃거나 혹은 박장대소도 서슴지 않았다.

최별이 달라진 별자리 관의 모습을 보고 한마디 했다.

“이렇게 희망찬 곳일 줄은 몰랐네요.”

“그러게나 말이오, 본녀는 이곳이 초상집 같아 거부감이 들었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군.”

-지금이다! 1인칭 모드로 전환해서 요정들의 감사를 몸소 체험하는 거야!

-돌격하라 밀수들! 우리가 여자에게 감사를 받을 기회는 고백하지 않아 줬을 때뿐이다!

-그런 말…… 너무 슬프잖아. 하지만 다짜고짜 돌격!

-돌겨어어억!

성진 일행은 때를 기다렸다.

유리온이 약속한 보상을 지급하는 때를.

그리고 때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고 금방 찾아왔다.

툭, 툭.

“유리온 님이 초모 님과 동료분들을 뵙고자 하십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와 제닌의 음성이 들린 것은 거의 동시였다.

최별이 당황한 듯이 대꾸했다.

“어, 저…….”

난쟁이들은 보상을 거부했었다.

그러니 이들을 유리온과 만나는 자리에 데려가기도 뭐 했고 그렇다고 두고 가자니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불안했다.

제닌이 그 뜻을 금세 파악하고 말했다.

“거처에 정예 호위 병력을 배치해 두겠습니다. 그래도 걱정되신다면 같이 가시죠.”

“아니! 우리는 여기 있을 거야!”

“뭐 한다고 그런 곳에 가나. 피곤하니 조금 쉬고 있겠네.”

최별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제닌을 따라나섰다.

-난쟁이 맘. ㅠㅠ

-별이는 엄마 해도 잘할 거야.

-그렇다면 아빠는 누가…….

-(눈알 굴리면서 경쟁자들을 살피는 중)

-(대충 심검으로 경쟁자들을 죽이는 망상하는 중)

-(채팅에서 땀 냄새가 너무 심하다고 윽박지르는 중)

-(니 냄새가 제일 심하다고 화내는 중)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성진 일행이 별나무를 찾았다.

별나무는 이전과 달리 더 울창했고 일행이 호흡을 내쉴 때마다 상쾌한 공기로 그들을 맞이했다.

그들은 나무로 된 계단을 올라 나무의 안으로 들어섰다.

유리온은 이제 요정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더 당당해 보였다.

유리온의 입이 열렸다.

“그래, 영웅들이 오셨군. 일어나야겠어.”

“유리온 님!”

“괜찮습니다.”

성진이 일언지하에 거절하자 유리온은 입맛을 다셨다.

“우리는 좀 친해진 것 같은데 자네는 여전히 딱딱하군. 단단하기가 별나무와 비할 정도야.”

“친해진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부담스럽군요.”

“하하하, 그렇지. 그럴 거야.”

“숲이 활기를 띠네요. 다 유리온 님 덕분입니다.”

“내 덕이라고? 아니, 아니지. 자네들 덕이야. 내가 회복한 것도, 이 숲에 생명이 깃든 것도.”

서로 좋은 말만 주고받자 조금 머쓱해진 오란이 헛기침을 했다.

“흠, 흐흠…… 저…… 유리온 님.”

“아, 그래. 이렇게 투명한 관계가 오랜만이라 나도 모르게 들떴나 보군. 초모, 할 얘기가 있다.”

“말씀하십시오.”

“별자리 관은 그간 틀어박혀 있었어. 바깥세상으로 나간 요정들은 아주 일부일 뿐이지. 그나마 자격 있는 자들이 활동해 주어서 다행이었지만.”

모험가 협회나 다른 곳에서도 종종 눈에 띈 요정들.

그들이 유리온이 이야기한 자격 있는 자들일 것이다.

유리온은 몸을 굽혀 앞으로 내밀었다.

중요한 얘기를 하려는 모습이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

“예?”

“내 힘이 커졌다. 숲을 흐뵝겔까지 확장할 수 있지.”

“그렇다는 얘기는…….”

“이제 우리가 고립되어 있을 필요도 없으니 대륙 간의 왕래가 쉬워질 거라는 얘기지. 사실 마음만 먹었으면 진작부터 가능했던 일이었어.”

