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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무사히 만나자 (60/94)


60화 무사히 만나자
2023.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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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아이들이 돌아가고 어느덧 밤이 되었다. 저녁을 다 먹고서 쉬고 있던 델리나의 방문을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

델리나가 문을 열자 쿠키 하나가 불쑥 들어왔다. 동시에 델리나도 누가 온 것인지를 알아차렸다.

“뭐야, 디저트 먹자고?”

“…….”

“그러면 들어와. 같이 먹게.”

델리나가 방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지만 칼릭스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인사하러 왔어.”

“뭐?”

“내일 나도 떠나기로 했으니까.”

“진짜?”

물론 알고야 있었지만 또다시 떠난다는 말에 델리나가 섭섭하다는 얼굴을 했다.

“너 진짜 거기 설원에서 훈련받으려고 하는 거야? 예전 대공가 후계자 방식대로 따라서?”

“응?”

“하지만 이제는 굳이 안 해도 되는 거라면서. 게다가 거기로 가면 디저트도 없는데?”

디저트가 없다는 말에 움찔한 칼릭스였지만 그건 찰나였다.

“그래도 갈 거야.”

‘진심이구나.’

디저트도 포기하고서 간다는 말에, 델리나는 칼릭스의 각오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그때 칼릭스가 무언가를 델리나에게 내밀었다.

‘단검?’

칼에 대한 지식은 별로 없었지만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게 생긴 단검에, 그것을 받아 든 델리나가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전하한테 받은 거야.”

“뭐?”

“장검이랑 단검 둘 다 주셨는데 난 단검은 안 쓰니까.”

귀해 보이는 데다가 벨리온이 줬다는 소리에, 델리나는 바로 단검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면 더더욱 네가 써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이걸 어디에 써. 게다가 전하께서 너한테 주신 거잖아.”

“상관없어. 누굴 줘도 된다고 했으니까.”

“그래도…….”

“그걸로 공연해, 그러면.”

“설마 단검 던지기를?”

“뭐든.”

황궁 목걸이에 이어 대공가 칼까지. 참 호화스러운 공연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단검을 받은 델리나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 공연이 아니더라도, 칼은 쓰기 나름이니까.”

“디저트용 칼은 아니야.”

“설마 이걸로 잼 떠서 빵에 발라 먹고 그러겠니, 내가.”

델리나가 쿠키까지 받아 한입 먹고 말했다.

“그러면 디저트 많이 먹고 가. 또 언제 먹을지 모르니까.”

“응.”

“그리고 또 그때 같이 디저트 먹고.”

“응.”

그러고서 잠시 침묵하던 칼릭스가 말을 이었다.

“나중에 더 커서 디저트 열 접시 먹을 거야.”

“…….”

“그러니까 그때는 같이 스무 접시 먹자.”

“그럼. 나야 언제든 환영이지.”

그때까지 위를 잘 늘려 놓을 요량인 듯 델리나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까지 나도 열심히 위장 단련시켜 놓을게.”

“…….”

“그러니까 너도 잘 다녀와. 거기 가면 추울 테니까 옷도 따뜻하게 잘 입고.”

설원으로 간다는 게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제 정식으로 대공가에 남기로 결정을 한 것 같아 델리나는 여러모로 기분은 좋았다.

델리나의 미소에 반응하듯, 칼릭스도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는 그때였다. 복도 창가 너머 수풀이 요란스레 움직였다.

“뭐야?”

“…….”

델리나가 놀라서 외마디를 뱉었지만 칼릭스는 평온했다.

“인사하러 왔나 보네.”

“응?”

“그럼 난 가 볼게.”

칼릭스의 마지막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풀에서 불쑥,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익숙한 얼굴을 향해 델리나가 다가갔다.

“젠!”

“델리나!”

머리에 나뭇잎을 붙이고도 뭐가 그리 좋은지, 젠은 연신 방실대고 있었다. 델리나가 나뭇잎을 하나하나 떼 주며 말했다.

“이게 뭐야. 머리며 옷이며 다 엉망이잖아. 얼른 나와.”

“응, 응.”

그 말에 젠이 창문을 훌쩍 넘어서 복도로 들어왔다. 마냥 해맑은 젠을 보며 델리나가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벨리온의 말을 떠올렸다.

[짐승이 되는 게 아니라, 짐승들을 제어하는 법을 배워 두면 좋겠지.]

그런 이유로 악명 높은 산을 권한 벨리온도 벨리온이지만, 그것을 수락한 젠도 젠이었다. 델리나가 젠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젠. 너 진짜 괜찮겠어?”

“응?”

“일반인이 갔다가는 짐승들한테 바로 먹혀서 뼈도 못 돌아온다는 곳인데…… 괜찮은 거야?”

“응!”

그 말에도 젠은 연신 웃었다.

“나 잘할 수 있어.”

“그래, 물론 네가 산에 익숙한 건 잘 아는데…… 그래도 걱정이야.”

대공가를 떠나는 것이 아니더라도 한번 산으로 가면 돌아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자 젠이 제 목에 있는 스카프를 가리켰다.

“이거 있으면 괜찮아.”

보란 듯이 제가 선물한 스카프를 가리키니 델리나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비뚤어진 젠의 스카프를 고쳐 매 주는 것으로 마음을 대신했다.

“나 강해질 거야. 강해져서, 델리나 지켜 줄게.”

“응, 그래. 나도 기대되네. 여기서 얼마나 더 젠이 강해질지.”

