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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새로운 능력 (54/94)


54화 새로운 능력
202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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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쓰러진 아슈드에게 델리나가 다급히 달려와 상태를 살폈다. 빠르게 능력을 풀기는 했지만 힘을 많이 쓴 탓에 그의 안색이 좋지 못했다. 게다가 어깨 부근에서는 여전히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피를 멈추게 해야 되는데.’

다급히 천으로 막아 보려 했지만 이미 상처는 상당히 벌어져 있었다. 그런 제 상태를 안다는 듯 아슈드가 입을 작게 말했다.

“됐어. 그걸로는 어림도 없는데.”

“되긴 뭐가 돼! 기다려 봐.”

빠르게 주변을 살피던 델리나는 쓰러져 있던 남자에게 다가갔다. 어쩌면 피를 멎게 할 무언가를 그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그런 델리나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남자의 품에는 작은 주머니가 하나 들어 있었다.

“있다!”

주머니 안에는 약병 몇 개와 바늘과 실이 있었다. 약병을 집어 든 델리나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분명 상처를 치료하는 약이거나 진통제일 수도 있었지만, 반대로 독일 가능성도 있었다. 애초에 약에 관한 지식이 없으니, 함부로 쓸 수는 없었다.

‘약을 쓰지 못한다면 남는 건 바늘과 실인데…….’

바늘과 실의 용도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델리나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델리나가 주머니를 살피며 고민하는 사이, 아슈드는 정신을 잃을 듯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그러자 놀란 델리나가 주머니를 들고 도로 다가왔다.

“안 돼! 정신 똑바로 차려! 지금 눈 감으면 안 돼!”

“시끄러워. 하여간에 이래라저래라……. 애초에 별로 살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

“안 살긴 왜 안 살아. 황족으로 인정받는 건지 뭔지 때문에 그런 거라면, 넌 이미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황족인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는 아슈드였다. 그러는 사이에도 줄어드는 아슈드의 목소리에 델리나는 더욱 큰 소리로 말했다.

“살기 싫다고 하면서도 너, 내가 죽을까 봐 없는 힘 쥐어짜 내서 지켜 준 거 다 알아.”

“…….”

“황족의 의무가 제국민들을 다스리고 지키고 보호하는 거잖아. 그런 의미에서 이미 너는 황족, 아니 내가 인정하는 차기 황제야. 자기 손자가 무슨 짓을 할까 봐 벌벌 떨면서 죽이려는 사람보다 더더욱!”

델리나의 말에 아슈드의 눈에 조금 생기가 돌아왔다. 동시에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너한테 그런 인정을 받을 줄은 몰랐는데.”

“…….”

“웃긴 게 그렇게 기분 나쁘지는 않네.”

아슈드가 편안한 얼굴로 서서히 눈을 감았다.

“고마워.”

그 말을 끝으로 아슈드의 입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눈을 크게 뜬 델리나가 재빨리 아슈드의 가슴팍에 귀를 가져다 댔다.

‘호흡은 아직 있어.’

아직 숨은 쉬고 있다지만 피가 멈추지 않는다면 위험했다.

‘하지만, 내가 이걸, 어떻게? 어떻게 하면…….’

바늘과 실을 쥔 손에 힘을 주는 바로 그때였다. 델리나의 눈앞에 새 창이 생성됐다.

<모든 흑막의 1차 위기 상황을 무사히 넘기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

동시에 이어지는 글자에 델리나의 입이 벌어졌다.

<이에 보상을 지급해 드립니다.>

‘보상?’

눈앞에 나타난 창에 쓰인 보상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다른 창이 뜨기 시작했다. 그것을 읽던 델리나의 입이 더 벌어졌다.

집착, 다정, 연하.

기본적으로 그 키워드들은 지금까지 본 능력들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뒤에 있는 글자가 달랐다.

집착녀, 다정녀, 연하녀.

‘이거, 설마…….’

마지막으로 델리나는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아이들의 이름 위에 새롭게 새겨진, ‘델리나’라는 글자를.

“……!”

창에 새롭게 자신의 이름이 뜬 것을 본 순간, 생각할 틈도 없이 델리나는 재빠르게 키워드를 눌렀다. 그리고 실과 바늘을 높이 들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능력녀>

동시에 델리나의 머리 위로 키워드가 떠올랐다. 델리나는 바늘에 실을 뀄다. 그런 델리나의 손길은, 무척이나 빨랐다.

* * *

“아슈드, 아슈드!”

“으음…….”

“정신이 들어?”

그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슈드의 눈이 서서히 떠지는 순간, 누군가가 재차 아슈드를 불렀다. 점차 밝아지는 아슈드의 시야로 그레이스의 얼굴이 들어왔다.

“……고모님?”

“그래, 아슈드. 고모야.”

아슈드가 깨어난 것을 본 그레이스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한가득 고였다. 잠시 멍하니 있던 아슈드가 몸을 일으켰다.

“고모님이 여기를 어떻게……. 아니, 그보다 여기는 어디……?”

분명 그대로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러면서 어깨 부근에 느껴지는 통증에 아슈드가 밑을 내려다보자 그곳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급하게 일어나면 안 돼. 상처를 치료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

“그렇지만…….”

