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145화
모험가 협회 카멜롯 지부.
성진과 송하린의 등장으로 산만하던 공간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그 소란이 있었으니 모두의 시선이 성진과 송하린에게 집중되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성진이 조용히 물었다.
“큰일 난 겁니까?”
“아뇨? 큰일은 등급 낮은 애들이 나는 거고 등급 높은 사람들은 큰일 안 납니다. 가시죠.”
성진은 바닥에 쓰러진 거한을 잠시 흘겨보고 접수처까지 걸었다.
끼익, 끼익.
분명 보폭이 큰 것도 쇠 굽이 달린 구두를 신은 것도 아니었지만, 오래된 나무 바닥은 소음을 만들어 냈다.
카멜롯의 사람들은 이마저도 전통과 역사라고 여겼고 실제로 좋은 나무를 썼기에 불편한 점은 없었다.
다만, 작은 소음이 이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어째선지 그 작은 소음이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이러다 숨소리까지 들리겠습니다, 형님.”
“그러니까요. 다들 너무 조용합니다.”
이런 자리에서 스칸다라도 뽑았다간 모두 고개를 조아릴 지경이었다.
“비, 비켜!”
“뒤로 물러나라고!”
“발! 발 밟지 마, 이 새끼야!”
괜히 무리지어 앞을 막고 있던 무리가 주춤주춤 물러나더니 길이 만들어졌다.
홍해가 갈라지는 듯한 광경에 시청자들이 감탄했다.
-아 ㅡ.,ㅡ 나도 흑단백석이었는데 왜 나 때는 저런 분위기가 없었지?
-그때는 인력시장 나가면 흑단백석도 가끔 보일 정도로 많았어. ㅋㅋㅋ
-일단 저 친구가 흑단백석이었다는 얘기부터 검증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과 50년 전이 다른 점. 1) 과거엔 레이드 활성화. 2) 유저풀이 넘사 3) NPC들의 발전이 없음
-아, 나도 저런 거 하고 싶다고! 나도 막! 저거 막! 있잖아!
-밀수는 여기서 그렇게 떼쓰면서 살아, 아빠는 갈 거야.
웅성대는 말 중에는 성진과 송하린의 정체를 짐작하는 말들도 있었다.
“동부의 블랙 오팔. 나타난 시기까지…… 묘한데? 저, 음…… 흑백쌍존?”
“그 괴짜들이? 아닐걸? 봐봐, 저기 검은 옷을 입은 여자는 흑존과 인상착의가 비슷하지만 옆에 남자는 흰색 옷도 아니고 봉을 쓰는 것 같지도 않잖아.”
“그러네. 그럼 누구지?”
“동부가 얼마 전까진 잠잠했는데 흑백쌍존과 혈마가 뒤집어 놓은 이후로는 활발하게 활동하니 아마 그 기세를 타고 강자들이 튀어나온 게 아닐까?”
“블랙 오팔은 하루아침에 달성할 수 있는 게 아니니 확실히 과거의 강자들이 돌아왔을 수도 있겠네.”
맥주를 마시던 자들도 괜히 눈치가 보이는지 벌떡 일어나 구경하는 자들과 합류했다.
성진과 송하린은 접수처에 다가가 안내원에게 탄타르빌 관련 임무를 보고했다.
안내원이 잠시 멍한 표정으로 듣다가 곧 정신을 차렸는지 부산을 떨었다.
“아! 자, 잠시만요!”
안내원은 이것저것 만지며 허둥지둥하다가 결국 지부장실로 들어갔다.
잠시 머쓱해진 성진과 송하린은 각자 팔짱을 꼈다.
“저, 저것 봐! 팔짱을 꼈어!”
“대단해! 역시…… 블랙 오팔은 뭔가 다르다는 건가?”
“오오! 저것 봐!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고 해!”
“아니야! 안 넣었어! 와아아…….”
성진이 송하린에게 속삭였다.
“이거 미치겠는데요.”
“형님, 동생은 코 파고 싶은데 이 친구들이 실망할까 봐 참는 중입니다.”
“아까 날아가신 분은…….”
“그렇게 세게 안 때렸으니 아마 동료들이 데려갔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다행이고요.”
끼이익.
안내원이 땀을 훔치며 나왔다.
“저…… 초…….”
송하린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마 안내원이 초모라는 말을 큰 소리로 말하려 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드, 들어오세요. 지부장님이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성진과 송하린이 독립된 공간으로 들어가자, 남은 구경꾼들이 입맛을 다셨다.
