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176화 (176/201)

176화. Stop The Clocks (3)

웨스트록 11구역.

역 앞 거리의 어느 카페.

“켁, 케헥! 케흐헥……!”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던 한 남자가, 돌연 발작적으로 기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남자의 상태는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그는 익사 직전에 물 밖으로 빠져나온 사람마냥 콜록거렸다.

“손님? 괜찮으세요?”

“…….”

“손님?”

점원이 다가가 그의 안부를 살폈으나, 그는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두려움에 덜덜 떨리는 동공으로 주위를 허겁지겁 살피고는,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듯이 헐레벌떡 가게 밖으로 뛰쳐나왔다.

“……허억, 허억…….”

오후,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 한복판. 남자는 건물 벽에 등을 기댄 채 스르륵 주저앉았다.

“……지금, 두 번째, <역행>이…….”

그는 머리를 싸매고서 혼잣말을 중얼댔다.

대낮부터 약에 취한 머저리가 꼴값을 떠는 꼴은 시에라시티에서는 그렇게 기이한 풍경도 아니었다. 물론 남자는 약에 취해 있지 않았지만, 누구도 그런 걸 신경 쓰진 않았다. 남자 자신조차도 말이다.

그가 신경 쓰는 것은 오로지,

다가오고 있는 미지의 위협뿐.

“누구지? 누가 날 쫓는 거지?”

“경찰인가? 지나 누님? 아냐, 난 이제 테러리스트 같은 게 아니라고.”

“결계에 마력 감지 반응이 있어. 날 쫓는 건 마법사야. 누구지? 도대체 누가…….”

병적인 독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남자는 불안을 못 이겨 머리를 박박 긁었다. 이내 뭔가 떠오른 듯 황급히 손목의 시계를 보았다.

“시간, 시간은…….”

<역행>이 발동한 타이밍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30분 후.

“으…….”

만약 추격자가 계속해서 자신을 쫓고 있다면, 30분 뒤에 또다시 <역행>이 발동할 것이다. 그렇다. 영원히 반복될 술래잡기가 시작된다는 의미다.

“도망쳐야 해…….”

어쨌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추격자는 이리로 오는 중이다. 서둘러 이곳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도망, 쳐야…….”

해야 할 일이 정해졌음에도,

그는 선뜻 걸음을 떼지 못했다.

<역행>은 그저 시간을 벌 뿐. 결말은 언제나 같다. 도주에 성공하는 미래는 결코 오지 않는다.

그러니 도망을 친다 한들 의미가 있을까. 끝도 없이 계속될 무간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우욱.”

남자는 구역질을 참기 위해 가슴팍을 두드렸다.

그러고 나서는 숨을 몰아 뱉으며 속을 잠재웠다.

“…….”

그 상태로 멍하니 있다가,

문득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

….

어라.

벌써 30분이 지났다.

“윽?!”

제기랄. 또다. 시간 감각의 흐려짐은 시공 마법 사용자가 겪는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본인은 잠깐 몇 초 정도 멍을 때렸다 생각하지만, 어느새 수십 분이 지나가 있는 이런 경우가 종종 있는 편이다.

“…….”

그런데.

잠깐만.

“……30분이 지났는데…….”

시간이 변함없이 그대로다.

<역행>이 발동되지 않았다.

웨스트록 11구역을 중심으로 펼쳐 놓은 결계는 <역행> 마법을 농밀하게 인지하고 있는 자, 즉― 자신을 표적으로 두고 있는 인물에게 반응한다.

앞선 두 번과 달리 <역행>이 발동하지 않았다는 것은 결계가 무반응이었다는 것. 다시 말해, 자신을 쫓고 있던 누군가가 추격을 중지했음을 의미한다.

“휴우우…….”

남자는 그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추격자는 오지 않는다. 더는 도망칠 필요 없다.

“이젠, 자유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난 감상에 젖어서였을까.

그가 미처 생각지 못하고 간과한 점이 있었다.

<역행>의 불발에 대한 또 다른 논증.

결계의 존재를 깨달은 누군가가 즉시 일련의 조치를 취하여, 결계 자체가 해제되었을 가능성.

바꿔 말해―

추격자가 여전히 그를 쫓고 있을 경우.

“체스터 브리즈.”

그때.

불현듯 땅바닥에 앉은 남자의 몸 위로, 누렇게 내리쬐는 햇빛을 가린 검은 그림자가 떠올랐다.

공포. 불안. 초조. 긴장.

숨이 막힐 것 같은 위압감.

다리가 덜덜 떨렸다. 남자는 서서히 고개를 들어, 자신의 이름을 부른 이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아.”

염색한 금발. 갈색 눈을 가진 동양인 사내.

