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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68화 (68/201)

68화. I’m Only Sleeping (6)

<단죄의 빛줄기>.

디바인 계통의 대표적인 파괴 마법으로, 신성 마법 버전의 <매직 미사일>이라고 보면 된다.

기초 마법인 <매직 미사일>보다 한 단계 높은 중등 마법이기에, 위력은 상당히 강한 편.

소모 마나량도 적고, 단순 연속 구사를 통해 간단한 광역기로 써먹는 것 또한 가능하다.

신성 마법 술사들의 국밥 같은 스킬.

그것을 디바인 마스터가 쓴다면 어떨까.

<단죄의 빛줄기>는 일반적으로 구슬 크기의 구체가 발사되지만, 현역 최강의 신성 마법사인 스테파노 멜리에스의 그것은 그보다 조금 많이 큼직했다.

수십 개에 달하는 마법진으로부터, 농구공 크기의 마나 구체들이 나를 향해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내 시선은 하늘로 향했다.

지금 택할 수 있는 행동은 두 가지.

1. 막는다

2. 피한다

1번은 공격을 막아낸다는 선택지다.

내가 가진 방어 수단은 그리 많지 않다.

우선 <강화>를 응용한 <마나 배리어>.

원판이 되는 마법부터가 물리적인 파괴력을 가진 마법을 방어하는 게 주된 용도이긴 하지만, <단죄의 빛줄기>는 <화염파>나 <라이트닝 블래스트>와 같은 속성 마법으로 분류된다. 얇아빠진 물리 방어막 따위는 아주 쉽게 부서져 버린다는 얘기다.

<신체 강화>를 통해 맞서는 것 또한 방법.

그러나 상대가 가이우스급 마법사란 사실을 고려하면 이는 자살 행위에 가깝다. 내가 쓸 수 있는 <강화>로 가능한 일은 9mm 권총탄에 피부가 뚫리지 않고 간신히 버티는 정도. 최상급 마법사의 파괴 마법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일 게 뻔했다.

어느 쪽도 좋은 선택지는 아닌 듯 보였다.

물론, 내가 선택한 방법은 둘 다 아니었다.

“카인 나호르.”

나지막이 부른 것은 악마의 이름.

유기물, 중금속, 플라스틱……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먹어 치우는 <부름>의 벌레 떼.

손끝에서 뻗어져 나간 자색 마력의 군체는 이내 주변의 시야를 뒤덮어, 하늘에서 떨어지는 마력의 구체들을 파리지옥마냥 한입에 집어삼켰다.

―카학! 카하학!

―크카카카카카칵!

기묘했다. <부름>이 마력을 잡아먹는 소리는 마치 외계 생명체의 역겨운 웃음소리처럼 들렸다.

마법 방어를 위해 <부름>을 쓴 것은 이번이 처음. 결과만 보자면 성공적이었다. 아무런 데미지도 받지 않고 <단죄의 빛줄기>를 막아낼 수 있었으니까.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한 것은,

공격을 막아낸 바로 그 직후였다.

―키케케켁! 크키키키켁!

벌레들이 기괴하게 울부짖음과 동시에,

갑자기 사방팔방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뭐야……?!”

나는 얼른 마력을 거두어들이려 했다.

허나 녀석들은 내 말을 조금도 듣지 않았다.

광견병에 걸린 개처럼 마구잡이로 껑충거리며 폭주하더니, 기어이 주인의 손을 와락 물어뜯었다.

“큭!?”

군체가 손등의 피부를 약간 파고들었다.

그 아릿한 통증은 찰나 동안에 명백히 전해졌다. 지금 녀석들은 나를 먹이로 인식하고 있었다.

당혹스러웠다. 그동안 이 빌어먹을 악마의 힘과 수도 없이 기 싸움을 벌여 왔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당혹 다음으로 밀려온 것은 공포였다.

지금껏 내가 <부름>을 사용해 없애 버렸던 이들, 나도 이제부터 그들과 똑같이 될 거란 공포.

―제기랄. 그리될쏘냐.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손끝에 감각을 집중했다. 이어 벌레 떼에게 온 힘을 다하여 다그쳤다.

