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사교 모임에 주먹?
(29/94)
29화 사교 모임에 주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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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사교 모임에 주먹?
2023.06.29.
[사교 모임에서 말을 할 땐 일단 세 번 정도는 생각하시고 말씀을 하시는 게 좋습니다.]
[세 번?]
[다른 영애들이 있는 자리니 그만큼 말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델리나는 베티와의 수업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만약 상대 쪽에서 악의를 가지고 공격한다. 그러면 우선 세 번은 두고 보시길 바랍니다.]
[그건 왜?]
[처음만으로는 정말 나에 대한 악의인지 확신이 안 들 때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게 세 번 정도 이어지면 거의 확실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해서 악의인 걸 확인했을 때는?]
설마 세 번 때리나?
왜인지 베티라면 그렇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델리나의 질문에 베티가 가만히 중얼거렸다.
[물리적인 게 사실 편하지만…….]
헉.
베티의 섬뜩한 중얼거림에 델리나가 움찔거리자 베티가 말을 바꿨다.
[그래도 사교 모임이니 사교 모임만의 방식으로 해결하시는 게 낫겠지요.]
[어떻게?]
[사실
모두가 같은 상황에 처하는 것은 아니기에
정확한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을 꼽자면…….]
회상 속에서 베티의 입이 무어라 달싹거릴 즈음 제인의 날 선 목소리가 델리나를 도로 현실로 끄집어냈다.
“너, 여기 어떻게 왔어?”
“어떻게 오긴. 마차 타고 왔지.”
양옆으로 다른 영애들까지 대동한 제인의 행태는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충분히 악의적이었다. 제인의 표정에도 못마땅한 기색이 가득했고, 미간에는 주름이 잔뜩 져 있었다.
“너, 시골 친척 집으로 갔다며. 근데 그 드레스는 어떻게 된 거야?”
‘얘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반응을 보니 자신이 다락방에서 뛰어내린 후 혼날까 싶어 안절부절못한 채 다락방 주변만 맴돌았음이 틀림없었다. 그사이 저는 대공가 마차를 타고 사라졌을 테고. 아마 그 이후에 저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니엘이나 샬롯에게 들었을 터였다.
“그러는 너야말로 드레스 예쁘네. 가만 보니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이걸 어디서 봤더라?”
제인이 드레스를 화두에 올리자 델리나 또한 제인이 입은 드레스를 보며 영애들에게 들으란 듯이 말했다. 그러자 찔리는 것은 있는 듯 제인이 드레스를 가리며 외쳤다.
“뭐, 뭐! 이거 내 드레스인데!”
“그래? 그런데 꼭 많이 본 것 같아서. 그러니까, 아마 황궁에서…….”
“웃겨! 내 거 맞다니까?”
제인이 큰 소리로 델리나의 말을 막았다. 물론 델리나 입장에서도 아슈드와 춤을 춘 영애가 저라는 걸 밝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델리나는 그저 제인이 당황하는 꼴을 보고 싶었던 것뿐이니까.
“근데 너는 원숭이 데려왔더라?”
드레스로 시비를 걸 수 없게 되자 이번에는 제인이 동물로 화제를 돌렸다. 제인은 델리나의 품에 있는 원숭이를 보며 한껏 비웃음을 흘렸다.
“저 원숭이 좀 봐. 못 생겨 가지고……. 내 강아지가 더 예쁜 것 같지 않아?”
“응. 그러게. 제인 네 강아지가 더 귀여운데.”
“아무리 아무 동물이나 데려와도 된다지만 원숭이는 너무한 거 아니야?”
제인의 말에 다른 영애들이 까르르 웃으며 델리나와 원숭이를 놀리기 시작했다. 델리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역시, 얘는 세 번이고 뭐고…….’
“어머나, 손이 미끄러졌네!”
“끽!”
제인을 봐줄 필요가 없다고 느낀 델리나는 과장된 몸짓과 표정으로 원숭이를 안고 있던 손을 풀어 버렸다. 못생겼네 어쨌네 말을 들으며 잔뜩 성이 나 있던 원숭이가 세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뭐야!”
“꺄악!”
원숭이에게 뺨을 맞기 시작한 세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손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하지만 원숭이는 요리조리 몸을 피하며 세 사람의 머리카락이며 옷을 잔뜩 망쳐 놓았다.
“어머, 죄송해라. 제가 손을 놓치는 바람에……. 어서 이리 오지 못하겠니?”
델리나가 놀란 표정으로 원숭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지만, 델리나의 말을 들을 원숭이가 아니었다.
물론 그것도 델리나의 예상 안이었다. 이윽고 원숭이는 세 사람의 얼굴이며 몸을 잔뜩 엉망으로 만들고서야 만족한 듯 끽끽 웃더니 나무 위로 빠르게 사라졌다.
“세상에나, 괜찮으세요? 죄송해요. 제 원숭이가 아직 새끼라서……. 어디 가서 정돈들을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모든 영애가 보는 앞에서 엉망이 된 세 사람이 수치심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급기야 제인이 델리나에게 빽 소리쳤다.
“이게 뭐 하는 거야!”
“뭐냐니. 실수해서 사과하는 중이잖아.”
