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136화
요정의 뒤를 따라나선 성진 일행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야야! 이게 판타진가 뭔가 그거냐?
-갑자기 반지 원정 마렵네.
-도시 이거 실화냐고 ㅁㅊ
-저기서 살고 싶다…… 자연 만세!
-저기 벌레 나옴.
-식탁에 뱀도 올라옴.
-영화관도 없음.
송하린과 최별이 감탄했다.
“별자리 관이 이런 곳이었구려. 스칸다 때도 소문만 들어서 자세히는 몰랐는데 나쁘지는 않네.”
“나무에 지어진 집들이 많네요. 보기에는 불편해 보이는데 요정들은 상관없나 봐요.”
순찰대 대장이 신호하자 순찰대가 다시 외부 경계를 맡으러 떠났다.
그녀는 성진 일행을 일반 거주 구역에서 떨어진 나무집으로 안내했다.
나무집은 높은 곳에서 늘어진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야 도달할 수 있는 두꺼운 나무의 가지에 지어져 있었다.
송하린의 안색이 굳었다.
“서, 설마 저기?”
“제헤르 님을 뵙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절차가 필요해요. 그 절차를 마칠 때까지 이곳에서 대기하세요.”
그녀는 통성명도 하지 않은 채 지내면서 주의할 점들을 말하고 떠났다.
최별이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사이, 성진과 송하린은 나무 위로 올라갔다.
휙.
타놀드와 그의 형제들이 말했다.
“이 주변을 좀 둘러보다 오겠네.”
“알겠습니다.”
송하린이 우거지상을 하고 부들부들 떨며 나무집까지 겨우 올라왔다.
그녀의 안색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토 컨 ㅋㅋㅋㅋ
-삐빅- 심정지 위험이 있습니다.
나무집의 내부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침대가 다닥다닥 붙어 있긴 했지만, 바닥에서 자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고 방금까지도 산을 타다 동굴에서 잠을 청했던 그들에게 이 정도 잠자리는 호사처럼 느껴졌다.
“초모 님.”
최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성진이 방송을 프라이빗 모드로 전환했다.
-방자아아아앙! 이게 뭐 하는 거야!
-당장 켜! 수상해! 너희 수상하다고!
-미녀 2 조류 1. 여러분 안전합니다.
-미녀 1 흑괴 1 백괴 1임 잘못 셌음.
-소외감 느껴. 헝허엉. ㅠㅠ
-왜 우리가 다수인데 우리가 소외감을 느껴. ㅋㅋㅋ
“중요한 얘기들을 먼저 나눠야겠네요.”
“할 말이 있으십니까?”
“많죠! 너무 많은데 몇 가지만 정리하고 넘어가려고요.”
송하린이 물었다.
“어…… 저…… 자리를 피해 줘야 하는 거요? 그…… 미리 말하지 그랬소. 그럼 올라오지도 않았을 텐데.”
“아뇨, 같이 들어도 상관없어요.”
“휴, 고백하는 줄 알고 민망할 뻔했소.”
“그런 거 아니에요…….”
“다행이오. 형님은 바로 거절했을 것이오.”
“……네? 뭐라고요?”
“고백하는 게 아니라고 하지 않았소? 그럼 상관없지.”
“그, 그렇죠. 그럼 상관은 없죠.”
최별이 투구를 벗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송하린 씨, 먼저 당신에게 묻고 싶어요.”
“나? 나 말이오?”
“네, 혹시 당신에게도 데자뷰가 찾아 왔나요?”
“……데자뷰?”
“네.”
송하린의 눈알이 핑핑 돌았다.
그녀의 성진을 찾아 헤매는 당황스러운 눈길이 최별에게 들통났다.
송하린은 어쩔 수 없이 사실대로 말했다.
“대구를 떠나기 전, 그때 딱 한 번 본 적이 있소.”
“역시…….”
“최별 양도…….”
“아뇨, 전 아니었어요.”
“이런! 떠본 건가? 간악한!”
최별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런 게 아니에요. 저한테도 찾아 왔어요.”
“응? 방금 아니라면서.”
“저는 스칸다에 오고 나서예요.”
“…….”