누군지 안다. 직접 대면한 적은 없지만 알고 있다. 예전 보스였던 토마가 죽고 난 뒤, 지나 누님이 새로운 보스랍시고 이 남자의 사진을 보여줬었다.

“봐봐. 멀쩡하게 생겼지?”

그때 그녀가 말하기를, 분명…….

“이 녀석이 토마를 죽였어.”

사상 최악의 살인마.

얼굴 없는 자. 암귀闇鬼.

“걱정 마. 해치러 온 게 아니야.”

“…….”

“시간 있으면 잠깐 얘기 좀 하지.”

거부할 권리 따위는,

그에게는 있지 않았다.

***

“긴장 풀어. 해칠 생각 없다고 했잖아.”

내가 그리 말했음에도, 녀석은 고개만 끄떡일 뿐 불안스레 쭈뼛대는 짓거리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짧게 숨을 내쉬며 카푸치노를 한 모금 들이켰다.

카페 안에 들어온 지 10여 분.

대화에는 아직 진전이 없었다.

체스터 브리즈는 생각보다 훨씬 어렸다. 아니, 단순히 어려 보이기만 하는 걸지도 몰랐다. 어쨌든 잘 쳐줘야 스무 살 언저리로 보이는 젊은이였다.

녀석은 틈이 날 때마다 힐끗힐끗 나를 흘겨보며 살폈다. 그러다 나랑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화들짝 놀라고는 아무것도 안 한 척 고개를 홱 돌렸다.

그걸 서너 번쯤 반복하고 나서야―

“어떻게, 저를 찾았죠……?”

드디어.

녀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는 곳 주소는 지나한테 들었고. 여기까지 도달하는 건 그쪽 형님분 도움을 받았어. 지하철역에서 <시간 역행>을 경험했다고 하니까, 결계를 무효화시키는 법을 알려주더군.”

“형님이, 그랬습니까…….”

체스터는 비로소 사정을 깨달은 듯, 어딘가 초연한 눈빛을 하고서 고개를 숙여 땅바닥을 보았다.

“원래는 같이 오려고 했어. 네가 나를 경계할까 봐. 근데 형님 쪽에서 거절하더라고. 자기는 동생을 만날 자격이 없다나 뭐라나.”

“…….”

“솔직히 그쪽 형제의 집안 사정 같은 건 별로 안 궁금해. 다만 묻고 싶은 건 하나 있어.”

나는 체스터를 노려보았다.

“날 봤을 때, 왜 <시간 역행>을 쓰지 않았지?”

“…….”

“반응형 결계에 설치할 수 있었던 걸 보면 매개체 없이도 즉발 시전이 가능한 마법일 텐데. 내가 찾아오는 게 무서웠던 거 아냐? 그렇다면 아까 전에 <시간 역행>을 써서 도망칠 수도 있었잖아?”

대답은 늑장이었다. 녀석은 한참을 우물쭈물하다가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으, 뭐랄까, 당신은 왠지 그, 저기, 나쁜 사람 같다는 느낌이 안 들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풀어 설명하자면.

그냥 착해 보여서.

두루뭉술하기 짝이 없는 대답이었다.

네가 뭐 관상가라도 되냐고 따질 수도 있었지만, 구태여 그러진 않았다. 뭐, 이쪽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그건 꽤나 그럴싸한 대답이기도 했으니까.

<사이버판타지>에는 캐릭터의 선악 레벨을 구분 지어주는 카르마 시스템이란 것이 존재한다.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카르마 포인트, 혹은 바이스 포인트가 쌓여 선악도가 변경, 대외적인 평판이 달라지는데, NPC와의 교류에 있어 선한 캐릭터라 득을 볼 때도 있으며, 반대의 경우도 물론 있다.

오늘 처음 봤음에도 불구하고,

체스터는 나를 선인으로 판단했다.

이러한 평가는 어쩌면 지금껏 내가 행해 온 일들이 좋은 방향의 업보로써 반영된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부작용이 있거든요…….”

“부작용?”

“제가 그, 시공 마법 쪽으론 할 줄 아는 게 <역행> 하나뿐인데, 실은 그것도 좀 많이 미숙해서, 준비 없이 발동하려면 그게, 실수할 때도 엄청 많아요.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 저기, 시간을 되돌린다는 개념을 구현한다는 것 자체가 엔트로피 부정과 역전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거라, 술식 불안정성도 모든 마법 가운데서 가장 큰 축에 속하고…….”

그건 그렇고.

얘 은근 말 많구만.

아까까지만 해도 벙어리에 가까워서 문제였는데, 일단 말문이 트이고 나니 굉장히 말이 빨라진데다 발음까지 뭉개져 도무지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그래. <시간 역행>은 어려운 마법이란 거지.”

