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작별 인사
(59/94)
59화 작별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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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작별 인사
2023.07.29.
대공가 정문 앞에는 마차 세 대가 늘어서 있었다. 델리나는 아이들을 배웅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 뒤로 따라 나오던 아이들이 잠시 멈춰서더니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
델리나가 자기 뒤에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반센트가 앞으로 나왔다.
“뭐야, 다들 왜 그러고 있어?”
“작별 인사 순서 좀 정했지.”
“인사 순서? 다 같이 인사 하는 거 아니었어? 그런데 무슨 순서를 정해?”
다 함께 인사 나누고 헤어지는 줄 알았는데, 인사 순서라는 말에 델리나가 눈을 깜빡였다. 그런 델리나의 말에 별다른 대꾸 없이 반센트가 손에 들고 있던 상자를 건네주었다.
“열어 봐.”
그 말에 델리나가 상자를 열자, 안에 두 개의 총이 있었다. 델리나의 입이 벌어졌다.
“뭐야, 이건?”
“이번에 더 개량한 총. 하나는 총알이 나가고 하나는 불이 나가는 건데, 둘 다 반동이 최소화되도록 했지. 무게도 더 가볍게 했고.”
“진짜?”
그 말에 델리나가 흥미를 보이며 총을 집어 들었다. 확실히 이전 총보다도 작고 가벼웠다.
“누나한테도 이미 말해 뒀으니까, 총을 수리해야 하거나 하면 후작가로 찾아가. 잘 고쳐 줄 거야. 총 구조를 듣고 엄청 흥미 있어 했으니까 어쩌면 나보다 더 이것저것 개조해 줄지도 모르고.”
“그럼 너는? 아주 안 오는 거야? 아카데미 교수가 될 때까지?”
무려 몇십 년이 걸린다는 아카데미 교수 과정이었다. 델리나가 걱정스레 물었지만 반센트는 여유로웠다.
“아카데미 교수가 되어야 그곳 책을 전부 볼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거기가 자료가 제일 방대하거든. 이런저런 실험에도 도움이 되고.”
“…….”
“아마 거기 책을 다 보려면 몇 년은 걸리지 않을까.”
몇십 년이 걸린다는 것을 단번에 몇 년으로 줄여 버리는 말에 델리나가 황당한 듯 입꼬리를 올리다가 곧 납득했다.
“하긴. 너라면 그럴 수 있겠다.”
“응. 그러니까 너도 몸조심하고.”
“그래야지……, 응?”
순간 제가 잘못 들었나 싶어 델리나가 다시 물었다. 몸조심하라니. 절대 반센트의 입에서 나올 리가 없는 말에 잠시 멍하니 있던 델리나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실험체는 소중하지.”
“…….”
“걱정 마. 나도 120살까지는 살고 싶으니까. 너도 몸조심해서 다녀오고.”
“……그래.”
먼 곳으로 가면서도 그놈의 실험 정신은 사그라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말에 반센트가 묘한 표정을 짓다가 피식 웃었다.
“슬슬 내 차례인 것 같은데, 그만 가 보지?”
노아가 두 사람 곁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반센트가 눈썹을 치켜올렸지만 이내 별말 없이 물러섰다. 델리나가 노아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인사 시간까지 정해 놨어?”
“그럼. 예약제야.”
“그거참, 아주 예약금까지 걸어 놓지, 왜…….”
거기까지 말한 델리나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이놈 앞에서 돈 이야기를 하는 순간 불리해지는 것은 자신이었다.
“왜 말을 하다 말아? 내가 빚 이야기라도 할까 봐?”
노아가 델리나의 생각을 눈치챈 듯 눈매를 휘었다.
“걱정 마. 내가 돌아올 때까지 무기한 무이자로 해 줄 테니까.”
“……그거참, 눈물 나게 고맙네.”
거기서 이자가 붙으면 도대체 얼마야. 대륙 크기인가?
이자가 없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지도 몰랐다. 델리나가 헛웃음을 짓는데 머리 위로 무언가가 올라왔다.
“끽!”
“너……!”
원숭이었다. 델리나의 머리 위로 올라온 원숭이는 놀아 달라는 듯 이리저리 델리나의 몸을 타고 돌아다녔다. 델리나가 가까스로 원숭이를 다시 나무 위로 보냈다.
“이따가 놀아 줄 테니까, 거기서 얌전히 있어!”
“끽끽!”
델리나의 말에 원숭이가 마냥 웃으며 다른 나뭇가지로 뛰어올랐다. 노아가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이제는 서로 친한가 보네?”
“응. 뭐, 지금도 장난치기는 하는데 예전보다는 좋지. 털갈이도 끝나서 지금은 완전히 은색이야.”
돌연변이였기에 더 이상 다른 황금 원숭이처럼 황금색이 아닌 은색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델리나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확실히 털색이 저렇게 바뀌니까 그런가. 너랑 좀 비슷해진 것 같은데.”
“내가 원숭이 같다고?”
“털이 은색이니까 비슷하다는 소리지. 그리고 계속 원숭이라고 부르기는 뭐해서 새로 이름을 지었어.”
“뭔데?”
“네가 선물해 준 거니까 특별히 네가 제일 좋아하는 걸로 이름을 붙였지.”
“…….”