저를 제지하는 그레이스를 얼떨떨하게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아슈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레이스가 아슈드의 마음을 읽은 듯 답했다.

“델리나 영애가 응급 처치를 해 줬어. 네 상처를 꿰매 줬거든.”

“광대……, 그 애가요?”

“그래. 얼마나 깔끔하게 했는지 의사도 놀랄 정도였는걸.”

그 말에 아슈드가 놀란 듯 제 어깨 부근을 더듬거렸다. 당시 너덜너덜했던 상처는, 이제 붕대로 단단히 감겨 있었다.

“그 애는 지금 어디에 있죠?”

“지금 다른 방에서 쉬고 있어. 그 애도 정신을 잃은 채로 발견되었는데 다친 데는 없다고 했고.”

“…….”

“나중에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지. 아슈드 너를 지켜 준 영애인데.”

잠시 침묵하던 아슈드가 곧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차린 듯 말했다.

“그런데 고모님이 여기 계시면 안 되잖아요. 여긴 대공가인데, 할아버님께서 아시면……!”

“괜찮아. 하녀들과 시녀들이 방을 몰래 빠져나오는 데 도움을 줬거든. 대공가까지는 오는 건 벨리온이 도움을 줬고. 그러니까 하루 정도는 괜찮을 거야.”

“하녀들이랑 시녀들까지…….”

“그래. 다들 사정은 모르고, 아슈드 네가 위험하다는 소리에 나를 도와줬어. 그만큼 다들 바라고 있는 거야. 아슈드 네가 무사하기를.”

“…….”

그레이스의 말에 아슈드가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다가 이내 그녀를 보며 물었다.

“고모님은 제가 원망스럽지 않으신가요?”

“…….”

“저를 지켜 주기 위해 고모님이 결혼도 마다하고 계신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알고 있는 게 있어요. 그것 때문에 대공과 고모님이…….”

“아니야, 절대 그런 게 아니야. 아슈드.”

그레이스가 아슈드의 손을 꼭 잡았다.

“난 말이야. 네가 오빠의 아들이라서, 황녀로서 황태손을 보호하기 위해서 네 곁에 있는 게 아니야. 그저 아슈드 너라는 아이의 곁에 있고 싶어서 스스로 선택한 일이야.”

아슈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그레이스가 웃었다.

“그리고 벨리온과는……. 음, 서로 결혼하자는 말은 한 적이 없어서. 벨리온도 결혼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을 거야. 워낙에 자유로운 사람이잖아. 지금은 그와 만나는 것도 아니고.”

“…….”

“아, 벨리온이 너한테 전해 달라고 한 게 있었는데.”

그렇게 말하며 그레이스가 단검 하나를 아슈드 옆에 놓았다. 그것이 제가 대공가로 가져갔던 단검임을 알게 된 아슈드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괜찮아. 내가 무슨 상황인지 다 이야기했으니까. 그랬더니 이 말을 전해 달랬어.”

“무슨…….”

“자기를 죽일 수 있을 만큼 강한 황제가 되면, 그때는 진심으로 겨뤄 봐도 좋을 것 같다고.”

그 말에 아슈드는 제 손 옆에 있는 단검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물론 황제가 되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야. 설령 네가 황제가 되지 않아도, 황태손이 아니더라도, 넌 누가 뭐래도 내 자랑스러운 조카고, 가족이니까.”

“가족…….”

아슈드가 그 말을 가만히 중얼거렸다. 그레이스가 그런 아슈드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

“무엇을 하든 우리 아슈드는 그 누구보다 다정하고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

“그건 고모가 잘 알고 있으니까.”

그레이스의 품이 너무나 따뜻하고 포근해서 아슈드의 눈에 눈물이 어렸다. 아슈드는 한동안 말없이 안겨 있기만 했다.

“그리고 혹 황궁에 돌아오는 것이 괴로우면 내가 벨리온한테 부탁해서 당분간 여기 있게 해 달라고 할게.”

“…….”

“걱정 마. 고모도 할아버지 앞에서 물러설 생각은 없으니까. 아, 아니면 고모랑 같이 황궁에서 나가서 살까? 둘이서 어디 한적한 데서 살아도 좋고.”

“사용인들도 없이요?”

“그럼. 고모도 나름 청소도 할 줄 알고, 요리도 할 줄 알아.”

“그, 다른 건 몰라도 요리는, 사용인을 시키는 게…….”

“아냐. 물론 조금의 시행착오가 있기는 했지만, 완전 잘할 수 있다니까?”

그레이스의 말에 아슈드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다가 입을 열었다.

“아뇨. 저도 황궁으로 같이 갈게요.”

“괜찮겠어?”

“네. 황궁 안에 있는 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어요. 게다가 주변 눈이 있으니, 황궁 안에선 저를 어떻게 하시기 더 힘들 거예요. 남들의 시선을 무척 신경 쓰시는 분이니까.”

“그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저한테는 고모도 있고, 저를 지켜 주는 다른 사람들도 있잖아요.”

이번에는 아슈드가 그레이스에게 팔을 뻗어 그녀를 안았다. 아슈드의 난생처음 보는 행동에, 잠시 놀란 듯 눈을 깜빡이던 그레이스가 곧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다시금 마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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