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너희가 여기 왜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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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너희가 여기 왜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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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너희가 여기 왜 있어?
2023.07.05.
다이어트 쿠키를 먹고 온몸의 감각이 이상해진 것이 아니라면, 분명 저기 오는 무리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델리나를 알아본 젠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델리나!”
지금 혼란에 빠진 티 파티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젠은 마냥 웃으며 다가왔다. 그런 젠의 곁에는 다른 아이들이 나란히 있었다. 델리나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왜? 도대체 왜 여기?’
델리나가 젠 옆에 있는 반센트에게 연신 눈짓을 했지만 반센트는 장소를 죽 훑더니 말했다.
“원래 영애들 사교 모임은 이런가. 되게 조용하네.”
방금 전까지는 소란스러웠어…….
정말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한 고요함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영애들은 넋을 놓고 갑자기 나타난 다섯 명의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황, 황태손 전하를 뵙습니다. 저는 로즈립 후작가의 실비아 로즈립입니다.”
영애들 중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이는 실비아였다. 아슈드에게 한 걸음 다가가 인사한 실비아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얼굴로 델리나와 아슈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제가 이번 티 파티의 주최자인데 여기까지는 어떻게 걸음하셨나요?”
“데리고 갈 사람이 있어서.”
실비아에게 말하면서도 아슈드의 시선은 델리나에게 향해 있었다. 그 시선을 알아차린 실비아가 치맛자락을 세게 쥐었다.
“도중이기는 하지만 데려가도 상관없겠지?”
주변 분위기를 살피던 노아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칼릭스가 중얼거렸다.
“……조금 있다가 가자니까.”
사람들이 많은 곳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칼릭스는 표정을 굳히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디저트에 향해 있었다.
“놀고 있었어?”
유일하게 젠만이 해맑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델리나는 모든 것을 포기한 양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보다가 문득 옆에서 무척이나 뜨거운 시선이 느껴지는 것을 알아차렸다. 바로 영애들의 시선이었다.
원래도 주목받는 다섯 명이 한데 모여 갑자기 델리나를 데려가려 하니, 호기심이 동하는 것도 당연했다. 문제는 당사자인 델리나도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당황하던 델리나가 무어라 입을 열려던 순간, 실비아가 나섰다.
“전하. 이렇게 저희 후작가를 찾아 주셔서 무척이나 영광입니다. 티 파티에 함께 참여하심이 어떠신가요?”
“…….”
“물론 뒤에 계신 영식분들도 마찬가지고요.”
황족인 아슈드뿐만 아니라 현재 귀족들의 입에 뜨겁게 오르내리고 있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실비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저희 후작가의 사교 모임은 감히 제국 내에서 손꼽힐 만한 모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분명 마음에 드실 거예요.”
실비아의 열정적인 설명에도 아이들은 시큰둥했다.
“필요 없어. 여기만 데려가면 되니까.”
실비아의 말에도 아슈드의 답은 한결같았다. 그러자 실비아의 매서운 눈이 델리나를 향하다가도, 도로 아슈드를 향해 눈매를 휘었다.
“보아하니 플로렌 영애를 데려가시는 것 같은데, 혹 무슨 연유로 데려가시는지 여쭤보아도 될까요?”
“황궁에서의 호출인데.”
아슈드의 짧은 답에 모두가 놀란 듯 술렁였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놀란 이는 델리나였다.
‘황궁? 설마, 그 부른 사람이…….’
이야기야 들었지만, 설마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제야 델리나는 그들이 이렇게 다 함께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건 뭐야?”
황궁에서의 호출이라는 말에 모두가 놀라 술렁이는 와중에 젠이 델리나 자리 앞에 놓여 있는 쿠키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다이어트 쿠키.”
“다이어트?”
“여기서 나한테 준 쿠키야.”
델리나의 말에 다른 아이들의 시선도 쿠키로 쏠렸다.
“……쿠키?”
“재료비가 아까울 정도의 모양인데.”
“연구용 쿠키도 이 정도는 아니야.”
쿠키를 본 아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었다. 그때 젠이 쿠키를 들어 코를 킁킁거리다가 냄새에 놀란 듯 쿠키를 던져 버렸고, 그것을 뒤에 있던 칼릭스가 받았다.
“먹어 보게?”
“…….”
“궁금하면 먹어 보든가.”
노아가 그렇게 말했지만 쿠키를 바라보는 칼릭스의 얼굴은 복잡미묘했다. 하지만 호기심이 동했는지 칼릭스가 입을 작게 벌렸다.
“안……!”
실비아가 채 말리기도 전에 쿠키는 칼릭스 입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빠르게 반응했다.
“……!”
그토록 다채로운 칼릭스의 표정은 처음이었다. 얼굴이 하얘졌다가 파래졌다가 하던 칼릭스가 앞에 놓인 잔을 들어 차를 입 속으로 들이부었고, 한참 후에 초췌해진 얼굴로 실비아를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맛없어?”
“먹어서 다이어트가 되는 게 아니라 못 먹어서 다이어트가 되는 쿠키였네.”
칼릭스의 요란한 반응에 젠과 반센트가 차례대로 말했다. 그러자 노아가 큭큭 웃었다.