“그렇군요.”

성진은 처음 유리온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다.

그에게 힘을 돌려주었을 때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성진은 나름 그에 대해 답을 내렸다.

“별자리 관이 예전만 못하다, 그들은 몰락하고 있다. 수많은 얘기가 내 귀까지 들어왔지. 모두 내 탓이야. 내가 부덕했기 때문에 요정들이 얕잡아 보였겠지.”

“유리온 님, 그것이 아닙니다!”

“아니, 맞는 말이야. 나 하나 추스르기도 힘겨웠으니까.”

“…….”

“이제는 다를 거야. 우리는 세상으로 나갈 것이다.”

사실 이미 늦었다고도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별자리 관이 과거에는 강성했었다고 알고 있지만,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았다.

물론, 그들에게만 가혹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스칸다 멸망의 시기.

세상이 어지러웠고, 뭔가를 도모하기엔 당장 눈앞에 닥친 일만으로도 버거웠다.

“힘든 일이겠지.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까지는. 또 세계에 도움이 되기까지는.”

“하시고 싶은 말씀이…….”

“초모,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

“예?”

“별자리 관이 자네를 지지하고 싶다는 말이야.”

“그게 무슨…….”

“지혜의 샘…… 허울 좋은 말이지. 나도 그것을 마신 적이 있어. 하지만 답을 얻지 못했지. 문제와 수많은 답을 알려 주어도 풀이를 알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법이야. 지혜의 샘이 딱 그렇지. 자네들이 고생한 것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보상이 될 거야.”

성진은 지혜의 샘에 무지했고, 유저들도 많은 정보를 가진 것이 아니라 유리온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러면 곤란해. 자네들은 좀 더 대우받아야 하는 존재들이야. 그러니까 다른 부분에서 도움을 주려 하는 거지.”

“어떻게 도움을 주실 생각입니까?”

“하하하하! 도움을 주면 받기는 할 셈인가?”

“거절을 잘 못 하는 성격이라.”

“그렇지! 그러니 내게 용의 피를 구해 와 준 것이겠지. 알지, 알아.”

유리온의 붉은 눈은 오히려 그를 열정적으로 보이게 했다.

음침했던 과거와는 분위기가 천지 차이였다.

“나도 지혜의 샘을 마셨다고 했지.”

“네.”

“스칸다가 무너질 거야. 그것이 언제가 되었든.”

“…….”

“그렇다면 내가 본 답 중에 가장 현실적이었던 것은 모두가 함께 싸우는 것이었어.”

“함께 싸운다면?”

“스칸다의 모든 이들이 지평선을 가득 메우고 전력을 다해 부딪쳐야 했어. 그게 내가 본 답이야.”

유리온은 답은 알았지만, 풀이는 몰랐다.

다만 되짚어갈 뿐이었다.

답으로부터 문제까지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보이는 게 있었다.

“내가 본 답은 사실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주고 있었어.”

“답 자체도 모호하게 알려 준다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

“지혜의 샘은 그렇지. 하지만, 지혜의 샘은 한 가지 실수를 했어. 나는 내가 본 답에서 명확한 사실을 찾았으니까.”

“그게 무엇입니까.”

유리온이 자신의 이마를 툭 툭 두들겼다.

“용 각인. 지평선에 늘어선 수많은 존재 중, 내 눈을 사로잡은 건 그들이야.”

“이방인들…….”

“나약하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손에서 불을 뿜고 용기로 맞섰어. 아무 능력도 없던 이들인데 말이야.”

“…….”

그가 본 미래에서는 뭔가가 달라지는 것 같았다.

이방인은 무능력했다.

“최근 맹이 적극적으로 이방인들을 돌보고 있지, 그건 모험가 협회도 마찬가지야.”

갱과 악전.

그들의 이야기였고, 그와 관계된 많은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들이 갑자기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가 갑자기 변하고 있어. 50년 전 영웅들이 나타났을 때와 똑같은 일들이 말이야. 이게 우연일까?”

유리온은 지혜로운 자다.

가시나무 관을 쓴 그는 세계를 굽어보았다.