“하, 한마디 정도는 해 주지 않을까?”
“후배들을 위해? 블랙 오팔이 뭐 하러? 카멜롯의 수준이 높다한들 밑 단계에서나 그렇지, 저들이 보기에 브론즈나 실버나 골드 다 똑같아.”
“그래도 한 수 정도는 봐줄 것 같은데.”
“뭐…… 아까 시비 건 그 얼뜨기를 살려 준 걸로 봐서는 그럴 가능성도 있지. 근데 난 그런 일에 목숨까지 걸고 싶진 않다.”
“아, 그렇네. 나도 죽고 싶진 않아서…….”
“제길, 뭐 좋은 구경하나 싶었다.”
“가끔 나타나는 고랭크들도 우리랑은 일절 말을 안 섞잖아.”
“근데 그 친구들은 오히려 우리를 무시해 줬으면 싶다. 너무 무서워서 말이야.”
***
지부장은 요정이었다.
깔끔한 인상의 미남이 성진과 송하린을 자리로 안내했다.
“어서 오시지요, 초모 님, 송하린 님. 미켈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미켈이란 이름의 남자는 겉으로 봐선 그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성진은 미켈이 자신들을 이미 알고 있다고 느꼈다.
“우리를 아십니까?”
미켈은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 재밌는 표정을 짓고는 웃었다.
“하하하, 초모 님과 송하린 님의 명성을 모르는 사람이 카멜롯의 지부장 자리에 앉아 있다면 당장 경질될 겁니다.”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협회에서는 이미 초모 님과 송하린 님의 기록 열람 자격을 대폭 상승시켰습니다, 함부로 열람하지 못하도록요. 그만큼 협회에서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저도 그중 하나고요.”
대폭 상승한 기록 열람 자격.
방금 미켈이 한 말의 의미는 협회가 성진 일행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미켈 자신이 그 자격을 충족시킬 만큼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라는 걸 은연중에 나타내는 것이었다.
성진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호의일까, 아니면 적의일까.
미켈이 양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협회에서 초모 님 일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딱 한 부류입니다.”
“한 부류?”
“초모 님의 경쟁자들이죠. 믿지 못할 만큼 빠른 승급 속도와 더불어 말도 안 되는 업적. 협회와의 은밀한 관계가 아니냐는 소문도 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제게 호의적이라는 얘깁니까?”
“초모 님…… 얼마 전 요정들의 일을 돕지 않았습니까?”
“그걸 어떻게 아신 겁니까?”
“제헤…… 아니, 유리온 님의 사자가 제게 방문했습니다. 어제 급보로요. 아마 초모 님 일행이 숲을 떠나기 전에 먼저 출발한 것 같습니다.”
유리온이 미켈에게 무엇을 전하려 했을까.
미켈은 그것을 감추지 않고 이야기했다.
“그분께서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말씀…… 요정들은 그를 돕도록 하여라. 이유도, 별다른 지시도 없었습니다.”
“굳이 그러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건 비단 저뿐만 아니라 스칸다에 퍼져 있는 요정들에게도 전해졌을 겁니다. 유리온 님은 모든 것을 보시니까요. 초모 님, 방금 초모 님의 경쟁자들을 제외하고 협회의 대부분이 초모 님에게 호의적이라는 말씀을 드린 것 같습니다.”
“네, 맞습니다.”
“초모 님의 여정에는 늘 시련이 따르고 그 시련들은 하나같이 스칸다 전체를 뒤흔들 만한 일들이었습니다.”
“…….”
“저희는 그 시련에 물러서지 않고 극복해 내는 초모 님에게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초모 님, 모험가 협회의 본질을 아십니까?”
“더 많은 모험을 장려하는 곳 아닌가요?”
“그렇다면 그 단체의 이익은 어디서 발생할까요?”
-엥? 수주한 의뢰에서 수수료 챙겨 가는 거 아니었어?
-머 보통 그렇지?
-머리 쓰는 얘기가 나오자 급격히 줄어드는 채팅 수.
-하하, 장실 점. ^^
-나도, 토일렛 이슈. ^^
“의뢰 수수료로 운영되는 것 아니었습니까?”
“50년 전까지는 그랬죠. 하지만 최근엔 뭔가가 이상합니다.”
“무슨…….”
“모험가 협회가 실리를 따지지 않게 된 거죠. 막대한 수수료를 챙길 수 있는 의뢰라도 세계에 피해를 줄 것 같다면 받지 않는 반면에, 세계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협회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경우도 생기고 있습니다.”
