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Who Are You (1)
밤 9시를 넘긴 시각.
웨스트록 10구역의 한 아파트.
“그래, 진짜 오랜만에 대박 하나 건졌어.”
바바라 엘리엇은 잔뜩 북받친 목소리로 말했다. 전화를 받은 남자는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대박이라뇨?」
“윌인터. 저번에 얘기한 그거 말이야.”
「에엑, 또 윌슨앤코예요?」
“어째 엮이기 싫은 눈치다, 너?”
「당연히 싫죠. 그때도 특집으로 올릴라 했다가 국장님한테 빠꾸 먹어서 연속으로 킬 났잖아요.」
“그때랑 이번이랑은 달라. 정보상이 드디어 보따리를 풀었거든. 녹음 파일에다 밀거래 현장 사진까지 구했어. 윌슨앤코가 러시아 마피아 새끼들이랑 유착되어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이거야.”
「그런 위험한 것보다 요새 핫한 거나 파는 건 어때요? 예를 들면 멜리에스 실종 사건 같은 거 있잖아요. 그 양반 자택에서 불법 실험 흔적이랑 시체들이 발견됐다는데, 이거 완전 드라마나 영화 소재 아닙니까? 사람들은 그런 거 좋아한다니까요.」
“변태 싸이코 영감탱이 얘기 따윈 관심 없어. 여튼 지금 빨리 사무실로 나와. 가서 데이터 백업해 놓고, 국장님한테도 연락드릴 거니까.”
「예에? 이 시간에요?」
“이 시간에 하지 그럼 언제 해? 내일 아침 뉴스에 특종으로 헤드라인 실어 보내야지.”
「아니, 진심입니까…….」
“목요일 밤을 불태워 보자고, 우리.”
바바라 엘리엇은 전화를 뚝 끊었다.
그녀는 노트북에 꽂혀 있던 플로피 디스크를 꺼냈다. 윌슨앤코를 무너뜨릴 핵폭탄. 그걸 챙겨 코트 주머니에 넣은 뒤 서둘러 집 밖으로 나왔다.
때마침 갓길에 택시가 한 대 서 있었다.
바바라 엘리엇은 곧장 그 택시에 올라탔다.
“ABC 방송센터까지 가 주세요.”
택시가 출발했다.
중년의 여성을 뒷좌석에 태운 노란 중형 세단은 한적한 웨스트록의 도로를 하릴없이 내달렸다.
2분쯤 뒤. 처음으로 신호등에 걸렸을 무렵.
문득, 바바라 엘리엇은 옆자리 좌석 부근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
휴대전화였다.
바바라 엘리엇은 무심코 그것을 집어 들었다. 손에 딱 들어오는 사이즈의 최신형 기종. 앞에 탔던 손님이 깜빡 두고 내린 걸까?
그때. 우우웅―.
전화가 울렸다.
번호는 찍혀 있지 않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아마도 전화기의 주인일 터였다. 그렇다면 자신은 이 전화를 받아서 주인에게 휴대전화가 있는 위치를 알려줘야 마땅하겠지.
바바라 엘리엇은 전화를 받았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귀에 가져다 댔다.
「안녕. 미세스 엘리엇.」
그러자 들려온 소리는,
변조된 누군가의 음성.
“……여보세요?”
「늦게까지 고생이군. 임신 중이면서도 밤낮으로 발로 뛰어다닌다니. 어머니란 건 참 위대하네.」
“……당신 누구야?”
「내가 누군지 알 필요는 없어. 지금부터 그쪽이 해야 하는 일이 뭔가, 그것만 알면 돼.」
전화기 너머의 상대가 말했다.
「플로피 디스크는 잘 챙겼나?」
“……뭐……?”
「거기 담긴 건 아마, 윌인터 최고재무관리자 산지브 크리슈나가 레드 마피아 보스와 접선하는 현장 사진, 그리고 대화 녹음. 맞지?」
“……어떻게 그걸…….”
쥐덫에라도 걸린 기분이었다.
바바라 엘리엇은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나는 그쪽이 그것들을 뉴스에 내보내는 걸 원하지 않아.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해.」
“무슨 제안?”
「윌슨앤코 괴롭히기를 멈춘다면, 훨씬 더 달달한 기삿거리들을 제공해 주겠다 약속할게. 어때?」
“나한테 정보를 주시겠다고?”
「예를 들어, 스테파노 멜리에스를 누가 죽였는지 궁금하지 않나?」
흠칫.