“제국에서 손꼽히는 모임이라더니, 확실히 쿠키 하나는 제국에서 손꼽힐 만한데.”
하나둘 터져 나오는 말에 실비아의 얼굴은 민망함과 수치심으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자 그동안 가만히 있던 아슈드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너만 이 쿠키로 먹어.”
“…….”
“다른 영애들은 멀쩡한 쿠키인데.”
“전 다이어트할 필요가 있다고 주던데요.”
아슈드와 델리나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실비아의 안색이 점점 안 좋아졌다. 그런 실비아를 잠시 보던 델리나가 말을 이었다.
“제 데뷔탕트 춤을 영애께서 감명 깊게 본 모양이더라고요.”
“……뭐?”
그 말에 아슈드의 미간이 꿈틀댔다. 지레 겁을 먹은 실비아가 곧장 아슈드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전, 전하. 저는 결코 그 춤을 놀리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정말 플로렌 영애를 위한 마음으로 그런 것입니다!”
그 말에 무슨 소리인가 싶어 영애들이 또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눈치가 빠른 몇몇 영애들은 깨달았다. 데뷔탕트 때 아슈드와 마지막 춤을 췄던, 분홍 머리 영애의 정체가 델리나라는 것을.
“……그러니까, 여기 영애가 무거워서 내가 들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그것을 눈치챈 아슈드의 음성이 서늘해졌다. 실비아의 어깨가 파르르 떨려왔다.
“그, 그렇습니다. 가벼웠다면 전하가 들지 못했을 리 없으니까요.”
최대한 아슈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실비아가 필사적으로 말했다. 어느덧 티 파티의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모두가 말없이 눈치를 보며 아슈드의 답을 기다렸다. 곧 아슈드의 입이 달싹였다.
“……무거워서 그런 거 아니야.”
으응?
그런 당연한 소리를 왜 하냐는 둥, 감히 황족을 우롱했다는 둥의 말을 생각했는데 아슈드의 답은 델리나와의 예상과 달랐다.
“얘는 보통이야.”
“…….”
“내가 아주 조금, 아주 조금 힘이 부족했던 것뿐이야.”
아슈드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델리나의 귀에도 똑똑히 들려왔다.
‘인정했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다는 것. 그것은 아슈드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놀랄 일이었다. 델리나가 놀란 걸 알았는지, 민망한 듯 아슈드가 벌컥 성질을 냈다.
“뭘 그렇게 놀라?”
“…….”
“황족은 거짓말 같은 거 안 해.”
“어……네.”
델리나는 여전히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슈드가 홱 돌아서더니 걸음을 옮겼다.
“아무튼, 거기서 그딴 쿠키나 먹을 거면 계속 그대로 있든가.”
그러자 이제 델리나 옆에서 노아가 고개를 기울이며 미소 지었다.
“계속 여기서 다이어트나 하고 있을 거야?”
“…….”
“차라리 나가서 살찌는 쿠키 먹는 게 더 이로울걸.”
“……나간다, 나가.”
뭇 영애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미소였지만, 정작 그 미소를 받는 당사자인 델리나는 그렇지 못했다. 다섯 명을 바라보던 델리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그렇게 티 파티는 종료되고 말았다. 모임의 주최자인 실비아가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자리를 떴고, 영애들 또한 하나둘 눈치를 보며 자리를 떠났기 때문이었다.
다섯 명의 아이들과 함께 마차로 향하면서도, 델리나는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공허한 시선을 보냈다.
“……도대체 그건 왜 챙겨 온 거야?”
“연구용.”
정말 연구 가치가 있다고 느낀 듯 반센트가 손안에 든 다이어트 쿠키를 꽉 쥐었다. 칼릭스는 그걸 쳐다도 보기 싫은 듯 고개를 아예 돌려 버렸다.
“그래서, 지금 황제 폐하께서 대공가의 후원을 받는 아이들을 불렀다고? 그것 때문에 황태손 전하가 날 데리러 온 거고?”
“그렇지.”
나오면서 노아에게 대강의 상황을 들은 델리나였다. 그리고 정말 황궁으로 가야 한다는 말에, 델리나의 안색이 나빠졌다.
“그런데 말이야. 기왕이면 사교 모임 끝나는 거 기다렸다가 데리러 오는 건 생각 안 해 봤니?”
이미 영애들에게 모든 것을 보였으니 소문이 퍼지리란 건 불 보듯 뻔했다. 마차로 향하고 있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는 영애들의 시선에, 델리나가 빠르게 속삭였다.
“처음에는 그럴까도 했는데, 드레스 코드가 푸른색인 모임에 붉은 드레스 입고 갔다는 거 들으니까 그냥 데려가는 게 낫겠더라고.”
“그걸 어떻게 알았어?”
“후작가 사용인 붙잡고 너 어디에 있냐고 물어봤더니 대뜸 겁에 질려서 안 물어본 것까지 줄줄 말하던데.”
“…….”
그 말에 델리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마차로 다가갔다. 기사들 또한 황궁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들은 것인지, 얼굴들이 그리 좋지 못했다.
‘그래, 정말 황궁에…….’
언제나 이런 날을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생각보다도 훨씬 이르게 된 만남에 델리나는 한 번 더 각오를 굳히고 마차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