“제가 스칸다에 떨어지고 난 후, 그들이 찾아 왔어요.”
그녀는 당시를 떠올렸다.
***
“최별 씨 되시나요?”
“누구…….”
최별은 그녀의 아버지와 따로 살고 있다.
날마다 그녀의 상태를 체크하러 오는 관리인을 제외하곤 그녀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있다 하더라도 그녀의 집 문 앞까지 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녀가 묵는 곳은 입구에서부터 철저하게 관리가 이루어지는 오피스텔이었다.
이렇게 문 앞까지 들이닥치려면 보안을 몇 번이나 통과해야 하고 또 그것이 그녀가 모르게 진행될 수는 없었다.
“누, 누구시죠?”
“데자뷰라고 하면 아시려나 모르겠네요.”
“…….”
그녀는 너무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녀의 아버지가 꼭 만나야 한다고 당부했던 존재.
문 밖에 선 여인은 그런 사람이었다.
“당신이 데자뷰라는 증거가 있나요?”
“하하…… 의심도 많으셔라. 이건 어떤가요?”
명함을 꺼내 화면으로 들이미는 상대는 당당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버튼을 눌러 현관의 잠금을 해제했다.
철컥.
혼자 사는 집에 정체도 불확실한 외부인을 들이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그녀는 어쩐지 상대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 그녀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
다행히 상대는 그녀를 상대로 위험한 행동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상대는 현관으로 들어와, 낮은 굽의 구두를 벗고 악수를 청했다.
“반가워요, 최별 씨. 오랜만이네요.”
“아, 네…….”
오랜만.
최별은 상대가 이 단어를 사용한 것에 아무런 의문을 느끼지 못했다.
“차라도 주시지 않을래요?”
“혼자 사는 집이라 그런 건 없고, 주스라도 드실래요?”
“좋아요!”
최별이 쥬스를 가지고 다탁에 앉았다.
상대는 맞은편에 앉아 생글거리며 웃었다.
“잘 마실게요.”
“네…….”
“우리를 만나고 싶었나요, 최별 씨?”
상대는 다짜고짜 본론으로 들어갔다.
최별은 식은땀이 흐르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대답했다.
“어떻게 아셨나요?”
“뭐, 최별 씨가 이런저런 경로로 저희를 만나려고 했으니까요. 모두 실패했지만.”
“…….”
“최재국 씨는 참 좋은 분이죠. 어느 정도 혜안도 갖춘 분이시기도 하고요. 아마도 그분께서 저희를 찾으신 거겠죠?”
최재국은 최별, 그녀의 아버지다.
데자뷰는 마치 그녀의 속마음이 튀어나와 얘기하는 듯, 모든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데자뷰 직원은 머리를 긁적였다.
“아, 너무 직설적이었나요?”
“……괜찮아요. 하고 싶으신 말이 무엇인가요?”
“그럴 필요 없다는 말을 하려고 왔어요. 최재국 씨는 최재국 씨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저희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협상이든, 거래든 둘 사이에 뭔가가 오고 갈 일은 없다는 뜻이다.
최별은 이 소식을 아버지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막막했다.
“최별 씨. 당신도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세요.”
“제가요?”
“스칸다에 도착하셨죠?”
“예…….”
“원탁으로 향하세요. 그리고 그것을 부수세요.”
“…….”
“뭐, 게임을 즐기라고 하는 말입니다.”
수수께끼 같은 말이다.
원탁의 원심력을 해방하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있었다.
그렇지만, 게임사 직원이 저렇게 직접 방문해서 플레이를 종용하는 게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일인지 한참 생각해야 했다.
“최별 씨, 당신은 언제나 즐길 때가 가장 멋집니다.”
“그게 무슨…….”
“아! 시간이 됐어요!”
“시간?”
“제 점심시간이요! 직장인의 점심은 소중하니까요! 전 이만! 주스 잘 마셨습니다!”
“저, 제가 연락할 방법은 없나요?”
상대가 빙긋 웃었다.
“당신이 우리를 찾지 않을 겁니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한마디.
“우리가 당신을 찾을 거니까요. 그럼…….”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진 데자뷰.
