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177화 (177/201)

177화. Stop The Clocks (4)

충돌 직전.

별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단지 무방비 상태의 체스터를 감싸 안고서, <강화>를 두른 <포스 배리어>로 방어벽을 펼칠 뿐.

그게 시속 100km로 달리다 벽에 처박혔을 때의 데미지를 온전히 상쇄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마저도 너무 늦고 말았던지라.

아마도 여기서 죽는구나, 싶었다.

투웅―.

열차가 벽에 박히고,

세상이 끝나려던 순간.

***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니들도 귀가 달렸다면 알겠지만. 아, 청각 장애인 분들은 죄송.」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플랫폼 한가운데.

나는 들어오는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

어라.

이상하다.

기묘한 기시감. 다만 알 수 없는 위화감.

느낌 자체는 익숙했다. 벌써 세 번째였으니까.

부리나케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는…… 존스애비뉴역이다. WPT 4호선.

그 다음,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3시 58분. 달라진 게 없다. 체스터와 카페에서 대화를 마친 뒤, 역에 가서 지하철을 타고 멍하니 시간을 때우던 그때와 같은 시간이다.

하지만―

플랫폼의 벽시계는 의견이 달랐다.

[ 15 : 48 ]

오후 3시 48분.

원래보다 10분가량 늦다.

지하철역의 시계가 고장 난 걸까?

아니, 좀 더 그럴싸한 설명은 따로 있다.

“<시간 역행>”

체스터가 시간을 되돌렸다.

열차가 충돌하기 직전에, 간신히.

“휴우.”

다행이란 안도감에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목숨 부지에는 성공한 듯싶다.

“…….”

그런데, 뭔가 조금 이상하다.

역에 사람이 이렇게 많았던가?

게다가 휴대폰의 시간은 왜 그대로지?

아까 전에는 제대로 표시됐던 것 같은데.

무엇보다도―

체스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거야……?”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플랫폼에 가득 찬 인파 사이를 빠르게 훑었다. 이내 계단 근처 바닥에 쓰러져 있는 누군가의 실루엣이 시야에 들어왔다.

“체스터!”

나는 쓰러진 녀석에게 헐레벌떡 달려갔다.

체스터의 상태는 영 좋지 않아 보였다. 입가에는 토한 자국이 선명했고,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질에 채여 옷매무새까지 엉망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이봐, 괜찮아?”

“괘, 괜찮아요…….”

“진짜로? 어디 다친 건 아니지?”

“예에, 정말로, 다치거나 한 게 아니라, 이거는 그, 준비 없이 <역행>을 쓴 반동이라서…….”

<시간 역행> 시전의 반동인가.

그러고 보니 아까 전에 그랬었지. <시간 역행>을 즉발로 구사하는 것은 부작용을 야기한다고.

“제가, 시간을 얼마나 되돌린 거죠……?”

“10분 정도. 우리가 지하철을 타기 직전으로 돌아왔어. 근데, 뭔가 좀 이상해. 아까는 역에 사람이 이렇게 많지 않았는데…….”

나는 다시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응?”

그러다 문득, 기둥에 붙은 벽보가 눈에 띄었다.

[ 기호 1번 그레고리 메이슨 ]

[ 1선과 2선 그리고 3선 도전 ]

[ 다시 한번 보여 드리겠습니다! ]

흔한 선거 벽보. 특이한 부분은 없다.

다만, 그 내용이 나를 혼란케 했을 뿐.

“뭐야, 이거?”

시장 선거는 이미 수개월 전에 끝났다.

그리고 그 선거는, 전임 시장이었던 그레고리 메이슨의 죽음으로 인해 급하게 치러진 일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죽은 메이슨이 후보에 있는 거지?

이건 지하철역에 게시된 공식 선거 포스터다. 누군가의 질 나쁜 장난일 리는 없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딱히 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설마…….”

불안한 기운이 엄습했다.

나는 주변에 있던 사람을 아무나 붙잡아, 오늘이 몇 년 몇 월 며칠인지를 물었다. 그리고 알게 됐다.

우리는 10분 전으로 돌아온 게 아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도 훨씬 더 이전의 과거.

그래.

우리는, 1년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

“죄송합니다…….”