10여 초에 걸친 팔씨름 끝에, 비로소 녀석들이 한발 물러섰다. 그렇게 하극상은 끝이 났다.

“하아, 후우…….”

생각지도 못했던 위기였다.

까딱 잘못했다간 진짜로 어떻게 될 뻔했다.

일단 한 가지 사실만큼은 확실히 깨달았다.

<부름>으로 마법을 막는 건, 위험하다는 것.

살았다며 안도하고 있을 틈은 없다.

지금 내가 상대할 적은 따로 있으니까.

<부름>을 진정시키길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때마침 멜리에스의 다음 공격이 날아들었다.

이번 역시 <단죄의 빛줄기>였다. 아까와 구체의 숫자는 엇비슷했지만, 패턴은 훨씬 더 단조로웠다.

막을 필요는 없었다.

그냥 안 맞으면 되니까.

“<강화>.”

전신에 높은 출력의 <강화>를 부여.

쏟아지는 마력 운석들의 궤적을 파악.

타앗―!

그대로 바닥을 박차고 뛰었다.

나는 날아오는 공격들을 피하며 질주했다.

살짝 젖어 물러진 땅은 급격한 방향 전환을 해야 할 때마다 신발 주변을 안정적으로 감싸줬다.

콰광! 콰과광!

수십 개의 마력 구체들이 내 몸뚱이를 박살 내려 했지만, 한 타이밍 늦게 잔상을 때리는 데 그쳤다.

―좋았어. 운이 따라준다.

멜리에스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전투가 시작된 시점부터 지금까지 사용한 마법이라곤 <단죄의 빛줄기>뿐. 그마저도 보조 마법 하나 곁들이지 않아 조준조차 제대로 안 되는 공갈포.

건강상의 문제라도 있는 걸까. 어쨌든 간에 그는 본래의 실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는 중이다.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지금이라면 나 같은 애송이라도 마스터 위자드를 상대로 승리를 노려볼 만했다.

―접근만 할 수 있다면.

나는 회피와 도약을 반복하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멜리에스가 있는 지점을 향해 다가갔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멜리에스의 마법에 있어 흑색 마력의 비중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고, 파괴 마법의 위력 또한 그에 비례하여 증가했다.

시간을 더 끌어서는 안 됐다.

멜리에스가 정신을 차리든, 타락 마법에 잠식돼 버리든, 어느 쪽도 나에겐 골치 아픈 일이었기에.

지체 없이 승부수를 띄웠다.

회피 도중 루트를 바꿔, 그대로 돌진.

백색과 흑색의 마나 구체들을 뚫고,

멜리에스를 향해 정면으로 내디뎠다.

10미터. 6미터. 3미터.

이제 목표가 코앞이다.

<부름>을 쓴다면 확실하게 처리가 가능하겠지만, 아까 전에 일어난 사고 탓인지 아무래도 꺼려졌다. 대신 오른손에 최고 출력의 <폭렬파>를 장전했다.

사정거리까지 접근 완료.

나는 마무리를 준비했다.

멜리에스를 노려 오른손을 뻗었다.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donec mors nos separaverit…….”

순간.

나는 멈칫했다.

아니, 나는 멈추려 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몸은 저절로 멈추고 말았다.

원인은 공포였다.

죽음에 대한 공포.

“……mors mihi lucrum. animam agere…….”

멜리에스의 혼잣말은 영창이었다.

나는 그 주문이 뭔지 알고 있었다.

‘최악의 마법’이라 불리는 타락 마법.

술사의 생명을 담보로 한 최후의 비술.

“……mortem oppetere…….”

동귀어진. 상호확증파괴.

가장 비열한 동반 자살.

“……memento mori…….”

<죽음이 부르는 소리>였다.

***

탄생은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로 대변된다.

허면, 죽음은 과연 어떤 소리로 정의되는가?

고통에 젖은 비명 소리.

무한히 공허한 침묵의 소리.

어떤 소리로도 죽음을 표현할 수는 없다.

<죽음이 부르는 소리>란 그런 것이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다.

사악한 마법의 대가는, 술사 본인의 생명.

자신의 목숨을 바쳐 상대의 목숨을 앗아간다. 1과 1의 등가 교환. 간단하기 그지없는 산술이다.

