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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는 종말에 적응했다-135화 (135/222)

# 135

135화

***

기이이이잉.

투두두두! 투두두!

불타는 대지.

마치 지옥의 한 단면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의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갈라진 대지에서 용암이 흘러나와 아스팔트를 녹였고, 바람을 타고 휘몰아친 화산재가 빌딩 전체를 온통 검은 먼지로 뒤덮었다.

유황으로 뒤덮여 버린 땅, 울산의 모습이었다.

“밀리면 안 돼!”

“마지막이야! 다들 집중해!”

“크아아아악!”

치열한 싸움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등불과 울산에 소재한 벙커의 거주민들.

그리고 대구와 부산 사람들.

신형 슈트를 입은 검은 개미들은 밀려드는 마수들을 에너지 병기로 상대했다.

푸슉!

“컥…… 커헉…….”

“재홍아! 으아아아아!”

투두두두!

투두두!

희생 없는 싸움은 없다.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지만, 그 희생이 자신의 주변에서만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

콰아아아앙!

퍼어엉!

이곳저곳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슈트의 청각 보호 기능이 작동하고 있었지만, 폭발에서 오는 충격에 몸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저 폭발음이 아군의 병기로 인한 것이지, 아니면 적의 공세로 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화아악.

검은 화산재가 시야를 가렸다.

친구를 잃고 아내를 잃고 자식을 잃었다.

부모를 잃고 남편을 잃고 가족을 잃었다.

그런데도, 이곳에 모인 병력들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 이유를 굳이 꼽자면, 그래야 하니까다.

광기와 악은 전염된다.

양극단은 서로 닮았기에 질서와 선 또한 전염된다.

늘 패배하고 숨어 살아온 사람들이 등불의 지휘에 따라 전선을 밀어붙였다.

슈트를 움직이는 건 동력이었지만, 사람을 움직이는 건 용기였다.

성진의 작은 행동은 큰 파도가 되어 울산을 덮쳤다.

“조금만, 조금만 버티자…….”

“할 수 있어!”

이들이 믿는 건 이들을 이끌고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었다.

***

울산 시청.

이 인근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아까의 처절한 싸움과는 그 결이 달랐다.

쾅!

콰아앙!

“너무 빨라!”

“누가 맡아 줘야 해!”

“내가 간다!”

직박구리가 펄스 액스를 휘두르며 불타는 마수의 틈으로 파고들었다.

크와아아아!

쾅!

쾅!

코드 네임 가름.

불을 먹는 사냥개.

티르를 죽인 지옥의 수문장이 바닥을 찍었다.

파편이 튀며 대로를 부쉈지만, 직박구리를 잡진 못했다.

오랜 싸움으로 인한 상처.

그것이 가름을 지치게 했고 굼뜨게 했다.

또한, 직박구리의 펄스도 가름이 헛발질을 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직박구리의 일루전 펄스는 그의 모습을 한 환영을 남겼고, 전장에는 그의 분신들이 여럿 있었다.

차일국이 소리쳤다.

“병창아!”

“흐아아아아아압!”

푸슈우우욱!

조병창의 펄스 랜서가 가름의 목을 꿰뚫었다.

가름은 고통에 겨워 고개를 미치듯이 흔들었다.

하지만, 조병창은 창을 놓지 않았다.

그의 능력치가 충분히 성장했다지만, 헬하임의 마수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나가떨어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

차일국이 한 손을 쭉 뻗자, 상서로운 기운이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왔다.

프로텍션 펄스.

조병창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흔들림에도 가름에 매달려 지시했다.

“쓰러트려어어! 다 왔어!”

등불 중 펄스를 운용할 수 있는 대원들이 헐떡이는 가름에게 달려들었다.

서걱.

푸욱!

베는 소리와 찌르는 소리가 사방에 난무했다.

푸욱!

쿠우우웅!

가름이 휘청거리다 쓰러졌다.

마침내, 헬하임의 마수는 인간에게 패배했다.

휘이익.

촤아악!

가름의 목에서 랜서를 뽑아낸 조병창이 피를 바닥에 털었다.

-지려 버렸습니다. 고속버스 안에서요.

-외쳐! 병창 조! 병창 조!

-등불 진짜 성장 ㄹㅈㄷ 님들 사랑해요.

-쏟아지는 후원. ㄷㄷ

-아 근데 저거 올빼미 시그니처 아니냐? ㅋㅋㅋ 바닥에 피 훅 터는 거.

-그러네. ㅋㅋㅋ

조병창의 손바닥에 따끔한 감각이 찾아왔다.