벽에 기댄 채 근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나에게, 체스터가 머리를 꾸벅 조아리며 사과를 했다.

“마, 말씀드렸다시피, 급하게 <역행>을 쓰게 되면, 이런 식으로 시간선 조정이 잘 안 돼서…….”

나는 녀석에게 괜찮다고 타일렀다.

난데없이 1년 전으로 시간 여행이라니. 골 때리는 상황이지만 실제로 벌어진 일인 걸 어쩌겠나.

“원래대로 돌아갈 수는 있는 거지?”

“…….”

“제발. 아니라고 말하지는 말아 주라.”

“그, 그게, 저는 <역행>만 쓸 줄 알지, <가속>까진 다루지 못해서, 그래서……. 예전에는 이런 경우가 생기면, 그때마다 형님이 도와줬습니다…….”

“오케이. 그러면 빨리 너네 형님한테 가자.”

“어엇, 저기…….”

“왜?”

“지, 지금이 1년 전이라면, 형님은 어스테이트에 안 계실 겁니다. 출장 일로 아마, 유럽 쪽에…….”

“쯧. 그러냐. 어쩔 수 없지.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비행기 타고 직접 찾아갈 수밖에 없겠…….”

잠깐만.

1년 전이면 내가, ‘유진 연’이 아직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시점 아닌가?

죄수 신분이므로 해외 출국은 불가능. 경찰이랑 엮이기라도 했다간 그 자리에서 탈옥수 취급을 받아 즉시 사살당할 처지에 놓이게 될지도 모른다.

내 개인 명의의 카드나 통장 같은 걸 사용할 수도 없을 테니, 장기적인 움직임을 취하기도 어렵다.

애초에 현재 시점에 대해 나는 아무런 정보도 가진 게 없다. 게임 속에서 다루지 않는 시간대니까.

“쓰읍.”

이거, 생각보다 훨씬 곤란한 상황이잖아.

우선 뭐든 움직임을 취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정확히 뭐가 있는지부터 알아봐야겠군.

“체스터. 혹시 지금 과거에서의 내 행동이, 다가올 미래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거나 하진 않겠지?”

“아, 나비 효과나 패러독스 같은 걸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 부분은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될 거예요.”

체스터 왈, 시공 마법의 개념에서 시간은 ‘절대 시간’과 ‘상대 시간’, 이렇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절대 시간’이란 과학론과 대비되는 우주의 종합적인 시간선.

‘상대 시간’이란 개개인이 인지하는 독립적인 영역의 시간대.

<절대 시간 역행>은 말 그대로 절대적인 역행.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의 시간을 되돌린다.

내가 처음에 지하철을 탔을 때 경험한 반응형 결계로 발동되는 <시간 역행>이 이에 해당한다.

<상대 시간 역행>은 개인에게 적용되는 역행. 특정 물질만을 과거의 시간으로 전송시킨다.

<상대 시간 역행>은 ‘절대 시간’에 영향을 전혀 미치지 않는, 일종의 시간 여행 체험에 가깝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상대 시간 역행>으로 과거에 와 있는 거라서, 우리가 여기서 무슨 짓을 하든 이미 정해진 미래가 바뀌진 않는단 거지?”

“예에, 물론 저희가 원래 시간대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때의 얘기지만요…….”

내가 여기서 무슨 짓을 한다고 해도, 1년이 지나 원래 시간대로 돌아가면 없었던 일이 된다는 것.

조심스럽게 행동할 필요는 없어지긴 했으나, 여전히 절망적인 상황임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우리를 노리는 적의 존재.

그때 지하철 창가에 비친 그림자. 가만히 잘 달리고 있던 열차를 갑자기 벽에 박게 만든 녀석.

마법사일까. 어쩌면 정신 조작계 초능력자. 아니면 기계 장치를 교묘히 이용한 테러일 수도 있다.

뭐,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과거까지 쫓아오진 못할 테지.

“일단 너는 형님한테 연락해 봐. 동생이 위기에 처했으니 알아서 버선발로 달려올지도 모르지.”

“아, 예에. 그럴게요.”

“그리고 이제부터 <시간 역행>은 내가 쓰라고 할 때까진 쓰지 마. 또 개지랄 나면 안 되니까.”

“아, 알겠습니다…….”