저도 모르게 귀가 쫑긋 세워졌다.
“멜리에스가…… 살해당했다는 얘기야?”
「원한다면 알려 줄게. 어떻게 된 일인지.」
바바라 엘리엇은 침묵했다.
「지금 당장 택시를 반대로 돌려. 집에 돌아가서 푹 자. 디스크는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고.」
상대는 능청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럼, 좋은 밤 보내시길.」
그리고, 뚝―.
전화가 끊어졌다.
“…….”
정체불명의 인물. 수상하기 그지없는 제안.
과연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선택은 무엇인가.
“저기, 기사님.”
“예?”
“죄송한데 그, 차 좀 돌려주시겠어요?”
이러는 게 맞다. 이쪽이 올바른 선택이다.
놈은 자신이 아파트에서 나와 택시를 탈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리 이렇게 준비를 해 둔 거지.
택시 기사 역시 한패일 가능성이 있다.
얌전히 집으로 돌아가라는 놈의 말을 무시했다간, 여기서 즉결 처분을 당할지도 모른다.
위험한 놈들이다. 냄새로 느껴졌다.
기자로서의 육감이 그녀를 수호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선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해야만 했다.
택시는 행선지를 바꿔, 처음에 서 있던 아파트 앞 도로 갓길에 똑같이 멈춰 섰다.
바바라 엘리엇은 차에서 나왔다. 초여름 밤의 스산한 공기. 미지의 시선이 드문드문 느껴졌다.
‘감시당하고 있다.’
그녀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걸었다.
아파트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복도를 걷는 동안 시선이 바깥을 향하지 않도록 애썼다.
철컥―. 잠긴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불안한 마음이 들어 거실과 부엌의 조명을 모두 켰다.
아무도 없었다.
“휴우.”
그녀는 자취를 하고 있었다. 일이 바쁜 동안엔 집을 들락날락하며 가족을 챙길 여유도 없어, 이렇게 혼자 살 아파트를 따로 구해 놓은 것이었다.
하여간 골치 아픈 놈들한테 걸려 버렸군.
각오는 한 일이었지만 결국 뒷목을 잡히고 말았다. 아마도 윌슨앤코, 렘브란트의 끄나풀이겠지.
……플로피 디스크는 버리라고 했던가.
흥, 그럴 수야 없지. 어떻게 그러겠는가. 이것이야말로 놈들을 박살 낼 유일한 무기이거늘.
바바라 엘리엇은 디스크를 책상 서랍에 넣었다.
지금은 일단 꽁지 내리고, 나중에 다시 기회를 틈타 안전하게 처리하면 되는 일이었다.
조금 늦어지겠지만 나쁠 건 없었다. 9시 뉴스라면 아침 뉴스보다 파급력만큼은 더욱 좋을 테니.
서랍을 닫고 침실로 향하던 도중.
그녀의 머릿속에, 의문이 피어올랐다.
……어라. 잠깐만.
……내가 아까 문을 잠그고 나갔던가?
기억을 곰곰이 되새겨 보았다.
집에 다시 들어올 때, 그녀는 잠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허나 그전에 문을 잠근 기억이 없었다.
“흡.”
뒷목 언저리에 소름이 돋았다.
바바라 엘리엇은 몸을 홱 돌렸다.
집 안에는 분명히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어쩐지, 누군가 있는 듯했다.
“…….”
바바라 엘리엇은 책상으로 다가갔다. 서랍에서 플로피 디스크를 꺼내, 그걸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러고는 침실로 들어갔다. 침대에 몸을 눕혔다.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두 눈을 똑바로 뜬 채로.
철컥, 끼이익―.
누군가 현관문을 열고 나간 듯한 소리가 얼핏 귀에 들려왔지만, 기분 탓이었을 것이다.
그래.
기분 탓이야.
***
자정이 가까운 시각.
노스네스트 D구역의 버려진 학교 건물.
이곳은 원래 <데스트루퍼> 갱단의 메인 아지트로 사용되었던 장소이나, 내가 놈들을 박살 낸 후로는 우리 쪽 애들이 머무는 거처로 쓰고 있다.
다만, 지금은 텅 비어 있는 상태.
이유야 뭐, 보이는 광경이 말해준다.
“허어.”
나는 복도의 부서진 잔해 사이를 걸었다.
기숙사 건물 안은 폭탄이라도 터진 듯 엉망이었다. 깨진 유리창에는 적셔진 핏자국도 보였다.