“그게 얼마 전부터죠?”
“50년 전부터. 대체 왜 그런 것일까요? 협회는 무엇을 원하고 얼마나 더 먼 미래를 보기에…… 다행히 적자는 아니지만 덕분에 수십 년간 성장이 더뎠습니다.”
“음…….”
송하린도 고개를 젓는 게 모르는 눈치였다.
미켈은 간단하게 정리했다.
“뭐, 일개 지부장인 제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요. 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말씀을 안 드렸군요.”
삐.
탁자 귀퉁이에 부착된 버튼을 누르자 안내원이 서류 몇 장을 들고 허둥지둥 뛰어 들어왔다.
“여, 여기 있습니다.”
“감사해요. 자, 나가 봐요.”
“저…… 그게 지부장님.”
“뭐죠?”
“드릴 말씀이…….”
안내원이 지부장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지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다 안색을 굳히고 성진 일행에게 말했다.
“바깥에서 잠시 소란이 이는 모양이군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아, 바쁘신 것 같은데 저희가 괜히 방해가 되었나 보네요.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아닙니다! 앉아계세요. 곧 끝내고 다시 얘기를 나누…….”
밖에서 이는 소란이 결국 이곳까지 전해졌다.
“어디 갔냐고! 그 블랙 오팔인지 하는 놈들 말이야!”
“뻔하지, 대넌 가의 부름에 실력이 탄로 날까 무서워 도망친 것 아니겠어?”
송하린이 성진을 보고 말했다.
“블랙 오팔인지 하는 놈들은 우리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형님.”
“……그런 것 같네요.”
미켈이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문제가 좀 있는 동네라…….”
***
최별은 멀린과 독대하기 위해 내성을 찾았다.
일이 풀리려고 하는지 다행히도 멀린이 카멜롯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곧, 그가 올 것이니 대기하라는 말이 있었다.
최별은 심심한 나머지 회의장으로 들어섰다.
광활한 공간에 놓인 동그란 탁자 하나.
정체불명의 광석으로 만들어졌다는 그 동그란 원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모두 강자였었고 지금도 강자였다.
“흠…….”
물론 최별은 자신 있었다.
데자뷰가 자신에게 직접 이야기할 정도면 자신에게 이들을 모두 꺾을 승산이 일 할이라도 존재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쓸쓸하네.”
새로운 동료들을 사귀었다.
최별은 흑백쌍존이라는 별호를 들었을 때 조금 질투가 났다.
그들만의 유대가 쌓인 것 같아서 그랬다.
‘유대라…….’
원래 최별은 그런 것들에 크게 기대지 않는 편이었다.
그녀의 삶에서 유대란 아버지와 그녀로 이어지는 유대를 제외하곤 대부분 불확실했으며 통제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스스로 모든 일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자신의 작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스칸다를 플레이할 당시였다.
그녀는 아직도 그 순간을 기억했다.
-물러나!
-별아! 지금은 물러나자, 이대로 가면 다 죽을 거야!
-언니! 안 돼요!
마수 가르가의 둥지.
당시 꽤 유명했던 길드와 레이드 팀이 수없이 도전했고 번번이 고배를 마신 곳이었다.
최정예들이 이곳에서 쓰러진다는 것은 분명 쉽게 복구될 수 없는 아주 큰 손실이었다.
“이…… 조금만…….”
조금만 시간을 벌 수 있다면.
자신에게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거대한 범의 모습을 한 가르가를 쓰러트릴 수 있을 텐데.
최별은 자신의 나약함이 원망스러웠다.
그녀와 합을 맞추던 길드의 간부도 그녀의 마음을 눈치챘다.
그가 뒤를 돌아 일행에게 눈짓했다.
수십 명의 사람들.
서로를 가족이라 부르면서 가볍게 뭉친 사이.
언제든 이탈할 수 있고 함부로 말할 수도 있는 사이였다.
적어도 최별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아…… 하아…… 됐어…….”
서걱.
푸화아아악.
가르가의 피가 그녀의 온몸을 적셨다.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던 목표를 이뤘다.
그녀의 이름은 더욱 알려질 것이고 그녀의 아버지가 부탁했던 일에 조금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해냈어. 해냈다고!”
“별아…….”
“……응?”
최별은 간부가 기뻐하지 않는다는 걸 그의 표정으로 눈치챘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이런…….”
“…….”
뒤를 돌아본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가르가는 늘 불의 정령과 함께였다.
