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Stop The Clocks (2)
갑작스럽게 날아든 질문.
“제가요……?”
내가 어리둥절한 눈빛을 보이자, 제퍼슨 브리즈는 나를 유심히 관찰했다. 기억 속의 퍼즐을 맞춰 보는 듯 한참을 응시하고 있다가, 이내 고개를 까딱였다.
“맞아요. 당신이었던 것 같아요.”
“…….”
“그때 사건이 끝나고 현장 근처에 숨어 있던 당신이 체포당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당시 암귀의 추종 세력이 경찰의 체포 작전을 방해할 목적으로 화재를 일으키는 등 현장을 마구 어지럽혔거든요. 당신도 분명 그중 하나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닙니까?”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당연히 내게는 기억이 없었다. 애초에 내가 ‘유진 연’의 몸으로 빙의한 것은 8개월 전의 이야기. 고로 8년 전에 ‘유진 연’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는 내가 알 턱이 있을 리가 있나.
“죄송합니다. 기억이 잘…….”
“그렇습니까? 뭐, 이쪽도 8년씩이나 된 기억이라 둘이 같은 인물이라고 장담은 할 수 없겠네요. 지금 당장 중요한 화제도 아니고 말이죠.”
그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나도 일단 그런 척을 하긴 했지만, 솔직히 맘에 걸리기는 했다.
……8년 전은 ‘유진 연’이 수용소에 들어간 시점.
……그때부터 이미 암귀와 관련이 있었다는 건가?
“아무튼, <부름>의 실체에 대해서입니다만.”
제퍼슨은 다시 원래의 주제로 이야기를 돌렸다.
“유진 연 씨. 당신은 <부름>을 통해 <시간 역행>을 일으켜, 본인의 힘에 잘못 휘말려 죽게 된 어떤 인물을 되살리고 싶다― 그게 목적이라고 하셨죠.”
“예.”
“우선, 그 일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를 먼저 말씀드리자면…… 가능합니다. 당신의 <부름>은 <시간 가속>과 <텔레포트> 두 가지 마법이 혼용되어 있는 상태. 즉, <텔레포트>로써 초공간에 옮겨진 원자들을 다시 물리계로 불러와, <시간 가속>의 벡터를 바꿔 <시간 역행>을 일으킨다면…….”
“<부름>에 죽임당한 존재가, 되살아난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당신 스스로의 힘으로 <시간 역행>을 구사하는 것은 어려울 겁니다. 각시님께 듣기로 당신은 아직 다섯 형태 중 가장 기본형인 불꽃의 형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모양인데, 초월급 난도에 가까운 시공 마법의 벡터 전환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는 너무 불투명한 일이죠.”
“…….”
“아시겠지만 <시간 역행>은 모든 마법사의 꿈이나 다름없는 마법입니다. 저에게도 물론 그렇고요.”
나는 씁쓸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시간의 마도사’란 칭호를 가진 시공 마법의 대가조차도, <시간 역행>을 구사하지는 못한다는 얘기.
더군다나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사이버판타지>의 NPC들 중에서, <시간 역행> 마법을 기본 스킬로 보유하고 있는 캐릭터는 한 명도 없었다.
“도와줄 만한 사람은, 없는 걸까요……?”
그래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되도 않는 질문을 날려보았다.
그리고―
“한 명. 있기는 합니다.”
놀랍게도, 제퍼슨 브리즈가 그렇게 말했다.
허나 왠지 모르게 착잡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게 누구죠?”
“제 동생입니다.”
제퍼슨 브리즈에게 동생이 있었던가?
게임 속에서는 설명되지 않은 설정이다.
“만나 뵐 수 있을까요? 그 동생이란 분?”
내가 되묻자, 그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결심한 듯이 입을 열었다.
“저는 그 녀석이 지금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아, 그렇군요…….”
“하지만 당신이라면 아마 알아낼 수 있겠죠.”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무슨 뜻이죠……?”
“당신은 제 동생이 누군지 알고 있잖습니까.”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아까처럼 어리둥절해졌다.