최별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
“스칸다에 떨어지고 난 후 찾아왔다는 말이오?”
“네. 아무튼, 나눈 얘기는 그게 다였어요.”
최별은 성진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제가 초모 님을 뵙고자 했던 이유는 데자뷰와의 연결 고리를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들이 직접 나타났으니…….”
“저도 그들에 대해 자세히는 모릅니다.”
성진은 그녀에게 데자뷰와 자신이 한 계약을 제외하고 아는 부분을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다 말했다.
“초모와 올빼미가 데자뷰 소속은 아니었단 거네요.”
“네.”
“그렇군요…… 믿을게요. 그럼 문제는 이제 하나만 남네요.”
“문제?”
“우리는 스칸다를 빠져나가야 해요. 우리뿐만 아니라 세종시의 사람들까지 데리고요.”
성진과 송하린도 아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방법을 궁리해 봐도 완벽한 수단 같은 건 없었다.
최별은 넌지시 얘기했다.
“힘을 합쳐야 해요. 단서들을 모아서 힘을 모아 이곳을 빠져나가요.”
“본녀는 단서가 없는데…….”
“송하린 씨는 기대하지도 않았어요.”
“그럼 다행이고. 음…… 아무튼 형님의 시나리오를 따라가는 게 맞겠소이다.”
“지금으로선 그게 가장 현명해 보이네요.”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흐흠…… 작전 회의는 끝났나?”
타놀드였다.
그의 형제들이 안에서 나는 얘기 소리를 듣고 밖에서 기다린 모양.
성진이 방송의 프라이빗 모드를 해제하고 난쟁이들을 안으로 들였다.
-사라진 10분을 찾습니다.
-방장!!! 프라이빗할 거면 공지라도 남겨 줘. ㅠㅠ
-초모 공지 남긴 적 없음. 초모 컴맹설 유력함.
-초모…… 당신은 시청자들을 소중히 하지 않았지…….
-앞으로는 소중히 하도록.
-셋이 무슨 얘기했어! 겨울에 스키장 놀러 간다고? 여름에 펜션 잡고 계곡 가자고? 이 자식들! 꼭 야방 켜 줘야 해? ㅠㅠ
성진 일행은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타놀드가 성진의 계획대로 했을 경우의 위험 사항을 짚어 주었다.
“그건 확실히 위험한 발상이군. 추방자 게릭이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용인들이 함부로 살생을 저지르진 않지만, 그런 경우가 꼭 없지도 않거든.”
“그럼 계획을…….”
“아니, 계획 자체는 훌륭해.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 부분을 미리 인지해 두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한 얘기야.”
똑, 똑, 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별나무로 향할 것입니다. 초모만 따라나서세요.”
“그게 무슨…….”
“형님, 위험합니다!”
최별과 송하린이 호위를 자처했지만, 성진이 손사래 쳤다.
애초에 보호받을 정도로 약한 존재도 아니었고 난쟁이들의 옆에는 항상 강자가 붙어 있어야 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좋겠다. 나도 보호받고 싶어…….
-모성애를 자극해.
-나란 존재는 우리 엄마의 모성애만 자극해서 문제야.
***
요정들이 성진을 쳐다봤다.
그들은 모두 수려한 용모였지만, 그 눈에 담긴 감정이 호의는 아니었기에 불편했다.
-와;; 저렇게 째려보는 것 좀 봐. ㄷㄷ
-이쪽 업계에선 포상입니다.
-요정 진짜 예쁘다. ㄷㄷ 모험가로 활동하는 애들보다 본토 요정들이 더 예쁘구나.
-캡처했습니다른이름으로 저장~
-아 넌 좀 심하다른이름으로 저장.
시간은 흘러 어느새 별이 뜬 밤이 되어 있었다.
나무들 사이로 별빛이 흘러들었다.
휘이이.
바람이 나무를 스치고, 낙엽을 스쳐 성진에게 닿았다.
좋은 기분이 들었다.
반딧불과 별빛이 사방을 수놓으니 시청자들도 분위기에 취했다.
성진이 별나무에 다다라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요정 검사가 앞을 막았다.
“무장을 해제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는 봉을 넘기고 안으로 들어섰다.