“윽…….”

“병창아?”

“해냈다. 우리가 해냈어.”

“등불이 해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처음으로 등불이 무언가 해냈다.

줄곧 올빼미를 보조하는 역할에 머물렀던 그들이지만, 이번엔 달랐다.

비로소 뒤따르는 것이 아닌 함께 달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름의 사체를 보는 이들의 눈에는 후련함과 슬픔이 동시에 담겼다.

그건 과거 붉은 별 크루에 몸담았던 김예은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많이 죽었어요.”

“응…….”

등불을 포함하여 병력들의 희생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마음껏 기뻐하기엔 슬픔이 더 가까이에 있었다.

조병창과 등불, 그리고 거주민을 포함한 병력은 울산에 남은 마수들을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이제, 종말 거부 장치 앞에 서 있다.

어쩌면 거대한 큐브 같아 보이는 종말 거부 장치 앞에 선 조병창이 한쪽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에 자리 잡았던 문양이 종말 거부 장치로 빨려 들어갔다.

-동력 확보 확인. 냉각기를 작동하시겠습니까?

“그래.”

-작동 의사 확인. 종말 거부 프로토콜 준비 중……

-준비 완료. 프로토콜을 시동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시동어를 말씀해 주십시오.

냉각기에 문구가 적혀 있었다.

문구는 부산의 용광로, 대구의 바람개비, 대전의 갑옷에 적힌 문구와 똑같았다.

등불은 자신들이 이 문구를 내뱉는 광경이 신기하고 새로웠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1천 명이 넘는 등불이 다 함께 외쳤다.

“우리는 종말을 거부한다!”

“우리는 종말을 거부한다!”

-시동어가 확인되었습니다. 지표 냉각 시작합니다.

우우우우우웅.

철컹.

철컹!

냉각기의 부속물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작동했다.

기긱.

콰아아아아아아아!

-종말 거부 프로토콜 ‘눈’ 시동.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흑…… 흐윽…….”

환호하는 자들과 눈물 흘리는 자들이 한 자리에 있었다.

그것이 이들이 치룬 싸움이 얼마나 힘든 싸움이었는지를 보여 주었다.

등불.

유황과 초열의 도시, 울산 정상화.

***

디스토피아에 돌고 도는 떡밥은 매번 바뀌었다.

그리고 하나의 떡밥은 무수히 많은 글을 생산했다.

사람들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지루하고 식상하다 평하지 않고 오히려 즐겼다.

이곳은 애초에 그런 사람이 모이는 곳이었으니까.

[제목 : 올빼미 주말마다 어디 가는 거냐?]

나한테 허락도 안 구하고 여친 사귄 거 아니지? 응? 크리스마스에 휴방 아니지? 우리 친구 맞지?

-미친 일주일에 하루 잠깐 쉬는 것도 뭐라 하네. ㅋㅋ

-스트리밍도 일임. 님처럼 관음러들이 달라붙는 데 솔직히 피곤한 게 맞잖아?

-스트리머 정신 건강에도 휴방이 있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했음. 그 머시냐? 종말 이후에서 풀 다이브 믿고 한 달 내내 방송했다가 정신병 걸린 사람도 있잖아.

-이래저래 중심 잡는 게 중요한 듯.

[제목 : 울산 넘나 감동적 ㅠㅠ]

코흘리개 등불의 성장 일기.

가름 뒈지게 세더라. ㅋㅋㅋ

확실히 수뇌부 피지컬은 진짜 ㄹㅇ 물고 빨 만하더라.

ㅇㅈ?

-스칸다 개고인물이 빽빽이 들어찼던 곳이 등불인데. ㅋㅋ

-수뇌부 말고 일반 간부들도 능력자 많음.

-올빼미 긴장하라고 ㅋㅋ 이제 등불한테 따라잡혔다고.

-그건 아니죠? 올빼미는 다른 도시 혼자 정상화했죠?ㅋ

[제목 : 미개한 것들아 그래서 ㅋㅋ]

올빼미 어디 갔냐고. ㅋㅋ 돌아오라고. ㅋㅋ 나 여기서 꼼짝 않고 기다린다고. ㅠㅠ ㅅㅂ 스칸다 안 했어서 뭔 내용인지 모른다고!

-종말 마렵네 ㅋㅋ 근데 스칸다는 초심자가 봐도 볼 만하던데; 나도 안 했었는데 잘 넘기는 중. ㅋ

-올빼미 해외 출장 갔자너. ㅋㅋ

-장기 출장이랍니다. 글 내려 주세요.