“동생의 이름은 체스터.”
되물을 시간도 주지 않고서, 제퍼슨이 말했다.
어쩐지 나란 존재를 탓하고 질책하려는 것처럼.
“<블랙 대거즈> 소속의 테러리스트입니다.”
***
수개월 전. 보스였던 토마가 죽은 이후.
<블랙 대거즈>는 사실상 해체 상태에 있다.
핵심 멤버였던 토마와 레오노프의 사망.
그나마 남은 전력은 분신술사 지나 드비토와 인형술사 아리엘 정도. 결국 테러 단체 <블랙 대거즈>는 그 이름만을 남긴 채 <헬터 스켈터>에 흡수됐다.
지나와 아리엘 외에도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단원들도 몇 명인가 있었지만, 대부분 조력자 수준에 그쳤기에 해체 이후로는 다들 흐지부지 사라졌다.
「체스터는 블랙 대거즈의 비정규 멤버였어.」
「한창때 레오노프의 사수로 있던 테러 보조 담당이었는데, 영 쓸모가 없어서 잡일이나 시키곤 했지.」
「나중에 레오노프가 보스 손에 뒈지고 난 뒤로는 거의 아리엘 돌봐주기 담당으로 굳어졌고.」
제퍼슨과의 대담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
지나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들었다.
「지금은 글쎄, 어디서 뭐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네. 어찌 됐건 그날 이후로는 다 소식 끊겼으니까.」
“사는 곳은 알고 있나?”
「예전 주소라면 알아. 이사 갔을지도 모르지만.」
“문자로 보내 줘.”
「잠깐, 혹시 체스터를 만나러 갈 생각이야?」
“그래.”
「으으으음. 쉽지 않을걸.」
“왜?”
「뭐, 가다 보면 알 거야.」
나는 지나가 문자로 보내준 주소를 확인했다.
웨스트록 11구역. 가장 가까운 역은 존스애비뉴역. 마침 여기서 지하철로 한 번에 갈 수 있었다.
곧장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던컨스트리트역. EUM 8호선.
플랫폼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출퇴근 시간인 것도 아닌데 다들 어딘가로 바쁘게들 움직이고 있다. 수도 지하철의 흔한 풍경이었다.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니들도 귀가 달렸다면 알겠지만. 아, 청각 장애인 분들은 죄송.」
「노란 선 밖으로 물러나 주십시오. 안 그랬다가 뒈져도 난 모르니까. 앗, 언데드 환자분들은 유감.」
유명 코미디언이 녹음했다는 지하철 안내 방송이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차가 도착했다.
환승역인지라 사람들이 객차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가 다시 또 안으로 주르르 흘러 들어갔다.
“후우.”
운 좋게 자리에 앉은 나.
그대로 잠깐 곯아떨어졌다.
「열차 출발합니다. 뿌슝빠슝.」
목적지까지는 열두 정거장.
30분은 의외로 금방 지나갔다.
「이번 역은 존스애비뉴역. 존스애비뉴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WPT 1호선으로 갈아타실 분은 이번 역에서 하차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스트포레스트 중부에서 웨스트록 서부까지 달려오는 동안 차내의 승객 숫자는 많이 줄어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껏 한산해진 객차 중간에 서서 열차가 멈추기만을 가만히 기다렸다.
지잉―.
지하철 문이 열렸고,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
열차 문 바깥으로,
한 걸음을 뗀 순간.
***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니들도 귀가 달렸다면 알겠지만. 아, 청각 장애인 분들은 죄송.」
나는 사람이 들끓는 플랫폼에 서 있었다.
거기서 들어오는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
어라.
이상하다.
방금 지하철에서 내리지 않았던가?
왜 또 역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지?
허겁지겁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는…… 던컨스트리트역이다. EUM 8호선.
“뭐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원래 있던 역으로 돌아왔다고?
무언가 괴상한 꿈을 꾼 것만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꿈은 절대로 아니었다. 단언할 수 있다.