역시나 그건 미친 짓이었을까?

글쎄, 그걸 판단할 재간은 없었다.

최후의 찰나. 생명을 발화하는 마지막 순간.

스테파노 멜리에스는 죽음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유일한 소리.

―야옹.

슬플 정도로 선명한,

고양이 우는 소리였다.

***

3년 전.

멜리에스는 매일같이 망각의 고통 속에 빠져 살았다. 그의 치매 증상은 극도로 심해져 있었다.

뇌를 좀먹은 검은 곰팡이는 멈추지 않고 그 세력을 키워 갔다. 이대로라면 늙은 교수가 그토록 겁냈던 추레한 최후만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치매는 막을 수 없다.

살아있는 한은 그랬다.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있지 않았다.

멜리에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고 나서 자기 육체를 되살렸다. 죽은 시체를 일으켜 깨우는 타락 마법 <부두 차일>을 통해.

알츠하이머 증세의 악화는 멈췄다.

다만, 그는 자신이 죽었음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무던히 죽은 채로 살아갔다.

아주 오래전부터. 멜리에스는 이미 죽어 있었다.

그는 <죽음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이미 그것을 들었던 자에게, 그럴 자격은 없었다.

***

툭, 투둑―.

빗방울이 떨어졌다. 검게 물든 밤하늘에서 떨어진 비의 색은 언제나와 같이 투명한 무색이었다.

“웬디. 그 애 이름은 웬디야.”

멜리에스는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아, 맞아. 비단뱀이야. 흐히히. 귄터 엉덩이에는 큰 점이 세 개 있어. 그런데 아파. 손가락이 아파.”

온몸이 진흙 범벅이 되어서는, 아이처럼 웃는 얼굴로 태연하게 재잘거리다가, 느닷없이 구겨진 표정으로 누군가에게 사과하며 울먹거리기도 했다.

“6주 차 강의를 시작하겠다. 교재 76페이지 세 번째 문단부터다. 야옹. 지금 누가 고양이 소리를 냈지? 난 아냐. 나일 리가 없어. 내가 맞나? 나야?”

나는 뻗었던 오른손을 도로 거뒀다.

그리고 바닥에 누운 노인에게 다가갔다.

“으, 어, 누구? 엄마? 엄마야?”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처음에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내게 향하던 시선은 어느새 괴물을 마주한 듯한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아, 안 돼, 오지 마,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아, 죽는 건 내가 아니야, 그건 고양이야, 아니, 마커스야, 마커스는 살아 있어, 하지만 난, 난…….”

나는 다시금 그에게 손을 뻗었다.

멜리에스는 비명을 질렀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지그시 눌러 감쌌다.

“카인 나호르.”

내가 악마의 이름을 속삭이자,

<부름>의 벌레 떼가 이끌려 나왔다.

자색 군체는 멜리에스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녀석들은 웬일인지 아무런 불평도 없이, 그의 망가진 뇌를 얌전히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아…….”

그리고 그 무렵.

멜리에스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왔다.

“유클리드 군……?”

그러나 그의 표정은 곧 다시 일그러졌다.

줄곧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린 탓이었다.

“아아, 안 돼. 내가, 내가 무슨 짓을……!”

“…….”

“사람을 죽였어. 한두 명이 아니야. 이렇게 끔찍한 짓거리들을, 정말로 내가 저질렀다고……?”

교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는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말해 주게, 유클리드 군…….”

눈동자에 서린 건 절망뿐이었다.

그럼에도 희망을 바라고 있었다.

“이건 다, 꿈인 게지……?”

나는 그가 원하는 걸 줄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그저 입을 열었다.

“네. 맞아요. 푹 주무세요.”

멜리에스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피었다.

“아아, 그렇군. 다행이야, 정말…….”

노인의 미소는 소박했다.

더 원하는 건 없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잠에 못 든 지 꽤 됐어. 강의 시간이 되면 깨워 주겠나? 너무 피곤해서, 나 혼자서는 눈을 못 뜰 것 같거든. 그래, 혼자서는…….”

그는 편안하게.

아주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투욱―.

그리고 어느새 비가 그쳤다.

이제 더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오늘 밤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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