-이미 떠난 올빼미를 왜 찾아. 그거 사생활 치매입니다.

[제목 : 탄타르빌 어떤 곳이냐? 검색해도 정보가 없냐?]

팬 페이지에도 안 나와 있네;

별의 용광로는 또 뭐고;

오타쿠 새끼들 하여튼 이딴 명칭은 잘 지어요.

-??? : 아 ㅋㅋㅋ 이렇게 질문하면 세 보이겠지?

-어림도 없지. ㅋㅋ 글에서 찐 냄새 가득함. 바로 육왕권이죠. ㅋㅋ 철괴 딱대~

-탄타르빌 정보 별로 없어. 뭐라고 해야 하나 음…… 종말 이후로 치면 사람이 안 사니까 딱히 관심이 없는 곳?

-걍 서부 대륙의 북방 끝이라고 보면 됨.

-아니; 자세히 좀 말해 봐.

[제목 : 탄타르빌 피피티 요약.ppt]

를 준비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없는 관계로 나님께서 브리핑하도록 하겠습니다.

본인이 누구냐고요? 성채남보석 찍었던 우주 최강 광전사였습니다.

네? 약 팔지 말라고요? ㅋㅋ 아 인증 마렵네.

암튼, 서부하면 원탁! 딱 이거만 아시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지인들한테 이번 진행 딱! 정보를 긁었걸랑요. ㅋㅋ

아, 남은 건 다음 글에서 알려 드림. ㅋ

-혓바닥이…… 손가락이 왤케 김? 뭔 피카츄 전기세 밀리는 소리만 한가득 써 놨네.

-빨리 다음 글 내놔라. 성채남보석 광전사하면 딱 떠오르는 사람 있으니까 인증은 필요 없다.

-국밥형 광전사! 팀에 있으면 그저 든든~한 그분! 일다 다음 글 좀 싸세요.

[제목 : 탄타르빌 요약 2]

탄타르빌은 고대 난쟁이의 도시임.

그 전에는 용의 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러 서적에서 같은 내용이 언급되었으므로 사실인 것으로 추측된다.

고대 난쟁이들은 스칸다의 대지가 스스로 창조한 세계의 관리자였다는 썰이 있음. 때문에 막대한 문명 발전을 이룩했고 그 모든 하이 테크놀로지 기술이 집약되어 있던 곳이 탄타르빌임.

그 잔재가 탄타르빌에 남아 있다고 하는데 사실 무근이라 본인도 확인 불가능.

이 고대 난쟁이들은 님들이 아는 드워프랑 많이 다름. 물론, 맥주 좋아하고 틀딱 냄새나며 야금을 잘 한다는 건 비슷함.

근데 그 모습은 고대 난쟁이들이 탄타르빌에서 밀려나면서 사회에 섞여 들면서 열화된 모습이라는 말이 있음.

원래 난쟁이들은 신관에 가까웠고, 스칸다의 소리를 듣는 자들이었다고 함.

물론 카더라임. ㅋㅋ

성검과 마검이 이곳에서 만들어졌다고는 하는데 마검은 천마도로 추측, 성검은 어디 갔는지 모름.

아마 멀린이 알지 않을까?

아무튼, 탄타르빌에서도 가장 중요한 시설이 별의 용광로였다고 하고 지금 거기로 간다고 함. ㅋ

-ㅅㅂ 세 줄 요약 어디 갔냐?

-무슨 그럴 듯한 얘기할 줄 알고 다 읽은 내가 레전드. ㅋㅋ

-3편 남음.

[제목 : 탄타르빌 요약 3]

후, 본론을 꺼내야겠네. 스포일까 봐 말 안 할라 그랬는데;

이번에 탄타르빌로 향하는 과정에서 초모맘들도 난감했다고 함. 정보가 너무 없어서.

특히 용인, 요정, 탄타르빌의 미지의 위협 삼박자가 고루 갖춰진 상황이라 난감했는데 어찌 어찌 도움을 줄 만한 고인물들을 수소문했다 함.

결론 : 고인물들이 도와준다 함. 글고 이미 연락이 진행되고 있고 그 사람들이 계획까지 세워 뒀다고 했음.

-3줄로 끝나는 말을 뭔 짓거리를 한 거지?

-아 ㅋㅋ 세로드립인 줄 알고 다시 읽었네.

-투머치 키보더 뒈질래?

[제목 : 님들 방송 보다 궁금한 점]

좋은 친구들 어쩌고 활금강의 삼인이니 뭐니 오글거리는 사람들 머 어케 된 거예요?