그는 몇 가지 사건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건의 중심에 누가 있었는지를 간파했다.

“모두 자네가 있었어. 자네가 세계를 바꾸고 있는 거야.”

“…….”

“이것은 흐름이야. 세계는 반드시 변화를 맞이해야 하고. 나무는 태어나 줄기를 뻗고 잎을 만들어. 꽃이 피고 열매를 만들지. 그리고 이것을 반복하는 거지.”

“맞습니다.”

“우린 너무 오랫동안 멈춰 있었어. 그것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고. 그러니 이제는 우리 스스로 움직여볼 생각이야.”

유리온은 선언했다.

“나 숲의 관리자 유리온, 그리고 별자리 관은 초모가 스칸다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지지할 것이다. 그가 완전한 존재가 아니거니와 실수는 물론이고 실패할 수 있다는 것도 우리는 안다. 하지만.”

유리온의 외침은 숲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우리는 그가 결국에는 해낼 것이라 믿는다. 그의 영광은 그의 것이지만 그의 슬픔은 우리가 함께 나누겠다.”

“유리온.”

“우리는 그를 억압하는 것에서 그를 자유롭게 할 책임이 있으며 반드시 그리할 것이다. 이를 별나무에 맹세하겠다.”

“유리온…….”

“그를 믿겠다. 기록하라, 풀 냄새가 짙고 별이 쏟아지는 어느 날이다.”

유리온의 맹세에 요정들이 환호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스칸다의 기적이여!”

“우리를 멸망에서 구원해 주세요!”

“당신을 믿습니다!”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요정들이 이렇게까지 할 정도였으니, 그들이 성진을 얼마나 아끼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정유리가 성진에게 말했다.

-내가 아니라 올빼미가 신이었습니다. 나는 이해했습니다.

유리온은 제닌에게 성진과 일행을 안내하게 했다.

어두운 밤, 일행은 별빛에 의지하여 숲을 걸었다.

송하린이 외쳤다.

“빛! 빛이오!”

“저긴가 봐요!”

제닌이 샘의 앞까지 이들을 안내하고 말했다.

“평상시에는 별자리 관의 최정예들이 이곳을 관리합니다. 그럼.”

모두 제닌에게서 작은 잔을 넘겨받았다.

제닌이 부연하여 설명했다.

“많이 마시면 기억의 흐름에서 돌아오지 못할 수 있습니다. 샘을 탐냈던 자들 모두가 그렇게 소멸했죠.”

꿀꺽.

송하린의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이 잔으로 마시면 안전할 겁니다. 별나무를 깎아 만든 잔입니다.”

찰랑.

모두 잔에 샘물을 담았다.

샘물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영롱했다.

별이 가득한 하늘이 그 안에 담겼다.

셋은 그 잔을 순식간에 들이켰다.

털썩.

그리고 쓰러졌다.

“즐거운 여행되시길.”

제닌이 그들을 나란히 눕혔다.

***

너무나 고된 기억.

이것은 과거인가 현재인가, 아니면 미래인가.

어쩐지 너무 지쳤다.

모든 일을 내팽개치고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허어억…….”

성진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가빴던 숨이 잦아들었다.

“괜찮나요?”

자신을 바라보는 여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

그러나 누군지 알 수는 없었다.

곧, 그 여성은 세상과 함께 불탔다.

“아, 안 돼!”

자신이 왜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지 성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냥 이 광경이 싫었다.

이것은 과거인가 현재인가, 아니면 미래인가.

순식간에 시점이 바뀌었다.

스칸다의 하늘이 된 그는 대지를 내려다보았다.

많은 종족이 한데 모였다.

‘저건…….’

아는 얼굴들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이 들 법도 했지만, 상황 때문에 그런 마음은 금세 사라졌다.

스칸다가 시커멓게 죽어 갔다.

세계의 균열이 늘어만 갔으니 방법을 찾을 것이다.

아니면, 이미 찾았던지.

시점이 다시 한번 바뀌었다.

용의 눈.

세게이아의 자손을 어린애 장난 같게 만드는 공포가 눈앞에 있었다.

“같잖은 짓을…….”