그때쯤에 문득.

묘한 생각이 들었다.

“…….”

여기가 정말로 1년 전의 세계라면.

죽었던 사람들도 아직 살아 있겠지.

―메리.

그녀도 어딘가에 살아 있겠구나.

모텔로 돌아간다면, 만날 수 있을까.

“후우.”

텁텁한 숨을 내뱉었다.

쓸데없는 생각은 관두자. 체스터가 말했듯, 이곳은 필름으로 재생되는 과거. 가짜 세계나 다름없다.

그러니 만나고 싶은 맘은 버리도록 하자. 그녀를 되살리겠다는 각오가, 혹여나 흐트러지지 않도록.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즈음.

지하철역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사람들이 우글우글 플랫폼으로 들이닥쳤다.

지금 우리는 따로 전철을 탈 필요가 없었기에, 흘러들어오는 인파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바로 그때.

투웅―.

옆을 지나치던 사람과 어깨가 부딪혔다.

“어, 죄송합니다.”

사과를 던지고서 다시 움직이려던 찰나.

무언가 기이한 감각이 시야를 덮쳐 왔다.

….

….

방금 그 사람.

얼굴이 없었다.

“……!?”

지하철 차창에 비쳤던 의문의 그림자.

틀림없다. 열차를 벽에 꼬라박게 만든 그놈이다.

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놈도 나를 돌아봤다.

눌러 쓴 후드의 안쪽은, 새까만 회색뿐이었다.

그놈과 시선을 서로 맞댄 그 순간.

이번에도 나는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강화>.”

오른손에 힘을 꽉 쥐고서, <강화>를 장전.

망설이지 않았다. 그대로 놈의 회색투성이 얼굴에다 있는 힘껏 주먹을 때려 박았다.

퍼어어어억―!

좋아. 제대로 힘을 준 펀치가 들어갔다.

근데, 왜인지 공기를 때린 듯한 기분이다.

….

….

아니.

기분 탓이 아니다.

내 주먹은 정말로 공기를 때렸다. 놈의 얼굴에는 닿지 못하고, 코앞에서 떡하니 멈춰 섰다. 보이지 않는 벽이 주먹과 얼굴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리고―

“……!”

놈이 사라졌다.

눈앞에서. 뿅 하고.

“뭐야?”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어디로 간 거지?

황급히 고개를 돌려 놈을 찾아 헤맸다.

북적이는 역 안, 가득 찬 인산인해의 틈바구니에서. 부릅뜬 시선이 겨우 포착해 낸 회색의 실루엣.

“아.”

놈은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체스터를 마주하고 서 있었다.

“이런, 젠장.”

멀다. 구하기에는 늦었다.

손을 뻗는다고 닿을 리는 없다.

그렇지만―

목소리는 닿으리라.

“체스터!”

나는 녀석에게 목청껏 외쳤다.

역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도록.

“써 버려!”

후드 쓴 놈이 뻗은 손이,

체스터에게 닿으려던 순간.

***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노란 선 밖으로 물러나 주십시오.」

사람 없이 텅 빈 플랫폼에,

나는 우두커니 홀로 서 있었다.

“…….”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2시 8분. 좀 더 예전이다.

“휴우.”

다행히 늦지 않은 모양이다. 체스터가 제때에 <시간 역행>을 써서, 이번에도 위기를 모면했다.

그런데―

지금은 언제쯤인 거지?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그러다 문득, 기둥에 붙은 벽보가 눈에 띄었다.

[ 기호 2번 그레고리 메이슨 ]

[ 영광스러운 신인의 초선 도전 ]

[ 제가 한번 보여 드리겠습니다! ]

흔한 선거 벽보. 특이한 부분은 없다.

다만, 그 내용이 나를 혼란케 했을 뿐.

“……잠깐, 이거…….”

아까 전에 보았던 벽보와는 다르다.

특히나 선거 구호와 문구가. 상당히.

“……설마…….”

불안한 기운이 엄습했다.

나는 주변에 있던 사람을 아무나 붙잡아, 오늘이 몇 년 몇 월 며칠인지를 물었다. 그리고 알게 됐다.

나는 1년 전으로 돌아온 게 아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도 월등히 더 이전의 과거.

그래.

나는, 10년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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