-2~3위 사람들 섭종 전에 게임하다 의식 불명. ㅅㄱ

-헐;

-걍 모험가 협회 랭킹 1위 파티라고 보면 됨. 활금강 1명은 솔로로 활동하니까 나머지가 뭉친 파티가 최강이었지.

-ㅇㅇ 좋은 친구들 유명했지. 뭐랄까, 피지컬 개쩐다 이런 느낌보다 와, 진짜 팀웍 지린다;; 이랬던 기억이 있다.

-지금 다들 뭐 함?

-그 일 있고 걍 다들 충격 받고 일상으로 돌아간 걸로 함. 건너 듣기로는 우울증 오고 난리도 아니라 종말 이후는 하지도 않았고 외국 갔다 했나?

-실친들이라 했던 것 같음.

***

성진이 난쟁이 왕족들과 접촉하기 전, 기존에 연락을 취하던 유저를 통해 정보를 넘겨받았다.

「이번 탄타르빌 추천 경로와 발생할 수 있는 상황, 그에 대한 타개책입니다. 이 보고서는 초모 님 방송을 즐겨 보던 많은 고수 분들의…….」

정보를 받을 때 늘 고마운 마음뿐이었지만, 지금은 특히 더 그랬다.

탄타르빌에 관한 정보는 최별도, 송하린도 몰랐다.

타놀드의 형제들과 이야기를 나눠 본 결과도 그리 만족스럽지 못 했고. 이런 경우, 위험은 늘 가까이에 있었다.

송하린이 말했다.

“최별 양, 임무는 받아 왔소?”

“탄타르빌 정찰이랑, 원시용 수색 말인가요?”

“그렇소, 우리 형님께서 미리 일러 주신 것들이잖소.”

“당연히 받아 왔죠. 둘 중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완수하면 등급 복구는 무리가 없겠어요.”

최별은 성진과 접촉한 당일, 다음에 따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성진은 별달리 말 해 줄 것이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그녀도 데자뷰에 관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타놀드가 소개한 형제들의 이름은 이러했다.

장남 타이곤을 제외한 형제 5명.

둘째, 타간.

셋째, 타말.

넷째, 타요른.

다섯째, 타주

막내, 타놀드.

-타 자 돌림 뭐야. ㅋㅋ

-타이슨 나올 줄 알고 기다렸는데.

-난 타잔.

-타이탄은? 시무룩…….

여정은 타놀드가 이끌기로 했지만, 성진이 곁에서 돕기로 합의했다.

타놀드는 성진이 제안한 행로에 의문을 표했다.

“미쳤군, 단단히 미쳤어.”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생각? 별자리 관을 가로질러 가는 게 제정신인 사람이 할 법한 생각인가?”

-이미 탄타르빌 간다는 발상 자체가 탈 인간인데 뭘. ㅋㅋ

-내로남불 오졌죠?

-초모 맘들이 별자리 관 통과하자 했음? 왜?

-보면 알겠지. 파일 형식이라 우리는 제대로 못 봄.

성진이 침묵하자 타놀드가 물었다.

“또 나한테 도움을 구한 것처럼 빚이라도 받으러 다닐 생각인가?”

“빚은 아니지만 비슷합니다.”

“허…… 자네 혹시 내가 모르는 뒷배가 있나? 세상에 그 콧대 높은 별자리 관에 이방인이 허락도 구하지 않고 당당히 가자고 할 줄이야…….”

-뒷배가 있긴 있지. 우리가 앞배는 아니잖아?

-이만한 뒷배가 어딨어. ㅋㅋㅋ

-우리 뭔가 이러니까 흑막 같긴 하네. ㅋㅋ

한참의 실랑이 끝에 성진의 계획대로 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송하린이 성진의 곁에 다가와 속삭였다.

“분쟁의 씨앗은 바로 난쟁이. 파괴할까요?”

“괜찮습니다.”

“후…… 저들이 형님 덕에 목숨 건진 줄 알기나 할까?”

-니가 죽일라 했잖아. ㅋㅋ

-혈마도 고개를 젓는 송하린.

-혈마, 지옥에서 뜨거운 눈물 흘리다.

흐뵝겔에서 북쪽으로 한참.

일행은 눈보라를 헤치고 나아갔다.

송하린이 최별의 근처에서만 알짱거리자, 최별이 물었다.

“왜 자꾸 치대는 거예요?”

“흠…… 흐흠…… 그것이…… 따뜻해서.”

“네?”

“최별 양 근처는 참 따듯하오. 불꽃의 기사 최고.”

“…….”