가르가가 흥분하면 불의 정령들이 마수를 도와 침입자들을 처치한다는 정보.
벌써 몇 개의 공략조들이 박살 나고 얻은 가치 있는 정보였다.
전위는 후위가 불의 정령에게 무너지기 전에 가르가를 쓰러트려야 했고 후위는 전위가 가르가를 쓰러트릴 수 있도록 불의 정령을 붙잡고 있어야 했다.
가르가는 쓰러졌지만, 동료들도 쓰러졌다.
“왜…….”
“최별…….”
“왜 아무도 말하지 않은 거야…….”
“하기로 한 이상, 해야지.”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그게 우리잖아.”
최별은 그제야 눈치챘다.
전위가 후위를 걱정하지 않도록, 최별이 판단을 그르치지 않도록 후위는 침묵했다.
통각 수치를 최대로 낮추더라도 죽음의 순간, 고통은 분명 존재했다.
최상위권 유저들일수록 통각 수치를 평균보다 높게 설정한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가르가를 쓰러트렸기에 기뻐해야 했을까, 동료들이 쓰러졌기에 울상이어야 했을까.
그녀는 길드 하우스에 돌아와 아무 의자에 앉았다.
길드의 정예들이 처참하게 쓰러졌다.
그들의 리더로서도, 그들의 보스로서도 책임감을 느꼈다.
그런 그녀에게 아무도 위로를 건네지 못했다.
가르가가 공략되었다는 소식에 스칸다 관련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다.
그녀는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때, 길드 채팅 창이 시끄러워졌다.
새로운 길드원들이 합류한 것 때문에 그런 듯했다.
‘뉴비라고?’
레벨 1.
최별의 길드는 레벨 제한이 있었다.
상위권 유저들도 길드 가입을 거절당하는 게 흔한 일이었는데, 길드에 뉴비가 들어왔다.
-아아, 이 맛이야. 커스터마이징 존나 오래 걸렸다.
-삐이- 나쁜 말 쓰지 말자!
-1렙은 파리 목숨이라 가오가 더 중한 거 모르오?
-마, 내가 여 사장이랑 아는 사인데 니들 나 모르나? 내가 요 사장이랑 밥도 묵고 넴드도 닦고 다 했는데, 으이!
-가르가 다운!!!! 최별 선수!!! 불꽃 파운딩으로 불꽃의 마수 가르가를 다운시켰습니다~!
-최별 때문에 내 소중한 캐릭터가 사라졌다. 이는 실로 중대한 죄요, 본관은 최별에게 ‘섹시가이최별남편’과의 결혼 형에 처한다.
-줄 서세요, 형. 이미 다들 꽃 들고 고백 준비 중이에요. 아, 형! 맨날 클럽가면서 해바라기는 왜 들고 왔어요. ㅋㅋ 깬다, 진짜.
-아, 그냐? 이것들이 빠져가지고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지. ㅡㅡ
-별 누나가 안 받아 줄 걸요. 우리 이제 한 대 치면 바로 캐삭인데. ㅋㅋ
스칸다는 로그라이크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죽으면, 그 캐릭터는 끝이다.
말인즉, 죽었을 경우엔 금액을 지불해야 새로운 캐릭터를 생성할 수 있는 아주 불합리한 게임이었다.
지금 그녀의 길드 채팅 창을 북적이게 만든 뉴비들은 가르가와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후위들이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
최별은 자신에게 질렸을 법도 한데 이들이 왜 돌아왔는지 의문이었다.
쾅! 쾅! 쾅!
-별아, 문 좀 열어 줘! 근력 스텟이 낮아서 못 열고 있다! ㅅㅂ 누가 이거 문 합금으로 달았냐? 성빈이냐?
-성빈이 돈 지랄 덜덜해~ 길드 하우스 문을 합금으로 하는 새끼가 어디 있어. ㅋㅋ
-별이 언니! 제가 잘못했어요! 문 좀 열어 주세요! 얼어 죽겠어요! 제가 마력 남기고 아웃돼서 안 열어 주시는 거죠?
-다음엔 안 죽을게! 우리 좀 받아 줘!
-받아 주진 않아도 인터뷰에서 내 이름 언급해 줄 거지, 별아?
길드 하우스에 대기하고 있던 인원들은 슬금슬금 최별의 눈치를 보았다.
헛기침을 하고 문가에 서 있거나 재채기를 하며 이번에 아웃된 길드원의 닉네임을 부르는 등 최별을 흘겨보며 압박을 주었다.