“사과는 무슨! 분명, 분명 일부러 손을……! 그러니까 왜 그런 원숭이 같은 걸 데려온 건데?”
“왜 데려오기는. 후작가에서 동물들과 함께하는 사교 모임을 하니까 데려왔지.”
대화에 로즈립 후작가가 언급되자 제인이 급히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왜 원숭이 같은 걸 데려왔냐 따져 봤자, 결국 모임을 주최한 후작가를 욕한 꼴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옷에 상한 부분이 있으면 내가 변상하도록 할게. 대신 원숭이는 용서해 줄 거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애거든.”
“……됐어. 저리 비켜.”
주인이 실수를 인정하고 변상한다고 사과하는 데다가, 어느새 원숭이는 자긴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무구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곳은 동물을 사랑하는 실비아가 있는 후작가였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을 씹던 제인은 결국 다른 영애들과 함께 옷을 정비하기 위해 정원을 떠났다. 그리고 그들의 뒷모습을 보던 델리나는 베티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안 들키는 겁니다.
갚아 줄 건 갚아 주고요
.]
논란만 되지 않을 만큼, 차마 상대방도 무어라 할 수 없도록 복수하고 대처하라는 것이 베티의 조언이었다. 물론 안 들키기는커녕 모임에 온 모든 이가 그 사태를 지켜보긴 했지만, 델리나는 나름 만족스러웠다.
잘했다.
원숭이를 만난 이래로 처음으로 밥값, 아니 바나나값을 한 원숭이에게 델리나는 조용히 바나나를 하나 던져 주었다. 바나나를 받은 원숭이는 끽끽 웃다가 나뭇가지 사이를 돌아다녔다.
* * *
“진짜 이게 뭐야! 델리나 때문에…….”
원숭이 때문에 엉망이 된 머리와 드레스를 정리하려고 휴게실로 향했던 제인이 다시 정원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사교 모임은 다 끝난 상태였다. 화가 나서 이를 갈며 중얼거리던 제인이 정원을 빠져나가려던 때였다.
“…….”
제인을 막아서는 이가 있었다. 바로 실비아였다.
“아, 안녕하세요, 실비아 영애.”
“…….”
“제가 휴게실에서 옷을 정리하다가 좀 늦어 버려서요. 모임이 끝나는 줄도 몰랐네요.”
실비아가 나타나자 제인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로즈립 후작가에게 줄을 대는 것은 모든 영애의 바람이었으니까.
“저기, 혹시 괜찮으시면 영애의 동물과 제 강아지와 함께…….”
“너, 데뷔탕트 걔 맞지?”
“……네?”
하지만 제인에게 돌아오는 것은 실비아의 서늘한 말이었다.
“그렇게 드레스 디자인을 살짝 바꾸고 오면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내가 눈썰미가 얼마나 좋은데?”
“아니, 그, 그게…….”
“그런 식으로 나와 후작가를 우롱하다니……. 각오는 되어 있겠지?”
제인을 협박하다시피 하는 실비아의 매서운 말에 제인이 공포에 질린 채 두 손을 모으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아니에요! 이건 제 드레스가 아니라고요! 제 사촌 드레스예요!”
“뭐?”
“원래 그 애가 데뷔탕트 때 입고 간 거였는데, 저한테 막 입으라며 하는 바람에……. 죄송해요. 저는 정말 후작가를 우롱할 생각은 없었어요.”
“사촌이라면, 누구?”
“델리나예요. 아까 저랑 같이 있었던, 보라색 머리카락에 분홍 눈동자를 한 영애요.”
델리나.
그 영애라면 실비아도 알고 있었다. 털 색깔이 독특한 원숭이를 데리고 왔기에 실비아가 조금 관심을 가진 영애이기도 했다.
“그 말 진짜야? 거짓말하는 건 아니고?”
“아니에요! 원하신다면 백작가로 가셔서 확인해 보셔도 돼요. 저희 아빠도, 엄마도, 오빠도……, 그리고 사용인들도 봤었거든요? 델리나가 그날 이 드레스 입고 온 거요! 정말이에요! 믿어 주세요!”
당연히 데뷔탕트의 그 애가 제인인 줄 알았는데 새롭게 등장한 델리나라는 존재에 실비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자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제인이 말을 이었다.
“제가 그때 델리나가 하는 말을 들었는데요. 당시 그곳에 있던 데뷔탕트 영애 중에 자기가 가장 예쁘고 화려했다고 했어요.”
“……뭐? 진짜?”
“그럼요! 저랑 델리나는 같은 집에 사는데요. 제 귀로 똑똑히 들었어요. 그래서 황태손 전하와도 춤을 췄다고 했고요.”
데뷔탕트 분홍 드레스의 주인공, 아슈드와 춤을 춘 인물.
사실과 거짓을 교묘히 섞은 제인의 말이 정확히 실비아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 누구보다 남들 눈에 띄기 좋아하는 실비아의 입장에서 데뷔탕트 때 사람들의 시선을 모조리 앗아 간 델리나는 이미 눈엣가시였다.
“……델리나, 델리나 플로렌…….”
게다가 제인이 들려준 델리나의 이야기에, 어느새 실비아의 눈은 분노로 차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