“돕고 삽시다.”

최별의 무구 중, 홍련과 야화의 능력 덕분에 그녀 주변은 늘 온기가 돌았다.

이곳이 추위로 악명 높은 지역이라는 것을 떠올렸을 때, 그녀 주위로 일행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했다.

“초모 님?”

“…….”

“초모 님도요?”

최별을 방패 삼아 전진하는 건 성진도 마찬가지였다.

“하린 씨랑 함께 다니시다 보니 닮아 가시네요.”

“우연히 뒤처진 겁니다.”

“하아…….”

눈과 빙하가 가득한 땅, 다섯 난쟁이와 3명의 이방인이 산을 올랐다.

후욱, 후욱.

숨은 서리가 되어 흩날렸고 난쟁이들은 탈진 직전이었다.

“이거…… 후…… 별자리 관으로 오는 게 탁월한 선택이었군 그래.”

“아니었으면 모두 얼음덩이가 됐을 거야.”

“요정들은 여기를 어떻게 지나다니는 거야?”

“정령들이 도와준다고 하잖아.”

“보인다! 저기 보여!”

“어디, 어디?”

타놀드가 가리킨 대지는 울창한 숲이었다.

얼어붙은 땅 한 가운데에 녹음이 자리한 그 모습은 신비롭다 못해 기적처럼 느껴졌다.

“대단하군…… 요정들이 자부심을 가질 만해.”

“가자고, 얼른! 몸을 좀 녹이고 싶군.”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거지?”

성진과 일행은 고개를 넘어 하산했다.

곧 숲에 발을 들이게 되자, 난쟁이들이 기지개를 켰다.

“흐아아! 떠느라 몸이 굳었었어.”

“죽다 살았군. 막내 말대로 우회해서 갔으면 아마 지금쯤 눈에 파묻혀서 시체도 찾기 힘들었을 거야.”

“작은 형, 그건 모르는 일이요.”

“아무튼, 가지.”

햇빛이 들지 않는 날이라 그런지, 숲은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 분위기는 숲 안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심해졌다.

타놀드가 흠칫 놀랐다.

그의 형제들이 비웃었다.

“이제야 깨달은 게냐?”

“형님! 진작에 나한테도 말 좀 해 줘야 할 것 아닙니까?”

“쉬잇…… 사방에 기척이 쫙 깔렸다.”

꿀꺽.

풀벌레보다 작은 기척이었다.

하지만, 타놀드를 제외하고는 진작부터 적들의 접근을 눈치채고 있었다.

타놀드가 성진을 바라보았다.

성진은 거침없이 걸었다.

일행이 그의 뒤를 따라 이동하다, 불현듯 들려온 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거기까지, 그 걸음을 내딛으면 당신들은 죽을 거예요.”

성진이 내밀었던 발을 뒤로 슬며시 당겨 왔다.

쉭.

쉬익.

요정 몇이 나무 밑으로 내려왔다.

이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느껴지는 기척은 이들의 수배는 되었으니까.

“우리는 순찰대, 용건을 말하세요, 악의가 있다면 벌집이 될 것입니다.”

“악의는 없습니다. 용건이 있어 이렇게 방문했습니다.”

“용건? 우리는 당신에게 용건이 없는데요?”

“이제 있을 겁니다.”

“무슨 근거로요?”

성진이 순찰대의 대장으로 보이는 요정 여인에게 물었다.

“숲의 관리자 제헤르 님을 뵙고자 합니다.”

“무례하군요. 제헤르 님은 당신이 뵙고자 한다고 뵐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 묻겠습니다. 제헤르 님이 앓고 계신 지병은 완치되었습니까?”

움찔.

요정들의 동요가 일행에게까지 느껴졌다.

성진의 말에 반응이 있는 걸로 봐서는 원하는 상황이 된 것 같았다.

“그걸 어떻게…….”

“회복하셨습니까?”

“……외부인에게 알려 줄 의무는 없습니다.”

성진은 낯간지럽더라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동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저는 엘론드의 성자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에, 엘론드의 성자!”

“초모?”

이런 궁벽한 숲에도 초모의 명성이 퍼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눌 이야기는 좀 더 편하게 진행될 것이다.

성진이 물었다.

“제 용건은 제헤르 님의 용태(容態)를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

“혹시, 그쪽도 용건이 있습니까?”

순찰대 대장은 요정들과 작게 이야기하다 등을 돌렸다.

“당신들을 제헤르 님께 안내하는 것이 우리의 용건입니다.”

성진이 웃었다.

“이제 있을 거라고 했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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