용이 말하자, 성진은 더 이상 그를 보지 못했다.

용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 다른 이들이 보였다.

그들은 슬퍼하고 기뻐했다.

이것은 과거인가 현재인가, 아니면 미래인가.

‘뭐야…… 뭐냐고!’

성진이 소리쳤다.

“뭐야! 이게 대체 뭐냐고!”

삐이.

푸슈우.

“허억…… 헉…….”

성진은 방금 소리를 만들어 낸 것이 그의 캡슐이라는 걸 순식간에 파악했다.

밖은 한밤중,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이곳은 병실이었다.

“…….”

어쩐지 외로워진 성진은 다시 캡슐로 들어갔다.

***

성진이 재접속을 한 시간과 비슷한 시기에 최별과 송하린이 깨어났다.

“아, 튕겼네…….”

“어? 하린 양도요?”

“최별 양도?”

“저도 잠시 접속이 차단됐습니다.”

“……이게 대체.”

-엥? 지혜의 샘물 구현 안 했나? 걍 튕기는 건가?

-샘물 마시라고 한 놈들 나와. ㅋㅋ 혼쭐 좀 나자.

-데자뷰도 완벽할 순 없지.

-NPC용인 샘물을 마시겠다는 미친 종자들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거지. ㅋㅋ

-봐주자! 봐줘!

-힝 돈이나 요구할걸.

성진 일행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최별도 송하린도 뭔가를 본 모양인데, 그것을 말하기 꺼려했다.

“봤죠?”

“보긴 봤소이다.”

“늑대?”

“엥? 최별 양도?”

둘은 같은 것을 본 것 같았다.

성진이 말했다.

“저는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늑대가 안 나왔나요?”

“네.”

“그런…… 아무튼.”

“최별 양, 그다음에 뭐가 나왔소?”

“제가 사람을 붙잡고 녹여 버리는 거요.”

“이 살인마! 평소에 얼마나 못된 마음을 품었으면!”

“아, 아니에요! 그런 생각 같은 건 없었어요. 뭔가 이상했어요.”

-뭔가 보긴 본 모양인데?

-글게? 데이터 쪼가리 아니야?

-다들 횡설수설하는 거로 보나 같은 내용이라고 하는 거 보면 걍 미리 설정된 내용인 듯.

“초모 님은 무슨 내용이었어요?”

“불타는 여자와 세상, 그리고 용이었습니다. 또 그에 맞서는 사람들이요.”

“맞서는 사람들? 누군데요?”

“스칸다의 주민들이었습니다.”

“뭐지? 아무래도 바로 알 만한 내용은 아니네요. 아무것도 아닌 내용일 수도 있고.”

“유리온이 괜히 더 챙겨 주겠다고 말한 건 아니었구려.”

괜히 기분이 찝찝해진 일행은 제닌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닌에게 상황을 전해들은 유리온이 성진 일행이 본 환영에 대해 한마디 했다.

“당장은 무슨 환영인지 모를 수도 있지. 하지만, 나중에는 반드시 알게 될 것이야.”

“그럼 좋겠네요.”

다음 날이 되어, 일행은 별자리 관의 요정들의 배웅을 받으며 길을 떠났다.

-이렇게 많은 미녀의 배웅을 받는데 나는 시크 앤 쿨한 남자. 함부로 행동하지 않지.

-라는 내용의 애니 추천 좀.

-초모 매드 무비 추천합니다.

-ㅇㅈ 추강이여.

흐뵝겔을 지나자 난쟁이 형제들이 말했다.

“초모, 우리는 이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거야.”

“감사했습니다.”

“감사는, 빚을 갚은 거지.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도 되나?”

“네. 물론입니다.”

“스칸다가 자네에게 그 검을 건넨 이유가 있을 거야. 우리는 자네를 믿네.”

“감사합니다.”

난쟁이들은 그렇게 떠났다.

시청자들은 이용해 먹기 좋은 놈들이었다고 말하거나 식충이들 내보내서 속이 시원하다는 등 나쁜 말을 서슴없이 했지만, 성진은 난쟁이들이 고마웠다.

-착하게 말해. 시발련들아.