좌우로 늘어선 신하들.
특이한 복색을 한 자들이 많았고 검을 찬 이들은 대부분 강자였다.
하지만, 이 별나무 안에 모인 자들 중 진정으로 강한 자들은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은 자들이었다.
‘저 요정, 그리고 저 요정.’
대삼림의 나무가 성진에게 나무 냄새가 난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성진은 두 요정에게서 다양한 냄새를 맡았다.
마법사가 아니라면 정령술 계통인 것 같았다.
그들 말고도 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자들이 많았지만, 대부분 앞선 둘보다는 수준이 떨어졌다.
“묻노니, 그대는 엘론드의 성자인 초모가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대의 소문은 별자리 관까지 닿았습니다. 이곳까지 찾아오시는 데 불편함은 없었는지요?”
“춥긴 했습니다만, 견딜 만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제헤르 님, 초모라는 자입니다.”
“…….”
성진은 왕좌에 앉은 이를 이제야 올려다볼 수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위엄이 느껴지는 자였는데, 그 모습이 특이했다.
가시나무로 만들어진 왕관을 쓰고 있었는데, 그 왕관은 나무의 줄기와 끈처럼 이어져 있었다.
왕관을 쓰고 눈을 감고 있던 제헤르가 말했다.
“초모여…… 콜록,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
“아닙니다.”
“내 지병을…… 알고 있다고…… 들었다…….”
“네.”
웅성거리는 소음이 별나무 안을 메웠다.
짝!
특이한 냄새가 나던 요정이 손뼉을 치자 소음이 잦아들었다.
“그대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된 겁니까?”
성진이 스스로 알아낸 것은 아니었다.
지금 그에게 붙어 있는 사람이 알려 준 것이었다.
“‘경로당약장수’라는 자를 아십니까?”
“경로당약장수? 경로당약장수라…….”
제헤르의 양옆에 있던 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제헤르가 말했다.
“바람잡이…….”
“네, 맞습니다. 그의 호위였죠.”
“강한 자였어.”
경로당약장수와 바람잡이 콤비.
그들은 50년 전 별자리 관을 방문했던 유저였다.
「우리를 기억하네! 짜식, 기특하다!」
제헤르가 힘겹게 말했다.
“제닌과 오란만 남고…… 모두…… 나가라…….”
“제헤르 님?”
“저자와 조용히 이야기하고 싶구나…….”
“충!”
별나무 안을 꽉 채웠던 병력이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제헤르는 관리자로 불리었지만, 왕의 권력을 쥔 것처럼 보였다.
제헤르가 이야기했다.
“제닌과 오란은 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요정이다…… 이 둘이 듣지 못할 이야기는 없지…….”
“알겠습니다.”
“내 지병을 치료하는 법을 알고 있다고…….”
“네, 그렇습니다.”
“쿨럭, 쿨럭.”
밭은기침을 토해 낸 제헤르가 물었다.
“약장수…… 그에게서 전해들은 것이냐?”
경로당약장수는 서부 연금술 조합의 수장이자, 중앙 대륙의 약제회 중 가장 강성했던 조직의 기술 고문이었다.
그의 닉네임대로 약을 제조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았던 사람이었고 실력이 출중해 신관들도 손사래 치는 환자를 회복시킨 적이 많았다.
그는 가끔 큰돈을 받고 병이 알려져선 안 되는 자들의 치료를 도왔는데, 별자리 관에도 한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렇습니다.”
“분명…… 그때 그는 내 병을…… 밝혀내지 못했다고 했다…….”
“사실을 말하지 못한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
「저 관리자라는 양반이 특이체질이라…… 괜히 문제 일으키기 싫어서 입 다물긴 했지만, 지금은 상관없겠네요.」
제헤르가 힘겹게 입을 뗐다.
“……말하라.”
“제헤르, 당신의 병은 영양실조입니다.”
“…….”
“…….”
-엥? 영양실조?
-잠깐만여; 아니 좀 ㅋㅋ- 영양실조는 ㅅㅂ 밥만 잘 먹게 생겼구먼.
-수액 한 방 놔줘. ㅋㅋ 직빵이야.