지금은 저보다도 작지만 그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델리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젠이 갑자기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근데 나는…… 선물 없는데.”

다른 아이들이 선물을 주는 것을 본 건지 한껏 처진 젠의 모습에 델리나가 씩 웃었다.

“없긴 왜 없어. 젠이 제일 커다란 선물 해 줬는데.”

“내가?”

“그럼. 물론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내가 전하한테 받은 첫 번째 생일 선물이 뭐였을까?”

스카프를 매만지고 델리나가 미소 짓자 젠이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

“나야!”

“그렇지. 젠이지.”

그 말에 기운을 차린 듯 젠이 싱글벙글 웃었다.

“있잖아, 나 이제 그거 알아.”

“응? 뭔데?”

“사랑!”

“그게 무슨……, 아.”

언젠가 광대를 사랑하냐는 벨리온의 질문에, 유일하게 그 뜻을 몰라 반응하지 않았던 젠이었다. 그것을 떠올린 델리나가 기특한 듯 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베티한테 배웠나 보네. 잘했어.”

“응!”

“산에도 잘 다녀오고, 몸 조심히. 알겠지?”

“응!”

그저 좋은 듯, 젠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젠을 보며 델리나 역시 활짝 웃었다.

* * *

“……해서, 두 분도 각자 훈련받을 곳으로 가셨습니다.”

벨리온의 집무실에서는 벨리온이 펠릭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다른 세 분들도 떠나셨다고 합니다. 편지가 조금 전에 막 도착했고요.”

정확히는 그들의 보호자들에게서 온 것이었다. 잘 도착했으니 염려 말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그래.”

벨리온이 짧게 답하자 펠릭이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전하께서 이번에 주신 검 말입니다. 칼릭……, 도련님께서 단검을 아가씨께 주셨다고 하는데요.”

“상관없다. 그 검의 주인은 칼릭스니까.”

벨리온이 덤덤하게 대꾸했다. 그러나 펠릭은 웃고 있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원래 울피림 대공가 후계자한테 주는 검은 장검 하나로 알고 있는데요. 구태여 이번에 장검이랑 단검 두 개를 만드신 이유가 있습니까?”

“…….”

“그리고 도련님께 검을 주실 때 단검이 필요 없으면 누굴 줘도 괜찮다는 둥 그런 말씀을 굳이 하신 이유가…….”

“다음 보고.”

“예. 알겠습니다.”

물어보는 체했지만 펠릭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원래 검은 가문 후계자한테만 주는 거니까 대놓고 주기는 힘들었겠지.’

그 사실을 알면 분명 델리나가 부담스러워하며 받지 않을 게 뻔하니 그랬을 것이다. 벨리온의 속마음을 눈치챈 펠릭은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기 위해 서류를 얼굴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저기, 들어가도 될까요?”

그런데 그때 델리나가 머리를 빼꼼 내밀고서 집무실 안을 보며 물었다. 펠릭과 벨리온의 시선이 델리나를 향했다.

“무슨 일이지?”

“전하께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이윽고 벨리온에게 다가온 델리나가 사뭇 비장한 얼굴을 하고서 말했다.

“저도 훈련시켜 주세요.”

“…….”

“검술이든, 체술이든, 뭐든 좋아요. 저도 강해지고 싶어요.”

‘나도 성장해야 해.’

저마다 자신들의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저 또한 더욱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도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눈앞에는 그 누구보다 훌륭한 선생님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이런 몸뚱이지만, 가르쳐만 주시면 뭐든 열심히 배울게요.”

아직 제국의 위기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위기는 이제 겨우 1차를 넘겼고, 여전히 끝을 알 수 없는 위협은 존재했다. 그것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자신 또한 준비를 해야 했다.

“부탁드립니다.”

“…….”

델리나의 말을 들은 벨리온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자 델리나가 다급히 덧붙였다.

“물론 전하께서 가르치시던 다른 아이들보다는 못하겠지만, 저도…….”

“그래.”

“……네?”

“가르쳐 주지.”

안 된다고 할 것까지 각오하고 왔는데 바로 허락하는 벨리온의 말에 델리나가 얼떨떨한 얼굴을 했다.

“그러면 지금 바로 갈까.”

“지금요?”

“아니면 말고.”

“아뇨, 가요, 가요.”

그 말을 덥석 받는 델리나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벨리온이 걸음을 옮기자 델리나가 뒤를 따랐다. 그러면서도 계속 신기하다는 얼굴이었다.

“오뚝이 이런 걸로만 하는 건 아니죠?”

“지금은 그게 더 나을 텐데.”

“……그건 그렇네요.”

“하지만 사내놈들 제압은 할 수 있어야겠지.”

“……?”

훈련의 목적이 어딘가 조금 이상했지만, 우선은 이렇게 훈련할 수 있다는 사실에 델리나는 마냥 좋았다. 벨리온 곁에 붙어 걸어가며 델리나가 이런저런 말을 꺼냈다.

“단검 쓰는 법도 익히고 싶어요. 아, 던지는 것도요. 그리고 다른 몸 쓰는 것들도 익혀 두면 좋을 것 같아요.”

“공연 때문에?”

“음…… 이제는 그런 일이 없길 바라지만, 혹시 모르니까요.”

“해도 황궁에서는 하지 마. 이상한 놈들 꼬이니까.”

“네, 저도 가급적 하고 싶지는 않네요.”

처음 살벌하게 만난 것이 무색할 만큼, 이제는 그 누구보다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는 벨리온과 델리나였다.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펠릭이 흐뭇한 얼굴로 웃었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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