-급발진 ㅅㅂ ㅋㅋㅋㅋ

-맞아 선 넘지 마라, 얘들아~ 난쟁이들이 너희 가족이라고 생각해 봐~

사실, 지금부터가 중요한 시점이었다.

새로운 시나리오는 아직 생성되지 않았고, 당장에 할 일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최별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아, 마침 카멜롯에 일이 있는데 구경이나 할 겸 같이 가시는 건 어때요?”

송하린이 잘 걸렸다는 듯이 대꾸했다.

“오호라…… 우리 흑백쌍괴를 헐값에 고용해서 카멜롯을 날름하려는 수작이구려?”

“……그런 해괴망측한 망상은 송하린 씨나 할 법한 생각이네요. 싫으면 말아요. 저는 어차피 두 번째 증명을 완료했고 멀린만 만나면 되는 일이니까.”

“세 번째 증명이 얼마나 어려울 줄 알고?”

“아무렴, 용의 피를 구해 오는 것보다 어렵겠어요? 아니, 사실 용의 피도 웃긴 거잖아요. 용인들에게서 구할 수도 없고 마지막 남은 원시 용에게서만 얻을 수 있었으니까.”

“그걸 왜 나한테 따지시오? 멀린인지 멀록인지 그놈한테 말 하시지.”

“그게…… 좀 꺼려지는 사람이라. 아무튼, 같이 갈 거예요?”

송하린이 성진을 돌아보았다.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엥? 형님 뭐 하러 최별 양 말대로 해 줍니까? 굳이 카멜롯에 들를 이유가 있을까요?”

“처리해야 할 일들이 좀 있습니다. 협회 쪽 일과 연락이 뜸해졌던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눠야 하고요.”

“그럼 바로 가시죠! 자, 출발!”

최별이 어이없어했지만, 결국 그녀의 생각대로 일이 풀렸기에 아무 말 없이 이동했다.

이미 흐뵝겔을 지나친 시점에서 카멜롯과는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기에, 그들은 마차를 대절하여 카멜롯으로 향했다.

마차로 이동하는 내내 최별은 손을 움찔거렸다.

지혜의 샘에서 보았던 그 환영은 너무도 생생했다.

누군가의 목을 잡고 그대로 불태워 버리는 모습.

다른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겠지만, 최별은 기분이 찝찝했다.

여행을 떠난 지 한참, 최별과 성진 일행은 카멜롯에 도착했다.

성문에 다다르자, 최별이 이야기했다.

“마부님, 저쪽으로 마차를 대 주시겠어요?”

“어이쿠, 저쪽은 줄이 짧긴 해도 아무나 통과시키는 곳이 아닙니다. 여기서 서는 게 맞습니다.”

“제 말 대로 해 주세요.”

“……정 그러시다면.”

마차가 성문의 구석으로 향했다.

병사가 마차를 한쪽으로 세우게 했다.

“누구십니까.”

최별이 마차의 창으로 얼굴을 비췄다.

“접니다.”

“통과.”

-???

-야 ㅋㅋㅋ 흑백쌍괴랑 같이 있어서 그렇지 최별 원탁임.

-원탁(진)이지 그래도 뭐. ㅋㅋ 카멜롯에선 신이나 마찬가지니까.

-카멜롯이 비싸긴 해도 갑옷 잘 뽑았는데.

-중갑 입는 놈들이나 좋아했지 나는 싫더라.

-야, 근데 왜 검사랑 기사랑 다른 거냐. 누가 이해시켜 줄 사람?

-둘 다 전위긴 한데 기사는 방어력 믿고 들이미는 스타일. 검사는 회피 계통. 검사를 탱커 세우는 경우는 보통 동부였음.

-왜 검사 탱커 세움? 굳이? 탱 없어서 세운 거 아님? 종잇장일 거 아니야?

-ㄴㄴ 이게 레벨 올라갈수록 템빨을 받잖아. 회피는 아예 딜을 흘리니까 템만 맞추면 기사가 댐감시키는 것보다 더 효율적임. 오소이 탱커라고 동부 탱커 메타 유명했어.