“네, 넵! 그렇죠! 어렵죠! 아, 저는 쓸 수 있지만, 그렇다고 제가 대단한 건 아니고요! 저어, 저는 그게, <역행>밖에 못 쓰는 허접이라 해야 하나…….”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쪽 형인 제퍼슨 브리즈, 그 유명한 ‘시간의 마도사’조차도 <시간 역행>은 못 쓴다고 들었어.”

“…….”

“<시간 역행>을 구사 가능한 마법사는 현재 세계에 단 한 명뿐. 바로 너야. 체스터 브리즈.”

두 눈을 크게 뜨고서.

녀석을 똑바로 보았다.

“네 도움이 필요해.”

녀석은 잠시 움찔하더니.

쪼그라든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보스로서의 명령인가요……?”

“응?”

“저는 이제, <블랙 대거즈>가 아닌데…….”

나는 턱 밑을 긁적이며 말했다.

“명령 같은 건 아냐. 개인적인 부탁이지.”

“…….”

“네가 싫다고 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널 설득하려 들겠지만, 어차피 험한 짓은 못 해. 그러려고 하면 넌 결국 <시간 역행>으로 도망칠 테고. 애초에 너 말고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 말하자면 내가 을이고 네가 갑이라 이거야.”

내 말을 들은 체스터는 침묵했다.

무언가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

기나긴 정적이 언제쯤 끝날까 싶었던 때.

체스터 녀석이 서툴게 대답을 돌려보냈다.

“……제가, 뭘 하면 되나요……?”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의 결정을 반겼다.

사실 좀 의외였다. 생면부지인 사이에 이렇게 선뜻 도와줄 거란 생각은 전혀 못 했는데 말이다.

“그냥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을 도와주면 돼.”

“저기, 혹시, 사람을 죽여야 한다거나…….”

“아니. 반대야. 죽은 사람을 되살릴 거야.”

“……?!”

“자자, 움직이자. 시간은 한정적이니까.”

체스터를 데리고서 카페를 나와, 곧장 거기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 존스애비뉴역으로 향했다.

“어, 어디 가는 건가요?”

“6구역.”

제일 먼저 들를 곳은 당연히 미르각시가 머무르고 있는 보육원이다. <시간 역행>을 이용한 <소생술>. 그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물어봐야 했기에.

“표 끊었어?”

“아, 넵……!”

“좋아. 가자.”

우리는 지하철에 올랐다. 제일 앞쪽 차량. 객차에 탄 승객은 나와 체스터뿐. 웨스트록 순환선은 다른 일반적인 호선에 비해 이용객 숫자가 적어 찻간 개수가 4량밖에 안 됨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한산한 편이었다.

「열차 출발합니다. 뿌슝빠슝.」

덜컹덜컹―.

텅 빈 전철이 지하도를 달렸다.

“…….”

“…….”

둘 사이에 대화는 별반 오가지 않았다. 당장 대화를 할 필요성이 없었다고는 하나, 좌우간 남정네끼리의 어색한 시간이 슬슬 흘러가는 중이었다.

다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면 되나.

천천히 기지개를 켜고 있던 그때.

“저, 저기.”

문득.

체스터가 말을 걸어왔다.

“왜?”

“그으, 저기요…….”

“뭔데? 왜 그러는데?”

“아, 아뇨, 저, 저기…….”

녀석은 어째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기에, 누가, 있어요…….”

체스터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우리가 앉은 반대편의 차창 너머.

덜커덩. 쌔애앵―!

어두컴컴한 지하를 내달리는 열차의 유리창에.

암흑보다도 더 새까만 그림자가. 매달려 있었다.

“……!?”

사람이다.

차창 밖에 사람이 있다.

“뭐야, 저거?!”

깜깜하지만 똑똑히 보이는 실루엣.

여름만 되면 찾아오는 양산형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유령과도 비슷한 무언가의 윤곽선이 저편의 지하철 유리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섬뜩―.

등골이 오싹해졌다.

귀신을 보았기 때문에?

아니. 그런 게 아니다.

이 오싹함의 정체는…….

나는 고개를 돌렸다.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시선이 향한 곳은 앞쪽.

열차가 달리고 있는 방향.

「이번 역은 종점. 종점입니다.」

거기에는…… 벽이 있었다.

거대한 벽. 지하도의 끝자락.

「정차 후 운행을 종료합니다.」

눈치챈 순간은,

이미 늦어 있었다.

「승객 여러분. 안녕히 가십시오.」

열차는 멈추지 않고 달려가,

끝내 콘크리트 벽과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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