“바로, 보석이!”
보석이라는 이름에 반응하듯 원숭이가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델리나 또한 정말 잘 지었다는 듯 자신만만한 얼굴을 했지만, 정작 노아의 반응은 묘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 보석이 아니면 어쩌려고?”
“……네가 돈이랑 보석을 가장 안 좋아한다고?”
마치 사람이 숨을 안 쉬어도 살 수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것마냥 델리나의 눈동자가 혼란스러운 듯 흔들렸다. 그런 델리나의 반응에 노아가 큭큭대며 웃었다.
“뭐, 그것도 좋아하기는 하지.”
“…….”
“그래. 보석이……. 이름 좋네. 잘 데리고 있고.”
“응. 너도 잘 가고. 몇 년 걸릴지는 모르는 거지?”
“한 번씩 집에 오겠지만, 끝나는 게 언젤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웃으며 말하고 있지만 델리나도 알았다. 지금부터 노아의 가는 곳이 그리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그래도 조심해. 디아몬 공작가 후계자라고 네 몸값 노리고 막 달려들면 어쩌려고.”
“그럼 그렇게서 잡히면, 구하러 올래?”
“노력은 해 볼게. 자신은 없지만.”
뭐 사실 노아라면야 상대편이 더 걱정스럽긴 했다.
“근데 그럴 일은 없을걸. 내가 채무자 두고 어디 가겠어.”
“그건 그렇지.”
여차하면 무덤에서도 나와 돈을 받아 갈 디아몬 사람들이었다. 노아의 말에 델리나가 납득하는 사이, 노아가 델리나 뒤를 힐끔 바라보았다.
“더 이야기하고 싶긴 한데 뒤에서 아주 열렬하게 쳐다보는 사람이 있어서 이만해야겠네.”
“응? 누가?”
델리나가 뒤를 보니 그곳에는 영 못마땅한 얼굴의 아슈드가 서 있었다. 이윽고 아슈드가 다가왔고 노아가 마지막 말을 건넸다.
“잘 있어.”
“어, 응. 너도.”
노아가 가기 무섭게 아슈드가 다가왔다. 델리나가 그를 보며 물었다.
“이제 가시는 거죠?”
델리나가 존댓말을 하자 아슈드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또 존대해? 그때처럼 반말 안 하고.”
“……그때는 급박한 상황이라 전하의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
“두 번 정신 차리게 했다가는 아주 반역도 하겠는데.”
“…….”
지은 죄가 있기에 델리나가 대꾸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됐어. 그냥 말 놔.”
“진짜요?”
“다른 애들한테도 말 놓잖아. 그런 식으로, 그래도 된다고.”
“그렇다면야 뭐…… 알겠어.”
굳이 그 제안을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에 델리나도 냉큼 말을 놓았다.
“참, 그런데 여기 와도 괜찮은 거야?”
사실 제일 의외의 사람은 아슈드였다. 여기에 황궁 마차를 끌고 왔다는 것은 그의 외출을 하이르 또한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날 이후로 별말 없어. 애초에 나랑 별로 마주하려고 하지도 않지만.”
“…….”
“그래도 이제 전처럼 자주 오기는 힘들겠지.”
‘역시…….’
예상한 일이기는 했어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주 보기 힘들다는 소리에 델리나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만큼 바빠질 테니까. 이러저런 수업도 받아야 하고 할 일들도 있고.”
“후계자 수업?”
“그럼. 내가 아니면 누가 받겠어.”
“그건 또 그렇네.”
지난번과는 다르게 자신감 있는 아슈드의 모습에 델리나가 빙긋 웃었다. 이윽고 잠시 머뭇거리던 아슈드가 품 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들었다.
“받아.”
“뭐야, 이건?”
“황족의 목숨을 구해 줬잖아. 설마 내가 아무 답례도 안 하겠어? 얼른 열어 봐.”
말하면서도 연신 민망한 듯 아슈드가 재촉했다. 델리나가 상자를 열자 그 안에 든 황금색의 목걸이가 보였다. 목걸이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푸른 보석이 있었다.
“그냥 보석 목걸이 아니야. 황궁 보물이야. 초대 황후가 사용했다는 목걸이 중 하나고.”
“진짜?”
놀란 델리나가 보석 뒤쪽을 확인했다. 정말로 황가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어마어마한 선물에 절로 델리나의 손이 떨려 왔다.
“너 예전에 보니까 목걸이로도 공연하던데. 사람들 앞에서 이리저리 흔들면서.”
“아, 그건 그랬는데……. 설마 그거 할 때 쓰라고 주는 거야, 황궁 보물을? 공연에 쓰라고?”
“뭐로 쓰든 상관없어. 고모님한테도 이미 허락받았고.”
와아…….
예상치 못한 엄청난 선물을 바라보던 델리나가 웃었다.
“그래도 이런 엄청난 선물을……. 아무튼 고마워. 잘 받을게.”
“뭐, 뭐가. 황족의 목숨을 구했으니 이 정도는 싼 거지.”
그 정도는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하는 아슈드였다. 그러고는 이어서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튼…… 그때 구해 줘서 고마워.”
작은 목소리였지만 델리나는 그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 말에 델리나가 활짝 웃자 햇살을 받은 목걸이가 반짝이며 찬란한 빛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