-오소이!(느려!) ㅋㅋㅋ 이름 신박하네. 알면 알수록 재밌는 스칸다 이야기. 우리 함께 즐겨 보시지 않을래요?

-응, 섭종. ㅎ

-팩트로 때리지 마라. 스칸다는 여전히 내 가슴에 살아 있어.

‘어휴 갑알못들’ 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니들이 갑옷에 대해 뭘 아세?]

-님은 뭐 아세?

-갑옷은 노출 부위가 많을수록 더 고렙 템임 ㅇㅈ?

-아 몇 개는 그렇긴 했어 ㅋㅋ 나도 그래서 입고 다녔는데.

-섹시했겠네.

-섹시했지. 근데 나 남자야.

-너 사건 사고 게시판 올라갔더라. 공연음란죄로.

-해명했어. 템 옵션 보니까 다들 인정해 줬음.

-옵션은 ㅇㅈ이지. ㅋㅋ

-어휴 진짜 갑알못이 누군데 ㅉㅉ 최별 갑옷 보면 모르냐? 진짜 중갑다운 중갑 입은 모습! 얼마나 멋있냐? 노출 많다고 빨아 재끼는 놈들 바로 제트 킥!

-오, 군자님. 저와 취향이 같구려. ㅎㅎ 역시 갑옷은 단단함이지. 핥핥…….

성진은 최별이 내성에서 볼일이 있다고 하자, 송하린과 따로 빠져나왔다.

우선, 협회에 들러야 했다.

“형님, 협회부터 들르시게요?”

“예, 몇 가지 확인할 게 있습니다.”

성진이 확인할 것은 세 가지.

일단 용의 고원 임무에 대해 보고해야 했고, 재조사에 들어간 대삼림의 임무 건이 해결됐는지 확인해야 했다.

또 마지막으로 꽃의 사제들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은지 꽤 오래되었다.

그들의 소식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모험가 협회 카멜롯 지부.

이곳에 모인 이들은 다른 모험가 협회의 지부에 터를 잡은 이들보다 수준이 높다는 게 정론이었다.

기사들의 심장인 카멜롯이다.

그곳에 모인 이들의 수준이 낮을 리 없었다.

다른 곳보다 평균적으로 등급도 높았다.

“건물이 되게 큽니다, 형님!”

“그러게요. 카멜롯 지부가 여태 가 본 곳 중에서 제일 큰 것 같아요.”

“시, 시비를 걸면 어쩝니까? 제가 바로 목을 벨까요?”

“그럼 일이 더 커지는 것 아닙니까?”

“어차피 최별 양에게 떠넘기면 되지 않습니까?”

“그럼 좋게 안 끝날 것 같은데요.”

“형님은 너무 바르게 살아오셨습니다. 분명히 현실에서 공무원일 것 같아요.”

“공무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달칵.

문은 관리가 잘 된 건지 깔끔하게 열렸다.

“우하하하하하!”

“아스코빌 형님께서 한 턱 내신댄다!”

“내가 언제!”

“뭐? 안 낸다고? 이번 임무 누가 주선해 줬는데!”

“너, 너까지만 사지.”

“당연히 꽃들도 안겨 주겠지?”

“너까지만.”

“다 꺼져! 아스코빌 형님은 내 형님이다!”

“우우우우! 쓰레기들!”

“쉿! 패배자 녀석들이!”

전형적인 모험가들.

슬쩍 다른 곳을 보니 다양한 종족과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번에 판로를 뚫은 곳에서 문제가 있었잖아.”

“또 밀트 상회가 문제야?”

상인들.

“존나게 시끄럽네, 아스코빌이고 나발이고 저렇게 떠들 거면 술집 가서 떠들던가.”

“비취 등급이네, 아스코빌.”

“비, 비취? 흠…… 목에 힘줄 만하네. 승급한 건가?”

“등급이 깡패야, 진짜.”

험한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모험가들.

성진이 살펴 본 결과, 이곳에 동부에서 활동하던 모험가들은 없어 보였다.

동부 복장이 보이지 않았다.

“혀, 형님. 깜빡했습니다.”

“뭘요?”

“텃세요. 원래 서부랑 동부 사이가 안 좋아서 옷 같은 건 그쪽 문화에 맞추는 게 관례입니다.”