“영양……실조?”
“그렇습니다.”
“식사를 거른 적이 없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영양실조라고?”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닌과 오란이 성진을 노려보았다.
「당신은 요정이 아니지 않습니까?」
“당신은 요정이 아니지 않습니까?”
“뭐!”
“그, 그런…….”
제닌과 오란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성진은 그들의 반응에서 다른 감정을 엿보았다.
예상외의 사실을 듣게 되었을 때의 당혹감이 아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난감해할 때의 당혹감을.
제헤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약장수는 내 비밀을 지켜 준 것이로구나…….”
“그건 아니라고 합니다. 그냥, 묻어 두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아서 그랬다고 했습니다.”
“……선한 이다. 묻겠다, 내 이름을 아느냐?”
「성장의 대공, 유리온.」
“성장의 대공, 유리온.”
“…….”
“당신은 시조입니다. 이를 부정하시겠습니까?”
별자리 관은 요정의 성역.
죽음과도 같은 추위의 북부의 땅에서 유일하게 녹음이 들어찬 지역이다.
요정들은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곳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요정이 아니었다.
시조였다.
“아니, 그의 말이 맞다. 나는 시조다.”
제헤르이자 유리온인 그가 얘기했다.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했는가?”
“저만 알고 있습니다.”
유리온이 악인이라면 성진을 이 자리에서 죽여 입막음하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허탈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혀 온 것이 고작 영양실조라니…….”
“피를 마셔야 합니다.”
“그래. 쿨럭, 하지만 마시지 않을 것이다.”
“어째서…….”
“피를 마시면…… 돌아가기 때문이다.”
유리온은 별이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시 피에 잠식된 그때로…….”
유리온이 별나무의 왕좌에 앉게 된 경위와 그가 왜 관리자라고 불리는지는 성진도 몰랐고 그건 경로당약장수도 마찬가지였다.
유리온은 성진에게 미소 지었다.
그가 눈을 뜨자, 붉게 충혈된 눈이 보였다.
“고맙다. 하지만…… 피를 마실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뭐?”
“그, 그것이 정말인가!”
“제헤르 님이 회복할 다른 방법이 있단 말이냐!”
「용의 피를 마셔야 합니다.」
“용의 피를 마셔야 합니다.”
“…….”
“용인들이 목숨보다 소중히 하는 그것 말이군…….”
약장수는 당시 제헤르의 혈액을 받아 몇 가지 실험을 했었다.
제헤르가 시조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고대의 서적을 지혜의 고리까지 동원하여 해석한 결과,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용의 피는 시조의 몸을 해갈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 용인들과 전쟁을 할 순 없다.”
“제가 구해 오겠습니다.”
“뭐?”
“제가 용의 피를 구해 오겠습니다.”
제닌과 오란이 난리를 피우며 물었다.
“그, 그것이 가능할 리가 없습니다!”
“용인들이 당신에게 그것을 넘길 리 없습니다!”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겠습니다.”
제헤르는 나무로 된 왕좌에 몸을 파묻었다.
그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 나왔다.
“무엇을…… 무엇을 원하느냐?”
“지혜의 샘을 원합니다.”
“홀로?”
“저와 제 일행 모두.”
제헤르가 말했다.
“과연…… 하지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상관없습니다.”
지혜의 샘.
스칸다에 존재하는 샘은 총 세 가지가 있다.
마녀 이시스가 열었던 운명의 샘.
그곳에 도달하는 건 우르드 일족만이 가능한 방법이었다.
질투의 샘.
이곳은 어디에 존재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다만, 분명히 존재한다고만 전해 내려왔다.
마지막으로 지혜의 샘.
별자리 관이 수호하는 그 샘엔 신비한 능력이 있었다.
초모 맘들이 짜 두었던 계획엔 보상으로 지혜의 샘을 마시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제발! 성공해라! 유저가 처음으로 샘 좀 마셔 보자!
-니 샘 쩔더라 해 보고 싶다고!
-아, 몰랑 ㅋㅋ 건강에 좋겠지.
제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용의 고원으로 향해라. 네가 용의 피를 내게 바친다면 너희는 지혜의 샘물을 마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