“언제 이 꼴이 난 거야?”
“오늘 낮입니다. 시티헌터 위주의 용병 단체가 습격해 다짜고짜 헤집어 놓았다더군요.”
“애들은?”
“그때 아지트에 스무 명 정도 있었는데, 열 명은 도망쳤고 나머지는 모두 죽었습니다. 도망친 녀석들도 부상이 심해서 지금 병원에 있고요.”
“후우. 장례식장 알아봐야겠네.”
나는 신음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카이트 씨.”
그 무렵 옆에 서 있던 애런이 대한민국 샐러리맨 스타일로 고개를 어깨까지 숙이며 사과했다.
“모두 제 책임입니다. 아지트 보안 관리를 소홀히 한 데다, D구역 치안을 미처 다 정돈하지 못했습니다. 하다못해 제가 그때 여기 있었더라면 피해를 조금은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아냐. 사과를 할 거면 내가 하는 게 맞지. 애초에 습격을 당한 이유가 나 때문인걸.”
내가 토니 웡을 죽였다는 사실이 공공연히 알려지자, 홍룡파 쪽에서 내 목에 현상금을 걸었다.
놈들이 내세운 금액은 3,000만 달러. 물론 뻥카겠지만, 액수에 혹한 머저리들이 꽤나 생겨났다.
“얼마 전에도 10구역에서 웬 히피 커플이 냅다 총 들고 와서 덤비더라.”
“지금은 카이트 씨 안전이 우선입니다. 적어도 홍룡파 놈들을 주변 지역에서 완전히 정리하기 전까진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피곤할 지경이었다.
멜리에스와 엘리엇 건을 어찌저찌 해결했더니 도리어 여기저기 신경 쓸 게 늘어날 줄이야.
어쨌든 간에 상황이 이러하니, 당분간 ‘카이트’로서 활동하는 건 어려울 듯했다.
“차라리 애들을 전부 모아서 우리 쪽에서 먼저 홍룡파를 치는 건 어떻겠습니까?”
“아니. 당장은 일 벌일 때가 아니야.”
“그러면……?”
“일단 애들은 해산시켜. 나중에 내가 다시 부를 때까지는 각자 알아서 자숙. 그 기간 동안 급여는 대충 맞춰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 전하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말 훈련은 패스. 내가 요즘 몸 쓸 일이 많았어가지고 피로가 좀 쌓여서 말이지.”
“휴식하고 돌아오시면 일정 잡아 두겠습니다.”
애런은 충성심 있는 부하였다.
처음에 만났을 땐 씹새끼니 뭔 새끼니 했으면서, 피고용인 입장이 되니까 태도를 180도로 바꿔 이제는 꼬박꼬박 존대까지 해주고 있지 않나.
“오케이, 그럼. 다음에 보자.”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카이트 씨.”
개인적으로 이런 관계는 꽤 좋아한다.
상호 간의 이익만 따지면 되는, 비즈니스 관계.
지금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뿐이다.
아무런 이익도 바라지 않고 선뜻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래 봤자 딱 한 명밖에는 없다.
뭐, 사실―
사람도 아니지만.
***
금요일.
이번 주만 해도 휴가를 무려 이틀이나 낸 반동 탓에 일거리가 뻥 안 치고 정수리까지 쌓였다.
이것들을 주말까지 해치우려다 보니 결국 이날도 야근은 피할 수 없었다. 뭐 그런 거지.
자기도 남겠다는 스몰필드 씨를 말리느라 진을 좀 썼다. 독감에 걸려 열이 38도씩이나 되는 사람을 무슨 낯짝으로 밤까지 사무실에 붙잡아 두겠나.
그날은 오랜만에 혼자서 사무실에 남았다.
허나 일거리보다도 피로가 더 쌓여 있어서였을까.
철야로 작업을 하던 중, 모니터와 서류 뭉치 사이에서 방황하다 나도 모르게 잠깐 졸고 말았다.
그 뒤로.
얼마나 지났을까.
―위잉, 위이잉.
몽롱한 정신이 무의식을 헤맬 동안,
복사기 돌아가는 소리 같은 게 들렸다.
―찰카닥, 촤르륵.
복사기 돌아가는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나는 부스스 눈을 떴다. 시선을 돌려, 사무실 중앙 부근의 프린터가 놓인 위치로 향했다.
“……타이퍼?”
토마스 기차를 닮은 낡은 로봇.
마법 선생 타이퍼가 거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