“…….”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2시 8분. 처음 지하철을 타고 출발한 시각과 얼추 비슷하다.
“……설마…….”
나는 다시 지하철에 올랐다.
이번에도 운 좋게 자리에 앉았다.
「열차 출발합니다. 뿌슝빠슝.」
목적지까지는 열두 정거장.
30분은 의외로 금방 지나갔다.
「이번 역은 존스애비뉴역. 존스애비뉴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WPT 1호선으로 갈아타실 분은 이번 역에서 하차해 주시길 바랍니다.」
지잉―.
지하철 문이 열리고,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
열차 문 바깥으로,
한 걸음을 뗀 순간.
***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니들도 귀가 달렸다면 알겠지만. 아, 청각 장애인 분들은 죄송.」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플랫폼 한가운데.
나는 들어오는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2시 8분. 그때 그대로다.
“……역시…….”
이건 꿈 따위가 아니다.
시간이 되돌려진 것이다.
“……<시간 역행>인가…….”
‘시간의 마도사’의 동생. 체스터 브리즈.
그는 자신이 쓰지 못하는 <시간 역행>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고, 형인 제퍼슨이 그렇게 말했다.
「체스터를 만나러 갈 생각이야?」
「으으으음. 쉽지 않을걸.」
「뭐, 가다 보면 알 거야.」
그러고 보니, 아까 통화할 때 지나가 뭔가 알고 있는 눈치였지. 나는 다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푸훗. 보스도 결국 당했나 보네?」
“…….”
「말했잖아. 쉽지 않을 거라고.」
지나 드비토 왈, 체스터란 녀석은 말 듣기 싫어하는 겁쟁이라 원래 블랙 대거즈 단원이었던 시절부터 틈만 나면 도망치기 일쑤였다는 모양이다.
추적은 언제나 자기 담당이었는데, 도망친 녀석을 잡겠답시고 매번 분신 수백 명을 동원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놈이 <시간 역행>을 쓴다는 거였지.」
「자기 집 주변에 결계인지 뭔지를 둘러놔서, 수상한 인물이 범위 내로 접근하면 자동으로 <시간 역행> 트리거가 발동하게 해 놨다나 봐.」
「보스는 마력 보유량이 어마어마하니까, 아마 놈의 결계가 그걸 감지하고 시간을 되돌린 거겠지.」
“다시 말해, 접근은 불가능하다는 얘긴가.”
「완전 불가능한 건 또 아니야. ‘누구’랑 달리 일반적인 마법사들은 마나에 한계가 있는 법이잖아?」
「나 같은 경우에는 분신들을 총동원해서 체스터가 마나를 다 쓸 때까지 끝까지 쫓아가 괴롭혔어. 마나가 소진돼서 <시간 역행>을 못 쓰게 된다면 더는 도망도 못 치니까.」
“꽤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얼마나 걸렸지?”
「으음, 대충 분신 800명 정도 데려다가, 1명당 스무 번꼴로 트라이해서…… 체감상 750일 정도?」
“나보고 2년 동안 루프하란 얘기냐.”
「평소 같으면 내가 도와주겠지만, 보스도 알다시피 요즘 내 분신들이 거의 다 스카우트 돼서 저쪽으로 넘어갔걸랑. 지금 남은 건 100명도 안 되는 데다, 대부분은 다른 일 때문에 바빠서 말이지.」
“일단 됐어. 내가 알아서 할게.”
「오케이, 썰. 수고해, 보스~」
뚝―.
전화를 끊었다.
지하철은 그냥 보냈다. 저걸 타 봤자 의미가 없다는 건 한 번 반복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시간 역행>이 접근을 감지해 발동하는 거라면, 지하철이 아닌 다른 교통수단이라도 결과는 같겠지.
“흐음.”
체스터가 경계하는 것은, 바로 나.
내가 접근하면 <시간 역행>을 쓴다.
그렇다면―
그가 경계하지 않을 인물과,
동행한다거나 한다면 어떨까.
“제퍼슨 브리즈.”
대충 떠올린 생각이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