최별이 성큼성큼 문으로 다가가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그녀 자신도 모르게 들떠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길드 하우스로 수십 명이 쏟아져 들어왔다.
“으아아아! 돌격!”
“비켜! 하우스 효과 받고 사냥 가야 해!”
“아싸, 최별 누나가 입 대고 마시다 만 머그 잔 득템!”
“누나! 쟤 봐요! 야!”
“안 돼! 때리지 마! 나 렙 낮아서 죽을 수도 있어!”
최별은 잠시 머뭇거렸다.
이런 관계는 처음이었다.
“어…… 저…… 그…….”
“최별 말 더듬는다! 동네 사람들!”
“맙소사! 내가 뭘 본 거야?”
“스샷 찍어!”
최별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말을 계속 더듬었다.
초보자 복장을 한 여성이 최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언니,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야! 너 근데 왜 단검이냐? 성직자였잖아?”
“네가 딜 드럽게 못 넣어서 내가 딜 하려고 바꿨다! 아무튼, 언니. 편하게 말해요.”
“저…… 그…… 미안.”
“…….”
“뭐라고? 안 들리는데?”
“누가 최별이 하는 말 받아 적어 봐! 아니다, 녹음기!”
최별은 크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제가 실수했어요.”
대답은 곧장 들려왔다.
“괜찮습니다!”
“멋있었어!”
“덕분에 방송도 타 보고, 좋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캐릭은 죽어서 업적을 남긴다. 재밌었으니까 됐다!”
최별의 눈시울이 조금 붉어졌다.
“야! 누가 울렸어!”
“울어? 운다고, 여기서?”
“뭐야? 중갑 입고 운다고? 에바참친데!”
“사건 사고 게시판에 올려! 최별 질질 짰다고!”
“악! 피해! 화낸다! 분노 모드야! 주먹 피해!”
“못 피해! 렙이 낮아서!”
“캐생비 주면서 때린다! 조심해! 돈 많은 여자야!”
최별이 게임을 진심으로 즐기고, 유대에 대해서 어렴풋이 느끼게 된 계기였다.
그녀의 즐거운 회상은 여기까지였다.
“최별, 오래 걸리지 않았군요.”
“……멀린.”
그녀의 원탁을 매만지던 손이 자연스럽게 뒷짐을 지었다.
머쓱해진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용의 피를 가져왔습니다.”
멀린이 최별이 건넨 용의 피가 담긴 유리병을 들고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정말이군요…… 어떻게…….”
“뭐, 힘 써 봤습니다.”
“그렇군요.”
멀린은 재미없는 남자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자, 그녀가 알기로는 탑주들에게도 밀리지 않을 수준의 마법사라고 했다.
“최별, 위험한 열세 번째 자리의 주인이여. 두 번째 증명이 끝났습니다.”
“휴우…….”
“세 번째 증명 이전에, 당신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찰랑이는 유리병을 흔드는 멀린.
그 모습에 최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용의 피를 마시세요.”
“무슨…….”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일입니다.”
“……알겠습니다.”
게임 속 아이템을 마신다고 무슨 큰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혜의 샘조차도 잠시 게임에서 튕기는 정도였으니.
최별은 고개를 끄덕이고 용의 피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의 뚜껑을 따 남김없이 들이켰다.
“끄으…… 써…….”
“됐습니다. 세 번째 증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으…… 퉷…… 맛없어.”
“원탁은 최후의 증명을 앞두었습니다.”
“으…… 응? 최후의 증명?”
원탁의 전설.
최후의 증명은 원탁의 구성원 전부가 치러야만 하는 일이다.
최별의 안색이 순식간에 하얘졌다.
원탁을 부술 기회를 찾으려 했지만, 그것이 이렇게 빨리 그리고 갑작스럽게 찾아 올 줄은 몰랐다.
“최후의 증명이라 하면…….”
“원탁의 전부를 걸고 모든 이들의 으뜸이 될 기사를 찾는 겁니다.”
“알지만…… 이렇게 갑자기…….”
“최별, 세계의 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제게 더는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 그가 올 겁니다.”
“란슬롯…….”
멀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수의 기사 란슬롯이 올 것이다.
최별이 활동할 당시에도 그녀보다 강자였던 존재.
늙은 망령은 마왕 토벌에도 참여했을 뿐더러, 아직 죽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강해졌다고 들었다.
“최후의 증명에서…… 13명의 기사는 각자 모든 것을 얻거나 잃게 될 겁니다.”
최별은 그를 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