“우린 동부 복장으로 와 버렸네요?”

“주, 죽여주십시오. 동생의 불찰입니다. 이 붕어 대가리!”

헤진 삿갓을 쓰고 무복을 입은 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칭칭 동여맨 무기들.

그 모습이 성진과 송하린을 얼뜨기처럼 보이게 했다.

-야 협회 애들 눈 돌아가는 거 봐. ㅋㅋㅋ

-어? 신병 왔네?

-서부에 동부 복장 입고 들어가는 것 자체가 존나 자신 있거나 쌈 걸러 가는 것밖에 안 되는데.

-어? 야! 쟤 오잖아. ㅋㅋ 쟤 ㅋㅋ

-앜ㅋㅋㅋ 시발 치키이이인! 바로 시켜 버려!

-미친 ㅋㅋㅋ 현웃 터졌다.ㅋㅋㅋ

너클을 낀 거한이 성진과 송하린을 내려다보았다.

성진도 나름 다부진 몸이었지만, 상대는 신장이 족히 2m는 넘어 보였다.

“얼뜨기 동부 친구들이 카멜롯은 처음인가 봐?”

“와하하하! 봐 주라고! 깜빡했을 수도 있지!”

“깜빡할 게 따로 있지, 그냥 넘어가면 카멜롯이 우습게 보일 거야.”

“그건 맞지! 적당히 두들겨 줘!”

“죽여라! 반 죽여!”

성진이 빙긋 웃었다.

송하린이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다급하게 성진에게 귓속말을 했다.

“형님, 이럴 때 웃으면 놀리는 걸로밖에 안 보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어떡합니까, 쟤 화났습니다.”

-울끈이 불끈이 화났다!!!

-아 개웃겨. ㅋㅋㅋㅋ

-앞에서 귓속말 하는 것도 에바야. ㅋㅋㅋ

거한이 성진의 도복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이 새끼들이.”

“안 돼! 우리 형님한테 무슨 짓을! 이눔 새끼!”

짜악!

“커억!”

콰직!

콰지직!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송하린이 성진이 멱살을 잡힌 모습을 보고 놀라 거한의 뺨을 후려쳤다.

그녀는 현재 괴물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거한이 날아가 탁자 두어 개를 부수고 멈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제이크!”

“이, 이게 무슨!”

“이 새끼들이 미쳤나!”

거한의 일행이 우르르 일어났다.

송하린이 당황해서 성진에게 투정했다.

“다 형님 때문입니다!”

“저 때문이요?”

-초모 어리둥절. ㅋㅋㅋ

-갓눔 새끼! ㅋㅋㅋㅋ

-엄마! 아파요!

-내 이럴 줄 알았다. ㅋㅋ

큰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

그때, 협회 구석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저거 뭐야!”

“뭐? 왜 그래? 아는 사람이야?”

“병신들아! 눈깔이 있으면 버튼부터 봤어야지!”

“버튼? 이런…….”

“블랙 오팔이야!”

“브, 블랙 오팔?”

“난 잘못 없어! 나, 난 웃지도 않았다고!”

제이크의 일행이 성진과 송하린의 흑단백석 버튼을 보고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저, 저는 안 일어났습니다.”

“쟤, 쟤 혼자서 한 일입니다. 저희는 술만 마시고 있었어요.”

“사실 별로 친하지도 않아요.”

널브러졌던 제이크가 소리쳤다.

“너, 너희들…….”

“개새끼! 닥쳐! 넌 친구도 아니야!”

“왜…… 왜…….”

-저게 왜 그러냐면 흑단백석이 유저들은 착한 사람이 대다수였는데 NPC들이 존나 쓰레기들이 많았음.

-걍 수틀리면 다 죽였음. 존나 무슨 문명 과도기인 줄 알았다니까. 칼부림 나면 협회 1층에 시체 존나 쌓이고.

-지금은 흑단백석 이방인이 없으니까 그런 애들인 줄 아는 거야. ㅋㅋㅋ

-친절한 해설 감사합니다.

송하린이 성진에게 귓속말했다.

“형님, 형님도 때리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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