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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화 죽일 거야! (90/94)


90화 죽일 거야!
20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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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식간에 퍼지며 하늘을 메우기 시작한 연기에 놀란 델리나의 몸이 주춤거렸다. 주변에 있던 이들도 모두 연기를 바라보았다.

‘불?’

처음에는 불이 난 것인가 싶었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불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올라오는 연기에 반센트가 중얼거렸다.

“인공 연기.”

“뭐?”

“가루로 만들어져 있다가 물에 닿으면 순식간에 대량의 연기를 뿜어내는 거야.”

“그러면 누가 일부러 이렇게 하고 있다는 소리잖아.”

단순히 사냥을 위해서 했다고 하기에는 연기의 양이 너무 많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연기는 델리나가 있는 평지까지 침범할 듯 다가왔다.

“인체에 해는 없어. 다만 시야가 무척 좁아지지.”

반센트의 말대로 어느새 다가온 연기에 휩싸이니 바로 옆에 있는 이들을 제외하고서는 전부 흐릿하게 보였다. 위험을 감지한 젠이 이빨을 드러냈고, 칼릭스도 검을 뽑아 들었다.

‘서 있는 곳은 숲도, 나무도 없는 평지 한복판. 일부러 연기를 만들어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다는 것은…….’

암살.

델리나의 고개가 절로 아슈드를 향해 돌아갔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 암살을 계획했다면 목표물이 될 가능성이 큰 인물은 아슈드였다. 그를 알고 있듯, 아슈드도 잔뜩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경계했다.

“숙이고 있어.”

그때 노아가 델리나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얼굴에 늘 떠올라 있던 웃음기는 온데간데없었다.

“지금은 상대도 정확히 목표물을 겨냥하기 어려우니까 연기가 어느 정도 걷힌 다음에 움직일 거야.”

“…….”

“그러면 우리 쪽에서도 상대를 보기 쉬워지겠지.”

연기가 조금 걷힐 때, 그 짧은 틈에 암살을 계획한 이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아의 말에 다른 이들도 말없이 눈을 번뜩였다.

“저쪽에는 내가 있을 테니까 일단 여기 뒤에 있어.”

“……네가 가 있는다고?”

노아의 말에 델리나가 자기도 모르게 그의 옷깃을 잡았다.

“왜, 못 미더워?”

“아니, 그건 아니지만…….”

델리나가 말끝을 흐리자 노아가 잠시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천천히 델리나의 손을 떼어 냈다.

“지금은 떨어지는 게 나아.”

“…….”

“상대가 노리는 게 황족이 아니라면 그다음으로 가능성이 큰 게 나니까. 돈이란게 얽히면 그렇게 되거든.”

“!”

그제야 노아의 의중을 알아챈 델리나의 눈이 흔들렸다. 그러자 노아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옅게 웃었다.

“걱정 마. 지금 쌓아 둔 돈이 얼만데 그거 놔두고 죽겠어?”

“그래도…….”

그가 이런 상황에서 농담을 하는 건 다 저의 불안한 마음을 다독여 주기 위해서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델리나도 더는 노아를 붙잡을 수 없었다. 노아가 델리나의 귓가에 소곤거렸다.

“반지에 대한 답도 들어야 하니까 그때까지는 어디 안 가.”

“…….”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의 의지만큼은 확고해 보였다. 델리나가 무어라 더 말하지 못하자 그 말을 끝으로 노아가 발걸음을 옮겼다. 그 사이 뿌옇게 찬 연기가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기 시작했다.

‘원거리 공격을 할 가능성이 크지.’

지금 서 있는 곳은 사방이 트여 있는 평지였으니, 상대는 수풀 쪽에 숨어 있다가 나올 가능성이 컸다.

점차 연기가 사라져 갔다. 델리나는 수풀이 우거진 쪽을 주시했다. 델리나 주변에 있던 이들 또한 빠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였다.

“전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연기 속에서 아슈드를 찾고 있었는지 한 기사가 반갑다는 듯 외치며 다가왔다. 그를 본 델리나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 이 상황에 그렇게 소리치면……!’

아슈드가 여기에 있다고 외치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아슈드 또한 다가오는 기사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손짓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아슈드의 위치는 노출된 상태였다. 젠이 입을 열었다.

“걱정 마. 델리나, 화살이라면 내가…….”

“화살이 아니야!”

사람들은 원거리 무기로 자연스레 활을 떠올리겠지만, 델리나는 아니었다. 델리나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 반센트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엎드려!”

총.

최근 사람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한, 무척이나 강력한 원거리 무기. 그때 수풀 사이에서 기다란 총대가 나와 아슈드와 노아 쪽을 향했다. 그것을 발견한 델리나가 놀라울 만큼 빠르게 튀어 나갔다.

탕, 탕, 탕!

고막을 찢을 듯한 소음이 몇 번이고 울려 퍼졌다. 델리나는 아슈드와 노아를 밀치고 땅으로 굴러떨어지듯 쓰러졌고, 델리나에게 밀린 아슈드와 노아 또한 땅에 엎어졌다. 총소리를 들은 반센트가 빠르게 제 총을 들어 상대편의 손을 명중시켰다.

“아악!”

그러자 멀리서 비명 소리가 들리며 상대가 쓰러졌다. 그런 그를 제압한 것은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간 젠과 칼릭스였다.

“죄, 죄송합니다. 전하! 제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그제야 제 잘못을 깨달은 기사가 사색이 된 채 땅에 엎드렸고, 다른 기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달려와 아슈드를 살폈다. 하지만 아슈드의 시선은 땅에 엎드려 있는 델리나에게 있었다.

“괜찮아?”

노아와 아슈드는 총을 맞지 않았다. 하지만 델리나는 아니었다. 델리나가 입은 옷의 옆구리 부분이 찢긴 것을 본 아슈드가 외쳤다. 노아가 굳은 얼굴로 다급히 델리나를 돌려 눕혔다. 하지만 델리나는, 웃고 있었다.

“너……!”

“괜찮아, 괜찮아. 멀쩡해.”

“……지금 총에 맞은 거 아니야? 옷이 찢어졌는데.”

“응. 옷이 찢어지긴 했는데 몸은 괜찮아.”

서서히 몸을 일으킨 델리나가 찢어진 옷을 보여 주었다. 겹겹이 입은 옷 안으로 총알에 약간 스친 듯한 작은 상처가 보였다.

“예전에 반센트가 준 생일 선물로 만든 옷이야.”

그러자 노아가 알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총알 막는 용도로 만들었다가 실패한 그 옷감?”

“응. 생각해 보니까 그걸 여러 겹으로 겹쳐서 옷을 만들어 입으면 총알을 완전히 막지는 못하더라도 죽는 건 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특별 주문했지. 물론 옷이 좀 무겁기는 했지만. 어때, 그래도 효과는 좋지?”

확실히 옷이 막아 준 덕분인지, 델리나의 옆구리에는 정말 살짝 베인 듯한 상처만 남아 있었다. 그제야 아슈드와 노아의 얼굴이 풀어졌다.

“설마 내가 죽고 싶어서 그렇게 달려들었겠어. 대비책이 어느 정도는 있으니까 그런 거지.”

그 사이 범인은 젠과 칼릭스에 의해 잡힌 상태였다. 델리나가 무사한 걸 확인한 젠과 칼릭스가 안심한 듯 웃다가 살벌한 기세로 제압한 상대를 질질 끌고 왔다.

“놔! 이거 못 놔!”

상대는 계속해서 저항 중이었다. 범인의 얼굴을 본 델리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바로 머닌이었다.

“죽일 거야! 다 죽인다고! 너네가 뭔데, 날, 날 비웃고……!”

자기가 잡혔다는 자각도 하지 못한 듯 머닌이 계속 날뛰었다. 그에게서 풍기는 지독한 술 냄새에 델리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누군가 했더니 아는 얼굴이잖아.”

“그래, 머닌 영식…….”

“최근에 도박까지 손댔다더니 확실히 꼴이 말이 아니네.”

노아와 델리나가 한마디씩 내뱉는 사이, 기사들이 머닌을 구속했다. 비로소 사건이 종결되자 젠이 델리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 델리나.”

“아, 응.”

일어나기 위해 델리나가 젠의 손을 잡으려고 팔을 움찔거렸다. 하지만 델리나의 움직임은 딱 거기까지였다.

“델리나!”

젠의 손을 잡지도 못하고, 델리나의 몸이 그대로 힘없이 쓰러졌다. 젠이 놀라 외치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왜, 왜 이러지?’

놀란 건 델리나도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돌이 짓누르듯,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숨쉬는 것조차 어려워지면서 점점 어지러워졌다.

“……독이야.”

델리나의 상태는 반센트의 한마디로 빠르게 정리되었다. 독이라는 소리에 식은땀을 흘리는 와중에도 델리나는 독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짐작했다.

‘총알에 독을 발라서…….’

아주 작지만, 제 옆구리에는 총알에 스친 자국이 있었다. 그곳을 통해 독이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의원! 의원 어딨어!”

아슈드가 다급하게 외쳤다. 무릎을 꿇은 칼릭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노아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델리나가 애써 미소를 짓듯 입꼬리를 씰룩였다.

“다들 왜 그래. 설마 내가 죽겠어? 걱정하지 마.”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델리나의 상태는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모두가 혼란스러워하는 가운데, 머닌의 입꼬리가 찢어질 듯 올라갔다.

“하하! 거 봐! 다 날 우습게 본 벌이야! 벌이라고! 이제 그렇게 죽겠지? 그러면 나는 그걸 보면서……!”

머닌은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그 순간 어마어마한 살기를 띠고 저를 노려보는 다섯 명을 정면으로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기세가 어찌나 살벌한지 머닌을 붙들고 있던 기사들조차 몸을 벌벌 떨 지경이었다.

<예비 흑막>

‘……!’

시야가 와중에 델리나는 붉게 떠오른 글자를 볼 수 있었다. 글자는 몇 년 전보다 더 빠르게 뒤틀리며 빛나고 있었다.

상태창

“……!”

곧 글자가 완벽하게 바뀌어 버리고야 말았다. 제 눈앞에 있는 이들을 본 델리나의 입이 벌어졌다.

“안 돼, 안, 안…….”

뜨거운 열기와 사람들의 비명 소리, 모든 것을 뒤덮었던 화염. 그 한가운데 있던 다섯 쌍의 눈동자.

제국을 공포로 밀어 넣고 모든 것을 망가트렸던 그 눈들이, 또다시 델리나 앞에 그대로 나타났다. 다섯 명의 달라진 눈을 보며 델리나가 애타게 입을 달싹이려고 했지만, 몸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델리나는 눈을 감고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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